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 병인박해 당시 전라도 천주교인들의 처형은 주로 전주와 여산, 나주 등에서 이루어졌는데,
1866년 당시에는 주로 전주에서 처형되었고 1868년에는 여산에서 처형이 이루어졌다.
당시 전라도에는 5진영(鎭營, 討捕營)이 있었는데,
순천부의 전진영(前鎭營), 운봉현의 좌진영, 나주목의 우진영, 여산현의 후진영,
전주의 중진영이 있어 토포사가 영장을 겸직하였고 사형집행권을 가지고 있었다.
병인박해(1866년)때 여산에서도 천주교인들이 체포되어 1868년부터 동헌 앞 백지사터,
베다리 옆 옥터의 교수대, 시장과 부근의 숲정이에서 백지사(白紙死 : 얼굴에 종이를 바르고 물을 부어 질식사 시키는 것),
교수형( 배다리옆 옥터의 교수대), 참수형(시장과 부근의 숲정이) 등으로 김성첨, 김면언, 김정규 등 23명이 순교하였다.
이는 기록에 남아있는 사람이고 기록도 없이 순교한 신자를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아 전주 숲정이 다음으로 많은 순교자가 나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