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여행
-남이섬, 변산반도 그리고 섬진강
지도를 펼쳐놓고 우리가 다녀 온 이박삼일의 발자취를 찾아 따라가 본다. 길은 핏줄같이
무수하게 얽혀있다. 뻗어 있는 길을 타고 맨 처음 발길 닿은 곳은 단양, 영월에 이른다. 이
곳에서 방랑 김삿갓은 마지막 역마살의 닻을 내린다. 산 따라 계곡의 물이 조용조용 나지막
하게 흐르고, 개울물은 꽐꽐 흐르는 경치 좋은 곳이다. 지금도 그러할진데 그 당시의 영월은
또 얼마나 깨끗했을까. 과거시험에서 할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시를 지어 장원급제 하지만,
뒷날 뭇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은 것은 물론이려니와 자신에게까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스
스로 안은 셈이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치는 마음으로 하늘을 안보고 살겠노라 삿갓을 쓰고
평생 걸식하며 방랑하는 길을 떠났던 것이다. 춥고 배고팠을 그 숱한 세월들,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얼어 붙은 땅조차 눈물로 흐르고 있다.
평창, 횡성. 진천을 지나 봉평에 이른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이 곳을 지나며 참
새가 방앗간을 놓칠 수 있을까. 문학기행에서 빼놓을 수는 없는 곳이다. 어엿한 다리를 옆에
제쳐 놓고 영화세트 같은 나무 다리를 건넌다. 물레방아가 얼어 붙어 있다. 솟대에 앉아 있
는 새들이 무겁다. 하늘을 언제나 날아보려고 저렇게 앉아만 있는 것일까. 날지 못하는 저
새들은 날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사나 다를 바 없다. 이 곳에는 유난히 지하여장군, 천하대장
군 장승들이 많이 서 있다. 그들의 모습은 예술성이 뛰어나 있다. 그것들 데로 수집을 해도
퍽이나 재미있을 법하다. 작은 언덕위에 이효석 문학관이 벽돌로 아주 깔끔하고도 세련되게
지어져 있었다. 부산에는 이런 문학관이 없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컸다. 영상을 통해 이효석
을 만난다. 동상에서 본 얼굴처럼 이지적이고도 정겨운 모습이다. 유품 전시관에는 원고지며
그 당시 작품이 실렸던 책이며, 작품집이 잘 보관되어 있었다. 갈색으로 뜬 세월이 거기 화
석처럼 놓여 있었다. 그는 36세에 요절했다. 피아노도 있고 측음기도 있는 그의 방이 놀라웠
다. 부유하게 살았는데도 일찍 생을 마감했구나.
춘천, 먼데를 왔구나. 불빛이 요란하지 않은 것이 생각보다는 조용한 도시인 것 같다. 호
반의 도시라더니 지금 호반을 건너고 있는 저 쪽에 보이는, 난간에 오랜지 불빛이 드문드문
한 것이 그렇다. 가평은 우리들의 오늘 밤의 유숙지다. 남이섬에 곧 이르겠다. 가평은 우산
도 없이 비에 젖은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5분 정도 배를 타고 남이섬에 도착하고 보
니 우리가 금방 떠나온 가평 선착장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한 800m정도의 강을 건너왔는
가보다. 남이섬은 바다에 있는 섬이 아니라 내륙에 자리잡고 있는 강의 섬이구나. 섬은 온통
캄캄했지만 들어서면서부터 아람들이 나무가 턱 버티고들 있었다. 큰나무들은 하나 둘이 아
니었다. 즐비하게 늘어선 나무들의 사이로 하늘의 빛은 그래도 밝았다. 비는 주룩주룩 내리
고 비옷을 입은 우리들의 행렬은 무겁고 말없이 강행되고 있는 듯이 진지해 보였다. 어둠에
싸인 상황이 더욱 그런 느낌을 주었다. 나무들은 깊은 길을 내고 있어 무서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움직일 때 그 무서움은 사라지는 것인가보다.
단체여행에서 잠을 쉽게 잔다는 것은 항상 어렵다. 잠자리를 바꾸면 쉽게 잠을 못이루는
것을 보면 예민한 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를 잤을까? 벌써 바깥을 돌고 온 사람들
은 이야기한다. 하늘에 별이 소금을 뿌려 놓은 듯 하다고, 그런 하늘을 아니 볼 수 있겠는
가? 여기까지 와서 이 새벽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어깨가 자꾸만 방바닥으로
이끌려가고 있었지만 나는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갔다. 어둠이 메타세코이어 머리 끝까지
차 있었다. 하늘의 별은 정말 소금을 뿌려 놓은 듯 했다. 밤을 잊은자에겐 쏟아져 내리는 별
빛 축복이 함께 하는구나. 어둠 속의 길은 어디로든 아련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하늘로 쭉쭉
뻗어있는 커다란 덩치의 메타세코이어 나무는 두줄로 나란하게 줄지어 있었다. 멀리 갈수록
길은 좁아져 마음이 자꾸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겨울 연가>를 촬영했다는 것
이다. 그 이후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게 되었을 것이다.
눈이 내려 하얗게 쌓인 풍경은 얼마나 더 아름다웠던가! 나도 얼핏 그 장면이 되살아 나고 있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몇 십년 전 아니면 백년 전 쯤에 이 곳에 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가느다란 어린 나무를 심는자는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이다. 보이지 않는 오늘보다는 보이지 않는 내일을 위하여 어설픈 시작을 심었던 것이다. 시작하는 마음은 항상 단단하지만 그 모습은 연약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한결같이 꾸준하게 밀고 나가면 커다란 결실과 만나게 되는 때가 있는 것이다. 나무는 뿌리를 튼실하게 땅에 내리고 일년이고 이년이고 그 주어진 그 자리에 묵묵히 서서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남이섬은 그렇게 온통 나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나무들이 자라기에 좋은 조건이었을지도 모른다. 강바람과 막힘없는 햇살은 적당한 수분과 온도를 유지해 주었을 것이다.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말이다. 나는 내 생의 가느다란 허리를 만져본다. 내가 지금 커다란 나무로 서 있지 못하는 것은 저 나무들처럼 한 가지 생각으로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흔들리지 않는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달려왔었던들 지금의 연약한 모습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어떠한 모습으로든 커다랗게 자신을 키워낸다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언 땅이 발밑에서 부드럽게 일글어져갔다. 공기는 볼에 차가워도 상쾌한 느낌, 아침산책은깨끗한 유리창처럼 신선했다. 강가에 늘어선 나무들이며 잔가지들의 머리결 같은 부드러움이 강물에 어리어 있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남이섬의 아침은 새색시처럼 조심스런 숨결로 깨어나고 있었다. 강의 폭이 얼마나 넓기에 그렇듯 커다란 섬을 안고 있는 것일까?
겨울 배추처럼 비닐 하우스에서 김치국밥으로 아침을 먹고 아쉬움 가득 안은 채 떠나왔다.
언제 다시 와서 나무가지마다 얼어붙은 수정 꽃을 보리라.
버스는 예산을 지나 서해 대교를 지나고 있다. 다리의 교각이( )라던가? 그 길이가
7310m라 한다. 서해대교를 건너 섬진강 휴계소는 사람들이 장날처럼 붐빈다. 강 건너 불구
경 나온 사람들처럼 북새통을 이룬다.
다음 목적지는 <님의 침묵>의 시인 만해 한용운 생가가 있는 곳이다. 그곳의 지명이 무
엇이었던가? 만해는 동학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설명을 어떤이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학계
에서도 많은 논문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멀리 밝은 초록빛의 보리밭이 크레파스 그림
같다. 지금도 마을이 이렇게 한적한 데 그 때 당시 어떻게 동학군이 3만명이나 동원될 수
있었을까? 생가에는 그의 시<님의 침묵>이 펼쳐 있었고, 시비에는 <나룻배와 행인>이 새
겨져 있다. '푸른 산빛을 깰듯한' 카리스마적인 만해의 얼굴 사진이며 동상을 뒤로 하고 우
리는 또 달음질 쳤다
부안 개암사, 절은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꿈쩍도하지 않았다. 경내에는 몇 채의 건물이
추운 얼굴을 하고 이 저녁을 맞고 있을 뿐이다. 별로 나무도 없이 고즈넉한 인상만을 간직
한 채 내려 온다. 화장실 문이 잠겨 있는 것으로 보면 별로 찾는 이들도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안선을 따라 사색에 잠겨있는 저녁의 바다를 바라보며 달린다. 유난히 몸을
꼬는 서해안 길은 멀미만 일으킨다.
변산 반도, 길은 바다를 숨겼다 내 놓았다를 반복하더니 우리를 채석강에 부려 놓았다.
시간 제한은 두지 않은 채 우리는 그 곳에서 오랜 만에 편안하게 풀려졌다. 젊은 날, 내 친
구는 여기 해 저무는 채석강이 잊을 수 없도록 아름다웠다고 두고두고 말했었다. 그래서 두
고두고 가 보고 싶었던 곳이 아니었던가? 그 친구 일찍이 와서 이 곳의 아름다움을 보더니
일찍 세상을 떠날 줄 알았었나. 나는 그 보다 오래 살아 그 가 다녀간지 30년이 넘어서야
여기에 선 것이다. 포구에는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다. 수평선도 보이지 않고 바다 저 편에
뾰족한 산 봉우리 같은 바위만 가로 막고 있다. 길을 따라 걸어본다. 떡시루같이 켜켜이 쌓
아 올려진 바위의 결 따라 걸어본다. 저런 단층은 어떨 때 생성된 것일까? 지구의 행성이
혼돈의 세계에서 몸부림치는 순간, 저들 비슷한 성질을 가진 것들끼리 서로 손을 잡고 어깨
를 나란히 나란히 눈을 감았던 것일까. 살아 꿈틀거리는 게불, 대홍합, 대꼬막, 낙지 등등의
횟거리가 있는 포장집을 지나 또 다른 어둠이 바다를 삼키고 있는 방파제를 걷는다. 방파제
오른쪽에 쌓인 데트라보트가 안정감을 준다. 손 시렵고 얼굴 얼얼한 제법 매서운 추위다. 파
카를 쓰고 쟘바의 끝단도 끈을 조여 바람을 차단한다. 옆에 사람과 몸을 밀착하여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걸어야했다.
파도소리와 바람의 세기는 리듬과 박자가 딱 맞아 떨어지고 있다. 밤바다는 어떤 긴박감
까지 몰아오고 있다. 방파제 끝에 서 있는 등대는 마치 우리를 위하여 불을 밝히고 있는 것
만 같았다. 어서 오라, 아무런 염려 말고 천천히 걸어서 오라. 빨간 불빛과 초록 불빛의 등
대가 있었다. 방파제 끝에 있는 초록 불빛의 등대를 바라보며 우리는 걸었다. 등대는 우리들
의 맨 앞에서 바람을 부둥켜 안고 있었다. 바람이 암만 불어도 우리들의 사랑은 변함없다고
데트라보트에 하트그림으로 글로 사랑을 맹세해 놓고 떠난 연인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 바
람 속에 젊은 청춘 한쌍이 서 있었다. 누군가 물었다. 사랑은 영원한 건가요? 나는 순 간 말
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 순간만은 아마도 영원할 것입니다. 아하,
등대, 그 건장한 몸으로 아무리 매서운 바람을 막아준다해도 우리는 여기에서 밤을 지세
울 수는 없었다. 여기에서는 그 누구도 돌아가지 않을 수는 없다. 사람들은 두 팔을 벌려 양
껏 등대를 껴안아 보고는 올라갔던 층계를 내려와 다시 방파제를 걸어 되돌아 오고있었다.
하늘에 별이 뾰루지처럼 여기저기 돋아나 있었다. 부끄러움에 불그레한 달이 달무리에 포근
하게 싸여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이그러지지 않게 둥그렇게 애워싸는 것일까? 허공에 매달
려 있는 것들은 모두가 다 둥굴다. 그건 또 왜일까? 어느 쪽에서 받던 그 압력이 다 같기
때문일까? 눌리지 않고 자유롭게 도는 것은 그 모양이 일그러지지 않기 때문일까?
마지막 선암사를 향해 달렸다. 고창 여기가 이틀 째 밤의 정착지이다. 일행 중에는 여기
가 고향인 학우가 있었다. 그래서 밤잠을 못자고 설레였다고 했다. 근사한 호텔 앞에 차를
댔다. 들어서는 아래층 식당에는 저녁이 차려져 있었다. 서양의 소설에 나오는 귀족들처럼
먼 여행길에서 돌아오면 깔끔한 식탁이 채려져 있고, 우리는 오늘도 귀족 나으리 부인들처
럼 여유롭기만하다. 전화 예약만 하면 시간에 맞추어 식사가 준비되어 있다. 달리다가 내려
서 바로 식사하고 설걷이며 청소, 아이들을 불러 공부를 시키거나, 남편한테 신경쓸 일도 없
다. 아무 걱정없이 이제는 휴식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왈츠를 추어도 넉넉한 넓은 방이 우리
들 나으리 부인들에게 두 개나 배치되었다.
누적된 피곤함과 어제 못 다 이룬 잠까지 오늘은 제법 잠을 이루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
나기가 나에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 순간을 견디고나면 또 좋은 시간들이 열려
질 것을 확신하며 잠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일정 대로 지하에 가서 목욕을 하고 선운사를
찾아 나섰다. 전라도의 아침 공기는 얼어붙는 듯 했다. 파카도 쓰고 쟘바의 단도 바람이 엄
습 못 하도록 끈을 조이었다. 호텔 오른쪽으로 돌아 한 15분쯤 걸었다. 겨울 나무들, 그 빈
가지들을 실컨 바라보며 걸었다. 겨울나무들의 아름다움은 섬세한 빈가지에 걸려있다. 저 갸
냘픈 빈가지가 여름날의 이파리들을 무성하게 매달고 있는 것이다. 경내에 들어서니 대웅전
뒤로 숲을 이루고 있는 동백을 본다. 얼어 있는 것일까 붉은 이파리들의 볼이 가엽다. 아직
꽃을 피우고 있지는 않지만 몇몇 보초들은 아마도 날씨를 살피려 나온 모양이다. 먼저 얼굴
을 내밀고 나와 빨간 꽃을 피우고 있었다. 꽃이 활짝 피는 날은 장관을 이루리라. 언제쯤이
면 화들짝 피워낼 것인가. 우연하게도 그 날을 맞추어 온 사람들은 얼마나 행운의 사람들일
것이냐? 동백꽃은 속 시원하게 피어있지 않았지만 겨울나무들의 새새한 가지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며, 언 땅에서도 초록풀잎으로 무성한 생명력을 바라보며 돌아왔다.
한 번 오기가 힘든 송광사, 작년 12월 초에 처음으로 왔던 송광사에 다시 가고 있다. 3개
월만에 다시 찾게 되는 것이 이제야 이 곳에 인연이 뻗혔나보다. 그 웅장한 대웅전이며 경
내를 다시 돌아본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국보급의 보물이 있는 전시장까지 둘러보려
니 여간 바쁘지가 않다. 3월로 접어들면 바로 봄날이다. 지난 겨울에는 발이 시렵고 산에 나
무들도 얼마나 추워하는지 애처러워 볼 수 없더니 이제는 아무런 걱정 근심이 없다.
화엄사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한 <섬진강>시인 김용택을 위해 우리는 정읍에서 차를 세웠
다. 사인을 받기 위해 그의 시집을 사기로 한 것이다. 갑짜기 들이닥친 서점에는 그의 시집
이 몇 권 밖에 없을 수 밖에, 또 다른 서점에 가서도 책을 구입했다. <맑은 날>, <연애시>,
<섬진강>, <그대 거침없는 사랑><섬진강... >그의 산문집까지도,
매화꽃이 하얗게 핀 주차장에서의 만남은 그지없는 봄날 이었다. 그는 자기 집으로 왔었
으면 참 좋았을텐데 하면서 못내 아쉬워 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꽤 멋진 자연의 환경에
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확트인 넓은 공간과 햇살이 팽만한 여
기 광장에서의 만남이 그럴 수 없이 자연스런 만남이라는 생각이었다.
우리들은 돌층계에 앉고 서고 그 시인님은 선채로 곧 바로 이야기를 들었다. 미리 주문을
받아 놓아서인지 자연스럽게 김용택 자신의 책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내 책은 우리 마을 이야기이다. 내 경험에서 나온 살아가는 이야기들이며, 시, 산문, 동시
를 통해 내 삶을 정리한 것들이다.' 봄날의 강의는 계속 이어졌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하루하루를 정리하여 글로 표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리
고 사물을 보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글 쓰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무엇이든 자세하게 바라보는 눈을 가르치고, 그것을 글로 쓰는 버릇을 갖게 하는 것이다. 사
물을 바라보면 그 사물이 무엇인가? 생각을 하게 된다. 글은 그 생각한 것을 정리해서 글로
쓰는 일이다. 자기의 삶을 정리해서 표현하는 버릇이다. 글을 쓰는 일이란 내 삶을 잘 가꾸
어 나가는 일이다.' 자기는 순천 농고를 나왔는데 한 번도 공부를 더 해서 교감이고 뭣이고
간에, 더 좋은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 좋은 곳으로, 더 나은
곳에 서기 위해, 무엇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그는 해
석한다. 현실을 부정하는 것에서 불행은 싹트는 일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35년을 같은 학교
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종사했다.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의 어머니, 아버지도 그가 가
르쳤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때때로 묻는다. 우리 어머니 공부 잘 하셨어요? 그는 서슴없이
너의 어머니도 너처럼 공부를 못 했지. 이렇게 답한다는 것이다.
그는 섬진강을 한 줄기로 설명해 주었다.
섬진강의 발원지는 ( )로 시인은 좁은 계곡을 지나 흐르는 상류 임실에서 태어났다. 강
은 섬진강 땜을 지나 순창, 옥과, 대강을 지나 곡성, 고달에 이르면 자갈밭을 이룬다. 남원의
요천을 지나 구례, 화개장터에 오면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이룬다. 강건너는 경상도, 이
쪽은 전라도 땅이다. 피아골에 이르면 어느새 모래밭으로 고와지고, 강변에 대밭과 매화를
키운다. '강은 자기가 알아서 스스로 길을 내며 흐른다'고 시인은 한 줄의 시처럼 말한다.
그 강변의 곳곳에 모텔이 세워지고 않고는 못 베기는 자연 환경의 손상에 대하여 시인은
한탄한다.
우리들은 사인을 받기 위해 책을 들고 그의 주위를 에워 쌌다. 아이들처럼 서로의 사인을
들여다 보며 즐거운 마음들이다. 웬지 이번 여행의 핵이 되는 시간인것만 같다. 사람의 숨결
이 저 앞에 매화꽃처럼 순하게 피어있는 모습을 본 것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구르는 가랑잎
사이에서 순수를 머금을 한 사람을 본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여! 남루한 하루를 슬퍼하지
말아라! 다만 네 가슴에 자연의 때 묻지 않은 강물이 흐르고 있지 않음을 슬퍼할 일이다.
돌짝사이에서 한 잎이라도 달래가 고개를 내밀고 올라오고 있다면 사람이여! 슬퍼하지 말아
라. 사람들은 그 향내나는 달래를 얻기 위하여 네 가슴으로 순한 아이들이 모여 앉을 것이다.
우리들의 책갈피에는 -매화꽃 피는 봄날... 섬진강가에서... 등등의 야린 봄향기 스며 있는
사인을 받았다. 어떤 학우는 아들을 위하여, 어떤 학우는 사랑하는 아내의 졸업을 위하여 그
에 알맞는 사인을 받기도 하였다.
회색빛 셔츠와 김용택 시인의 등산화 발등에 닿아 있는 바지의 누빈 끝단이, 카키색의 조
키와 묶은 목도리차림의 검소한 모습이 지난 가을 날 떨어진채로 누워있는 가랑잎 같이 느
껴졌다. 그 가랑잎 속에서 어린 풀들이 겨울을 잘 지내고 있었구나. 풀들은 발 아래에서 새
록새록 연두빛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섬진강은 연한 초록색을 잃지 않고 흐른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그 마음이 어찌나 여리
고 섬세한지 그 앞에서 뭐라 소리 한 번 내질를 수 없다. 가는 길 따라 한창 매화를 피어내
고 있다. 선운사의 동백은 못 보았지만 여기 매화의 만발한 장관은 처음보는 것이라서 더욱
낯설다. 산으로 쭈욱 펼쳐 올라가며 피어있는 매화 밭은 장관이라기 보다는 옥약목을 펼쳐
넌 듯한 소박한 아름다움이다. 김용택 시인의 시어처럼 어머니, 누이의 하얀 무명적삼같이
애처롭도록 수줍은 것이다.
키가 작달막한 매화나무는 그래서 인지 더욱 친근감이 느껴진다. 향긋한 꽃내음도 맡아보
고 녹두알만한 꽃망울도 가만이 들여다 본다. 이 작은 꽃망울들이 어떻게 그 단단한 매실이
되는 걸까? 우리 몸에 좋다는 그 약효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일까? 꼭 그래서만이 아니라
겨울 산마루의 매서운 추위를 딛고 일어서는 그 야무진 정신이 갸륵하여 우리는 꽃그늘을
쉽게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 손짓하여 사진도 한 판 찍어 주었다.
우리도 때로 나를 떠나 나 자신을 높은 곳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경관이 좋은 언덕에 자리잡은 어떤 찻집에 들렀다. 찻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그 곳에서 내려
다 보이는 강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강은 솔밭을 끼고 모래사장을 거느리며 길게
휴식하고 있었다. 흐름을 멈춘 듯한 유유한 자태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멀리에서 바
라보는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나도 저렇듯 편안한 숨결로 다가갈 것인가? 한 번쯤
나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 버스는 섬진강 다리를 건너 전라도 땅을 벗어나 경상도 땅으로
들어섰다. 조금 전 강 건너에 바라다 보이던 솔 밭을, 이제는 바로 옆에서 바라보고 있다.
솔밭 사이로 흐르는 푸른 강물은 더 아름답다. 조용히 <솔밭사이로 흐르는 강물>을 흥얼거
려본다.
내 삶의 강가에 소나무를 심어 길러도 이렇듯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흐를까? 그렇다, 비록
작은 그릇의 하루일망정 저 솔밭 같은 그 무엇이 내 곁에 심어져 있다면 멀리에서 바라보는
내 생도 그런데로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저물어가는 강을 바라본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라는 문구가 스쳐간다. 이제 졸업여행도 다 저물어 가고 있는 시점
이다. 부산한 우리들의 부산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우리는 또 내일,
남은 일년 간의 마지막 핏치를 올리기 위하여 조용히 오늘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 이렇게 긴글로 표현해 놓으면 누가 설마 읽을까?도 염려됩니다만,
한 며칠 올렸다가 거두겠다는 마음으로...
언니 우리가 읽기 쉽도록 고쳤습니다, 괞찮으시죠?
있다 집에서 천천히 꼭 읽어 볼께요^^
첫댓글 길다고 안 읽는다구요? 거두겠다니??? 우린 글 다 읽어요 왜 그래요^^ (1)은...30∼60m 높이의 교각 총 1백6개로 건설됐다..(2)섬진강의 발원지를 두고 진안 사람들은 마이산(馬耳山)이라고 하고, 장수 사람들은 수분재(水分峙)라고 한다.
뭔 섭한 말씀을.... 전 통째로 메모장에서 큰글로 단락 띄워서 읽을랍니다....꼼짝말구 여게 그대로 놔두이소~`~
언니의 글, 눈 온 뒷날의 도타운 햇살이 스미는 창가에서 천천히... 여유롭게...우리의 시간을 되새김질 하며... 언니와 함께 눈과 마음을 모아 행복한 시간으로 채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아~ 언니 제가 언니글을 옮겨놔서 그래요^^ 이 글 회람을 눌러서 복사를 하고 다시 글쓰기를 해 보세요^^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