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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에세이포럼
22기-9차시
일시 : 2024년 4월 16일 (화) 3시 00분
목록
순서 | 제 목 | 작 가 | 편수 | 합평 담당 |
1 | 강정 | 민창현 | 7 | 김선애 |
2 | 애장품을 보내먀 | 박희자 | 3 | 김인옥 |
3 | 우리의 노후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 김연희 | 5 | 박동조 |
4 | 무당개구리 | 권춘애 | 1 | 배정순 |
5 |
합평순서 / 권춘애 김순향 김선애 김연희 김인옥 민창현
박동조 박희자 배정순 예수백 이경자 이혜경
강정 / 민창현 7
1. 언양 오일장을 가끔 찾는다. 가는 김에 장도 보곤 하지만 주된 목적은 강정을 사기 위해서다. 여기저기의 강정들을 맛 봐왔지만 여기만 한 것을 찾지 못했다. 시장을 한 바퀴 휘돌면서 장을 본 후 마지막에 강정을 산다.
2. 요즘 들어 언양 장에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주차하기가 힘들어 한참 돌았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면서 한 푼이라도 싼 재래시장을 찾는 이유도 있겠지만, 어깨 부딪쳐가며 사람 구경하는 맛이 있다.
3. 시장 입구 채소 모종, 꽃 파는 가게를 먼저 만난다. 갖가지 종류의 고추 모종이 차렷 자세로 도열해 있다. 미인 고추, 아삭이 고추, 모닝 고추, 청양 고추, 비타민 고추, 조선 땡초.. 끝이 없다. 손녀 유치원 가방 색을 닮은 노란 팬지와 미니 수선화도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어깨를 펴고 생긋 눈 웃음을 주고 있다.
4. 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제철 과일 싸게 파는 좌판을 만난다. 한 소쿠리 사면 덤으로 몇 개 더 넣어준다. 이런 맛에 언양 장을 자주 찾게 된다. 다른 가게도 기웃거려 본다.
5. 튀김 집과 순대 가게에는 먹성 좋은 젊은 사람들이 와글와글 몰려있다. 부르면 대답할 것 같은 물 좋은 생선과 막 일어나 춤을 출 것 같은 싱싱한 미나리 등 각종 채소를 줄지어 팔고 있다. 온갖 종류의 약재 파는 곳을 지나면 버섯 파는 집이 나온다. 표고보다 맛있다는 송고 버섯이 인기가 많다.
6. 버섯 좌판을 조금 지나면 철물점이 있다. 간혹 들리는 곳이다. 농촌에 필요한 농기구가 대중을 이루니 대장간이라 부르는 게 더 맞겠다. 부엌칼 가는 데 필요한 숫돌과 틀을 사 온다. 한 달에 한 번씩 칼들을 갈아 날을 세워놓아야 하기 때문에 숫돌이 닳으면 들린다.
7. 떡 좌판의 인절미도 빠질 수 없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 달래서 들고 다니며 한 입씩 하는 맛도 쏠쏠하다. 줄 서서 기다릴 인내심이 남아 있는 날은 국밥집에 들러 배를 채운다.
8. 시장 바깥으로 나와 마지막으로 들리는 곳, 이날의 최종 목적지인 강정 만드는 가게다. 피식 큰 방귀를 뀔 때마다 손바닥보다 큰 하얀 뻥튀기를 하나씩 토해내고 있다. 한쪽에서는 강정을 비닐 봉지에 넣는 포장 작업에 손이 쉴 틈이 없다.
9. 어릴 적 설 날 밀양 시골 고향에 가면 기분이 좋았다. 늘 살던 동네를 떠나 새로운 풍물을 볼 수 있어서다. 동네 사람 태반이 친척들이라 온종일 세배 드리러 골목을 누비며 다녔다. 새해 인사 순례를 마치고 두둑해진 세뱃돈을 세는 것도 신나는 일이었다.
10. 세뱃돈은 아무리 많아도 당장 입을 즐겁게 해 주지 못한다. 일 년 전에 먹었던 작은 집 강정을 다시 맛볼 수 있다. 아이들 간식거리가 귀할 때라 유과, 강정은 인기가 많았다. 집에서 만든 것이라 모양은 이쁘지 않았다. 들어간 땅콩도 많지 않았지만 투박한 모양에 비해 맛은 공장에서 나온 것보다 좋다고 느꼈다. 이때의 기억이 강정을 나의 최애 기호품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11. 강정하면 학창 시절 기억도 난다. 도시에 유학 온 선배의 고향 집에 어느 겨울 친구들과 놀러 갔다. 오랜만에 고향 온 선배 소식에 동네 친구들이 저녁 식사 후 집에 놀러 왔다. 선배는 먹걸리 한 주전자와 강정 한 소쿠리를 내어왔다.
12. 이야기하고 노느라 긴 겨울밤이 새는 줄도 몰랐다. 강정 맛이 좋아 손과 입이 무척이나 바빴다. 그 사이 주전자와 소쿠리는 몇 차례나 비었다가 채워지기를 반복했다. 새벽에 잠깐 선잠이 들었다가 일어나 보니 선배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뭐 밟은 얼굴이었다.
13. 전 날밤 우리가 엄청난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우리가 간 때가 설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막걸리와 강정도 설에 쓸 음식들이었다. 아무 생각 없던 우리는 밤새 그것들을 모두 바닥 내어버린 것이었다.
14. 그 후로 많은 종류의 강정들을 만날 때마다 예전의 맛과 가늠해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찾은 것이 땅콩이 듬뿍 들어간 언양 장의 강정이었다.
15. 강정을 입에 넣고 바사삭 부셔 먹는 동안 손에는 또 하나가 들려있다. 빨리 달라고 재촉하는 입의 성화 때문이다. 쌀 튀밥 사이사이에 누런 땅콩이 군데군데 박혀있다. 손에 들린 강정을 바라보고 있으니 한 생각이 든다.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어울리며 살아가는 인간 세상을 닮은 것 같다.
16. 쌀 튀밥만은 별 맛이 없다. 거기에 땅콩이나 호두가 들어가면 맛이 백팔십도 달라진다. 땅콩 같은 맛 내는 부재료는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도 안된다. 그들만은 어우러지지도, 모양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들을 서로 잘 붙도록 하는 조청이 들어가야 한다.
17. 모든 음식이 마찬가지다. 별별 재료가 다 있다. 개별 재료 만으로는 별 맛을 낼 수 없지만 다른 재료가 들어서 더 좋고 색다른 맛을 내게 된다. 거기에도 역시 양념이 들어가서 재료들이 서로 잘 어울리도록 해 준다.
18. 우리가 사는 세상도 다름이 없다. 혼자 튀기보다 주변과 함께 어우러지는 사람이 좋다. 조화로운 사회는 강정속 땅콩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적절하게 섞여있다. 또한 조청같이 이들이 잘 어우러지고 뭉쳐지게 하는 제도와 그것이 잘 작동하도록 도와주는 땅콩 같은 사람들이 적소에 자리하고 있다.
19. 벽장 문을 열면 언양 장에서 고이 모셔 온 강정이 오늘도 나를 반갑게 맞는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며 몇 개 꺼내온 강정 맛을 천천히 음미한다. 함께 어우러진 달콤한 세상이 눈앞에 환하게 펼쳐진다. 강정 만세~
2. 애장품을 보내며/ 박희자 3
1ㆍ살고 있던 도심의 주택이 팔렸다. 계획대로라면 다시 전원으로 돌아가야 했으나, 결국은 편리하다는 아파트로 결정이 났다. 그러자 평소 아끼던 애장품 처리가 문제였다.
2ㆍ십여 년 전, 전원생활을 했었다. 건축한 지 오래된 기와집이었다. 낡은 집에 하나둘 모은 옛날 물건들이 낡은 집을 윤택하게 했다.
3ㆍ학창 시절, 우연이 옛 물건에 관심을 두는 기회가 있었다. 사는 환경에 맞지 않아 마음에만 새기며 살았다. 뜻밖에 전원에 살게 되면서 적극적인 관심법으로 옛 물건을 모으기 시작했다. 한 점 두 점 더해질 때마다 평생 살아갈 고래 등 같은 집을 짓겠다는 꿈을 꾸었다.
4ㆍ어느 순간, 전원을 벗어나 도심에 원룸 건물로 이사하게 되었다. 다행히 넓은 베란다가 있어 마음에 드는 것들은 옮겨올 수 있었다. 화초들과 어우러진 고풍스러운 실내 정원은 행복을 주는 힐링 공간이 되었다. 나를 웃게 하는 갖가지 토우 인형들, 내 감정선이 오르내릴 때 위로가 되었던 익살맞은 개구리군단, 내 삶의 기대치 높이에서 꿈을 키워주던 솟대들, 거북 가족과 항아리들, 특히 마음이 실렸던 돌하르방과 석등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애 애장품이었다.
5ㆍ내가 고등학교 때 우리 집은 대전에서 울산으로 터전을 옮겼다. 여름 방학을 맞아 처음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늦은 시간에 기차를 탔다. 동대구역에 내려 울산행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6ㆍ역에 내려 초행길에 우왕좌왕하다 마지막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전화기가 없던 시절이었다. 온다던 딸이 행방불명된 줄 알고, 가슴 태울 가족의 걱정은 뒤였다. 당장 눈앞이 캄캄했다. 여관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여학생 혼자는, 더구나 나는 가난한 학생이었다. 그렇다고 짧은 치마를 입고, 불 꺼진 대합실에서 밤을 지새우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
7ㆍ사람들이 빠져나간 텅 빈 대합실에 망연자실 앉아 맴도는 정적만 쫓고 있었다. 대책 없는 내가 안쓰럽던 직원의 혀 차는 소리가 나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주변을 살피는데 마지막 시외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다. 아우라를 풍기며 내 또래의 여학생이 사뿐사뿐 대합실로 걸어 들어왔다. 그 순간 섬광처럼 소녀가 나를 구제해 줄 구세주라는 생각으로 내 몸이 반응했다.
8ㆍ소녀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녀는 서울에서 공부하다 방학을 맞아 대구집에 오는 길이었다. 소녀는 걱정하지 말고 함께 자기 부모님을 기다리자고 했다. 소녀의 어머니는 안심하고 하룻밤 묵어가라고 하셨다.
9ㆍ기사가 운전해 주는 승용차가 소녀의 집에 닿았다.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불이 밝혀 있었다. 잔디마당을 가로질러 어머니 뒤를 따랐다. 생전 처음 보는 넓은 정원에 장식품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돌하르방과 석등이 조화를 이뤘다. 마당 둘레 청사초롱에 불이 밝혀 있었고, 물두멍에서는 푸른 수생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10ㆍ눈이 휘둥그레지는 부엌을 지나 안내된 방에는 금장 두른 가구들이 놓여 있었다. 편히 쉬라며 잠자리를 봐주시는 어머니 배려에 잠을 청했다. 위기에서 벗어난 안도감보다 아름다운 정원의 장식품들을 가슴에 깊게 끌어안았다.
11ㆍ따뜻하게 보호해 주던 모녀에게 보답하리라는 다짐을 했었다. 당장은 학생 신분으로는 쉽지 않아, 편지로라도 감사함을 전하겠다는 마음 가득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소녀와 내가 가진 환경이 비교되어 왠지 주눅이 들어 차일피일 미루다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12ㆍ젊은 시절, 고등학생 사춘기부터 수십 년간, 나에게 꿈을 꾸게 해주었고, 내 인생의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해 주어 애장품을 가질 수 있게 해준 소녀는 나에게 잊을 수없는 고마운 존재였다.
13ㆍ소녀의 집에서 정원을 보며 가슴에 품었던 고래등 같은 전원의 꿈을 이루었다면 오랜 세월 함께 꿈을 키웠던 나의 애장품들과 이별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우리의 삶은 늘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
14ㆍ내가 전원주택에 살다가 뜻하지 않게 원룸에 살게 되었고, 또다시 전원주택으로 가려 했으나, 그 길로 가지 못하고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애지중지 간직했던 소중한 것을 둘 곳 없어 내 곁을 떠나보내야 하듯, 사람의 관계, 인간의 관계에서도 인연을 맺어 사랑하고 아무리 소중해도 운명처럼 떠나보내야 하는 것도 인간의 운명이고 인간의 한 모습이 아니겠는가!
3. 우리의 노후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김연희5
1) 요양원은 죽으러 가는 곳인가?
1. 94세의 00할아버지는 며칠 전 요양원에 입소하였다. 할아버지는 단기기억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일 년 전에 할머니가 먼저 가시고 치매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했다. 아들 집에서 모시다가 며느리가 몸이 아파 더 이상 모시기 어려워 요양원에 입소하였다.
2. 며칠 후 요양원에 입소하게 된 것을 알게 된 딸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우리 아버지가 이런 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 치매 환자들이 있는 곳에 아버지를 모실 수 없다”고 했다. “요양원은 죽으러나 오는 곳이지” 하면서 막무가내로 모시고 가겠다고 했다.
3. 딸의 집은 시골이다. 아들과 며느리는 아버지가 아무도 없는 방에서 방치되는 것보다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것이 좋다고 설득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자식이 있는데 우리 아버지가 왜 요양원에 있어야 하는가 하면서 모시고 갔다.
4. 치매는 최근의 기억부터 지워간다. 옛날 기억은 잘 기억하지만 금방 일어난 일에 대해 잘 기억하지 못한다. 가끔 보는 가족들은 옛날 기억을 잘하는 부모를 보고는 치매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치매 환자에게 나타나는 많은 증상 중 대표적인 것이 집을 잘 찾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치매환자의 실종신고가 자주 SNS에 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5. 친구의 어머니는 시골에 살고 있었는데 치매가 걸렸다. 집을 나가면 잘 찾아오지 못해 온 동네 사람들이 합심하여 돌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집을 나선 할머니를 며칠이 지나고 결국 논바닥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또 어떤 지인의 어머니는 부산에서 살았는데 비 오는 날 집을 나가서 하루 종일 못 찾았다 한다. 결국 경찰이 동원되고 비를 맞고 다니다 밤이 되어서야 발견되었다 한다.
6. 할아버지의 딸은 직장을 다닌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저녁이 되어야 돌아온다. 할아버지는 전립선비대증이 있어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린다. 누군가 옆에서 보살피기를 해 주어야 한다. 며느리는 아래채에서 혼자서 지내야 하는 할아버지를 걱정했지만, 딸의 강한 주장에 어찌하지 못했다.
7. 나도 치매 환자의 증상과 배회하는 특성을 설명했다. 치매 환자는 세심한 돌봄이 필요하기 때문에, 직장에 다니는 자녀가 모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라고 설득도 해 보았다. 딸은 우리 아버지 책도 다 읽고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데 괜찮다고 하면서 모시고 갔다.
8. 90세의 00할머니는 아들이 집에서 모시고 있었다. 치매가 많이 진행되어 기저귀를 하고 계시는 분이다. 아들은 직장의 근무시간 외에는 어머니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치매 노인을 적절하게 돌보기는 쉽지 않다. 보다 못한 딸이 동생을 설득해 할머니를 내가 운영하는 요양원에 입소시켰다.
9. 할머니는 적응 기간을 지내고 나서는 “여기가 천국이다. 여기는 학교다” 하면서 좋아하셨다. “사람 구경을 못 했는데 여기는 친구들도 있고 제때 뜨신 밥 먹고 재미있는 놀이도 하고 참 좋다.”를 보는 사람마다 말씀하셨다.
10. 할머니는 요양원 입소 후 몸무게도 늘었고 얼굴도 밝아졌다. 딸은 “우리 엄마가 치매가 와서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하면서 요양원 예찬가가 되었다.
11. 요양원에 가면 죽으러 가는 곳이다, 꼼짝 못 하게 가두어 두고 하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요양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녀는 치매 환자의 방문을 잠그고 출근하는 경우도 있다.
12. 가족이 치매 환자를 모시겠다고 하면 이를 강제할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의 거주를 선택할 수 있도록 자녀가 부모의 삶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람답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선택을 해 주길 바랄 뿐이다. 가정에서,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방치되는 경우가 없길 바란다.
2) 치매는 부끄러운 것인가/김연희5
13. 어느 흐린 날, 예전에 가깝게 지내던 지인이 생각났다. 전화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내친김에 목소리라도 들어 보아야겠다고 며칠에 걸쳐 전화했지만, 전화 연결음만 들릴 뿐 지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14. 그와는 30년 전에 어린이집 시설장 교육에서 만났다. 교육은 서울의 국립연수원에서 실시되었다. 원장 자격증을 주는 교육으로 3개월 동안 진행되었다. 우리는 서울 뚝섬 근처의 여관에 숙소를 정하고 동고동락했다.
15. 3개월의 교육을 마치는 수료식을 하고 간단한 파티를 했다. 졸업 파티는 국립연수원의 아름다운 잔디밭에서 이루어졌다. 수료식을 하고 유명 백화점에 들러 쇼핑하겠다는 계획이 틀어진 것은 캔 맥주 한 병 때문이다. 캔 맥주 한 병에 취기가 돌아 2차 선술집으로, 3차 노래방으로 가게 되었다. 그 시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많은 사람의 목숨이 살아졌다.
16. 교육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우리는 모임을 만들어 자주 만났다. 맥주 한잔이 우리의 목숨을 살렸다고 맥주는 우리의 은인이라면서 자주 술자리도 가졌다. 특별한 추억을 공유한 우리들은 함께 일하고 함께 늙어가자고 다짐했다.
17. 그 지인은 나보다 십 년 연배이다. 그는 모든 것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언제나 우리의 본보기가 되었다. 나는 그를 보면서 십 년 후의 내 모습을 그려 보기도 했다.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18. 그는 몇 년 전에 퇴직했다. 퇴직하고 시간이 여유로워진 그는 지인들에게 자주 안부도 묻고 자신의 근황을 알려주었다. 자주 왕래를 원했지만, 아직 현직에 있는 나는 바쁜 일과로 자주 볼 수 없었다. 그런 그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엄습했다.
19. 평소에 지인의 딸과도 알고 지낸 사이라 딸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딸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불안해진 나는 이리저리 수소문 하여 지인의 근황을 알아내었다. 교통사고가 났고 그 후부터 정신이 이상해 졌다고 한다. 치매가 온 것이다.
20. 지인의 딸은 엄마가 치매가 온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지인들을 못 만나게 하려고 전화를 차단했다고 한다. 뇌가 늙어간다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인가 라고 물어보고 싶지만 연락이 되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21. 팔십 대가 되면 4명 중 1명은 치매가 온다고 한다. 요양원을 운영하는 원장들의 모임에서는 구십 대는 두 명 중 한 명, 백세시대 백 살에는 모두 치매가 온다 하면서 농을 하기도 한다.
22. 대부분 자녀들은 부모의 치매 증상을 부정한다. 나이가 들어서 건망증이 심할 뿐이라고 하면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치매 환자는 24시간 밀착 보살핌을 해야 한다. 치매 진행 단계에 따라 방문요양, 주간 보호, 치매전문요양원, 일반요양원 등, 진행 단계에 따라 각기 다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23. 나는 오늘 큰딸과 가장 이상적인 노후 돌봄에 대해 의견을 물어보았다. 딸은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어떤 간병을 받고 싶은지 간병기 때에 대한 계획을 미리 정해 보라고 했다.
24.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보아야겠다. 어쩌면 나도 네 명 중 한 명, 또는 두 명 중 한 명이 될 수도 있다. 혹시라도 나에게 그런 일이 있다면 방치되지 않고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치매는 장기기억은 대체로 오래 남아 있다. 옛날 지인들을 만나 옛날이야기로 순간순간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길 바라본다.
25. 돌봄이 필요한 노년에도, 우리의 노후가 행복했으면 좋겠다.(19.6)
4. 무당개구리/권춘애 1
1. 해는 중천에서 보란 듯이 햇발을 쏟아낸다. 햇발을 피하지 못한 정수리가 따갑다. 여름 밭에서는 물 주기가 일이다. 밭작물들의 목을 마르지 않게 하기 위해선 이틀이 멀다 하고 밭을 오간다.
2. 밭에 도착하고 보니 낮 기온이 절정인 시간이다. 잠깐 쉬었다 해도 될 법한데 바짝 마른 작물을 보고는 마음이 바쁘다. 장화로 갈아 신고 물뿌리개에 물을 듬뿍 담아 밭고랑을 누빈다. 몇 번 물질에 지쳐 큼직한 물항아리에 심어둔 물배추 곁에 쭈그리고 앉으려는 순간 끔찍한 광경에 놀라 뒷걸음질 쳤다. 개구리가 죽었다. 미운 짓에 그동안 미워했던 정이 생겼는지 마음이 안 좋다. 개구리와의 악연은 초여름부터였다.
3. 여름이 시작될 무렵부터 개구리 한 마리가 애지중지 키우는 물배추 위에 앉아 놀기 시작했다. 무당개구리가 오고부터 물배추 주위가 깔끔하지 않고 뿌연 오물이 둥둥 떠있었다. 물만 바꾸어도 되는 것을 물항아리까지 씻어야 했다. 쫓아내도 밭일을 하다 눈길을 돌려 보면 언제 왔는지 자기의 자리라고 꾹꾹 울었다. 얄밉게도 울음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난감하게 했다.
4. 어느 날부터는 친구까지 데려와서 헤엄치며 놀고 있었다. 미운 짓을 골라가며 하는 꼴이었다. 물배추를 볼 때마다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개구리도 밭 주위에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눈감아주기로 했다. 실컷 놀고 나면 또 다른 좋은 장소를 찾아갈 것이라 믿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큼직한 항아리의 주인은 물배추가 아니라 개구리로 바뀌어 갔다. 못마땅했지만 꾹 참았다.
5. 귀여운 청개구리도 아니고 징그러운 느낌의 개구리라 보기가 싫었다. 몸 색깔이 황적색이고 흑색 반점이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다. 등 면의 피부에 크고 작은 혹 같은 돌기를 보면 소름이 돋는다. 배 부분에 붉은색 무늬가 있다. 넉살 좋은 개구리 이름이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무당개구리였다. 징그러운 모습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위협을 받으면 피부에서 독성물질을 분비하는 독 개구리다. 독이 있다는 것에 꺼림칙했다.
6. 꿋꿋하게 밭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먹이 때문인 것 같았다. 밭 주위에 거미와 지렁이가 많으니 충분한 식량도 있고 친구랑 즐길 수 있는 수영장도 있으니 금상첨화였던 것 같다. 어느 날 둘이서 잘 놀더니 갑자기 한 마리가 없어졌길래 어딜 갔는가 했는데 그 생각도 잠깐이었다. 다시 자세히 보니 두 녀석이 한 몸이 되어있었다. 수컷이 암컷의 뒤 다리 앞과 허리를 잡고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사람이 있든 말든 사랑에 빠져있었다. 기가 찬 일이었다. 여름철이 산란 시기라더니 이제 남의 항아리에 알까지 낳을 셈이었다.
7. 그러고 항아리 안에는 올챙이가 오물오물 헤엄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자 올챙이들은 언제 개구리가 되었는지 쥐도 새도 모르게 항아리를 떠나고 없었다. 집을 빼앗긴 물배추는 조금씩 삭아가고 있었다.
8. 죽은 무당개구리를 바가지로 들어낸다. 올여름은 유난스럽게 덥다. 항아리를 독차지하고 떠나지 않던 무당개구리는 밤새 산바람에 시원해진 물항아리에서 아침부터 즐겁게 놀았을 것이다. 놀기에 정신이 팔려 따가운 햇발에 물이 조금씩 데워지는 걸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둘이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다 죽는다는 것도 모르는 채 서서히 죽음의 길로 들어선 것이리라.
9. 땅을 판다. 산자락에 붙은 땅이라 돌멩이가 호미에 부딪힌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힌다. 적당한 깊이로 파고 무당개구리 두 마리를 합장한다. 열심히 놀고 사랑하고 종족까지 번식하고 죽었으니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다. 죽어서도 떨어지지 말고 사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10. 남편은 멀찍이 보이는 밭에서 잡초 뽑기 놀이 삼매경이다. 팥죽같이 흐르는 땀을 연신 수건으로 닦는다. 밭일은 남편에게는 즐거운 놀이의 하나다. 어떨 땐 힘들어하고 피곤해하지만, 잠깐의 시간이 흐르면 즐거운 놀이로 변한다. 밭 놀이에 폭 빠져 땡볕에 쓰러질 수 있다는 충고도 잔소리로 듣는다. 풀 안 뽑는다고 밭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극성이다.
11. 커피 타임이라는 말에 호미를 놓고 온다. 놀이에 빠져 주검이 된 무당개구리를 묻어주고 잘 가라고 인사를 했다는 내 말에 남편은 화들짝 놀란다. 애써 무심한 척 잘했다는 말을 덧붙인다. 오늘따라 유난히 커피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