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신림 IC에서 빠져 주천 방향으로 우회전, 고갯길이 시작되기 전의 왼쪽 편엔 '신림 성남리'라는 마을이 있다.
상원사가 있는 치악산 진입로에 위치한 마을이다.
신림과 주천 사이에 위치한 내 고향 황둔을 넘나들면서, 어릴적부터 수없이 보아온 마을이지만 직접 가 보기는 작년
이 처음이었다.
터널이 생기기 전, 험한 싸리치재 위에서 내려다볼 때는 그저 집 몇채 쯤 있지않을까 여겼었는데.....
상원사 진입로가 꽤 길게 이어지는 양편을 따라 마을도 쭈욱 이어지는.... 제법 큰 마을이다.
작년 4월 26일, 친구들과 상원사에 갔을 때, 봄에 내리는 함박눈을 맞았던 기억이 새롭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24CC4194A90882E35)
<성남이 시작되는 길에서 바라 본 마을 풍경>
2009년 8월 1일,
새벽에 출발하여 고향엘 갈 때, 고향보다 먼저 가 보고 싶은 곳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들렸다.
그날 그곳은 내가 여태껏 알고 있던 성남이 아니라, 인터넷 카페 <대구강원사랑>의 詩방을 열어가시는 삼원 김창진
시인의 시적 스케치로 거듭나 그리움과 꿈을 주는 마을이었다.
아침이 열리는 성남, 멀리 치악의 봉우리는 베일처럼 안개에 감춰져 있다.
시인의 詩가 된 마을답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96CAC114A90967780)
길 가 뉘집 터밭에서 막 피기 시작하는 코스모스 몇 송이, 꽃 물이 가득 들어있을 핑크빛 꽃 망울.
사진을 찍기에는 구도가 엉성하긴 하지만, 저 꽃 몇 송이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을 시인을 생각하며 서리하듯 살금 살금
들어가 훔쳐 찍었다.
마을이 끝나고 등산길이 시작되는 곳까지 접어들었지만 사진에서 보았던 시인의 집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카메라에 문제가 생겼다.
더구나 뭘 하느라 여태 오지 않느냐며 어머니는 두번이나 전화를 하신다. 정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다행히 카메라는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적외선 촬영모드로 스위치를 잘못 건드려 놓은 탓이라 휴가를 망치지는 않았
다.
부모님과 영월 동강을 다녀왔고, 저녁엔 서마니강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1153A1A4A909DFF96)
시인의 마을 탐방기를 쓰다가 좀 느닷없고 엉뚱하기는 하지만, 다른 스토리에서 제외되었던 사진 한장을 슬쩍 끼워넣는다.
서마니강에서 친구들을 만날 때, 불꽃놀이 풍경을 찍은 것이다.
사진이야 원래 못 찍어 내 놓을만한 게 없지만, 부분적으로 구름에 가려 하트 모양으로 빛나는 달이 좀 이채롭지 않은가?
언제 한번 느긋하게 시간이 날 때면, 저 달이 괜히 저러는 게 아니라, 그 달빛 받던 날의 어떤 아름다운 사랑을 축복해 주기
위한 퍼포먼스였다고...그 이야길 쓰고 싶다.
내가 사랑한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야기....
![](https://t1.daumcdn.net/cfile/cafe/125DC2184A90A54480)
대구로 내려오는 길에 시인의 마을 성남엘 다시 들렸다.
먼데 치악산 봉우리는 아직도 안개의 베일에 가려진 채, 보고 싶으면 와서 보라고 유혹하는 것 같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77705154A90A6E9BF)
시인의 집을 찾아 마을로 들어가는 길, 시의 배경이 되었던 당숲을 만났다.
시인에 의해 인격이 된 "허리 휜 당숲의 한숨소리<'치악의 가막새' 중에서>" 를 느끼며 .....
비로소 이곳이 시인의 마을임을 실감하고 시인의 자취를 느낀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934A2104A90AAC58A)
마을 노인회장님의 도움으로 드디어 찾은 시인의 집.
별장으로 쓰는 집이라 비어있을 것으로 예상하며 카메라의 셧터를 누르는 데 <대구 강원사랑>의 대문이 되었던 눈에 익은
집이라서 더욱 감격스럽다.
정말 비어있을 줄 알았다.
하다못해 쓴 소주 한잔 준비하지 않았고 지나치면서 사진이나 찍으려고 했었다.
마당에 계신 어떤 분이 바로 시인 김창진 님일 것이라고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이순<耳順>의 연세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동안(童顔)의 시인.
![](https://t1.daumcdn.net/cfile/cafe/111ED5144A90ADC7BC)
예고도 없이 찾아들어 "김창진 선생님댁이죠? 선생님은 어디 계시나요?"하는 불청객이 쎄꼴리앙이란 걸 아시고 내외분이
얼마나 반가워 하시는지....몇 마디 나누며 다짜꼬짜 사진부터 찍으려는 무례함에도 흔쾌히 포즈를 취해 주신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70A46134A90AE58AC)
사모님과 함께 포즈를 취하시며....
시인의 사랑, 시가 된 사랑...듬뿍 느껴지는 사랑의 詩....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 뵌 것이 죄스러워 금방 가야 된다며 핑계를 댔지만, 그냥 보낼 수 없다며 방안으로 안내해 주신다.
벽면 한쪽이 통유리로 되어 있는 집.
푸른 유리빛을 닮아 푸른빛이 보태져 투영되는 환상적인 전원의 풍경.
저 창을 통한 풍부한 상상력으로 시인은 자연이 되고 자연은 시인이 되어 대화하고 교감(交感)했을 것이다.
시적 이미지로 형상화된 치악과 고향이 거기 있었다.
시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추상적인 관념들.
허무, 서글픔, 그리움, 애환...
더 많이 고독해 하고 더 많은 우울함을 느끼는 감성이 바로 시작((詩作)활동의 원동력이란 생각은 하지만, 언젠가 내가 올린
댓글에 '투병중이라 앞일을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답글을 다신 일이 마음에 걸려 조심스럽게 건강을 여쭤보았다.
지금은 큰 수술을 무사히 끝내시고 요양을 하시며 시를 쓰신다고 한다.
별장으로 지으신 성남의 집은 현재 한달에 20여일은 기거하신다고 한다.
건강 때문에 과거에 좋아하시던 술도 못 드시지만 <대구 강원사랑>회원들이 찾아 주시면 술과 안주는 얼마든지 대접해 주신다는...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의 향 듬뿍 풍기시는 선배님.
![](https://t1.daumcdn.net/cfile/cafe/121DA5144A90C1ECBA)
사돈 되시는 분들이 손님으로 오셔서 불청객의 방문이 더욱 죄송스러웠지만, 마음을 편하게 해 주시는 시인과 사모님.
식사라도 함께 하자며 더 붙잡으시는데...
섭섭해 하시며, 떠나는 제게 선배님의 시집『장터』를 세권이나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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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감사합니다. 선배님을 사랑하시고 선배님의 시를 사랑하시는 소중한 님들께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아쉬워 뭘 더 주려고 하시는데, 사모님께서 음료수 한 박스를 가져오시며 더운 데 가면서 먹으라고 전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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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분이 주시는 두터운 정을 가슴 가득 받아 나오던 갈림길, 되돌아 본 마을 입구엔 개미취꽂들이 부지런히 피고 있었다.
안개는 조금 걷혀 치악은 신비롭게 가려 두었던 봉우리들을 희미하게 열어 주고 있었다.
시인의 시를 통해 치악의 서정에 더 익숙해진 다음 어느 날, 낯익은 내게 봉우리들이 성스런 알몸 다 열어 줄 어느 아름다운
계절에, 나는 염체없이 또 한권의 새로운 시집을 선물받기 위해 치악산 진입로를 들어서고 있을 것이다.
그때는 시인께서도 소주 몇 잔 쯤, 예전처럼 가볍게 받아 마실 수 있으시길 기원 드리며...
첫댓글 신림 성남리 부터 서마니 까지 다 돌아 보고 갑니다.... 오빠 보기 좋네요.... 근데 언니는 어느 분이신지...
이쁜이님이 늘 쐐꼴사람들에 있어 주었군요. 이번엔 마눌 안 데리고 가고 혼자 다녀왔어요. 울 마눌은 세상사는 이야기 76번에 있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