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참을 가리고 가로막는 칼로 물 베기란 부부 싸움과 결혼의 실체란 제목 등을 통하여 확인한 것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된 신기루라고 하거나, 공 하다고 하는 성경이나 불경의 논리나 주장처럼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피조물 스스로 만든 허망한 신기루 도덕천을 비롯하여 삼강오륜이나 인의예지신 등
왜곡 변질된 괴물 피조물의 본능과 본질을 따라 만든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한 허망한 신기루 처방전인 수 많은 법이나 틀로 참인 정답을 가리고 가로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을 정답으로 착각하여 용감무쌍하게 행하고 있는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피조물의 궁극적인 본능과 본질을 따른 목적과 사명이 위 없이 살아있는 온전한 만고의 영웅호걸로 거듭나는 것임을 알지 못하여 소유하지 못한 종교나 철학을 비롯하여 이 세상 모든 학문의 대단한 선생들이 헛되고 헛된 허망한 신기루인 이 세상과, 이 세상의 허망한 신기루 유익인 똥을 표적으로 구하기 위하여 만든 허망한 신기루 처방전을 따라
첫 상견례 장에서부터 그 허망한 신기루 처방전을 따라 의미를 부여하여 만든 허망한 신기루인 모성애를 피조물의 본능이나 본질을 따른 정답으로 착각하여 생명줄 같은 유혹인 젖가슴으로 입을 막아 피조물의 본능과 본질을 따른 목적과 사명의 외침을 괴물의 외침으로 왜곡 변질한 것처럼
달콤한 신기루 유혹의 명분과, 온갖 감언이설과 권모술수의 곡학아세와, 표리부동의 굿판인 온갖 방법의 교육과 훈련 등으로 세뇌하여 굴욕의 항복인 참회의 회개를 강요하는 자승자박과 자가 당착의 모순 속에 빠져 스스로 바람이나 구름을 잡으려는 절대 불가능에 도전하도록 미혹하여 강요하기 위하여
죄인이나 괴물로 만들려고 스스로 대단한 의미를 부여한 어떠한 의식이나 인식 유무에 상관없이 그 모든 것의 본질은 헛되고 헛된 허망한 신기루인 이 세상과, 이 세상의 허망한 신기루 유익인 똥을 표적으로 구하기 위하여 삯꾼이나, 사기꾼이 되어 만든 허망한 신기루 처방전으로 그 실상의 본질은 참을 가리고 가로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이기에
지금까지 어떠한 인생도 그러한 허망한 신기루 처방전으로 피조물의 한계를 온전하게 극복하여 위 없는 살아있는 온전한 기쁨과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누리기보다 오히려 절대 불가능에 도전하는 괴물이 되어 다람쥐 쳇바퀴 돌리다 결국 인생 무상을 읊조리며 홀연히 허공 속으로 흩어지며 사라져 간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깨달아 회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외모인 공평 타당함이나 공의롭게 판단하여 표적으로 구하고 있는 허망한 신기루 유혹인 종교나 부귀영화나 피난처나 만우절처럼 헛되고 헛된 허망한 신기루인 이 세상과, 이 세상의 허망한 신기루 유익인 똥을 표적으로 구하기 위하여 바람이나 구름을 잡으려는 절대 불가능의 도전으로
노동이란 육체뿐 아니라 정신이나 호흡이나 혈액순환을 비롯하여 세포분열 등 피조물의 삶 그 자체를 말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멋대로 분별하여 전 세계가 정답처럼 기념하고 있다는 노동절, 또는 근로자의 날인 May-day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위한 것일까?
물론 그 공적인 취지는 노동자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각국의 노동자들이 연대의식을 다지는 날로, 매년 5월 1일을 메이데이(May-day)라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자의 날로 부르고도 있으며, 그 유래는 1886년 5월1일 미국에서 발생한 노동쟁의를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육체노동의 경우에도 드러나고 있는 현실의 모순처럼 육체노동의 근본이요 본질인 가사 노동은 물론 일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나, 자영업자, 그리고 학생과 선생, 한 지붕 두 가족의 직장 등 핵심이나 본질이 빠진 반인 반수 같이 불편하고 어중간한 이 날을 굳이 표적으로 구하고 있는 진정한 이유와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것처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하여 상부상조하는 대자대비한 삶이 정답으로 우리들이 만든 각종 종교나 국가나 가정이나 개인의 기념일을 비롯하여 절기 등을 그대로 다 기념하고 지키면 온전한 날이 하나도 없이 과거의 기억이나 추억을 어루만지며 살아가야 할 뿐 아니라 혹시 온전한 날이 있다고 하더라도 곧 어떤 날로 기념되어야 할 것이고
그것으로 인하여 핵심이나 본질이 빠진 반인 반수의 노동절처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혼돈 속에서 동전의 양면이나, 이현령비현령이나, 오십 보 백 보나, 도토리 키 재기 등의 허망한 신기루 명분으로 의미를 부여하여 조성된 허망한 신기루인 명분을 따라 정답처럼 굴욕의 항복인 참회의 회개를 강요함으로 죄인이나 괴물을 만들어 다람쥐 쳇바퀴 돌리다
결국 인생 무상을 읊조리며 홀연히 허공 속으로 흩어지며 사라져 가는 것으로 분명하게 바로 깨달아 회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헛되고 헛된 허망한 신기루인 이 세상과, 이 세상의 허망한 신기루 유익인 똥을 위하여 이미 지난 허망한 신기루인 추억 등 각종 기념일을 표적으로 구하는 동상이몽의 나팔과 꽹과리 소리는 참을 가리고 가로막는 허망한 신기루 유혹인 불의와 불법의 똥칠로 분명하게 바로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헛되고 헛된 허망한 신기루인 이 세상과, 이 세상의 허망한 신기루 유익인 똥을 표적으로 구하기 위하여 절대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것처럼 또는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 자기 눈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는 것처럼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는 짓이 될 뿐 아니라
피조물의 궁극적인 본능과 본질이 아니라 괴물의 본능과 본질로 왜곡 변질함으로 피조물의 궁극적인 목적과 사명을 따라 위 없이 살아있는 온전한 만고의 영웅호걸로 거듭나 위 없이 살아있는 온전한 기쁨과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찾아 소유할 중요하고 소중한 유한의 유일한 기회와 시간을 허공으로 날리며 인생 무상을 향하여 열심히 달음질치는 짓이 되고
또 온전하고 유일한 정답인 태초부터 감추인 신비처럼 보이는 복음과, 그 결과가 언제나 허망한 신기루인 유혹의 똥을 두고 자신을 위한 것을 타인을 위한 것처럼 또는 타인을 위한 것을 자신을 위한 것처럼 심각한 착각과 모순의 무지로 나만을 위하는 것은 오직 나 밖에 없다는 분명한 사실을 왜곡 변질하여 헛되고 헛된 허망한 신기루인 이 세상과 이 세상의 허망한 신기루 유익인 똥을 표적으로 구하기 위하여
예수나 붓다나 부모나 자식이나 국가나 부귀영화 등 허망한 신기루 표적인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들 자신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대단한 무엇을 한 것으로 미혹하여 표적으로 구하도록 강요하는 허망한 신기루 처방전으로 인하여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과 사명을 괴물의 목적과 사명으로 왜곡 변질하여 끝없는 미로 속을 헤매도록 미혹하여 강요하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인 나팔과 꽹과리 소리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답이 아닌 그런 허망한 신기루 처방전의 유혹에 미혹되어 허망한 신기루를 표적으로 구하다 결국 인생무상을 읊조리며 홀연히 허공 속으로 흩어지며 사라져 가기보다 참을 가리고 가로 막는 불의와 불법의 똥칠로 분명하게 바로 깨달아
위 없이 살아 있는 온전한 회개를 함으로 복음으로 구원받아 이성과 감성의 온전한 조화로 영생불멸의 새로운 피조물로 온전한 영과 생명인, 위 없이 살아있는 온전한 만고의 영웅호걸로 거듭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어도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온전한 영이신 여호와처럼 위 없이 살아있는 온전한 소통인 일심동체가 되어 서로 사랑하는 질풍노도의 연애인 이심전심으로 서로 발을 씻기며 서로 사랑함으로
이 세상이 절대로 줄 수 없고 외모의 형상인 육체를 가진 피조물로서는 절대로 누릴 수 없는 위 없이 살아있는 온전한 기쁨과 평안인, 자유와 행복을 동상이몽이 아니라 이심전심인 실삶으로 확인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