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드 21년차, |
내 시댁은 삼례다. 그리고 시집와 지금 사는 곳은 거제도이다 |
결혼하고 한 10년 정도는 삼례다리를 넘기만 하면 배가 아팠다. |
여기서부터는 씨월드가 시작되는 구나.. 하는 생각에 |
집에서는 멀쩡하다가도 삼례에 도착하면 두통에 소화불량이 생겼다. |
명절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마이산에 이르면 아프던 머리며 배가 씻은듯이 나았다. |
이제 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
오랫동안 마이산은 마이월드와 씨월드가 나뉘어지는 심리적,물리적 경계선 이었다. |
친정과는 너무나 다른 문화와 풍습, 음식이며, 어떤 일이던지 척척 해내는 |
형님과 동서 사이 중간에 며느리로 어정쩡하게 들어간 나는 쉽게 제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
서툴고 어설퍼서 일도 제일 덜 하면서도 식구들이 어렵고, 낮설고, 불편했다. |
시댁에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집에 갈 날만 고대하며 지내었으니 몸이며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
실수도 많이 해서 나이 어린 동서에게까지 야단을 맞을 적에는 |
정말이지 시댁에 다시 오고 싶지가 않았다. |
대 식구 뒷치닥거리며 끊임없이 |
이어지는 부엌일에 시달리다보면 명절 연휴는 금방 지나가 버렸다. 식구들끼리 제대로 회포를 풀 여유도 없었다. |
어렵게 모여서 내내 일만 하다가 다시 분주하게 |
흩어지는 시댁에 오래 마음이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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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적엔 무주을 너무 좋아해서 콘도를 빌려가며 친구들과 수시로 여행을 왔었는데 |
삼례로 시집을 오고 나니까, 명절에 어렵게 시댁엘 내려와도 부엌과 마루만 종종거리며 |
오가느라 연휴를 다 보내곤 했다. 마지막 날엔 친정부모님도 안계시는 금마에 잠시 들려 오빠에게 살아있다는 모습만 보이곤 |
집에 오기 바빴다. 코 앞에 바다가 있어도 유명한 관광지가 즐비해도 다 그림의 떡이었다. |
고단하고 지친마음으로 시댁을 나와 고속도로에 오르면 괜히 속상하고 아쉬워서 눈물도 |
찔끔거렸다. |
그러나 세월은 참 용해서 한 10년 쯤 지나고 나니 크게 불편하고 어려운 것들이 사라졌다. |
일이 갑자기 쉬워질리야 없지만 사람들을 겪고 나니 서로 이해가 생기고 정이 생겨 |
관계가 편해진 것이다. 다행히 시댁 모두 예수를 믿어 제사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
그렇다해도 여전히 서툴고 어설프지만 형제들에게 인색하지 않게 베풀고 |
시부모님이나 형제들, 조카들에 대한 애정이 생기면서 더디나마 내 몫을 해 내는 모습들을 |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자 더 이상 불편할 것도 어려울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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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힘들고 고단한거야 변함없지만 마음이 편해지니 시댁은 더 이상 힘든 곳이 아니었다. |
전에는 형님과 동서 사이에서 이런 저런 눈치를 보느라 하고 싶은 일들도 제대로 표현하지 |
못했는데 이젠 며느리로서 도리를 다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끼리 좋은 추억을 만드는 일도 |
소중하다고 당당하게 여기게 되었다. |
그래서 명절 첫날 시댁에 가기 전 우리 가족은 내가 좋아하는 장소로 차를 돌린다. |
우선은 바닷가로 달려간다. 아이들도 나도 거제의 시퍼런 바다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
바닷가도 걸어보고 파도랑 장난도 치고 아이들과 사진도 찍는다. 남들은 바닷가에 사니 실컷 바다 보는거 아니냐 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빵집아이가 빠~ㅇ 을 실컷 먹지는 않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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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은 계속 어린 아이가 있어 마음 놓고 이런 여유를 부려보지 못했는데 |
이젠 아이들도 다 커서 다 함께 어디라도 갈 수 있게 되었다. |
오히려 이제는 다 컷다고 안 따라 오는 통에 가끔 짜증이 나기도 한다. |
올 구정엔 처음으로 스키장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 향긋한 커피도 마셨다. 아이들은 코코아와 와플을 먹어가며 즐거워 했다. |
무주가 이것저것 유명한 곳인데 전에는 한번도 이런 여유를 |
부려볼 마음을 먹어보지 못했었다. 대단한 일도 아닌데 마음의 여유가 없던 탓이다. |
3120m의 육십령 터널로 가면 훨씬 빠르지만 어떤 때는 지리산 하동길로 가자고 남편에게 조른다. |
재미나기 때문이다. 신통하게도 남편은 내 하자는대로 해준다 |
급 커브만 나오면 '조심해!'하며 소리를 질러가며 일부러 요란하게 차 안에서 뒹굴곤 한다. |
아이들은 이 길을 '조김혀 길'이라고 부른다. 내 발음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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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역을 지나노라면 여고시절 화엄사를 가기 위해 기차에서 내렸던 기억이 새롭다 |
천오백미터가 넘는 노고단 정상까지 자동차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아이들은 너무나 좋아한다. |
추석엔 단풍이 볼만하고 구정엔 노고단 정상의 아직 녹지 않은 설경을 |
즐길 수 있다. 작년엔 날이 춥지 않아서 정상에 도착해 한참동안 즐겁게 놀기도 했다. |
요즘 명절은 21세기에 맞게 가족끼리 외식도 하고 여행도 가는 집들도 많이 있지만 |
우린 연로하신 시부모님이 계신데다 일가 친적이 많아 그런 연휴는 불가능하다. 당분간도 |
시댁에 내려오면 내내 일 하다가 나서야 되겠지만 조금씩 즐거운 일들을 만들려고 한다. |
퓨전요리에 관심이 많은 큰딸은 전주의 맛집을 섭렵해야 한다고 벼르고 있고 |
내려올 때마다 유명한 곳들을 차례차례 다녀보자고 다짐하였다.
다음엔 '1박 2일'에 나왔던 |
풍남동의 한옥마을 덕만재에서 매생이 전복갈비탕을 사 먹기로 했다. |
그 다음엔 아들이 좋아하는 커피 장인이 직접 운영한다는 유명한 '노리터카페'에도 들려보리라. (전북대 앞) |
전에는 우리끼리만 이런 곳에 다니는 것이 죄송하기도 하고 눈치도 보여 망설였지만 |
가족마다 상황이 다르고 욕구도 다른 만큼 우리가 원하는 일을 조금씩 한다고 해서 |
이기적일리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며느리로서의 도리도 열심히 하고, 가족끼리 즐거운 추억을 만드는 일에도 정성을 들여가며 |
씨월드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
늘 서툴고 일 잘 못하고 실수 투성이인 며느리라 주눅들어 있기도 했지만 이제 결혼 21년차 |
들어선 며느리는 못하는 건 못하는대로 잘 하는 건 잘 하는대로 부끄럽지 않게 내 자리를 |
지켜가며 마음에 품었던 소박한 즐거움들도 누릴 줄 알게 되었다. |
21년의 세월동안 적지않게 진화한 셈이다. |
어떤 기대도 즐거움도 좋다. 그것으로 인해 씨월드가 더 그립고, 가고싶도, 설레어 진다면 |
얼마나 좋은가. |
하세월인지라 이제 내가 며느리를 얻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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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을 생각한다면 명절을 없애버리고 싶지만 나도 이젠 시월드의 족장이 되어갈 것이다 |
그 전에 실컷 며느리로서의 스트레스를 받아 보자. |
간이 커진 며느리는 오늘도 계속 행복한 진화 중 이다!! |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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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시월드
미국으로 시집 간 박자인, 고모 김미경,김지원,사진사 작은 아빠가 빠졌다
좌로 부터 박현모(국무총리 정책연구원으로 이번에 정직원이 되어 박영윤고모부가 좋아함)
김빛나라(부산대 공대2년,살이 찐게 흠이나 이번 학기 전액장학금 수령)
김윤찬(키만 크고 꼴통이나 다행히 동국대 호텔경영학부에 합격하였음)
김민찬(고1 올라가며 서울대 경영 목표로 열심히 정진 중임)
김정찬(찬찬찬 시리즈 막내로서 아직 전도유망한 중학생임)
그리고 황성준 대우조선협력업체 '보성산업'에 입사키로 하였으니 격려바람
첫댓글 작은집 형수네 제수씨가 쓴 거 같네요.거운 백년해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한국사회에서 시월드는 어디에나 존재하나 봅니다.
그것이 쎈 시월드냐, 조금 쎈 시월드냐의 차이는 분명히 있겠지만요.
위 글을 보니 다행히도 아주 쎈 시월드는 아닌 것도 같고,
연륜이 쌓여서 시월드를 포용하는 여유도 생기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쪼록 형수와
와아!!정말순진하고 착하게만 보여서 ..그리고 제사없는 작은집에서도 이런 며느리의 고충을 갖고 있었다는게 놀랍네!!!그리고 작은집은 세상에 불평불만은 존재하지 않는 우리큰집엔 없는 천국인거 같았는데 뭐??? 한내다리만 건너면 머리 아프고 배가아파??? 하하 사보에 내느라고 픽션 한거지? 어쨌거나 시댁은 다 그런가 봐요.그러고 보면
우리 경화네 집 며느리들은 진짜 엄마 비위 맞추느라고 고생들 많았어.다아는 사실이지만...
"당신을 김씨가문의 씨월드 전문작가로 임명합니다!"
우리 제수씨가 이렇게 글솜씨가 좋은 줄은 정말 몰랐네요....ㅎ
그동안 어설픈 글 개발세발 써서 올렸던 내가 갑자기 부끄러워 진다는^^
하여간 오랫만에 작은집 소식 적나라하게 듣게 되어서 너무너무 반갑고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 건강한 모습 사진으로나마 뵈어서 좋았습니다!!!
애들도 이제 다 컷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