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따라 추억따라
우리 모교는 지금 !
폐교를 찾아 '삼명초등학교'
교가 동녘하늘 우뚝 솟은 통명산 줄-기 붉게피는 국사-봉 저녁노을 높고 맑은 정기는 우리의 기상 바르게 굳세게 갈고 또 닦아 빛내자 빛내자 우리 삼명교
일제(日帝)가 조선의 각읍마다 초등학교를 만든 것은 그들의 식민문화 정책에 따라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를 위한 기만에서였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승기를 잡은 일제는 자신감을 가지고 다음 단계인 내선일체(內鮮一體),동화정책(同化政策)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식민지 교육, 우리의 문화와 언어, 민족정신을 말살하고 종국엔 대륙 침략의 병참기지화하려는 그들의 흉계가 숨어있었지만 우리 민족은 점차 새로운 산업화의 시대 조류에 편승하면서 개화되어갔다.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사조(思潮)가 앞서고 그 시대, 그 사회를 앞서가는 혁신적인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지역 어린 학동들의 교육을 위해 앞장 서 교사 부지를 희사하고 교육 창달을 위해 헌신한 지역 인사들이 부지기수이다
일제의 암울한 시기, 개교 당시만 해도 수학할 학생이 없어 순사들이 억지로 잡아다 상투를 깍고 입학을 시켰기에 머리깍기가 아까워 입학을 기피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때부터 교육받은 인재들이 점차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어가는 사회의 관계요로에 지도자로 진출했다. 경쟁사회에서 배워야 한다는 일념을 일깨워준 본보기였다. 해방된 뒤 교육 수요의 급격한 팽창으로 각읍면에 1개 학교 뿐만아니라 통학거리가 먼 지역에는 분교를 두었고, 이어 학생수가 더욱 불어나자 정식 6학급 규모의 학교로 승격되어졌다. 그러나 산업화의 전선에 따라 도시로 이농현상이 급증하면서 거꾸로 해방이전으로 회귀한 것이 지금의 농촌교육현실이다.
삼기면 근촌리에 소재했던 삼명초등학교도 우리나라 교육의 전철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삼명초등학교가 맨 처음 설립인가를 받은 것은 1935년 4월20일이었다.
당시 산간에 끼어 교통조차 발달하지 못했던 근촌리 일대는 삼기면 소재지의 삼기초등학교와 석곡면 소재지의 석곡초등학교까지 너무나 거리가 먼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근촌리 출신 박봉안씨등 주민들로부터 부지를 기증받아 1학급 규모의 간이 학교가 설립되었다.
당시 학교명은 “삼기보통학교 부설 근촌간이학교” 1943년에야 비로소 6학급 “삼기남공립국민학교”로 승격, 바로 서게 된다. 1950년 “삼기남국민학교”로 정식 교명을 바꾼데 이어 1970년7월 29일 학생수가 급증, 11학급이 편성됨과 동시에 “삼명국민학교”로 거듭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그러나 취학 아동수의 급감으로 1995년 “삼기국민학교 삼명분교”로 격하되면서 50~60년전으로 회귀하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2년뒤인 1997년 폐교라는 운명의 길을 걸으며 장장62년간 이 지역 인재육성의 요람이자 교육의 산실으로써 임무를 마치고 서서히 막을 내렸다.
학교가 행정 구역상 삼기면에 위치하고 있어 “삼(三 )”자를 취하고 대명산,통명산 자락에 학교가 위치하고 있어 “명(眀)”자를 취해 “삼명(三明)이라는 학교명이 탄생되었다.
학구 학생들은 대부분 경악리,근촌1,2구, 수산1,2구, 금계1,2등 근촌리를 중심으로 산간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과 불로치(不老峙) 너머 청계1,2구 노동1,2구 농소3구등 5개 마을이 있었다. 1958년 통명초등학교가 개교하면서 농소3구를 재외한 청계1,2구 노동1,2구의 학생들이 집단 이동하면서 8개 마을로 축소되었다.
1949년 1회 졸업생 28명을 배출한 이후 1966년 19회까지 졸업생은 매년 50명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1967년도부터 1986년도까지 20년동안 매년 50명~70명의 졸업자가 배출되는 수치를 보이다가 90년대 들어 20명 이하로 감소해 1997년 47회 마지막 졸업자를 겨우 10명에 불과했다.
삼명초등학교의 주요 졸업생은 다음과 같다.
조 상술(1회, 전 삼명육성회장)
손 동길(4회, 육군대령 예편)
손 귀환(11회, 곡성군 보건 의료원)
오 치봉(12회, 전도의원)
정 동신(12회, 유풍관광농원)
박 태규(18회, 농협삼기지소)
김 판수(18회, 경위)
오 양환(18회, 전매공사과장)
유 재관(19회, 부산 메니놀병원 의사)
조 맹훈(19회, 한하콘도 지리산 본부장)
오 치수(19회, 광주제과협회 지회장)
마 상용(19회, 화곡식당)
서 영석(20회, 서진사)
조 점훈(21회 곡성 천보당)
유 종환(21회, 국세청)
김 성수(21회, 안산제일교회부목사)
정 동국(22회, 태영인태리어)
김 진태(23회, 삼협건축설계소장)
김 정섭(25회, 곡성군청)
양 혜련(25회, 겸면흥복진료소장)
이 규행(25회, 충효사회복지법인)
김 광심(28회, 공주 송학일식)
이 규오(38회, 한국과학기술원)
이상 곡성신문 2003.2.20(목)일자 8면 “세월따라 추억따라 우리모교는 지금... 閉校를 찾아 삼명초등학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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