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 일시 : 2024. 2. 25(일) 오전 10:30~12:00 (90분)
안내 인원 : 17명
함께 한 길라잡이 : 안은경샘(진행) / 참관-김선정샘 / 지원-우미정국장님
특이사항 : 특별기획 겨울방학 역사투어 3회차
* 준비 과정
1월 14일 광실샘의 역사투어 임정 1차 해설을 들어 보고, 1월 28일 선정샘 2차 해설의 후기를 읽어본 결과, 나의 결론은 “어떤 내용을 해설할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아이들을 집중하게 만들 것인가” - 그것에 성패(?)가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격적인 해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부모들 단도리를 먼저 잘하고, 아이들 수준에 대해 빠르게 파악하고, 해설 중에는 가급적 앉지 않도록 유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겨울방학 특별프로그램으로 홍보되어 그걸 보고 오는 학부모와 학생들이니만큼, 무엇보다 역사 공부에 대한 관심과 흥미 유발에 초점을 맞추고 오늘의 일회적 방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임정기념관과의 연계 학습으로 관련 장소들에 대한 현장 탐방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
임정의 성립과 활동, 그리고 찾아온 위기, 이동, 환국에 관한 기본 뼈대가 되는 이야기 말고도 흥미를 유발하는 <인물 이야기>를 많이 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서 임정에서 아이들이 잘 아는(혹은 안다고 생각하는??) 김구 선생 이외에도 다른 어떤 인물들이 활약했던가, <임정에서 나는 누구를 특별히 아이들에게 기억시켜 주고 싶은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임정은 거칠게 말하면 크게 안창호의 임정과 김구의 임정으로 나눠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즉 1932년 안창호 선생의 피체(붙잡힘)를 기준으로 하여, 1919년부터 1932년까지의 13년간은 안창호의 임정으로, 1932년 이후 1945년까지 13년간은 김구의 임정으로 말이다. 당연히 임정을 설명함에 있어 안창호와 김구 두 분은 필수 인물이다. 그 밖에도 임시헌장, 건국강령 등을 기초한 임정의 브레인이자 이론가인 조소앙 선생, 초대 임시의정원 의장이자 임정 식구들의 정신적 지주라 할 이동녕 선생을 꼭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임정의 걸림돌, 욕받이였던 이승만도 얘기 안할 수 없다. - 여기까지 다섯 명은 꼭 얘기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상황이 된다면 김원봉, 여운형, 김규식을… 더 나아간다면 지청천, 이범석까지를…
이렇게까지 얘기할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시간이 정말 빨리 흘러간다는 거, 생각보다 많은 내용을 말하지 못한다는 거 ㅎㅎㅎ
역사투어 3차를 준비하면서 특별히 행한 나의 노력은 다음과 같다.
1.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말한다는 게 어떤 것인가에 대해 좀더 심사숙고해 보기 위해 조정래가 자신의 손자를 위해 썼다는 인물이야기 김구 책을 사서 읽어 보았다. 정말 쉽게 써져 있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글을 쓴다(혹은 말한다)는게 무엇인지 아주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대강 감은 들었다. 그리고 이승만의 위임통치청원에 대해 조금 자세하게 공부를 해 보았다.
2. 설명의 흐름 순서에 맞게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이라든가 사건 관련 자료들을 출력하고 갖추어서 나름 이번 역사투어만의 전용 클리어 화일을 준비했다.
3. 자료 준비한 걸 보여드릴 때 기념관 실내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랜턴도 준비했다.
* 당일 상황
역사투어를 위해 준비한 클리어 파일과 랜턴 등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10시 15분쯤 도착했다. 10시 20분부터 접수였는데, 늦었다.(죄송!!) 최종 참가자는 학생과 부모님들 합쳐 17명이었다. 다들 늦지 않게들 오셨다.(이부터가 앞의 1차, 2차 역사투어와는 달랐다!!!)
이날 기념관 1층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임정 수립일 관련 무슨 이벤트 진행중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긴장한 탓이었는지 그런 거에 신경쓸 겨를은 없었다. 드디어 10시 30분이 되었다. 다같이 모여 인사하고 참가자들과 처음 대면하는 순간, 마음먹은대로 3차 역사투어의 포문을 열었다. 자원활동인 평화길라잡이에 대해 소개하고, 오늘 함께 하는 부모님들도 잘 귀담아 들어 주십사 당부를 드렸다. 오늘 어린이들은 초등 4, 5, 6 학년이라고 사전에 들었지만 아이들의 지식 수준 파악을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았다. 임정(임시정부) 단어 들어본 사람? – 몇 명이 손을 들었다. 임정(임시정부) 하면 떠오르는 사람? - 김구, 이승만 등의 대답이 나왔다. 나쁘지 않은 듯했다. 부모님들도 협조적인 듯했고 괜찮다고 느껴졌다.
우리나라 법 중에서 가장 높은 법은? 질문에 “헌법이요” 대답이 나왔고, 대한민국 헌법 1조(주권)부터 2조(국민), 3조(영토), 4조(통일) 까지 조문을 설명해 주는 얘기로 시작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 누가 대한민국의 주인인지, 주권을 잃으면 뭐가 되는지를 물어 보았고, 주권을 잃은 식민지로서 독립을 위해 우리 선조들은 무엇을 했고 임시정부는 그중에 어떤 일을 했는지 오늘 함께 배우고 생각해 보자며 2층으로 올라갔다.
키네틱 아트로 곧바로 가서 200개 구슬이 펼치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았다. 다들 신기해 하고 재밌어 하는 걸 느끼며 3.1운동과의 연관 설명을 해주고 왕—>민으로 글자가 바뀌는 걸 잘 보라고 말해 주었다. 대동단결선언으로 가서는 조소앙 선생 사진을 보여주고 선언의 의미(주권불멸설, 국민주권설)에 대해 풀어서 얘기했고, 3.1운동 판넬 쪽으로 갔다. 기미독립선언서에 나오는 민족대표 33인의 기재된 순서에 대해 말해 주고, 3월 1일 당일에 시가행진의 종착 지점이 모두 본정(지금의 충무로)이었던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3.1운동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질문에 당연히 나오는 대답은 유관순열사… 그렇지만 나는 이승만이 떠오른다 라고 하며 이승만의 위임통치청원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1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승전국가 대열에 속해 있었고, 위임통치는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오스만제국의 식민지에 대해 행해졌던 것이어서 우리는 대상이 아니었을뿐더러, 국제 정세 파악을 제대로 못한 이승만 때문에 자칫 일본의 합법적인 위임통치가 될뻔도 했었음을 말씀드렸다. 이로써 남에게 기대는 독립이 아닌 우리 손으로의 독립이어야 함을 독립운동가들이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고, 서클영상을 보러 이동했다. (어려운 얘기였음에도 이승만이 임정에서 쫓겨나는 이유에 대한 사전 빌드업 겸 얘기를 밀어 부쳤지만 결과적으로 시간에 쫓겨서 3층 가서는 개헌 얘기를 하진 못했다ㅠ…)
중앙의 써클 영상에선 시청을 하며 국호와 연호가 과연 뭐라고 나오는지를 잘 보라고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보게 했다.
서클 밖으로 나와 2층 안쪽으로 들어가기 직전, 상해의 두번째 청사를 본 딴 조형물과 아치 문에 대해 말하면서 김구 선생은 임정의 문지기가 되고 싶다고 하였으나 지금의 경찰청장인 경무국장으로 초기에 일했고, 임정 성립과 통합 과정에서는 안창호 선생이 주도적 역할을 하셨다고 말해주고, 다같이 안으로 들어가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는 안창호 선생께 머리 숙여 함께 인사하도록 했다.
임시정부 활동에 대한 얘기를 세세하게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시간도 분명 쫓길 것이고, 내가 세세히 말하게 되면 그것은 듣는 사람한텐 지루하고 장황하게 들릴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따라서 짧으면서도, 임팩트 있게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행정 활동에선 연통제를, 군사 활동에선 광복군을, 외교 활동에선 카이로 선언을, 재정 활동에선 안창호 선생의 오렌지 농장 얘기를 꼽아 놓았었다.
아니나 다를까… 임정의 첫 활동이 연통제 실시였고, 그것이 신민회 때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거슬러 올라가면 임정은 저 멀리 독립협회 활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안창호, 이동녕, 양기탁 선생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강조한 후에, 군대를 만들려 노력했지만 한국광복군이 결성된 것은 1940년에 가서야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나니, 11시에 시작한 임정 자체 해설 도슨트가 이끄는 관람객 무리가 어느새 바짝 쫓아와 우리는 빨리 이동해야 하는 시간이 되어 있었다.
급하게 자리를 옮겨 카이로 선언을 보고 그 의미와 내용, 그것이 나중에 신탁통치와도 연결되는 지점을 말하고, 안창호 선생이 오렌지 농장에서 일하는 사진에 대해 설명한 뒤 서둘러 바깥쪽으로 나가 의열투쟁쪽으로 가서 이봉창, 윤봉길 두 한인애국단원의 의거에 대해 아주 짧게 말하고 3층으로 이동했다(11시 20분경?) 이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의미인 <순국>이라는 단어에 대해 아는지 질문을 하고 강조해서 말했는데, 사실 윤봉길 의거와 관련해서는 거사 당일의 백범일지와 장강일기를 프린트하여 비교하며 말해 주려고 준비했었지만 못하고 말았다ㅠ.
3층에서는 임시의정원의 의미와 역할, 구성, 그리고 의원의 임기와 남녀에 차별이 없었던 의원 자격, 여성 의원의 수, 특히 여성의 참정권 보장이 세계사적으로도 빨랐던 점을 말해 주고, 초대 의장이셨던 이동녕 선생을 강조하여 현재 국회 본청 현관(로텐더 홀)에 있는 선생의 흉상 사진까지도 보여 드렸다.(준비한 후레쉬는 이때 사용ㅎㅎ)
다섯 차례의 개헌과 여야로 나눠진 임시정부의 정당 활동은 지나가면서 그런 활동이 있었다는 말만 했고, 임시정부의 이동 부분도 윤봉길 의거로 임정 요인들이 피신하는 상황 속에 안창호 선생이 잡혀서 서대문 형무소로 끌려 오게 된 상황, 8년에 걸친 이동 기간 중에 청사가 있었던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구분 표시 등만 간결히 말하고, 사전에 준비했었던 제시의 일기와 제시 가족 사진 몇 장에 대해선 얘기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서 광복군 영상을 다같이 시청하고 4층으로 이동했다.
대략 11시 40분쯤 4층에 온 거 같은데, 4층에선 일본의 항복 문서(1945.9.2)와 임정의 포고문(1945.9.3)을 보며 설명하고, 미군정이 실시된 분단된 조국의 남쪽에 결국 임정 요인들은 개인자격으로 환국할 수 밖에 없었던 처지를, 당시 영어 서약서 문장을 읽어 드리며 말씀드렸다. 그리고 조소앙 선생의 1946.3.1 육성 연설을 다같이 들었다. 환국 이후 임정의 활동에 대해 짧게라도 말씀드리려 했지만 또다시 옆으로 들이닥친 기념관 도슨트 관람객 무리 때문에 자리를 비켜줘야 해서, 4층 나가는 길에 놓여 있는 <임정에서 정부로 승계된 것들>에 대해 하나씩 짚어 보며, 올해가 3.1절 105주년임과 동시에 대한민국 연호로는 106년임을 말씀드리고 주년과 년의 차이에 대해 설명드렸다.
최종 마무리를 위해 옥상으로 올라갔다. 처음 시작할 때도 언급했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시간30분이 거의 다 되었다. 선물 퀴즈를 먼저 냈다. 첫번째 퀴즈는 ‘법 중에서 가장 높은 법은?’ – 정답 ‘헌법’! 맞춘 학생한테 연이어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헌법 1조는?’ 하고 물으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퍼펙트하게 답하여서 뿌듯했다. 두번째 퀴즈로, 옥상 올라오기 바로 직전 설명해 줬던 ‘대한민국 연호로 올해는 몇 년인가?’를 내어 막내 어린이가 맞췄다. 독립운동가 달력을 주는 순서에선 임정의 뿌리가 거슬러 올라가면 어떤 단체인지 물어 보는 문제를 냈고, 소감을 물어 보아 대답한 어린이에게도 달력을 주었다.
“뭐든 한번에 되는 것은 없습니다. 아이들 공부도 그렇고, 오늘 임정기념관에 와서 보고 느낀 것들을 앞으로 김구 선생님이 돌아가신 경교장이나 김구 선생님이 묻혀 계신 효창공원, 그 옆에 있는 백범기념관 등 연계하여 이어가면서 찾아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식사후 서대문형무소에서 보자고 하며 12시에 마무리했다.
왕의 나라에서 백성의 나라로 바뀜에 대해, 그래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에 대해, 그 정신이 담겨 있는 헌법에 대해, 그 대한민국과 헌법을 처음 만든 임시정부에 대해, 그 임시정부의 뿌리가 되는 활동에 대해, 그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이라는 것에 대해, 나는 말하고 싶었고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
당초 준비하며 상상속에 꿈꿨던 것들이 얼마나 전달이 됐는지, 무엇이 아이들과 부모님들 기억에 남았는지 알 길은 없다. 2층 어딘가 에서부터는 아이들보다도 오히려 열심히 경청하는 부모님들과 더 많이 눈맞추며 설명했던 것도 같다.
끝나고 그래도 뿌듯한 마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날의 주인공인 관람객들의 태도에 있지 않았나 싶다. 3차 역사투어 관람객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대체로 흐트러짐 없이 집중해 주었고 잘 쫓아와 주었다.(물론 이날 기념관에서 진행하는 이벤트 과제를 하느라 아이들이 중간중간 딴짓을 하기도 했다고 나중에 듣기는 들었다.) 중반 이후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하며 준비한 내용을 다 펼치지 못한 내가 아쉬울 뿐이다.
이상 후기를 마칩니다. 수고해 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진지하게 잘 들어준 어린이+보호자들 덕분에 청소년에 맞게 열성적으로 준비해주신 선생님의 안내가 빛났어요. 어렵고 복잡한 역사에 관심이 없고 잘 몰라도 된다고, 지금을 시작으로 역사를 배우고 현장을 계속 오는 것이 왜 중요한지 격려해주고, 다정하게 말씀해주신 것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가르치는 해설이 아닌 서로 공감하고, 생각할 시간을 주고, 대답을 기다려주는.. 관람객을 배려해주는 마음이 느꼈습니다. 애쓰셨습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