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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을 받고서 그것을 바라보고/얼싸안고 기어이 부숴 버리는/내일이면 벌써 그를 준 사람조차/잊어버리는 아이처럼 / 당신은 내가 드린 내 마음을 고운 장난감처럼/조그만 손으로 장난하고/내 마음이 고민에 잠겨있는 / 돌보지 않는 나의 여인아 나의 사람아 / 오~오오오오~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
밀려오는 파도에 이모 삼촌 세대때 유행했다는 헤르만 헤세의 시에서 착안했다는 서유석의 ‘아름다운 사람아’라는 노래가 불현듯 환청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이 서정적인 곡의 가사는 결국 나같은 호구남의 적나라한 현실 묘사에 다름아닌 매우 섬찟한 노래였다.
외면받는 헌신에도 불구하고 나의 여인아,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를 부르며 님을 향한 마음을 놓지 않는 변치않는 순애를 상징하는 노래.
엠마가 남편 조나단에 의해 강제로 다운타운 길거리에 패대기 쳐지던 순간, 그녀가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절규하며 남긴 말은 “My Lord, My Love, I love you”였다.
그 시와 노래는 나를 놀리며 엠마를 비웃기도 하지만, 호구들의 전통은 동서고금 유구한 듯 싶다.
조금 나이가 있는 기혼여성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를 눈팅하면, 나쁜 남자는 끝까지 나쁜 놈일뿐이며 결말도 나쁘다며 처녀들에게 충고하곤 한다.
학생시절의 엠마는 치어걸들과 캠퍼스 퀸카에게 둘러 쌓여 아양과 구애를 받던 조나단이 그녀에게 눈길조차 줄 기회가 없었고, 겨우 안면을 트고 난 뒤에는 엠마에게 유머있고 친절하게 대했지만 이성적인 관심은 주지 않았던 나쁜 면모를 사랑했을게다.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건 동서양 여성들이 공통이긴 한 모양인데 역시 나쁜 남자는 끝까지 나쁜 놈이라는 진실을 엠마와 조나단의 관계를 통해서 보고 있다.
방금전의 핏대를 세우고 나를 노려보며 제압했던 그 푸른 섬광의 눈빛은 먹이를 노리는 늑대의 눈빛이라기보다, 새끼를 빼앗기고 상대가 인간이던 덩치 큰 동물이던지 공격을 하는 어미의 눈빛이었다.
그런 눈빛과 성깔을 그녀가 조나단과 릴리에게라도 보였더라면, 다운타운 급식소에서 그녀의 뺨을 때리고 밀치던 힘센 여성노숙자들에게 그렇게 했더라면, 그녀를 희롱하거나 욕보이려는 무뢰배들에게 푸른 섬광을 난사했더라면 좀 낫지 않았을까?
사람이라는게 강약약강하게 마련, 내가 엠마에게 그토록 우습게 보였을까?
아니면 아무렇게나 대해도 괜챦은, 그저 양보 잘하고 동정심많은 순둥이 옐로 몽키로 보였을 것이다.
영화 DP에서 악질고참을 납치한 병사가 그 악질고참에게 ‘내게 왜 그랬어?’라고 묻자 악질고참놈은 ‘그래도 되는줄 알았어’라고 대답했지.
“헐, 이쯤되면 나는 글로벌 호구로 등극했구만”
혀를 끌끌 차며 한숨을 내쉬고 주차장의 차로 돌아가 트렁크를 뒤져 고이 보관중인 담배를 꺼냈다.
연기로 도넛을 만들려다 몇 번 실패하니 오기가 생겨 내 신경은 온통 정교하고 단단한 도넛 모양을 만드는데로 집중되어, 옛날에 차인 여친, 중매 도중 과도한 조건이나 스펙을 요구하며 깨진 일들, 방금 전의 엠마마저도 잊어 버렸다.
지금 엠마를 내쳐야한다!
엠마가 내 집을 떠나봐야 길어야 보름이면 다운타운으로 도루 기어들어가 있을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단속도 단속이지만 다운타운에서는 급식과 속옷, 생리대 등을 구호단체에서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숙자들이 엘에이 다운타운을 떠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담배를 지져끄며 그런 걱정 또한 오지랖이라고 결론 내렸다.
도와주고 헌신하고 희생한 뒤에 버림받거나 무시받는 내 인생의 고리도 끊으리라 다짐했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순간 해방감과 죄책감이 동시에 밀려왔건만 저런 거지녀를 위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엠마! 너는 길거리에서 왔으니, 길거리로 돌아가리라!”
그녀의 각종 신분증의 재발급 주소를 우리 집으로 해놓았기 때문에 그게 언제 올지는 미국 행정당국의 특성상 보장이 되지 않는다.
나는 항상 그런 자잘한 문제로 인해 내 스스로 발목을 잡아왔음을 반성했다.
내 집이 엠마와 조나단이 살던 100평대 대형주택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게 작은 엑스트라룸과 게스트용 화장실까지 내어줄 정도의 넓이는 되는 곳이다.
처음 다운타운에서 엠마를 구조했을때, 그녀를 돕기로 했던 이유는 그녀는 위험한 다운타운을 벗어나고 독립하고자 하는 의지가 충분히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곳을 불과 3주만에 미치도록 답답해 했다는 것은, 엠마는 7개월 넘게 노숙생활을 하면서 뼛속까지 노숙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거지 생활의 불편함과 불규칙한 식사, 구호단체에서 받은 일인용 텐트조차 불량배들이 찢어버려 비바람을 맞으며 골목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상상도 못한 불편함, 그리고 수시로 약자인 그녀에게 가해지던 구타와 성희롱의 고통과 굴욕, 성폭행의 불안은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엠마는 그 상태가 편안해진 것이다.
나는 큰 길로 나와 해변가 도로 북쪽으로 내어달리기 시작했다.
“허얼!”
운전 중의 시선을 강탈한 것은 해변가 인도를 점령한 노숙자 텐트들이었다.
싼타모니카 근방의 아름다운 해변가 도로는 언젠가부터 노숙촌으로 변모되어 있었다.
신호대기중 구글에다가 ‘산타모니카’, ‘노숙자’라고 검색을 해보니 노숙자들이 일반인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사건들이 줄줄이 검색되고 있다.
어느 노숙자가 아침에 조깅을 하던 젊은 여성을 끌고 공중화장실로 가다가 체포된 사건도 있었던가 하면 할머니 앞에서 6살짜리 아이를 묻지마 폭행한 사건까지 검색되었다.
이런 사건들이 기사화되는 것은, 다운타운에는 노숙자들끼리만 살지만 산타모니카는 중상층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곳이다.
현지 주민이던 관광객들이던지 노숙자들중 진정 미친 놈들한테 당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다운타운에 비해서 기사화가 될 것이다.
노숙자들끼리 치고 받고 뺏고 겁탈하는건 기사가 안되겠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급히 차를 왼편으로 옮겨 순식간에 유턴시키고 아까 그 주차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갈곳이 없는 엠마가 유랑 끝에 저들이 있는 곳에 가게 할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쫌, 무단횡단은 아니지…….”
하필 내 앞에 관광버스가 멈추었고 거기서 떼로 내린 관광객들이 한꺼번에 길을 건너는 통에 돌아가는 길은 더욱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방금 전과 달리 왜 이리 번잡하고 보행자가 많은지.
엠마는 어디로 갔을까?
선드레스를 입고 샌들을 신고 체력이 약한 엠마가 빠른 속도로 비치가를 벗어나진 못했겠지만 어디서든 그녀를 발견하게 되길 바랬다.
엠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일단 주차 하고 내렸다.
그녀가 어디서 차를 얻어탈리도 없고 원피스와 샌들의 불편한 착의로 멀리 갈리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내 차가 처음에 주차되었던 그 장소에 몇몇 여인들이 동그랗게 둘러싸 있었다.
혹시라도 해서 부녀들이 둘러 싼 곳으로 천천히 걸어 가보았다.
이곳을 산책하던 동네 부녀자들 사이에 둘러 쌓인 엠마가 그녀들 틈새로 보였고, 부녀자들은 엠마를 달래며 위로하고 있다.
내가 그네들 사이로 걸어갔을때도 부녀자들은 나를 위해 비켜주진 않았다.
깔끔한 원피스와 새로운 샌들을 신었으되 헤진 머리카락을 지닌 여자와 대강 깔끔한 사내, 서양인 여자와 동양인 남자, 이 두가지 카테고리의 조합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였기에 그녀들은 내가 그녀의 보호자(?)인걸로 생각하지 못했던것 같다.
"부인들, 실례합니다. 제가 저 여자에게 용무가 있습니다"
"남편인가요?"
"아니요, 임시로 제가......"
한 여인이 길을 터주었을때 그때서야 다시 엠마와 대면할수 있었다.
엠마의 얼굴은 온통 눈물투성이였고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소리없이 울고 있던 엠마는 나와 다시 대면한 현실이 믿기지 않는듯이 본격적으로 오열을 했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어깨를 잡아당기고 품에 안은채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는 친한듯하지만 낯설은 사내의 손길에 반항을 하지 않았다.
애무가 아닌 그저 위로하고 달래기 위한 포옹이었을 뿐이며 그녀의 왜소한 몸을 처음 안았을때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엠마를 위로하며 어떻게 해서든 도와주려던 여인들은 안도의 숨을 쉬고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엠마는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채 계속 잔 호흡을 하며 간신히 내게 말을 이었다.
“왜…..다시 돌아왔나요?”
“담배사러 갔었어”
“……절 혼자 두지 마세요, 부탁이에요. 흐윽”
“엠마씨는 아까 뛰쳐나가서 뭐하고 있었나?”
아까도 울고 있었지만 시간이 한참 지났어도 그녀의 얼굴은 전체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다.
“......모래사장에 발이 빠져서 넘어졌어요. 그게 억울하고 서러워서 마구 울었죠. 지나가는 아줌마가 위로해줬어요. 옆을 보니깐 당신이 없는거에요. 남편에게 버려지던 때가 생각이 났어요. 주차장으로 왔지만 ‘아무것도’ 없었어요. 다시 심장이 내려앉고 눈물이 터졌어요”
상황을 보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녀에게 화를 내고 싶어도 낼수가 없었다.
나는 또 바보같이 그녀의 필요를 찾아내서 먼저 은전을 베풀었다.
요구가 있기 전까지 해서는 안되는 일인데도 몸이 기억하듯 차에서 패트병물을 꺼내 주었다.
엠마는 처음 보았을 때처럼 내게 감사를 표한뒤에 물을 마셨다.
그 다음엔 조수석 문을 열어주고 옆자리에 엠마를 태웠다.
지금껏 엠마를 태우고 다닐때 늘 그녀를 뒷좌석에 앉도록 했는데 그것은 첫날 뒷좌석에 앉힌 습관이기도 했지만 손님에 대한 예우차원이기도 했었다.
엠마가 그녀의 자가용차 뒷좌석에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나는 일부러 그녀를 내 옆좌석에 앉히기로 한 것이다.
아까 전에 내 차를 타고 다니는게 지겹다고 도발한 이유가 바로 그것에 있었다.
“앞자리에는 처음 앉아보는군요”
엠마는 이렇게 의례적인 느낌을 이야기한뒤 내 차가 출발하자 패트병 물을 비워 옆의 컵 홀더에 끼운뒤 숨을 꼴깍 한번 삼키고 나서 나를 바라보며 정색을 하고 말을 걸었다.
“확실히 해줄게 있어요. 저를 원고로 하여 조나단과 릴리를 피고로 소송을 진행할건가요? 저는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소위 ‘변호사 잡는 변호사’로 악명 높은 아르메니아계 유태인 변호사의 한국인 사무장과 잘 아는 관계에 있었다.
어제 저녁에 그 형님에게 엠마의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니 그 형님은 자기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화가 난다고 하며 엠마를 잘 설득해서 법률 사무소로 데려오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엠마에게 조나단과 릴리를 상대로 소송에 승소한뒤 받는 보상금으로 내가 그녀에게 쏟아 부운 비용을 제하고 그녀의 독립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었다.
엠마가 나의 도움에 대해 갚을 능력이 없다고 계속 문제제기를 하는데 대한 대안이었지만 오히려 그녀의 상처에 소금을 붓는 역효과를 가져왔고 그녀가 나에게 도발을 하는 도화선을 마련해 준 셈이었다.
“그러면 가정폭력, 강제 유기, 노숙자 생활로 인한 피해보상은 어디에 호소할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원하는 나에 대한 채무해결도 되고 당신의 독립의 기반이 될수 있는데, why not?”
“변호사에게, 법정에서 그간의 조나단과의 모든 ... 둘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다 끄집어 내야 해요. 법정에서 조나단과 릴리를 마주치면 미쳐버릴 것 같아요. 차라리 지나간 일로 잊고 새출발을 하고 싶어요”
“휴우......알았소. 미스터킴 형님에게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소. 당신은 내게 부채의식을 갖지 않아도 되요. 댁이 말한대로 나는 나의 정신적 쾌락을 위해 당신을 돕고 있는 것으로 간주해도 상관없어요”
엠마는 소송시도를 포기하겠다는 내 선언을 듣고 표정이 밝아졌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에게 짐을 지우지 않겠다는 내 의도를 의심하는 듯 했다.
확실히 서구인들은 기브앤 테이크가 확실해서인지 내가 그녀에게 댓가를 요구하지 않고 도와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듯 싶다.
싼타모니카 해변을 달리며 옆의 노숙자 텐트촌을 그녀에게 가리키고 싶었지만 그녀는 전혀 관심이 없는듯 했다.
그때 내 머릿 속의 비상전굿불이 반짝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아, 이런…..이러니깐 내가 여태 장개를 못갔지. 여자한테 진정 필요한게 뭐라는걸 몰랐으니깐!”
“무슨 뜻이에요?”
내가 한국말로 혼잣말을 하자 엠마는 바로 반응했다.
“’내가’라는 단어랑 ‘요자’라는 단어는 알아요. 한국인 학생들끼리 대화하는걸 엿듯다 주워서 알게 되었죠”
내가 여자를 그동안 배려해주었던 것은 엠마의 말마따나 나의 정신적 만족을 위한 행위였다는걸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진정한 베품이라 함은 내가 주고 싶은게 아니라 상대방이 필요한 것을 베푸는 것이라는 것이지.
변두리 쪽의 작은 쇼핑몰들을 살피다가 미용실을 발견하고 차를 세운뒤 엠마를 내리게 했다.
그녀는 매일 머리를 감고 빗질을 했지만 제멋대로 자란 넝쿨같은 머리카락은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미용을 받은적은 있나요?”
“버려지고 두달이 지나 봉사단체 소속의 미용사들이 다운타운으로 왔을때 딱 한번 숏 컷을 했어요. 그 이후로는”
“일단 들어가서 원하는 스타일로 해달라고 하세요, 염색도 돼요. 비용을 나중에 어떻게 갚을것인지는 고민하지마요. 그야말로 나의 이기심의 발로니깐”
그녀는 미용실을 보자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차 있었지만 한편 미용실에 들어가는게 웬지 불편하고 불안해 보였다.
엠마는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 보았다.
“어디 가시려는거 아니죠?”
“동네 미용실이라 동행자의 웨이팅룸이 따로 없어 보이는군요. 주차장에서 담배나 피우고 있을거요”
“…………안에 들어와서 기다리시면 안되요?”
헐,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이거 제대로 물린건진 모르겠지만 방금전 해변가에서 내가 차를 몰고 사라졌던 것은 그녀의 충격과 공포를 되살려준 셈이었다.
미용실로 들어섰을때 나이가 좀 있는 백인여성 미용사는 나와 엠마를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광녀끼나 노숙녀끼가 있어 보이는 머리카락을 지닌데다가 얼굴엔 온통 눈물자국인 엠마를 보고 살짝 양미간을 찌푸리는 한편 억지 거짓 웃음으로 그녀를 응대했다.
미용사의 손길 아래 엠마의 손질이 전혀 되지 않아 거칠고 푸석했던 머리카락은 점차 제자리와 생기와 윤기를 되찾아갔다.
엠마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처음에는 낯설어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자신감을 되찾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정돈되면서 그녀의 얼굴 윤곽도 더 뚜렷해지고, 피부톤도 더욱 밝아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원래 머리카락 색상과 비슷한, 라이트 골든 블론드로 염색을 진행했다.
점차 변모해 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엠마의 멈출줄 모르는 진짜 미소를 발견했다.
"아하…….이게 정말 나일까? 옛날의 내가 이 모습이었을까?"
엠마는 불과 8개월전 풍족한 환경 속의 젊고 아름다운 주부였던 시절을 마치 8년전쯤으로 느끼고 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부드럽게 물결처럼 흘러내렸고, 그녀의 외모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모습으로 변신해 있었다.
이 과정이 단순한 헤어의 변화가 아니라, 엠마가 자신의 존엄과 아름다움을 되찾는 과정을 보고 있는 것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아름다움을 되찾았은 것에 기쁨을 느끼면서도, 그 동안의 고통과 상처를 떠올리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는듯 금새 슬픈 표정으로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새 옷을 입히고 아무리 씻기고 제대로 된 밥을 먹인지가 오래되었지만 노숙자의 거친 외모가 사라지는 것을 막았던 주범은 바로 그녀의 거친 머리카락이었던 것이다.
미용사도 기분이 좋고 보람을 느끼는듯 처음에 우리가 미용실에 들어설때의 불쾌감과 경계심을 버리고 그녀도 연신 미소를 지었다.
미용사는 무료 서비스라고 강조하며 두 종류의 로션을 엠마의 얼굴에 순차적으로 발라서 툭툭 쳐준뒤 메이크업 팔렛을 꺼내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발라준뒤 펜슬을 눈썹에 그려주니 브라운색의 명료한 아이라인이 그러졌다.
더하여 검은 마스카라로 살짝 눈썹을 세워주고 연한 오렌지빛 아이섀도우를 기술적으로 엠마의 눈두덩에 음영을 넣어 주었다.
직후에 핑크빛 블러쉬를 그녀의 두볼에 칠해서 인공 홍조를 만들어 주고 입술에는 진한 핑크빛 립스틱을 순식간에 발라 주고 펜슬로 입술 끝선을 날카롭게 마무리했다.
나는 미용사의 손길로 인해 순식간에 변하는 그녀의 외모에 감탄할수 밖에 없었다.
이제 그녀에게서 노숙생활의 흔적이라곤 깡마른 몸매말고는 없었다.
나는 미용사에게 적지 않은 팁을 쥐어주고 엠마를 데리고 주차장으로 나왔다.
“후우…….대단해. 당신은 상당한 미모를 가지고 있었군요.”
“고마와요, 실내에서 지루하게 같이 있어주어서요. 내게 돈을 쥐어주고 혼자 미용실에 있으라고 했다면 전 못했을거 같아요………….그런데 저에 대한 칭찬은 제가 처음 당신의 집에서 목욕을 마치고 새 옷을 입었을때 했던 칭찬과도 같아요.”
그녀가 내게 하는 고마움의 표현은 처음 그녀를 구출했을때, 처음 밥을 해먹였을때의 절박함 속에서 나온 감사라기보다는 여유 속에서 나오는 감사 표현과도 같았다.
엠마는 그러면서도 나더러 칭찬이 진부하다는 말을 기술적이고 우아하게 돌려치고 있었다.
“머리카락만 바꾸었고 가벼운 화장을 했을 뿐인데 얼굴 전체가 럭셔리하고 귀티가 나요. 이게 당신의 진짜 모습인 듯 싶소”
“네, 칭찬 진심으로 고마와요”
외모를 찾음과 동시에 자신감을 찾은듯 여유로운 표정과 몸짓으로 먼저 내 차 조수석을 열었다.
엠마는 조수석 선바이져를 열어 나르시시스트마냥 자기의 변모한 머리카락과 얼굴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과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녀를 처음 길거리에서 보았을때부터 시작하여 방금전까지도 늘 엠마는 울고 또 울던 여자였지만 지금은 계속 웃고 있는 여인으로 변모한 것은 그녀의 외모의 변화만큼이나 신기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깐 매일 나 혼자서 마켓 장보고 와서 한국음식만 먹였군요. 김치찌개 기본에 김치 볶음밥에 검은 콩장에 검은 김에 또 김치까지, 지겨울만도 했겠소. 당신들에게는 그저 기호식품일 따름일텐데.”
“검붉은 똥을 누게 되더라구요. 처음엔 치질인줄 알고 깜짝 놀랐어요”
뭐 친한 듯 안 친한 듯 관계가 애매한 남자 앞에서 이런 소리를 스스럼 없이 할수 있다니, 원래 이런 여자인건지 노숙 시절 길거리에서 대소변을 해결하면서 망가진건지는 알길이 없다.
하기사 20일이 넘도록 나에게 엠마의 존재는 첫날의 길거리에서 허공을 올려다보고 울며 깡패들 앞에서 체념한 모습의 노숙자여야 했다.
그녀에겐 주식이 아닌 김치찌개와 쌀밥 세공기를 순식간에 먹어치운 굶주린 거지녀야 했다.
처음 차 뒷좌석에 태웠을 때 풍기던 악취의 인상도 지금도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남편과 완전히 남남이 되어버린 것을 확고히 알자마자, 외간 남자 앞에서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한채 선채로 설사를 지린, 체력과 정신력이 약한 여자여야만 했다.
그러기에 그녀의 아무렇게나 자라고 헤진 머리카락이 그녀에 대한 인상과 걸맞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녀의 노숙자 인상이 나에게 더 편안해지고 익숙해진 것 같았다.
엠마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선바이저를 닫으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앞으로 쭉 저를 앞좌석에 태워줄수 있겠어요? 아직도 세단 뒷자리는 무서워요.........”
엠마는 남편 조나단이 그의 뒷문이 없는 벤틀리 쿠페 옆좌석 그녀를 태우지 않고, 뒷문이 달린 렉서스 세단 뒷좌석에 태울때부터 버려질 것을 직감했었다고 한다.
그녀의 세단 뒷좌석에 강제로 태워진채 약 40여분 동안 벼라별 생각이 스치며 공포에 떨었을 것이다.
내가 엠마를 구조하고 나서 여기저기 다닐적에 그녀는 늘 뒷좌석에서 조마조마하는 모습을 보인건 다름아닌 그녀가 버려졌을 때의 충격이 남아 있어서였던 것이다.
그런데 말이지 ‘앞으로 쭉’라는 단어를 쓰는걸로 보아 엠마는 독립생각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헷갈렸다.
내가 언제까지 길거리에서 주운 일면식도 없는 외국 여자를 내 집에 무한정 데리고 있을수가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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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