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찬 선생님의 ‘시는 왜 읽는가’ ('06.2.4.엄기종)
용평면 재산리 山農分界 지점의 높은 언덕배기에 ‘空心山房’ 글방의 앞마당과 약간 비탈진 진입로의 적지 않은 면적을 아침 일찍부터 눈을 치우시던 河書 金時哲(김시철) 선생님은 이곳으로 이사 오신지 5년째가 되신다.
2002년에 오셔서 일 년이 되는 2003. 3. 15일 발간하신 ‘공심산방’이란 시집을 발간기념 전날에 용평면사무소에서 운 좋게 직접 선생님을 뵙고 받은 적이 있는 데, 2004. 10, 15일에 발간하신 ‘금당계곡’이란 시집을 진돗개 ‘똘이’와 ‘나리’ 두 마리와 적적이 사시는 산방에 찾아가서 또 받았다. 선생님의 10편의 시집 중에 두 권이 이 평창에서 탄생하였다.
평창에서 두 권의 시집을 내셨으니 높은 곳에다 직접 설계하고 세우신 空心山房 글방에서 불사조스키장(보광휘닉스파크)을 찾아온 선남선녀들이 리프트를 타고 오르고 또 오르고, 스키슬로프를 내리 달리며 수 없이 머리 숙여 하는 절을 받는 명당과, 저 멀리 스키장의 하얀 눈길을 내려 보는 여유로운 관조로 떠오른 시상은 분명 이사 오신 명당터의 기운을 받으신 게 분명하시다. 처음 뵈올 때 보담 훨씬 건강해 보이시는 모습도 또한 그렇다.
어찌 이 평창을 사랑하지 않으실 수 있으실까.
선생님은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나시고 일사후퇴 때 월남하셨으며, 1956년 怡山 金珖燮님에 의하여 문단에 나오시고 월간잡지 ‘자유문학’의 편집장과 ‘국제펜크럽한국본부회장’을 2회 역임하신 우리나라의 원로 시인이시며, 아무 연고도 없이 평창군을 찾아주신 선생님은 우리에게는 넝쿨째 굴러든 호박이라든가 귀한 보물을 횡재한 격이다.
김시철 선생님의 얘기를 장황히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저명인 초청문학교실’의 개강식이 김시철 선생님의 끈끈해진 평창사랑에서 연유 됐음을 알리기 위함이 그 것이다.
개강식에서 대화어린이집을 운영 하시는 이부녀씨에 의하여 낭독된 ‘금당계곡’이란 서시는 안미리 금당계곡 입구의 詩碑 立石에 새겨진 글이다.
☆ 금당계곡 ☆
평창땅 좋다길래
바람 따라 이리 왔네.
이만 저만 세간먼지 찌들은 몸
며칠 좀 쉬었다가 갔으면 하네.
금당산 끼고 도는 철쭉꽃길 사오십리
개수구곡(介水口谷) 이끼 낀
태고적 바위산
종아리 들어낸 적송(赤松)들 유혹 또한 그러해
마음 비워놓고 그네들과 더불어
이 밤 한껏 취해볼 참이네.
바람 따라 찾아든 금당계곡
빈 가슴으로 맞이하는 밤맞이라
둥근 달도 물가에다 내걸고
못내 바람의 잔(盞)도 들이킬 것이네.
새벽을 쫑알대는 산새들 노래 속에
새날이 열리면
아무래도 나는 너를 못 잊어
좀 더 쉬었다가 갔으면 하네.
금당계곡,
예가 바로 신선이네.
용평면장 시절부터 緣이 이어진 김용수 대화면장님의 주선으로 詩碑는 평창문학의 한 역사의 자취로 남게 되고, 이제 김시철 선생님과 대화면과 대화면의 박기내 회장님이 이끄시는 번영회의 주관으로 평창군의 역사적인 문학교실이 2006. 2. 2일에 대화면사무소 2층에서 개강하게 되었으며, 앞으로 매주 목요일마다 대화도서관에서 계속 열린다. 우선 일 년 계획이나 그 성과와 관심 여부에 따라 계속 운영될 수 있으며, 김시철 선생님은 평창에 머무시는 한 지속적으로 문학교실의 장을 열겠다는 의지의 말씀이 계셨다.
이 문학교실의 참석여부를 위하여 춘천과 원주와 영동에서도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이 귀한 시간을 어찌 우리군민만 소유하겠는가. 현대식 넓은 대화도서관의 강의실은 문학도의 열기로 가득해 질 터이니 복 받은 우리군민의 참여가 평창군의 문화 업그레이드 기회의 중요한 역할임을 잘 아시길 바란다. 이 문학교실은 시와 산문의 교양을 쌓고 문인으로서 발 돋음 할 수 있는 유명 원로들의 금쪽같은 강의가 샘처럼 솟을 터이니 참석 문학인들의 신인등단의 꿈을 꾸어볼 기회이다.
초청된 유명인은 시부문의 황금찬, 시대문학대표 성춘복, 여성문학인회장인 허영자, 또 평창출신으로 전 여성문학인회장을 지낸 구혜영소설가, 수필부문에는 봉평이 고향이신 전 문인협회수필분과회장을 지낸 김병권 선생님이시고, 틈틈이 김시철 선생님의 강의가 있게 되며, 매주 목요일 마다 열리며 한달의 4주 중 세번은 시, 한번은 산문 교실이 열린다.
오늘은 개강식에 이어 황금찬(黃錦燦)선생님의 ‘시는 왜 읽는가’라는 제목의 첫 강의가 계셨다.
오늘 강의를 하셨던 황금찬 선생님은 2005년 저의 맏형(엄기원) 칠순기념 회고문집 출판기념식에서 제일 먼저 축사를 하여주시며 師弟間의 정을 나누어주셨던 분이라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선생님은 '동해안 시인'으로 불리는 원로시인으로 1918년 8월10일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셨다. 강릉에서 교직에 몸담은 이후 1951년 시동인 '청포도' 를 결성해 활동하셨으며, 1953년 《문예》와 《현대문학》을 통해 정식 등단하셨다. 이후 중·고등학교에서 33년간 교사로 재직하셨다.
다작(多作) 시인으로 손꼽히며 시집으로 《현장》, 《5월의 나무》, 《오후의 한강》, 《구름과 바위》, 《나비제》, 《보석의 노래》, 《떨어져 있는 곳에서도 잊지 못하는 것은》, 《물새의 꿈과 젊은 잉크를 쓴 편지》, 《겨울꽃》, 《구름은 비에 젖지 않는다》, 《오르페우스의 편지》, 《별을 찾아서》, 《행복을 파는 가게》, 《옛날과 물푸레나무》 등 2001년 7월 현재까지 30여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이외에 《행복과 불행 사이》 등 15권의 수필집도 내셨다.
2006년 현재 20년간 이끌어 온 해변시인학교의 교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요 수상으로는 월탄문학상, 한국기독교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등이 있다.
황금찬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려 노력하였으나 기억을 되살려 여기 글을 올려 관심 있는 분들과 귀하신 말씀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우선 선생님께서는 인사말씀을 하셨다.
‘평창 대화에 오길 잘했다. 단상에 꽃이 많아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런 향기 나는 꽃들이 있는 날을 위하여 어제 죽었으면 오늘의 기쁨이 없었으리라.
오면서 놀란 것이 있다.
눈 쌓인 천하일품의 경치를 보았다. 너무 행복하면 행복을 모른다. 하늘은 평창에 그렇게도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 주었다. 이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은상씨가 1935년에 쓴 ‘노방초’라는 유명한 수필집에서 ‘창경원의 벚꽃’이라는 글에 서울 사는 젊은 청년이 창경원 벚꽃을 구경 온 시골 노인에게 ‘뭘 보러 오나?’하고 빈중댔다. 노인은 화를 내며 ‘난 창경원 벚꽃을 보려고 몇 년간 계를 하여 모은 돈과 자식들이 보태준 여비로 운 좋게 창경원 벚꽃을 보러 왔다’고 답했다. 서울 젊은이는 매년 피는 벚꽃이 그렇게 좋은 경치인지를 알지 못했다.
김시철 선생은 평창에 사시며 후학들의 시성을 일깨우고 평창문화를 몇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유명하고 귀한 분입니다. 생소한 곳에서 보따리를 풀었으니 이젠 고향이 되었겠지만 열심히 노력하실 때 여러분이 잘 따르고 배우세요. 한국 사람은 시작이 반이라 시작 때 오면 반은 왔다고 다신 안와요. 시작을 끝으로 하지 마세요.’
짧은 인사말을 마치시고 단상을 내리셨다.
이어 대화어린이집을 운영하시는 이부녀씨는 황금찬 선생님의 시인 ‘심상’이라는 시를 멋들어지게 낭송하였다.
☆ 심 상 ☆
욕구 불만으로 우는 놈을
매를 쳐 보내고 나면
나뭇가지에서 노래하는 새 소리도
모두 그놈의 울음소리 같다.
연필 한 자루 값은 4원
공책은 3원
7원이 없는 아버지는
종이에 그린 호랑이가 된다.
옛날의 내가월사금 4십전을 못 냈다고
보통학교에서 쫓겨 오면
말없이 우시던어머님의 눈물이 생각난다.
그런 날 거리에서 친구를 만나도반갑지 않다.
수신강화 같은 대화를 귓등으로 흘리고 돌아오면
울고 갔던 그놈이 잠들어 있다.
잠든 놈의 손을 만져 본다.
손톱 밑에 때가 까맣다.
가난한 아버지는
종이에 그린 호랑이
보릿고개에서
울음 우는아버지는 종이 호랑이
밀림으로 가라
아프리카로 가라
산중에서 군주가 되라
아! 종이 호랑이여.
시 낭송을 들으며 내 가슴에 뭉클 다가오는 건 아버지가 된 내가 종이 속의 호랑이 같았다. 내 아들이 나에게 밀림으로 가라고 외치는 듯 착각에 빠졌다. 이 글이 밀림을 찾는 길인가.
이어 황금찬 선생님은 강의를 시작하시려고 노구를 다시 단상으로 옮기셨다. 김시철 선생님이 단 아래 의자로 모시려 해도 아직 꼿꼿이 서서 90분 강의는 문제가 없다고 하시며 끝내 사양하시고 파릇한 음성으로 열강을 하셨다.
단상에 두 번씩 나오는 것은 바보입니다. 그래도 저는 바보가 아닙니다.
영국의 토마스라는 유명시인이 미국의 어느 술집에 2번 왔다 가면서 올 때 마다 같은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고 갔다. 시인이 왔을 때 시인에게 써비스를 하였던 노인이 그 후에 문 앞 그 자리에 서서 그 테이블 안내를 맡는다. 손님들은 토마스 시인이 앉았다 간 테이블에서 술 마시기를 원한다. 손님들이 그 노인에게 ‘시인에게 시를 좀 배웠냐’고 물으면 노인은 ‘들은 풍월로 좀 안다’고 답변 한단다. 그 노인은 다른 사람보다 3배나 넘는 봉급을 받으며 일을 하게 되었다. 유명 시인이 다녀가면서 노인의 인생이 바뀐 것이다. 다녀갔던 시인이 죽고 없어도 그 가게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비싸게 올랐다.
정비석씨가 로마를 다녀오면서 나폴리 어느 호텔에 들었다. 누군가 호위 하는 세 사람을 데리고 싸인을 받으러 왔다. 세 사람의 호위꾼은 왜 데리고 왔냐고 하니까 유명인의 싸인은 대단한 가치가 있어 훔쳐갈가봐 지키려고 그런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없는 일이다. 유명인의 싸인이 훗날 비싼 가격으로 거래될 날이 우리나라에도 멀지 않았으니 강의하러 오신 분들의 싸인을 많이 받아서 부자될 준비를 하세요. 백년 후에는 분명 비싼 값을 치룰 겁니다.
본인은 다른 분들의 싸인을 받는 취미가 있어 유명인들의 싸인을 받아 자랑스럽게 글방에 모시고 있는데, 내가 출타중인 어느날 모르는 청년이 집에 찾아와서 집사람에게 선생님에게 남길 글을 몇 자 적어놓고 가겠다하여 방에 들도록 허락하고 커피까지 타다 주었는데 편지는 개발 새발 써놓고 아끼던 만년필과 여러 사람들에게서 받아 모았던 싸인 뭉치를 훔쳐 가버렸다. 내 마음이야 아프지만 도둑도 고급 도둑이라 싸인을 훔쳐 가버린 사실이 실제 있었다.
김광섭씨의 ‘향수’ 저물어가는 육교 위에 한떨기 국화처럼 차고 서글프다, 꺼져가는 촛불처럼 ~, 정지용의 ‘향수’를 줄줄 외시며 년대별로 향수에 대한 표현의 차이가 있다고 말씀 하셨다.
☆ 향 수 ☆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황선생님의 쉼 없는 열정적으로 외우시는 낭송에 목이 마를까봐 물 한 컵을 단상에 날라준 소녀에게 ‘성경에 나에게 물 한 컵을 주는 자에게 복이 있으리라 하였는데 큰 복을 받으세요’ 하여 관중은 크게 웃었다. 이내 ‘시인은 귀를 막아 주세요. 나의 이야기는 시는 왜 읽는가에 대하여 세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하셨다.
한 부인이 남편이 좋아하는 흑장미 세 송이를 만원에 사서 남편의 책상에 꽂았습니다. 귀가한 남편이 예쁜 흑장미를 보고 너무도 기뻐했습니다. 다른 남자의 경우에는 부인에게 그런 쓸데없는 꽃은 왜 사왔느냐고 기뻐하지 않습니다.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여겨야 합니다. 시는 읽는 자에게 보답 합니다. 세가지 보상입니다.
첫째로 언어순화입니다. 말의 아름다움을 만듭니다. 버려진 쓰레기는 재생 할 수 가 있습니다. 말은 재생이 불가 합니다. 연탄을 내버린 곳에는 아름다운 억새밭이 됩니다. 말은 뱉으면 안됩니다. 개새끼라고 말하였으면 뱉어진 개새끼는 끝까지 개새끼가 되는 것입니다. 말을 생명으로 하는 것이 시입니다. 소월은 33세에 12월 24일 예수와 같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소월의 ‘가는 길’을 단숨에 카랑카랑 외우셨다.
☆ 가는길 ☆
그립다말을 할까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그래도다시 더 한번(番)……
저 산(山)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西山)에는 해 진다고지저귑니다.
앞 강(江)물, 뒷 강(江)물,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여기에 ‘흐릅디다려’가 얼마나 멋있습니까. 시는 언어의 순화입니다.
박목월의 ‘청노루’를 읽고 어느 분이 청노루가 실제 있는지 물어 봅니다.
☆ 청노루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낡은 기와집산은 자하산(紫霞山)봄눈 녹으면느릅나무속잎 피어가는 열두 굽이를청노루맑은 눈에도는구름
청노루는 없습니다. 무식한 시인이라서 쓴 글이 아닙니다. 유치환의 ‘깃발’에
☆ 깃 발 ☆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여기에 나오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깃발’을 표현하는 방법과 같습니다. 시는 언어를 순화합니다.
둘째로 정서순화입니다.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여기지 못하면 죽어야 합니다. 얼마나 아름답냐고 하면 하늘만큼 이라든지 하얗게 핀 박꽃만큼 이라든지 무한대로라도 확대 가능합니다. 우리가 일상 쓰는 단어는 몇 천 마디가 된다 하는데 대학교까지 다닐려면 4만 단어는 알아야하고요, 우리말은 총 63만 단어가 있어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겁니다. 몇 자 안되는 자음과 모음으로 너무도 많은 단어를 만들 수 있지요. 이것이 문화의 나라입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행복 한 겁니다. 문화를 아니까요. 헨드폰으로 글자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몇나라 않된다 합니다. 아름다운 것으로 치면 여성보다 더 아름다운 게 있을가요. 여성은 꽃으로라도 때릴 수 없다는 얘기가 있어요. 강릉사범학교 선생시절 여자를 때리는 남자를 보았는데 아무도 말리지 않아서 내가 그 남편에게 여자를 때리지 못하도록 말린 적이 있어요. 남의 내외문제에 왜 끼여 드냐고 하였으나 여자를 때리는 당신 때문에 남자의 체면이 깎이니 말리지 않을 수 없다고 했더니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던 일이 있지요. 시를 읽으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셋째는 생활의 지혜를 얻을 수 있어요. 이광수 선생님에게 ‘일본어로 시를 써야합니까’ 하고 물으니 일본말이라도 일본어로 쓰면 언젠가 당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하셨답니다. 1932년 영어로 강용흘씨는 소설 초당 3권을 발행하셨는데 제가 귀국한 강용흘 선생님께 책이 잘 나갔느냐고 물은 적이 있는 데 누가 사보는 사람들이 없었답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소설을 영어로 쓰신 분입니다. 영어로 썼어도 강용흘은 한국 사람입니다.
최치원이 당나라에 공부하러가서 874년 18세에 공빈과에 합격하고 관역순관의 벼슬을 하며 879년 당나라 희종 광명 2년에 유적인 황소가 모반하여 복주를 점령하고 소란을 일으키자, 조정에서는 고변을 제도행영도통을 삼아 적을 치게 하였다. 이 때 최치원은 그의 막하에서 고변을 대신하여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었다. 이 격문은 적장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명문이었습니다. 이 격문의 뜻이 호언장엄하고 추상열일과 같이 힘이 있었고, 쾌도로써 요마의 머리를 한 칼에 베는 것 같은 위엄이 있었다. 격문에서 적장의 죄를 꾸짖고 힐책하는 가운데, '다만 천하의 모든 사람이 너를 죽이려고 생각할 뿐 아니라, 또한 땅속의 귀신까지도 이미 남몰래 너를 베려고 의결하였다'라고 한 구절에서는 아무리 완강 무지한 도둑일지언정 한 번 읽고는 모골이 쭈뼛하고 혼비백산하여 저도 모르게 상(床)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한다. 이로써 최치원의 문명(文名)이 천하에 떨쳐져 천 년이 잔 오늘날에도 그 이름이 높게 되었습니다. 글은 지혜입니다.
1976년 세계펜크럽 미국대표가 한용운의 시집 말미에 ‘떨어진 국화에서 향기를 느끼는 것 같다’라는 글을 남겼다.
어느 글에 가난한 사람이 교회에다 ‘하느님 돈이 없어요 돈 좀 보내주세요’라는 편지를 보냈다. 교회에서 약간의 돈과 우리도 형편이 좋지 않아 돈을 조금밖에 못 보낸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받은 가난뱅이는 다시 편지를 보낸다. ‘하느님은 돈을 많이 보냈는데 배달부가 띄어 먹었나 봐요. 다음엔 직접 보내주세요.’라는 내용이다. 글에 지혜가 담겼습니다.
끝으로 한 말씀하시고 단을 내리셨다. 나는 메모한 종이를 들고 종이 여백에 선생님의 싸인을 받았다. 모인 분들은 기념사진을 원했고 일정에 없는 기념사진은 한참이나 시간을 댕겨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