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믿음으로 사는 이들에 의해 이어져 갑니다
7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8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9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12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14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15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창16:7-16)
아이들은 집 안을 어지럽히고 어른들은 그것을 치웁니다.
하나님이 펼치시는 섭리의 무대에서 사람들은 늘 어린아이 노릇을 합니다.
아브람과 사래, 하갈은 하나님이 펼쳐 가시는 구원 역사를 방해하는 미숙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광야 샘물 곁에서 하갈에게 말을 걸어 옵니다.
(창 16:8상)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하나님이 금지된 열매를 먹은 아담에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신 것이
아담의 행방을 몰라서가 아니었던 것처럼,
하갈에게 던진 질문 역시 하갈의 노정이 아니라 그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창 16:8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도망치는 신세. 이것이 하갈의 자화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계획이 있으십니다.
(창 16:9-10)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도망 나온 곳으로 돌아가 자리를 지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하나님은 하갈이 있어야 할 그곳에서 그녀의 앞날을 새롭게 열어 주시고자 합니다.
그래서 하갈이 낳을 아들에게도 친히 이름을 지어 주십니다.
히브리어로 이쉬마-엘, “하나님이 들으신다”라는 뜻입니다.
구원사의 중심을 이어갈 적자는 아니어도 이스마엘의 후손을 번성하게 하고,
거친 유목민으로 살아갈지언정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에 있으리라는 축복의 말씀도 주십니다.
비록 미워하고 괴롭히는 주인이라도 하나님의 섭리를 수행하는 이들입니다.
하갈은 아브람과 사래의 장막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브람도, 사래도, 하갈도 모두 하나님의 축복과 함께 책망도 받았습니다.
믿음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일에 나를 맡기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믿음으로 사는 이들에 의해 이어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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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있으라 하신 곳에서 도망쳐 나오지 않고,
하나님의 때가 오기까지 인내하며 견딜 마음과 힘을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