강화군 [江華郡]
교육·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 1127년(인종 5)에 창건되었고 여러 차례 중수해 이건된 강화읍 관청리의 강화향교와 같은 해에 창건된 교동면 읍내리의 교동향교가 있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 강화진위대 참령을 지낸 이동휘(李東輝)가 기울어가는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신식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함에 따라 각지에 학교가 설립되었다. 이에 1871년 중성학교(中成學校), 1872년 보창학교(普昌學校), 1896년 광명학교(光明學校) 등이 세워졌다. 1897년에 「보통학교령」이 공포되자 이듬해 강화보통학교(지금의 강화초등학교)가 설립되었고, 그 뒤를 이어 1900년 대동학교(大東學校), 1907년 영생학교(永生學校), 1908년 집일학교(集一學校) 등이 세워졌다. 중등교육 기관으로는 강화중학교가 광복 직전인 1945년 5월 20일 설립되었다. 그 뒤 국민학교뿐 아니라 중등학교도 많이 개교하였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2개교, 중학교 10개교, 고등학교 8개교가 있으며, 인천가톨릭대학교, 안양대학교 강화캠퍼스가 있다. 문화사업으로는 1946년 10월 9일 한글날을 기해 강화군수와 지방유지들을 중심으로 강화문화관이 건립되었다. 여기에는 내외서적 1만 6000여 권과 유물 수천 점이 소장되어 일반에게 공개되었으나, 6·25전쟁으로 소장품 일체를 도난당한 뒤 다시 복구되지 못하였다. 그 뒤 1962년 4월 1일 새로이 강화문화원이 창설되어 각종 문화·예술 행사를 주관하면서 지역문화의 향상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특히 1976년에는 1,000여 면에 달하는 『강화사(江華史)』를 발간하였다.
민속
중요한 민속놀이로 시선(柴船)뱃놀이와 용두레질놀이를 들 수 있다. 시선은 운반선을 겸한 상선으로서 어장에서 잡은 고기나 땔감을 운반하던 배였고, 강화도를 중심으로 연해어장에서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마포장까지 운항했고, 한선(韓船)이라고도 한다. 고려 때부터 있었다는 시선은 오늘날에는 시대적인 추이에 따라 젓잡이배나 기타 운반배 등으로 변형되었다. 이 배는 길이 15m, 너비 3m 이상이고, 배에는 총 지휘자를 비롯해 영좌^선원 등 약 20명이 승선하며, 출항하기 전에는 동네사람들과 함께 무사와 풍어를 비는 당굿을 한다. 승선을 한 뒤에는 노래와 함께 닻을 올리고, 돛을 달면서 바다로 나가 고기잡이 배와 만나고 그물 뽑는 노래를 한다. 다시 고기를 넘겨받으며 「바듸소리」를 부른다. 바듸란 고기를 옮겨담을 때 사용하는 도구의 이름으로, 작업과정에 도구의 이름을 앞에 붙인 노래를 부른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끝으로 시선은 한강을 거슬러 오른다. 메기는 소리의 독창과 받는 소리의 제창이 어우러지며 배는 마포의 객주집에 이르게 된다. 포구에 배가 닿기 직전에 시선뱃노래와 함께 배 위에서는 풍어를 알리는 신호로 꽹과리·호적·징·북이 등장해 풍물놀이로 흥을 돋운다. 선상 배치기(뱃노래)와 함께 배가 육지에 닿으면 선주와 그 부인은 동네사람들과 함께 술동이를 이고 춤을 추며 마중나온다. 이 때 봉기(奉旗)를 앞세우고 행진을 한 선원들이 봉기를 선주집에 세우고 풍장놀이를 하고 춤을 추면 시선뱃놀이의 절정을 이룬다. 용두레질놀이는 노래 부르면서 농경지에 물을 퍼붓는 작업을 재연한 놀이이다. 용두레란 깊은 곳에 저수된 물을 천수답으로 퍼올리는 재래식 양수시설이다. 용두레는 지름 40㎝, 길이 80㎝의 통나무를 길게 켜서 속을 파내어 삼발이 대에 매달아놓고 물을 푸는 것이다. 물을 푸기가 힘들어 농요를 부르며 작업의 능률을 올린다.
“물줄은 하난데
두레는 열두래
……………
어저께까지 삼천두레라
(후렴)이거 두레 물 올라가는가.”
「용두레질노래」
내가면 외포리 정포마을의 상산에서 행해지는 곶창당제는 3년마다 이루어지는데, 유래가 오래된 것을 추정된다. 음력 2월 초순에 길일을 택해 산에 있는 당집에서 3∼5일에 걸쳐 당제가 이루어지는데, 먼저 남녀 각각 세 사람씩 제관이 되어 산에서 떡시루를 놓고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바치는 등 제물과 절차가 엄격한 관례로 규제되고 있다.
제사가 끝나면 수(首)만신을 비롯한 여러 명의 만신들이 모여 산신·제석·임경업장군신 등 열두거리굿을 통해 풍어를 비롯한 농사의 풍년을 빌고, 가가호호의 소지(燒紙)를 올려준다.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주민들이 쌀 한 되씩 내며, 선주들이 부담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밖에 갑곶돈대가 있는 진해산(鎭海山) 당집, 또한 내가면 황청리에서도 매년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3-08-12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