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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리고 태마산행기 스크랩 초보산꾼 여행 이야기 : 서울 서촌 걷기 - 또 다른 얼굴로 다가온 인왕산
초보산꾼 추천 0 조회 373 17.10.08 20:3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초보산꾼 여행 이야기 :  서울 서촌 걷기

                                          

                                                     

일시정유(17년)  하늘연달 10월 이레 흙날

인원쌀패4기 김성용선배와 함께

어딜 경복궁역 ~ 사직단 ~ 필운대 ~ 청송당터 ~ 통인시장 ~ 체부동 ~ 보안여관

 

                       더 많은 사진 자료는 http://blog.daum.net/kmhcshh/3357 에 있습니다

 

 

옛집이라고 하는 것이 그 자리 그 곳에 계속 있는데도 주위가 개발되다 보니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게 대한민국의 특별시 서울의 현실이고 보면

골목 깊숙히 숨어 있는 옛집을 비롯한 숨어있는 숨결을 찾아가는 것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다행이 많은 분들의 노력에 인터넷의 발달로 생생한 정보가 살아 있어

기존의 알려진 답사지들은 손쉽게 찾아 갈 수 있다 하지만

걷다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거나 주목하고 싶은 곳을 우연이 만났을 때의 기쁨

그것은 답사를 직접해보지 않고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런데 그런 곳이 서울 곳곳에 너무도 많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나 여러 단체에서 많은 곳을 찾아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 답사지가 개발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다리를 놓아 주는 것이지 어차피 걷는 것은 나이고 내가 생각하는 만큼 즐기면 된다

서촌의 현재와 과거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 올지 기대를 안고 답사를 떠나 본다

 

초보산꾼 여행기  "서울의 마지막 달동내 북정마을과 성북동 고택 북촌 문화길" 중에서     http://blog.daum.net/kmhcshh/2675

 

 

서촌걷기 전체지도 : 네이버 지도 - 일부 순서가 바꿔 진행. 신익희와 대오서점은 다음을 기약함

 

우리가 서촌을 정의할 때 보통 경복궁 서쪽 지역을 말하는 것 같은데

종로구에서는 역사적으로 청계천 서쪽 서소문 일대를 서촌이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촌과 대비되는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끼어 있어 권문세가들이 살고 있었기에

북촌 한옥마을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있게 되어 역사와 전통을 돌아 볼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반해 서촌은 궁중의 나인들이나 여관이나 의관 등 중인이 주로 터를 잡고 살았다고 전해진다

북촌한옥마을과 성북동 답사할 때와는 다른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서촌의 숨소리 속으로 들어가 본다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나와 걷다보면 앞에 사직공원이 반긴다. 개방은 무료이다

 

종묘사직(宗廟社稷) ... 정말 말은 많이 들어봤는데... 오늘 그 중에서 사직을 답사하게 된다. 먼저 전체 안내도를 보면...

사직단을 제외하고 모두 공사중이라 둘러보고 나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적색 번호는 현재 복원 작업중...

 

집밖에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통로이자,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의 역할을 하는 대문...

종묘 못지않게 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조선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사직단의 대문이라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 온다


그런데 아시나요? 쌀농사 외에 입고 살아가야 하기에 누에를 소중히 했다는 사실...선잠단  서울 성북구 성북동 64-1

 

사직단 안내문

종묘와 사직단 

종묘는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왕실의 사당으로 왕이 조상께 제사를 지냄으로서 효를 실천하는 장소였다면

사직은 토지의 신 ‘사(社)’와 곡식의 신 ‘직(稷)’을 가리키는 말로 왕이 직접 유교의 예에 따라 제사를 지내던 백성을 위한 행사였다

 

1395년 조선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한 뒤 가장 먼저 조영하게 한 것이 종묘와 사직단이었다 하는데 사직단 속으로 들어가 본다

 

그런데 안쪽으로 들어가보고 싶은데 문을 다 잠가 놓아 들어갈 수가 없다. 해설사를 대동하면 들어갈 수가 있다는데...

 

사직단 서신문이 있는 뒤쪽 모습 - 민족의 상징이 된 소나무는 사직의 또 다른 든든한 지킴이 이다

 

신실 넘어로 보니 사직단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있었다. 선잠단도 공개를 안해 어렵게 올라와서 봤는데...

 

이제 황학정을 보기 위해 남신문에서 도로로 나와 인왕산 방향으로 걷다 보면 단군 성전을 만날 수 있다

 

 

일제가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멀쩡한 사직단을 다 헐고 조성한 사직공원... 이 곳에 우리겨레의 시조라고 강조한 단군성전이라...

현재 각지에 남아있는 민초들이 만들어 놓은 단군성전이 더욱 갑지게 다가오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왠지 씁쓸한 기분으로 황학정 이정표따라 오면 현재 국궁장으로 변한 황학정. 적색 화살표를 따라가면 등과정터를 만난다

 

 

조선시대 무사들의 궁술연습장으로 유명한 오사정(射亭 활터) 중 오늘 등과정과 잠시 후 백호정등 두곳을 만나게 된다.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이름 오성과 한음 중 오성대감으로 알려진 이항복의 흔적이 있는 필운대를 만나 본다. 네이버지도

 

배화여고 생활관을 지나

 

본관 뒤쪽으로 들어가면 필운대 각자를 만날 수 있다. 시간있으면 역사가 있는 배화학당을 들러보는 것도 괜찮을 듯...

 

 

좌측부터 필운대 각자, 가운데 보이는 제명, 우측으로 이항복 옛집 건립과 관련된 명문銘文 이 차례대로 세겨져 있다

 

선조 때 대제학을 지내고 청백리로 선정되었던 이항복의 호인 필운, 명나라 사신이 명명한 인왕산의 또 다른 이름이 필운산이다.

필운대의 살구꽃, 弼雲臺杏花’라 하여 장안의 유명한 명소로 꼽혔다는데 지금은 학교의 후미진 곳에 흔적만이 지키고 있을 뿐...

 

이항복의 후손 귤산 이유원이 고종10년(1873)이곳에 들러 조상의 자취를 보고 느낌을 적은 제명

我祖舊居後裔尋, 蒼松石壁白雲深. 遺風不盡百年久, 父老衣冠古亦今 癸酉月城李裕元題 白沙先生弼雲臺

 

동추 박효관 외 9명이 열기되어 있는 이항복 옛집 건립과 관련된 명문(銘文 = 금석(金石)이나 기물(器物) 등에 새겨 놓은 글 ) 

 

우물터의 흔적인 듯... 살구꽃 피던 시절 옛 선인들의 풍취가 물 한 모금과 함께 살아나올 날이 있을까?

 

되돌아 나오다 청와대 뒷산 북악산의 명물 부아암(負兒岩, 아기업은 바위)를 당겨본다.언제 옆에서 볼 날이 있을까?

 

다시 되돌아 나오다 보니 오늘 답사 일정에 없던 역관의 집을 만나다. 서두에 얘기했던 답사의 또 다른 즐거움...필운대로 1길 14-4

 

중인의 한 축을 담당했던 역관의 삶과 주거의 형태등...생각지도 않았던 역사와의 만남...

세세히 많은 것들이 그림과 사진 그리고 설명까지... 방마다 전시되어 있어 새로운 많은 것들을 배운 기회가 되었다.

 

오늘 답사한 곳의 세세한 답사기는 풍부한 사진자료와 함께 따로 만납니다. 오늘은 전체적인 분위기만 전합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홍건익 가옥과 노천명 시인의 가옥과 이상범 화백의 가옥 가는 길

 

환경운동연합을 지나

 

'사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짐승이여... 그렇게 감성적인 시를 우리에게 남기신 노천명... 모난 성격탓에...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사슴보다 더 모질게 살아야만 했던 그녀... 거기에 친일 행적은 남은 유산마저 이렇게 사라지고 있었다

 

주민에 의하면 헐고 다시 다른 건물을 짓고 있다고 하는데..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다.

길 건너에 있는 근대 한국사의 대표적인 동양화가라고 불리시는 청전 이상범 화백... 친일의 행적보다 미술의 업적이 더 크다는...

 

대체로 전시외에는 내부는 공개는 하되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은데 여기는 지킴이 분이 너무 친절하게 안내를 해 준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방의 구조... 영화에서 보스가 마지막 문을 여는 순간 나타났던 구조...

 

가만히 보면 집 칸마다 이렇게 복도로 집과 집을 연결하고 있었다. 마지막 방 화실에서 되돌아 본 집의 구조

 

화실로 사용했던 방에서는 선생님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화선지를 들어 올리면 작품이 있다. 서정적인 동영상도 더불어...

 

손님을 맞이할 때 쓰였던 안채에서 본 앞마당

 

이제 오사정五射亭 중에 두번째로 만나보게 될 백호정 (누상동 166-87)  가는 길 - 배화여대 건물을 보면서 진행한다

 

경복궁 서측 지역중 제일의 활터로 알려진 백호정(白虎亭)은 숙종 때 명필 엄헌평의 글씨라고 알려진 각자가 세겨져 있다

 

지금은 음료불가인 병든 호랑이가 풀속에 있던 이 곳에서 물을 마신 후 곧 병이 나았다는 전설을 약수터가 함께 하고 있다

 

이제 보너스... 일세암 각자를 만나러 가는 길...누상동 산 1-3번지 부근... 약수터 입구에서 인왕산 올라가는 계단

 

그럼 바로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하여 계단 끝나고 다시 시작점에 있다

 

계단 우측으로 바위 사잇길이 나온다. 바위 사잇길의 좌측 바위에 세겨져 있다.

 

아직까지 밝혀진게 없는 세속의 모든 풍진을 한 번에 씻어버린다는 뜻의 일세암 각자

 

조금 더 올라가면 청와동(靑瓦洞)이란 각자도 있다는데 자료를 찾지 못해 다음 인왕산으로 해서 개미마을 답사로 기회를 미루고...

다시 큰 길인 필운대로로 나와 통인시장 서쪽을 지나면 송석원터 표석이 나온다. 그러나 송석원이 있던 자리는 더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시간이 시간이라 통인시장에 들러 식후경... 인왕식당에서 소머리국밥으로... 여기도 맛집인 듯...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식후경 후 길을따라 조금 오르면 군인아파트(옥인동 45-1)로 알려진 담벽에 자수궁터 표석이 있다.

여기는 겸재 정선이 84세까지 살면서 인왕산으로 보면서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신 뜻 깊은 자리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희뿌연 가스에 높은 건물들이 앞을 막아 옛 정취는 느낄 수 없지만....아마 그 때는 바로 앞에 보였을 것인데...

 

송석원터 가는 길...옥인동 47  - 253    - 수성동계곡 이정표를 따라 간다

 

갈림길이 나오는데... 직진 계단길이 수성동계곡으로 가는 길인 듯...

 

우측으로 해서 들어오면 내외주가라는 우리술문화공간 간판이 보인다. 그런데 문을 잠가 놓아 안을 볼 수가 없다

 

조그만 문틈사이로...웅벽을 만들면서 세면으로 덧칠을 하는 바람에 바위에 음각된 송석원 각자까지 사라졌다고...누구 탓을 하랴...

 

송석원 별장의 마지막 소유자로 알려진 친일파 윤덕영과 벽수별장 자세한 내용은  http://blog.naver.com/hanik1008/60165024652 참조

 

다시 되돌아 와 계단을 올라보면 이렇게 일본식 돌기둥 흔적으로 보아 여기까지가 별장이였을 듯

 

다시 필운데로로 나와 겸제 정선과 송강 정철을 만나러 가는 길... 겸제의 최고의 작품중 하나인 인왕산 제색도...

작품의 배경이 되어준 인왕산은 여기에 살았던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어 혼을 살리는 샘물같은 존재였으리라...

 

평일에만 개방한다는 우당기념관도 지나고

 

이제 선회궁터를 시작으로 많은 유적지를 만나게 된다

 

맹학교 문은 잠겨 있고... 농학교 정문으로 들어간다

 

계속 직진하면 선희궁을 만난다 - 조선 영조(재위 1724∼1776)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의 신주를  모신 곳이다

 

 

선희궁 옆으로 해서 계단을 따라 직진하면

 

세심대가 있어 붙여진 듯한 세심정 정자뒤로 보이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조선시대 손에 꼽히는 경승지로 당대 명문가들을 비롯 영조와 정조등이 직접 찾았다는 세심대.. 지금은 각자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다시 정자가 하나 더 나오면 바위에 세겨져 있다. 영조가 궁궐에서 물을 긷던 무수리 출신인 어머니를 추억하며 새긴 글자로 추측한다

 

조선시대 최고의 효자이신 영조가 다시 태어나시면 이 빈?데기만 남은 모습을 보면 얼마나 허탈하실까? 참으로 답답하다.

 

국문학사에서 윤선도·박인로와 함께 3대 시인으로 꼽히는 정철(鄭澈,1536~1593년)의 집터 표석이 청운초교 앞 담에 있다

 

청운초등학교 벽을 따라 계속 정철의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청계천의 시작점 신교(新橋) 터 안내판은 어디에 있는겨?

 

청운현대아파트를 지나면 바로 우측으로 백세청풍 각자가 보인다

 

조선 인조 때 재상이었던 김상용이 풍경에 감탄해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는 글을 새겼다고 한다.

 

다시 큰길로 나와 이제 우측 길넘어 보이는 북악산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경기상고로 들어가 본다. 청송당을 만나기 위해...

 

 

청송은 푸른 소나무(靑松)가 아니라 ‘소나무 소리를 듣는다’는 뜻이다. 경기상고 교정앞 적송이 있어 소나무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동관 방향으로 들어가면...계단으로 오르지 않도록 주의한다. 학교 시설이다.

 

청송당터 표석(적색 화살표) 뒤로 가면 바위에  '청송당유지(聽松堂遺址)'라고 희미하게 글씨가 보인다

 

경기상고를 나와 겸재 정선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진 경복고등학교로 들어가면

 

운강(雲江)이란 조선 선조 때 승지를 지낸 조원(趙瑗)의 아호로서 그가 이곳에 살았기 때문에 새겨진 것이라고...

 

 

더 올라가면 운동장에 표석이 있다. 작품은 '독서여가'라고 하며 인물은 겸재 자신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태어나 아까 보았던 군인아파트로 알려진 자수궁터에서 살면서 수많은 작품을 남기신 것이다.

서을 시내를 답사하다보면 겸재의 작품을 수없이 만나게 된다. 이런 선각자들이 있어 오늘날에도 옛 것을 찾아 나설 수 있음이니...

 

이제 자하문로를 따라 계속 내려오게 된다.  도시락 카페 인기를 끌고 있는 통인시장 동쪽 입구에서 엽전을 팔고 계신다.

엽전을 구해 점심을 해결할 계획이었는데 우리가 먹기에는 조금 취향이 아닌 것 같아서... 하여간 가족단위로 많이 찾는 곳이다

 

우리은행을 지나면 바로 길가에 세종대왕 탄생지 표석이 있다. 나랏말을 만드신 위대한 성군을 이렇게 모셔도 되는지...

영조에 이어 세종대왕까지 다시 살아나신다면 서울은 뒤집어질 듯... 이렇게 초라하게 표석 하나로 해결할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다시 세마을 금고를 지나 이상의 집을 비롯 보안여관까지 답사 한다

 

길 옆에 이상의 집터에 세워진 '제비다방' 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 아깝게 휴무이다

 

 

체부동 홍종문 가옥인데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옆에 체부동 성당이 있는 줄 알았는데.. 한 불록 아래에 있었다

 

어렵게 찾은 체부동 성결교회... 다양한 근대 건축 양식이 한 건물에 적용됐다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있다고 하여 찾았는데...

근대 벽돌 건축물 중 프랑스식 쌓기를 볼 수 있는 건 이곳이 유일하다는데... 어떤모습으로 바뀔지 궁금하다...

 

17년에 서울시에서 매입했다고 하는데 아직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 알 수가 없다

 

다시 길을 건너 우측 요 골목으로 들어가면... 백송을 만날 수 있다. 원산지가 중국이라 조선에서는 뿌리를 내리기 쉽지 않다고 한다

가장 오래된 백송의 상징에 청와대 앞의 기운까지 생각하여  노태우까지 나서 살리려 애셨지만 그만 죽고 말았다

 

 

  

이곳이 추사의 어린시절과 함께 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욱 안타깝다. 그래서 고결함의 상징인 백송은 추사를 닮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문학하는 사람들이 장기 투숙하며 글을 썼다는 경복궁 영추문(迎秋門) 맞은편 보안여관을 끝으로 답사를 마친다

 

여기도 공사중...좋은 쪽으로 공사하겠지?

 

안쪽을 보니 정말로 옛집이 맞다. 흙으로 만든 벽이 잠시 옛 시절로 안내한다

 

세종로 음식거리 여기서 등갈비로 뒤풀이... 성용 선배님 수고했습니다.

 

간판이 서른즈음에...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여기서 2차...

 

 

 

이렇게 오랜만에 걸었던 서울시내 걷기

서촌 답사를 마친다

 

중인들의 대표적인 활동지로 알려진 서촌에는

겸제 정선과 추사 김정희를 비롯하여 윤동주나 서양화가 이중섭등도 살았다고 한다

서촌은 초보산꾼과 함께 했던 성북동을 넘어 북촌한옥마을처럼 한옥은 많지 않지만

이런 작가들이 있어 세월이 묻어나는 명소로 새롭게 조망을 받고 있다

특히 옆에 인왕산이 있어 문화 예술 작품 활동 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고

겸재의 인왕제색도 같은 걸작이 나왔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거기에 역사적으로 서촌은 일제강점기, 광복 후 청와대 등에 의해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는 규제 때문에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전통을 보존 할 수 있는 기회가 된 샘이다.

거기에 오늘 유난히 많이 만났던 바위나 돌에 새겨진 각석들은

자연을 즐기면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했던 세계관이 녹아 있고

거기에 조선 최고의 석공들의 장인정신이 함께 하여 만들어낸 작품이기에

그래서 현세의 속물들이 바위에 남긴 낙서와 비교되는 것이다

 

북촌 한옥마을도 좋지만 서촌에서 풍기는 사람 냄새나는

작가들의 숨소리까지 담을 수 있는...

천천히 걸으면서 조금만 눈을 들면 보이는 빌딩숲 답답함이 아니라

하늘을 지붕 삼은 인왕산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서촌에서 제일 잘 보이는 북악산의 부아암(負兒岩, 아기업은 바위) 조망까지...

단지 그 분들이 걸었던 흔적이라도 있어 행복했던 하루

평소에 봤던 인왕산의 모습이 오늘만은 다르게 다가 왔다는...

답사만이 가지는 즐거움은 아닌지..

 

홍제천을 시작으로 세번에 걸친 청계천 답사

그리고 두 번에 걸친 몽유도원도의 배경지였던 부암동 답사 

성북동 북정마을과 고택 북촌 문화길을 지나 북촌 한옥마을 답사

거기에 단종의 비 정순왕후가 서울에 남기신 흔적을 찾아 떠났던 답사여행...

또 하나의 서울을 이해할 수 있는 답사를 마친다

 

 

 

 

                                         초보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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