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8월 7일 월요일 오후 8시 정도 …… 서울역 광장에서
전철을 일찍 타 시간이 남았다. 농담도 하고 장난 전화도 했다. 정애와 아름이, 희진이 기타 등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약을 올리기도 하고 하면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여행을 부러워했다. 같이 싶다는 이도 있었다.
드디어 기차를 탄다. 기차 온다. 왔단 말이야! 가자! 목포로·······
8월 7일 오후 11시 20분…… 기차 안
시간이 남아 또 쓴다. 지금의 기차는 임시기차이다. 우리와 같이 여행을 가는 이들을 위해서 임시적으로 만든 기차이다. 기차의 외형이 임시가 아니라 시간 편성이 임시라는 이야기이다. 임시가 아니었다면 자리가 없었으리라·· 흩어져 있는 자리를 한 곳으로 모으고 각자 기차가 떠나기만을 기다린다. 기다리는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말"은 신기한지 이러 저리 두리번거린다. "말"형은 "한국 경제 신문"의 T V 란을 열심히 보고, 진철이는 길에서 주운 "한겨레 21"을 아무 생각 없이 넘기고 있다. 앗! 이게 웬일인가, 주인이 와서 "한겨레 21"을 빼앗아 갔다. 왕! 창피함이다.
8월 8일 화요일 새벽 4시…… 아직도 기차 안
아직도 기차안. 도착 시간까지 50분 정도 남았다 제각기 최대한 편한 포즈를 여러 가지 형태로 취하고 있다. 진철이가 또 다시 포즈를 바꾸고 있다. 나도 졸리 운 눈을 비비며 글을 쓰고 있다. 빨리 몇자 적고 나서 편한 포즈를 잡고 잠을 청해야지. 아! 누가 말했던가, 천하장사도 들어올리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졸리 운 눈까풀이었다고.
8월 8일 새벽 5시…… 드디어 목포 도착
목포 도착. 자전거 찾음.(자전거는 미리 화물로 목포까지 보냈음) 나의 자전거 망가짐. 지금은 모든 걸 잊고 허기진 배를 해장국으로 채우려 하고 있음. 해장국 먹었음. 배 채웠음. 배가 채워지니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이 떠오름. 우리의 여행 수단은 자전거이므로 자전거가 망가져 있으니 자전거포에 가서 자전거를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름. 자전거포에 갔다. 우리가 너무 일찍 왔나보다. 그고 그럴 것이 새벽 5시에 도착해서 이런저런 일들을 했어도 그 시간이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자전거포 아저씨가 올 때까지 기다림. 지금 아이들하고 날씨 이야기를 했다. 도착 당시 천개, 번둥이 쳤으나
8월 8일 오전 7시…… 자전거포 앞에서
지금은 말짱하다. 해변 날씨 신기하다. 가끔 사투리 쓰는 사람이 지나간다. 말은 외출했다. 고향이 가까워짐에 따라 마음이 심란한가 보다. 자전거를 고치고 목포 항구를 찾아갔다.
8월 8일 오전 9시…… 제주로 가는 바다에서
배를 탔다. 우리는 900원을 절약하기 위해 고등학생으로 변신했다. 명훈이가 제일 기뻐했다. 완벽하게 속이기 위해서 리얼한 연기를 보여 주어야 한다나 -- 매표소 앞에서 계속 우리들에게 반말을 하고 있다. 신나하는 명훈이는 표를 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연기를 하다가 우리들에게 맞아 죽을뻔 했다. 지훈이가 안 보인다. 어디에 갔을까? 계속 불안한 표정이었는데, 지훈이가 왔다. 멀미약을 먹고 왔다고 했다. 멀미약을 먹고 왔다고는 하지만 안색을 살피니 화장실에서 어떠한 일을 치른 것 같은 느낌이 난다. 나머지 사람들은 지훈이를 놀려댔다.
배에서의 6시간 ∼ 장난이 아니다. 자고 나서 배 한번 둘러보고 또 자고 ……이러기를 4번 ……바다는 힘이 있다. 끝없이 생동하는 움직임, 강한 생명력, 고요히 흐르는 강물과는 차원이 틀렸다. 무엇인가 용솟음 치게 하는 강한 그 무엇. 이러함 때문에 바다에 오는 것이리라.
8월 8일 오후 3시…… 제주 하늘 아래의 제주 땅을 밟으며
제주 도착. 자전거를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제주 땅을 , 제주 바람을 휘가르며, 제주 하늘 아래에서 , 제주 숨을 쉬며 달렸다. 배가 고프다. 배위에서 계속 잠을 자곤 했는데 밥 시간이 너무 지나서 일까? 우리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시내로 들어갔다. 짱게(짜장면) 곱빼기를 먹고 공항으로 놀러 갔다. 진철이는 짜장면 집에서 물을 가져가다가 들켜서 창피함을 받았다. 공항에서 명훈이와 진철이가 일(큰 것)을 봤다. 자아식들 공항이 일 보는 곳인가.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것처럼 포즈를 취하며 기념 촬영을 했다. 언제 제주 공항에 올 일이 있겠냐 하면서 …….
우리는 항몽 유적지를 찾아간다. 우리 조상들이 외적 세력을 물리친 얼을 본받기 위해서 …… 도중 ∼ 제주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었다.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우리가 온 길도 정확했다. 도와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명훈이가 물 뜨러 갔다. 제일 어리니까.
8월 8일 오후…… 항몽유적지에서
또 사고 ∼∼ 명훈이 자전거 체인 끊어짐. 명훈이는 항몽 유적지를 뒤로하고 자전거를 고치기 위해서 우리와 이별을 했다. 약속 장소(명훈아! 너는 곽지 해수욕장 쪽으로 가고 있어라. 우리는 항몽유적지를 방문하고 그쪽으로 달려 갈 테니.)를 정하고 우리는 손을 흔들어 주며 명훈이를 보내고 항몽 유적지로 갔다. 앗!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관람 시간이 지나 문 닫았다. 아쉬움 때문인지 진철이는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다. 아쉬움을 남기며 다시 떠난다. 내려오는 도중 옛 산성 터전에서 당시 그 모습을 상상해 보며 이야기를 했다. 이쪽으로 몽고 군들이 왔을 꺼야. 그러면 이 쪽에서 우리 대항군들이 그들을 저지했겠지. 우리가 옛날에 있었으면 상당히 용감하게 외적 세력들과 칼싸움을 했을 텐데……… 휙, 챙, 짱, 뿌지직 (이 소리는 칼싸움의 효과음입니다.)
8월 8일 저녁…… 우리의 기도 없음을 용서하소서!
항몽 유적지를 뒤로 한체 우리 일당은 곽지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명훈이를 볼 수가 있었다. 매우 힘이 없는 모습으로 자전거를 아직 고치지 못해서 투덜투덜 거리며 끌고 가고 있었다. 명훈이를 만났다. 뒤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자전거는 아직 고쳐지지 않은 상태였다. 어려움에 봉착했다. 이러한 어려움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하지 않아 봉착했다고 지훈이가 말했다. 우리는 지훈이의 제안에 따라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어둑어둑해져가는 시간 속에서 자전거를 옆에 두고 길 가운데에서 곧바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잘못을 주님께 고백하며 '주여! 우리의 기도 없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남은 기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한결 발걸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했으며 서로의 표정에는 평안이 넘쳐 보였다. 우리는 오늘의 목표지 곽지 해수욕장을 포기하고 근처 중학교에서 묵기로 했다. 아담한 학교였다. 주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생각한다. 텐트(아름이네 텐트라 아름이다운 텐트였다.)를 설치하고 저녁을 먹었다. 메뉴는 동결건조 미역국
8월 9일 수요일 아침…… 자전거를 고치고 소생하는 명훈
아침 식사는 사리곰탕(라면)으로 하고 명훈이의 자전거를 고치기 위해서 철물점으로 갔다. 철물점 아저씨는 비교적 쉽게 자전거를 고쳤다. 단순한 망치로 뚝딱 뚝딱 몇 번 내려치더니 벌써 다 고쳤다. 신기한 아저씨의 손길이었다. 신기한 아저씨의 손길을 기다리면서 쭈쭈바를 사먹었다. 아직 이른 아침인데 벌써부터 시원한 것이 자꾸 땡긴다. 앞으로의 여정이 걱정스러워 진다. 감사의 인사를 드린 후 우리는 출발했다. 자전거가 고쳐지자 말은 아픈 다리가 나았을 때처럼 SSANG SSANG 달리기 시작했다. 하얀 머리를 휘날리며 …… 그때 명훈이의 휘날리는 머리칼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달리는 도중 다른 하이킹 족을 추월했다.
8월 9일 오전 9시…… 협재해수욕장에서 투덜거리는 지훈
우리는 애월 항구를 지나 협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이때 처음으로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이런 감격스러운 순간에 지훈이는 평소 때에는 이불 속에 있었을텐데라고 투덜거린다. 우리는 지훈이의 투덜거림을 무시한 채 바닷물에 물을 담그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한가로운 시간을 마무리짓고 한림공원으로 향했다.
8월 9일 오전…… 한림공원에서, 행군에 지친 우리들
도착했다. (앞의 4자가 완성되기까지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자전거 패달을 밟았는지 상상이 가는가?) 한림공원에서 아열대 식물원과 협재굴, 쌍용굴을 구경했다. 진이한 광경이 많았다. 아열대 식물들은 의정부의 명산(도봉산, 수락산, 빡빡산 등)에 있는 나무들과 상당히 많은 차이가 있는 것들이어서 좋은 눈요기가 되었다. 그러나 아침부터 약 10km를 자전거로 행군했기 때문에 힘이 부쳐서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 그리고 절약하기 위해서 영양보충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물만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한림공원을 지나
8월 9일 점심때 쯤…… 건빵을 씹으며 해안도로를 지나다.
신창에 도착했다. 신창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건빵을 샀다. 제일 맛있는 건빵으로 … 그곳에서 우리는 의정부에서 한 때 살았다는 아저씨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그 아저씨와 의정부와 관련된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 그 아저씨로부터 길을 인도 받았다. 절부암을 지나서 모슬포로 행진을 시작했다. 해안도로를 따라서 가는 곳마다 바닷물이 넘어온 것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는 미확인 물들이 도로에 떨어져 있곤 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장난 아니었다. 그 굉장함에 우리는 다리를 떨어야만 했다. 바람을 가슴에 안고 패달을 밟아 본 적이 있는가? 오르막길도 아닌데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떨고 있는 다리를 위로하며 전진했다.)
8월 9일 점심…… 모슬포에서 허기를 채우다. 그리고 낮잠을 자다.
힘들게 모슬포에 도착했다. 도착후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김치찌개로 허기를 채웠다. 모슬포를 행하니 둘러본 후 그곳을 빠져 나와 낮잠을 즐긴 후 중문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우리가 낮잠을 즐긴 것은 우리의 게으름 때문은 절대로 아니었다. 오후의 뜨거움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으로 앞으로 전진하는 우리의 전술의 수정은 절대 아니었다. 작전상의 후퇴라고 표현하면 어울릴까? 아무튼 좀 더 나은 전진을 위한 수면이었다. 또한 우리는 낮잠시간에 인류애를 발휘하기도 했다. 모기에게 우리의 피를 간식거리로 제공해주었다. 후세 사람들에게 우리의 인류애가 높이 평가될 날을 생각해 본다.
8월 9일 오후…… 중문해수욕장으로 가는 길
부시시한 모습들이다. 야! 일어나라! ……… 호흡을 가다듬고 우리는 출발했다. 산방굴사를 바라보고 음∼ 여기가 산방굴사군. 이라고 말하고 중문해수욕장으로 갔다. 중문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은 내리막길이었다.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상쾌함과 짜릿함, 시원함등 여러 가지 느낌을 가졌다. 또한 나중에 올라오려면 죽었다는 생각과 함께 ……
8월 9일 저녁…… 중문해수욕장에서의 하룻밤
중문해수욕장에서 하룻밤을 묵은 것은 왕! 실수 였다. 천막의 자릿세를 시작으로 하는 바가지 요금! 라면 1개가 500원이라니(그 당시 물가를 생각하면 엄청 비싼 가격임. 95년도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해수욕장에서 하룻밤을 지세우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다. 해수욕장 주변을 서성거리며 돌아다녔다. 밤거리에 남자들만 돌아다니는게 궁색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좀 더 나은 내일의 제주 경치를 생각하며 잠을 청하기로 했다. 또 하룻밤이 지나가는구나. GOOD NIGHT! BOYS.
8월 10일 목요일 아침…… 불편함의 계속
아침 중문 해수욕장은 사람이 많아서 모든 것이 불편했다. 밥을 하기 위해 물을 뜨는 것부터 해서 우리의 기본적인 배설욕구를 해결하는데 까지 불편함의 계속이었다.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많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하기야 우리 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도 찾아왔는데 우리 같은 사람이 하나 둘 이겠어.
8월 10일 아침…… 중문해수욕장을 나오며
중문 해수욕장을 나오는 길은 중문 해수욕장으로 오면서 말했듯이 나오는 길은 정말로 끔찍했다.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은 어제 신나게 내려갔으니 오늘은 신나게 고생해봐라. 라고 길이 우리를 약올리고 있는 것 같다. 힘들게 빠져 나와 천제연으로 향했다.
8월 10일 오전…… 천제연 - 비를 피하며 장난전화질
천제연 - 1단 폭포, 2단 폭포, 장관이었다. 이리 저리 두리번거리고 있으려니 비가 많이 왔다. 구경을 끝내고 막 다른 곳으로 출발하려는 순간이었는데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구경하는 도중이나 다른 곳으로 향하는 중에 비가 왔으면 엄청난 손실을 입었을 텐데 ……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이라고 생각한다.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돕고 있는지 감격스러웠다. 주님! 감사합니다. 비를 피하는 순간 ∼ 이 짜투리 순간도 놓치지 않고 활용하는 우리의 지훈. 지훈이는 배를 만지며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은 전화를 했다. 집에 안부 전화와 교회 사람들에게 약 올리는 전화를 했다. 재미있다. 비가 멎었다. 다행히 비는 지나가는 비였었다. 비가 그친 후 우리는 천지연으로 향했다.
8월 10일 오전…… 천지연을 지나 정방폭포를 둘러보며
내리막길이라 비교적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망했다. 천지연은 천제연보다 경치가 별 로였다. 그리고 사람도 많았다. 사람이 많았던 것은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활동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고나 할까. 스으윽 둘러 본 후 정방폭포로 향했다. 도착했다. 장관이었다. 앞에는 바닷가, 뒤에는 폭포수(양쪽으로 갈라지는 2줄기 물기둥) 앞을 폭포수로 해야하나? 아무튼 지금까지 우리가 본 것중 제일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물도 시원하였다. 발을 담그고 있으려니 몸 속까지, 뼈 속 깊은데 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몸까지 부르르 떨리는 현상까지 경험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절대 일 본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문화 시민으로서 불건전한 일은 하지 않으며 그리고 그 곳은 사람이 많은 곳이어서 절대로 일을 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었음.) 말도 신나했다. 말이 신나하는 이유는 뒤에 거론하기로 하지.
8월 10일 점심…… 점심 먹고 또 휴식?
아쉬움을 남기며 정방폭포를 빠져 나와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정식, 순두부, 김치찌개, 비빔밥 여러 가지 음식을 주문하여 골고루 먹었다. 점심을 먹었으니 우리의 전략을 펼칠 순간이다. 작전상의 후퇴, 좀 더 나은 전진을 위한 하나의 휴식, 낮잠을 잘 곳을 찾자. 찾았다. 서귀포 중학교. 학교가 제일 만만하다. 야외용 돗자리를 깔고 잠을 잘 준비를 하고 잠을 잔다. 아이들이 그만 쓰고 빨리 자라고 구박한다. 으으윽 졸음이 오기 시작하는군 나도 자야지. 깨어났다. 비몽사몽간에 수돗가에서 상쾌하게 씻은 후 다시 전진했다. 우리의 전략은 적중했다. 오후의 따가운 햇살을 피하고 좀 더 힘차게 전진하기 위한 작전상의 후퇴 덕분으로 빨리 전진할 수 있었다. 우리의 앞길은 순탄했다.
8월 10일 오후…… 제주 민속촌에서 신나하는 명훈
제주 민속촌까지 쉽게 올 수 있었다. 민속촌에 도착한 시간 6시. 민속촌에서 제일 힘있게 놀았던 것은 명훈이었다. 말 …… 말이 있었던 것을 알았을까? - 그래서 힘이 샘솟았을까? 그래! 맞아! 정방폭포에서부터 말이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었어. 말은 자신의 동료들의 숨결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 말에게 이런 감각이 있었다니. 다시 한 번 신기해한다. 아무튼 말은 말을 만났다. 기분 좋아하는 말. 민속촌은 볼 것 많았다. 널도 뛰고, 구멍에 화살을 넣는 게임도 하고 ………
8월 10일 늦은 오후…… 지훈이 자전거를 고치다.
민속촌을 나온 후, 또 사고 -- 이번에는 지훈이 자전거 앞바퀴 바람 다 빠짐 / 근처 자전거포를 찾아 헤매고 다니다. 주민들의 조언으로 발견. 주민들의 조언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바퀴에 단지 바람만 빠진 것뿐이었다. 구식 바람 넣는 기계로 바람을 힘겹게 넣은 후 성산 일출 봉을 보기 위해 성산으로 출발했다.
8월 10일 저녁…… 성산 일출을 보기 위한 우리의 집념
지금 시각으로 성산 까지 간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우리의 일출을 보아야 한다는 의지 앞에는 그 어떠한 것도 장애물이 되지는 못하였다. 장애물을 쉽게 뛰어 넘어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는 힘껏 패달을 밟았다. 우리는 밤에는 위험하므로 전진을 하지 않기로 했으나 "일출"이라는 장관을 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성산으로 향했다. 도로를 달리는 도중 매미가 우리에게로 날아와 많이 부딪쳤으며 그러한 부딪침에 우리는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매미가 우리의 바퀴에 깔리는 소리도 느낄 수 있었다. 바사삭--- 반대편에서 날아오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 때문에 중심을 잃을 뻔한 적도 있으며 눈이 부셔서 시야가 가려지기도 했었다. 자동차가 우리를 덮치려는 착각까지 경험하기도 했다. 아찔한 순간이 많이 있었다.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서 성산에 도착했다.
8월 10일 저녁…… 성산에서 허기를 짱게로 채우다.
성산에 도착한 우리들은 허기를 채워야 했다. 눈에 뜨인 것은 중국집이었다. 지훈이는 냉콩국수, 나는 짬뽕, 진철이와 명훈이는 짜장면을 먹었다. 짬뽕에는 해물이 많이 들어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해안도시임을 실감했다. 성산 시내를 빠져나와 성산 일출을 구경할 수 있는 곳으로 갔다. 도중 슈퍼마켓을 들러서 내일 아침 식량거리를 샀다. (참치, 사골우거지국……)
8월 10일 밤…… 성산에서 민박집을 고르기까지
성산일출관광단지에 도착했다. 그곳은 관광의 명소답게 민박 유치를 위해서 많은 아주머니께서 시합을 하고 있었다. 천막을 칠까 하고 야영장을 가 보았으나 마음이 끌리지 않아서 다시 돌아왔다. 중문해수욕장의 아픈 추억도 있고 해서 그런 것 같다. 약간 외곽의 민박집을 선정한 후 우리는 임경미선생님 댁으로 전화를 걸었다. 반가운 목소리였다. 반가워했던 것은 우리들 보다 임경미 선생님 쪽에서 더욱 반가와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내일 집으로 찾아 뵙겠다는 약속을 한 후 전화통화를 마감했다. 임경미 선생님은 지금이라고 맨 발로 뛰어 나올 것 같은 태세였다. 우리는 임경미 선생님의 얼굴을 마음속으로 그리면서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민박집에서 우리들은 땀에 찌들어 있던 우리들의 몸을 씻었다. 그 동안 우리들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 3일 동안 자전거를 타고 달려오면서 수없이 많이 흘렸던 땀, 이것을 제대로 닦아 내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말려 버렸던 우리들의 몸, 몸의 구석구석을 제대로 씻지 못해서 근질근질했던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우리는 민박집에서 깨끗이 씻어냈다. 참으로 상쾌했다. 몇 일 만의 목욕인가! 그 동안의 피로도 물과 함께 말끔히 씻어 낸 후, 우리는 털레비젼을 잠깐 시청한 후, 성산 일출을 보기 위해 잠을 청했다.
8월 11일 금요일 너무나도 이른 새벽…… 웬 날벼락!
☆★¤ 우당탕 쿵탕 ∼ 니 죽고 나 살자, 아니 이게 웬일인가, 이런 날벼락이 있는가? 무슨 일이냐 하면 민박집내에 세 들어 사는 어느 부부의 부부싸음 소리였다. 이런 저런 제주도 사투리와 함께 대부분이 욕이었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계속 되었다. 오랜 시간 지속되다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조용해졌다. 이 사태를 비몽사몽간에 들어서 정확한 사건을 모르겠는데 다음날 말하기를 칼부림도 있었다고 한다. 칼부림 때문에 경찰차가 출동했다고 한다.
8월 11일 동 틀 무렵…… 일출 보러 가야지!
일출할 시간이 임박해오자 민박집 주인이 우리들을 깨워주었다. 우리는 전날 부부싸움의 소리 여파로 피곤했지만 눈을 비비고 일어나 성산일출봉으로 향했다. 힘격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목적으로 눈꼽을 띠며 오르고 있었다. 주위에 안개가 많이 있어 불안하기도 했다. 불안하기도 했지만 곧 거치겠지 하고 우리의 심정을 달래며 오르기 시작했다.
8월 11일 일출시…… 꽝이다.
정상에 올라 해가 떠오르는 곳을 집중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느낌이 이상하다. 어느 순간 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해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수평선 밑으로 해서 올라오는 모습이 아니라 벌써 하늘에 올라 있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놀음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표현하지 -- 꽝이다. 정말로 꽝이다. 어제 저녁부터 힘들게 왔는데 꽝이라니 허무하다. 착잡하다. 그래도 우리는 사진촬영시 약간의 속임수를 보였다. 실제로 일출광경를 본 것 같은 얼굴 표정으로 사진촬영을 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일출을 보았다고 해야지. 정상을 내려오는 길에도 일출을 보기 위한 지각생들이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처음에는 솔직히 말했으나 나중에는 우리의 장난끼가 발동하여 정말 광경이었다고 빨리 올라가 보라고 아직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등 잔인한 말을 하기도 했다. 다시 민박집으로 내려왔다.
8월 11일 오전…… 웃지 못할 에피소드
여기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지. 무엇인가 하면 진철이가 화장실을 다녀오더니 나에게 조용히 다가오는 것이었어. 머리를 긁적이며 차분히 다가와 침착하게 자신의 한 쪽발을 가리키며 형! 샌들 한 쪽-- 화장실 속으로 빠져 버렸어. 다른 한 쪽의 샌들을 살펴보니 나의 것과 똑같은 샌들이 아닌가? 말문이 막힌다. 정말로 웃지 못할 에피소드이다. 진철이의 실수는 잊어버리고 아침을 지어먹고 마지막으로 샤워를 다시 하고 나서 임경미 선생님 댁으로 향했다.
8월 11일 역시 오전…… 임경미 선생님 댁으로 가는 길
임경미 선생님 댁으로 가는 길은 지루하였다. 지루한 길을 가는 것만큼 괴로운 것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괴로움은 전날 민박집에서 묵으면서 그 동안의 피로를 쌰워를 통해서 충분히 풀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다. 솔직히 우리의 몸짓은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피로를 푼 것도 있었지만 임경미 선생님을 만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불어넣어진 새로운 활력을 바탕으로 우리는 전진했다. 전진을 하면서 항상 느낀 것이 있다. 우리의 등에 짊어져 있는 배낭의 무게였다. 항상 배낭의 무게를 느끼면서 왜 이렿게 무겁게 짊을 꾸렸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최소한의 짊만을 꾸며라! 인생의 선배로서의 충고이다. 등에 있는 짊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것과 예수님의 고난을 비교해서는 안되지만 비교할 수 도 없지만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등에 있는 짊의 무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투덜거리지 말고 열심히 가자. 라는 생각을 가지고 우리는 역동적으로 전진했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임경미 선생님 마을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8월 11일 늦은 오전…… 임경미 선생님댁 도착
우리는 이 기분을 믿고 임경미 선생님 댁으로 전화를 했다. 선생님께서는 출근을 하셔서 통화를 할 수 없었고 대신 아버님과 전화 통화를 했다. 어색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친절하게 우리를 대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의 기분도 적중했다. 바로 이곳이 선생님댁 마을이었다. 아버님의 친절한 설명을 바탕으로 집을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아버님께 인사를 드린 후 우리들의 간단한 소개와 짧은 대화를 나눈 후 만장굴 관광을 위해 길을 나섰다.
8월 11일 역시 늦은 오전…… 만장굴은 우리를 감기로 안내하려 했으나
만장굴까지 가는 길을 아버님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쉽게 찾아갈 수 있었던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우리의 배낭을 임경미선생님댁에 놓고 왔기 때문이었다. 만장굴 관광을 위해 입장료를 치르는 순간, 매표소 앞에서 우리들은 처음으로 우리가 제주시민이 아니라 의정부시민이라는 사실에 대해 아픔을 느꼈다. 매표소 앞에는 제주시민은 무료입니다. 라는 글귀는 우리들로 하여금 상처를 주었다. 왜? 나는 제주시민이 아닌가? 라는 질문을 입장료 몇백원을 아끼기 위해 스스로에게 던졌다. 드디어 만장굴에 들어갔다. 과연 만장굴이었다. 만장굴은 우리들을 감기로 인도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무척 따가운 햇빛과 무더운 여름 가운데에서 싸늘한 겨울의 느낌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하기만 하였다. 싸늘한 겨울의 느낌은 우리들을 감기로 안내하고 있었다. 실제로 계속 그곳에 남아 있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곤 했었는데 그 충동에 따라 계속 그곳에 남아 있었으면 우리들은 감기에 걸리고 말았을 것이다. 아무튼 만장굴의 겨울의 느낌은 대단하였다. 만장굴의 감기의 안내를 뿌리치고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8월 11일 점심…… 햇님을 바라보며 낮잠
밖으로 나온 이유는 따갑고 무덥게 하는 햇님이 싫긴 했었지만 햇님이 우리에게 주는 많은 이득을 생각하면서 햇님을 보기 위해 나왔다. 근처 벤치에 자리를 잡고 햇님을 바라보면서 우리들은 또 작전상의 후퇴, 일종의 전략, 더 나은 전진을 위한 휴식 이름하여 낮잠을 즐겼다. 지금 이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게으른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작전상의 후퇴, 일종의 전략이라는 허울 좋은 변명으로 우리들은 너무나도 사치에 겨운 게으름을 피운 것 같다. 우리는 HUNGRY 정신으로 여행에 임했어야 하는데 …… 게으름.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동안 경계해야 하는 마귀의 계략이다. 게으름이란 마귀의 계략 때문에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고 있는가? 다시 한번 생각하고 우리 모두 함께 경계하자.
할렐루야! 아멘∼∼ .
8월 11일 오후…… 때 빼고 광내고 준비하자.
만장굴 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임경미 선생님 댁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우리들은 임경미 선생님과의 감격스러운 상봉을 기다리며 간단히 샤워를 했다. 때 빼고 광내고 ……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비를 하고 있으려니 아버님께서 우리에게 수박을 주셨다. 참으로 시원한 수박이었다. 수박을 먹고 나와 우리들은 버스 정류장에서 선생님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언제나 오시려나,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 지나가는 버스를 유심히 째려보며 정류장에서 내려오는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8월 11일 늦은 오후…… 만남의 시간
드디어 감격스러운 상봉의 시간이다. 배경 음악이 깔리다.(T. V는 사랑을 싣고 …… 배경음악) 선생님 ∼∼, 아그들아 ∼∼ 보고 싶었어요, 오느라 욕봤다. 흐흐흑, 이 때의 심정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까? 정말로 감격스러운 시간이었다. 임경미 선생님과 집으로 함께 돌아와 제주도의 보통 사람들의 아주 평범한 식단을 즐길 수 있었다. 육지 사람들의 식단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이런 약간의 차이가 더욱 우리의 식욕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부채질되어진 식욕으로 우리는 저녁을 맛있게 많이 먹었다. 식사를 하고 나서 임경미 선생님과 교회 사람들과 지금까지 우리의 행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잠을 청했다.
8월 12일 토요일 이른 아침…… 아쉬움을 달래며
아침이다. 제주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아침이다. 마지막 아침을 가볍게 체조로 시작했다. 임경미 선생님과 마지막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부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 후에 우리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의정부로 돌아가는 구나. 아쉬운 순간이 많았다. 제주도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이러한 아쉬움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지만 이러한 아쉬움은 우리의 발목을 잡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우리의 고향인 의정부에는 더욱 좋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가능 교회, 교회에 속해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것이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우리는 제주 항구로 자전거 앞바퀴를 돌리기 시작했다.
8월 12일 오전…… 항구로 가는 길
제주 항구까지 가는 길은 순조로웠다. 가는 길목에 제주 교대가 있어 잠시 들렀다. 나의 학교(춘천 교대)와 관련이 있어 잠시 들렀는데 규모면 에서 보면 우리 학교보다 작았다. 시간이 많이 허락되지 않아 구석구석 둘러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언제가 다시 올 날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다시 옮겨야 했다. 발걸음 계속 옮기니 드디어 제주 항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8월 12일 역시 오전…… 항구 입성, 그러나 ……….
아! 드디어 항구 입성이다. 이런 감격스러운 일이 …… 이제 배를 타고 기나긴 바다를 건너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내가 첫 번째로 입성했다. 그 다음은 진철이가 도착했다. 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 명훈이와 지훈이가 도착하지를 않는다. 도착할 시간이 많이 지났다. 걸어서 왔다 하더라도 도착할 시간이 지났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우리에게 불안한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제주 항구에 도착한 명훈이의 모습은 우리들로 하여금 불안,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온몸에 피투성이인 모습이었다.(과장법 적용) 지훈이의 말에 의하면 항구에 내려오는 길에서 굴렀다고 한다. 이런! 제주 항구까지 오는 길은 매우 가파른 내리막길로서 그 길이도 제법 된다. 그 길에서 굴렀다고 하니 어떤 상황인지 제법 상상이 간다. 이런 긴박한 상황이었는데 명훈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 웃음을 참느라고 고생 많이 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러나 명훈이의 형 지훈이의 모습은 나와 진철이와는 사뭇 달랐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 라는 옛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였다. 지훈이가 명훈이를 부축해서 택시를 잡아타고 근처 병원으로 치료를 위해 떠났다. 명훈이가 돌아왔다. 온 몸에 허얀 반창고를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잔뜩 붙이고 불쌍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제야 명훈이도 정신이 제대로 돌아왔나 보다. 처음 다쳤을 적에는 아픈 감각이 전혀 없었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많이 아프다고 한다. 불쌍한 명훈이. 원래 불쌍한 모습이 많이 있었는데 반창고까지 잔뜩 붙이고 표정도 맛이 가 있는 표정이라 더욱 불쌍하게 보인다. 반창고를 잔뜩 붙인 명훈이를 앞에 두고 우리는 기념촬영를 하며 기뜩기뜩 웃기도 했다. 미안하다 명훈아!
8월 12일 점심때 쯤…… 돌아온 명훈, 수정되어지는 계획
이런 불쌍한 명훈이 때문에 우리의 계획은 수정되어져야만 했다. 배를 타고 기차를 타고 올라가려는 우리의 계획은 막대한 체력이 소비되는 과정이기에 지금의 명훈이의 상태를 보아서는 도저히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거의 하루가 걸리는 배, 기차 여행은 자칫 잘못하면 명훈이를 죽음(너무 표현이 극단적인가?)으로 몰고 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데 해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답이 나왔다. 답은 명훈이를 버리고 가는 거야! 우리는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명훈이를 화장실로 데려간 후 혼자 내버려두고 우리끼리 몰래 도망가는 거야. 화장실로 데려간 다음 도망가려는 순간, 명훈이가 눈치를 챘다.
8월 12일 오후…… 눈치 챈 명훈, 또 수정되어지는 계획
형! 나 버리고 가지마! 미리 눈치를 챈 명훈이의 처절한 부탁 - 우리의 인간애를 자극하는 말에 우리는 다시 계획을 수정하여야만 했다. 자아식! 제법인데, 눈치 하나만 빠르군, 어디 가서 죽지는 않겠어. 또 해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답이 나왔다. 비행기로 가는 거야! 그럼 자전거는 어떡하지? 또 해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답이 나왔다. 비행기 화물로 보내는 거야! 하나님의 도우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을 토요일이기에 비행기표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항으로 전화를 걸어 비행기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오후 9시 비행기가 남아 있다고 했다.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다행이라 생각하고 우리는 예약을 했다. 그리고 공항 화물 취급소에 전화를 걸어 자전거화물 편을 알아보았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8월 12일 오후…… 공항으로 가자
먼저 명훈이를 택시에 태워서 공항으로 보냈다. 그리고 우리들은 명훈이의 자전거를 끌고 공항으로 향했다. 저전거를 끌고 가는 길은 매우 위험하였다. 도로의 옆 부분으로 이동하였는데 자전거 2대가 동시에 가기에는 매우 비좁았기 때문이었다.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무런 사고 없이 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 도착 후 화물 취급소로 가서 자전거를 화물로 보냈다. 비행기로 보내는 것이라 금액이 꽤 비쌀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실제로는 배와 기차로 화물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금액이 저렴하였다. 우리는 저렴한 가격에 만족한 후에 공항 매표소에 가서 비행기표를 확인하였다.
8월 12일 오후…… 표를 구매하는 순간 어려움에 봉착하다
항구에서 예약한 것을 확인한 후 우리는 돈을 지불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뜻하지 않은 문제를 만나게 되었다. 이 문제는 학생증 때문에 생겼다. 학생의 할인(10%)을 받으려면 각 개인마다 학생증을 제시하여야 하는데 학생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실제로는 모두 학생이었는데 그것을 증명할 것이 있어야 했다. 우리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탁탁 털어 봐도 할인 받지 않은 비행기 삯을 지불하기에 모자랐다. 우리는 매표소에서 잠시 물러나 문제 해결을 위해서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문제 해결 방법 1, 2, 3
생각해낸 문제 해결 방법 1 - 우리는 현금카드로 돈을 인출하기로 했다. 먼저 나의 것 - 강원은행 현금카드- 현금지급기 서비스를 받으려고 했으나 거절당하고 말았다. 강원 촌구석 카드가 이런 제주까지 될 리는 없지. 라고 생각하며 좀 더 큰 은행을 이용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그 다음은 진철이의 것 - 국민은행 현금카드 - 현금지급기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오늘은 토요일이라 이용시간이 지났다고 서비스 불가 판정을 받았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시내에 국민은행지점으로 찾아가 보았다. 그곳에는 국민은행 현금지급기가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택시를 잡아타고 시내로 나가서 국민은행 지점을 찾아가 보았으나 그곳에는 현금지급기가 없었다. 이런 낭패가 있을까? 괜한 택시비만 날렸다. 현금 서비스를 받으려는 우리의 계획은 무산되었다. 다시 모여 머리를 싸매었다.
생각해낸 문제 해결 방법 2 - 구걸이었다. 불쌍한 명훈이를 앞세워 구걸을 시도해 보았다. 다치기 전부터 몸이 많이 부실하였고 머리카락도 별로 없는 데다 있는 머리카락도 새치가 많아 불쌍한 모습이었다. 그런데다 항구에서 굴르는 바람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반창고를 붙이고 있으니 얼마나 초라하고 불쌍한 모습일지 상상해 보라! 우리가 보기에는 상당히 많이 불쌍해서 사람들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유발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실패였다. 두어 번 시도했었으나 아픈 명훈이에게 몹쓸 짓이라 생각되어 그만두게 하였다. 다시 모여 머리를 싸매기 시작하였다.
생각해낸 문제 해결 방법 3 - 매표소에 가서 애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매표소로 몰려가서 애원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학생이다. 항구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돈이 없다. 우리의 형편을 좀 봐달라. 여러 가지 말로 우리의 처지를 설명하니 매표소 직원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표를 수중에 넣었다.
8월 12일 늦은 오후…… 표를 수중에 넣다. 배고픔을 건빵으로 달래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순간인가! 우리는 서로서로 표를 번갈아 가며 구경하기 시작했다. 제주 - 김포행 저녁 9시 비행기여서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서울까지 간다는 것 자체만으로 우리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의 기쁨도 잠시 배고픔이 우리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의 수중에 있는 것은 비행기표 4장과 700원, 그리고 자전거 여행시 먹다 남은 건빵이 전부였다. 잔돈으로 자판기에서 콜라를 뽑아 건빵과 함께 허기를 채우며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집에 전화를 해서 지금 이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자전거를 싣고 갈 트럭과 함께 김포 공항까지 와 달라는 부탁을 했다.
8월 12일 늦은 9시…… 비행기를 타다.
드디어 비행기 시간이 되어 비행기를 탔다. 내 평생 처음 타 보는 비행기였다. 처음이라 그런지 긴장감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계속해서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비행기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마냥 신기해했다. 드디어 출발이다. 부우우웅 하는 기분과 함께 하늘로 솟구치더니 하늘에 올라 있다. 공중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주는 음료수를 한 잔 마시며 짧은 시간을 보내니 벌써 아래에는 서울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서울의 야경을 본 적이 있는가? 가히 환상적이다. 시간이 난다면 남산이라도 괜찮다. 밤에 높은 곳에 올라가 서울을 한 번 보라.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다. 이런 환상적인 서울 야경도 잠시뿐이었다.
8월 12일 늦은 10시…… 비행기에서 내리다.
다시 주우우욱 가라앉는 기분과 함께 활주로를 달리고 있었다. 내릴 적에 명훈이의 장난스러움이 다시 한번 발동한다. 명훈이는 자기가 유명 인사라도 된 것처럼 팔을 이리 저리 휘두르며 많은 사람의 마중에 답례하는 듯한 몸짓을 지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것을 기념 촬영해 두었다. 한 번 생각해 보라 여기 저기 반창고 붙인 몸으로 팔을 이리 저리 휘두르는 광경을 ……. 이런 장난도 이제 끝이구나. 공항에 도착 후 우리들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우리를 싣고 갈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8월 12일 밤…… 의정부 땅을 밟자.
아! 왔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구나. 이제 의정부 땅을 밟게 되었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편안하였다. 모두 곤한 잠을 자고 있으므로………/
가는 길에 식당에 들러 의정부의 자랑인 부대찌개를 사먹었다. 이제야 의정부에 온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의정부 땅을 밟고 곤히 꿈나라로 직행하였다.
1998년 6월의 마지막 날에 주님께 드립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우리의 모든 순간 순간마다 주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를 드릴뿐이다. 이런한 우리의 모든 여정과 일정의 기록을 주님께 드리고 싶다. 늦게 작성되어 옛날의 추억을 되살리며 기록하였다. 비록 보잘 것 없는 글이지만 주님에게 드리고 싶다. 주님! 받으옵소서!
첫댓글 선생님 오늘이야, 이 글 봐요.. 이글이 있었나? 선생님께서 1995년에 저의 고향에오셨군요.. 갑자기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이나요... 성할아버지가 이제 칠순이셔요... 어서 빨리 제주로 다시 가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