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손 天孫
제천시 명지동 상곡 강유 장군 선영
___()___ 처음 상곡 선조님 , 성묘 오시는 분들은 제천시 명지동 279 번지로 오세요 . 명지동 군부대 정문 앞 마을
상곡 강유 장군 묘비
풍수지리 , 산세가 학이 날개를 펼치고
비상하는 형세라 머리 의 상곡 강유 장군 묘 자리에 비석을 세울수 없어
아랫쪽 날개 부분에 비석을 세움
상곡 강유 장군 선영 ,
2023 , 4월 ,봄 , 후손 , 청산당 선조님께 성묘
명지동 옛 , 큰집 본가 279 번지
( 명지동 군부대 정문 앞 )
제천시 명지동 279 번지
☞ 성묘는, 앞 ,흰 눈길 , 산길로 오세요
충북 제천에서 부산으로 이사가신
상곡공 ,12 원대손 직헌 강 성국 , 큰 아버지
제천시 두학동 박약재 , 상곡 강 유 장군께서 어려서 공부하시던 서당
의병장 유인석 박약재 친필 현판
조선 , 효종대왕이 재위하자
청 , 만주족 ,( 말갈족 , 여진족 )
북벌에 단단히 마음을 먹었는데
임금과 신하가 서로 뜻이 맞아
그 큰 임무를 맡기고 임금이 말을 하사하며 명령을 내리시기를
강 유 는 참으로 장수의 재목이다 .
직책을 맡은 것이 대부분 서쪽에 있었고 , 또한 병사를 총괄하여 관리하게 하였으며 , 부사로 충원되어
연경에 들어가 적의 허실을 탐색하고
돌아왔습니다 .
상곡 강 유 장군 한시
변방에서 근심하다 .
우리 동국이 작다고 말하지 마라
일찍이 백만의 적병도 막아내었다네 .
기름진 땅은 물과 육지를 겸하였고
막아선 바위는 견고한 성이 되었네
장수는 신묘한 계책 없고
변방의 모래 소리는 귀신 소리를 내내
군왕은 때늦은 식사를 하리니
큰 저택은 정녕 우뚝하네
무인을 애도하다 .
장부가 끝내 칼을 배웠으니
일개의 더러운 선비 됨 부끄럽게 여겼네
몇 곳의 변방 성곽에서 싸웠던가
평생 동안 담기가 억세었네
공은 높지만 벼슬은 항상 낮았고
늙어서는 탄식을 일로 삼았네
죽은 뒤에 가업을 부탁하니
어찌 유무를 따지리오
강원감사 이백주 에게 써서 보내다
듣자니 도백의 수레 원주에서 출발했다
하는데
이미 청허의 백척루에 이르렀으리라
중거는 서치의 걸상 매달았을 터이고
임종은 이응의 배에 오르지 않았네
모두 술 때문에 병이 더해졌고
비록 편지가 있으나 어찌 근심을 다 쏟으리오
멀리서도 부러워라 금강의 부절 옮기는 곳에
봄빛이 사구를 감싸는 경치 홀로 보리라
(1980 ,90년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 수록 한시 )
강계를 지나면서 앞의 운자를 쓰다 .
노년에 도리어 우리 조정의 부절을 차니
변방 요세에 못난 선비가 몸 붙였네
속절없이 세상을 떠도는 행장은 정처가 없고
벼슬길 영욕과는 본래부터 길을 달리했네
한 가을에 쌓인 눈은 주렴 앞 동굴에 있고
한밤의 슬픈 피리소리 물 위의 성곽에
울리네
9만리 높은 하늘에는 두 날개가 짧으니
이 몸 어찌 붕새의 계획 펴기를 도모할까 .
조카 만영 이 제천에서 왔다
( 만영 장자 )
반갑게도 네가 골짝을 뚫고 왔으니
추운 날씨에 잘도 왔구나
다만 마땅히 하학에 힘쓸 것이니
어찌 중간치의 재목으로 한계를 지으랴
세상의 덕이 장차 쇠함을 근심하고
가풍은 다시 회복하기를 원하네
시서가 배에 가득하면
청운의 출세 길은 꾀하지 않아도 되리라 .
원주 안창역
적적한 춘산에 어지러이 까마귀 우는데
낙조는 아득히 작은 시내 가득하네
말을 쉬게 하고 홀로 방초 길에서 잠자니
꿈의 혼은 서울에 이르네
윤 정월 9일 원손이 심양에 가다 .
무관 길 천리에 누런 먼지가 가득 한데
이번에 천리 떠난 왕손 언제나 돌아 오실까 .
솟구친 머리털은 갓을 찌르고 쌍검은 우는데
장엄한 마음에 늙음이 와 온전히 회복 못하네
신림역에 도달하여 밤에 읊다 ( 원주 )
고개 넘어 깊은 협곡 지나
시내를 따라가니 역의 정자가 있네
밤이 늦으니 관솔불을 켜고
바람이 뚫고 오니 자리로 병풍을 만들었네
파리한 말은 삶은 콩을 생각하고
추워하는 어린 종은 참으면서 누워서 듣네
이번 행차 괴로운 상태에서
오직 친구가 따름을 허락하네 .
연행일기
( 연경에 다녀와 임금께 결과를 아뢰는 글 )
저들 내부의 허실 , 뭇 산천과 길과
마을의 원근 , 돈과 곡식과 무기와
병사의 다소를 살피었으니 ,
비밀스러운 말이 많아 특명으로
불러 밤에 대면하였다 .
초본을 사택에 남겨두지 말라고 전교 하셨다 .
진남루 오르다
한가한 틈을 타서 진남루에 높이 의지하니
만 가지 경치 아득한 큰 들판에 가을이 들었네
장군은 일 만들기를 즐김이 아니니
한 바탕 술과 안주로 좋은 계책 꾸미네
혜산 괘궁정
땅은 흰 오랑케 산에 접했고
성곽은 푸른 압록강 물에 임했네
만리의 객은 가을을 슬퍼하는데
괘궁정에 달은 밝구나 .
벼슬을 놓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 제천 )
이미 이름을 버린 나그네가 되어
이로부터 세상과 멀어진 사람 되었네
벼슬은 몸 밖의 꿈이요
풍경은 안중의 봄이로세
살아갈 계책은 전원으로 감이 급하고
정은 한가하니 술을 자주 부르네
비 맞은 작은 복숭아는
어느 곳에서 새롭게 꽃을 피울 것인가 .
구월산 산승 도대에게 주다 .
사뿐 사뿐 한 노승은
석장 날려 양산 언덕에 가네
구월성에 올 때면
붉은 나무에 가을이 늦을 것이네
( 도대스님 해석 : 지금의 대종사 , 큰스님 )
♥ 충목공 강 유 장군
서기 1597년 정유년 , 선조 30년
11월 26일
충북 제천시 오석촌에서 출생
1602년 임인년 선조 35년 , 6세때
참판공에게 수학 ( 취학 ) 하였다
1611 신해년 광해 3년 , 15세
향시에 응시하여 진사 초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
1612 임자년 광해 4년
16세 전주 이씨에게 장가 들었다 .
진사 회시에 3등 18인에 합격하였다
1617년 정사년 광해 9년 , 21세
인목대비를 폐하려는 모의가 일어나자
신발을 신고 고향으로 돌아 왔다
1622 임술년 광해 14년 ,26세
아들 만구가 태어났다 .
1623년 인조 1년 ,27세
인조대왕이 반정하여 즉위 하였다 .
☆ 비로소 산에서 나왔다
1626 병인년 인조 4년 , 30세
☆ 예빈시직장에 제수 되었다
1627 정묘년 인조대왕 5년 , 31세
1월에 만주족 오랑캐가 쳐들어와
임금의 수레를 호위하여 강화도로 들어갔다
☆상소를 올렸으나 용납되지 않았다
1628년 무진년 인조대왕 6년 , 32세
☆ 승정원주서 제수되었다
☆ 만주족 오랑케에 포로가 되었다
도망한 사람을 잡아 보내지 말도록 하는 상소를 올렸다
☆ 부사정직을 체직하고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
1629 기사년 인조대왕 7년 , 33세
11월에 좌천되어 전라도 도사가 되었다
1633 계유년 인조대왕 11년 , 37세
☆경남 고성 현감으로 나아갔다
1636 병자년 인조대왕 14년 , 40세
☆ 만주족 오랑케의 난이 일어 났다는
소리를 듣고 , 군병을 일으켜 근왕하기 위해 조령에 이르러 항복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북쪽을 바라 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돌아왔다 ( 경남 고성있을때 )
1638 무인년 , 인조대왕 16년 , 42세
황해도 도사에 제수 되었다
1640 경진년 인조대왕 18년 , 44세
☆ 7월 25일 참찬공의 상을 당하였다
☆ 여묘 살이를 하였다
1642 임오년 인조대왕 20년 , 46세
☆ 7월에 상을 마쳤다 .
☆ 10월 12일 호조정랑에 제수 되었다
☆ 10월 19일 병조정랑으로 옮겼다
☆ 윤 , 11월 15일 사헌부 지평에 제수 되었다
1643 계미년 인조대왕 21년 , 47세
☆ 1월 22일 성균관 직강에 제수 되었다
☆8 월25일 강진 현감에 제수 되었다
1646 병술년 인조대왕 24년 , 50세
☆ 4월5일 대부인 임씨의 상을 당하했다
3년 동안 여묘 살이를 하였다
1648 , 무자년 인조대왕 26년 , 52세
☆ 호조정랑에 제수 되었다 ,
또 필선에 제수 되었다
1650년 효종대왕 원년 1년 ,54 세
☆윤 11월 13일 , 정주 목사에 제수 되었다
1651년 신묘년 효종대왕 2년 ,55세
☆ 3월에 성천도호부사 이배 되었다
☆ 6월 16일 또 의주 부윤으로 옮겼다
1653년 계사년 , 효종대왕 4년 ,57세
☆8월에 강계부사에 이배 되었다
☆12월 8일 함경남도 병사로 옮겼다
♥ 북벌 준비
1654 갑오년 효종대왕 5년 , 58세
☆ 10월 19일 군기를 특별히 마련한
이유로 말을 특별히 하사 받았다
1655 을미년 효종대왕 6년 , 59세
☆ 1월에 함경북도 병사에 제수 되었으나 , 병으로 사양하였다 .
1656 병신년 효종대왕 7년 ,60세
☆10월 30일 경기도 수군절도사겸
삼도 통어사 에 제수 되었다
1657년 ,정유년 효종대왕 8년 , 61세
☆ 7월 7일 충청도 관찰사로 옮겼으나
병으로 사면 하였다 .
1658년 무술년 효종대왕 9년 , 62세
☆ 3월 13일 , 부인 이씨가 사망 하였다
☆ 10월에 부사로 충원되어 연경에 갔다
1659 ,기해년 , 63세
효종대왕 10년 황해도 관찰사 제수되었다
△△△ 5월에 효종대왕이 승하하자
만사를 지어 올렸다 .
★ 효종대왕 승하로 10년을 준비한
만주족 ( 말갈족 ,여진족)오랑케 북벌은
미완으로 끝났다
고조선 환국 배달국 고구려 발해국
의 고토 수복은 멀어지다
한민족 역사는 반복됨니다
머지않아 후대에 만주 요동 요서 산동반도 일대 한민족 영토 회복이 있습니다 .
♥ 충목공 강유 장군
서기 1668 무신년 72세
서울 대사동 ( 종로 인사동 )집에서 영면
10월 제천시 명지동 검암 의 건좌 언덕에 장사 지냈다
----------------------------------------------------
청산당 강기중 , 한시 , 깨달음 오도송
설향 ( 한시 )
님의 향기는 일월의 설향과 같고
님의 아름다움은 백설 이여라
춘삼월 붉은 매화는 설향에 묻히고
오월의 목련꽃은 백설과 같이 아름다워라
하심당 2002년 1월 함박눈 내리는 날
꽃게
송정 바다의 멋쟁이
매일 아침이면 세안을 합니다
매일 아침이면 화장을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
어느새 성년이 되어
매일 아침이면 화장을 합니다
나는야 송정바다의 꽃게 입니다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찾고 있는지
나는 알아요
나는야
송정 바다의 멋쟁이 꽃게 입니다
1993년 여름 하심당 26세 부산 송정바다에
깨달음 오도송 /
남해 성담사
남해의 금송리 새벽별은
유난히 밝고 크다
맑기도 하고
누가 알리오
부처님 광명 세계를
마음이 지족만인 것을
새벽별을 보며
어두운 밤길을 작은 빛에 의지해
걸어 갑니다 .
성담사 스님들은 깨달아라
할 이로다 .
2022년 11월 03일 새벽 4시
청산당 54세
남해 금송리 성담사를 나가며
♥ 합천군 율곡면 갑산리 갑산 ,
진주강씨 박사공파 시제일 새벽
____()____ 글쓴이 , 상곡공 후손
청산당 ,강 기중
☆ 고조선 고구려 천상열차분야지도 , 천문 , 대학자 .
사진 : 제천시 명지동 충목공 강유 장군 ,선영에서 상곡 선조님 성묘를 하며 차 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