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 - [김석원] 1893∼1978 (창씨명 가네야마)
일본 육사,만주군 독립군 토벌,
이태원초등학교,원석학원(성남중고교(서울대방)설립
1945년일본육군대좌 광복
1956소장 예편,안중근숭모회 이사장}
자택 : 서울관악구대방동150
2대 - [김영철] 1923~ ? 전 성남중학교 및 고등학교 교장
[김영수] 1924~1945.4.16 (친일매국노)
1942년 4월까지 일본 육군예관사관학교(옛 일본 육군사관학교 예과) 재학.
1942년 10월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 1944년 4월 육군사관학교를 제57기 졸업
1944년 7월 일본 제국 육군 소위로 임관,전쟁 당시 일본 제국 육군 중위로 참전했다.
1945년 4월 16일 필리핀 레이테 섬에서 연합군과 교전을 벌이던 도중에 전사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군 부문 포함
3대 - [김명선] 2013년 현 원석학원 이사장
4대 - [김성민]
[김성환]
김석원
한성부 출생이다. 1909년 일본에 유학하여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915년 일본 육사를 제27기로 졸업하고 1917년에는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그는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났을 때 중대장으로 화려한 전과를 기록했고, 1937년 중일 전쟁 때는 대대장으로 출전했다. 일본군에서 제대할 때까지 별은 달지 못했으며, 최종 계급은 일본군 대좌(대령)였으므로 중장이었던 홍사익에 이어 일본군에 복무한 조선인 중 최고위급 인물이다.
김석원은 일본군 장교로 근무한 정도를 지나 침략 전쟁에 일선 지휘관으로 적극 뛰어들어서 훈장을 받았고, 특히 만주 지역에서 독립군들과 직접 전투를 벌인 인물로 잘 알려져 있으나 그가 세운 대부분의 전공은 중국군을 상대로 한 것이다. 김석원은 2개 중대의 병력으로 1개 사단의 중국군을 쫓아버리는[1] 등 눈에 뜨이는 전공을 올려 〈김부대장 분전기〉, 〈김석원 부대 격전기〉, 〈전진여담(戰塵餘談)〉 등의 기사가 언론을 통해 소개됐다.
그리고 실제로 위에서 거론한 <金部隊의 奮戰記(매일신보, 1938년 03월 11일 3면 1단)>, <전진여담(매일신보, 1939년 03월 29일 3면 3단)> 등은 모두 만주에서의 독립군 토벌이 아닌 북중국 전선에서의 국민당군과의 싸움에서 올린 전공을 다룬 것이다. 태평양 전쟁 때는 학병으로 참전할 것을 권유하는 강연회에 이응준 등과 함께 참가하기도 했다.
1945년 광복 당시에는 대좌 계급으로 평양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광복 후 바로 상경하여 이응준이 위원장을 맡은 조선임시군사위원회에 참가했다. 이 조직은 일본 육사 출신의 장교 모임인 계림회가 주도하여 조직한 군사 단체였다. 그는 대한민국 국군 대령으로 임관하여 일본군이나 만주군 출신이 국군의 중추를 형성하게 하는데 기여했다.
1949년 10월 한국군이 북한 상인과 북한산 북어를 밀무역하여 이익을 챙긴 이른바 '북어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두고 국방부 참모총장이었던 채병덕 장군을 거론하였다가 강제 예편 당하였다. 이듬해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사단장으로 현역 복귀하여 조선인민군과 전투를 벌였다. 브루스 커밍스는 그가 김일성의 아내 김혜순의 죽음과 상관이 있다는 루머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한국 전쟁의 발발 원인을 미군 주도의 북침으로 보고 있으며, 이때 북침 계획 과정에 참가한 대한민국 국군 측 인물로 김석원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김일성의 항일 투쟁 경력과 대한민국 국군 장성을 지낸 김석원의 독립 운동 탄압 경력을 종종 대비시키고 있는데, 보천보 전투 이후 김석원이 김일성 부대 토벌에 나서면서 함흥에서 혈서로 쓴 "무운장구"라는 깃발을 들고 성대한 장행식을 가졌다가 결국 패퇴했다는 등의 일화가 인용된다.[5] 그러나 당시 복무 기록 등에는 김석원이 함흥에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 또한 북한 측이 일본군 74연대와 김일성 부대 사이의 "간삼봉 전투"가 있었다고 하는 날짜(1937년 6월 30일) 직후인 1936년 7월 15일자 동아일보는 "78연대 소속 대대장인 김석원 소좌"가 탑골공원에서 시국강연회를 했음을 보도하고 있다. 일본어 버전 역시 간삼봉에 김석원이 참가했다는 주장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다. 실제 간삼봉 전투가 일부 일본군 파견대와 김일성 부대 사이의 소소한 총격전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1956년 예편한 뒤 이후 동업자 원윤수와 함께 설립한 성남고등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대한민국 제5대 국회의원도 역임했다. 김석원 생존 중에 성남고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가 2003년 친일파 논란과 관련된 항의[6] 를 받고 철거된 일화가 있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선정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모두 포함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목록에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육군 중위로 참전했다가 필리핀에서 전사한 그의 차남 김영수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저서로 회고록인 《노병의 한(恨)》(1977)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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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매국노 생존 여부 및 친일매국노 후손 및 뉴라이트출신을 연구,탐문하는 작업은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 우리 민처협이 유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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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알리는데 앞장서겠습니다!
첫댓글 친일파가 안중근 숭모회 이사장이라니...
안중근 숭모회는 수구꼴통들이모여 안중근 욕뵈는 단체임다
지 부역죄를 가리려 독립투사를 파는 저 개같은 심보,안중근의사 들먹일 자격없는 새끼
성남중고학생들이여 일어나라 ㅜㅜ 동상을 철거하자 저 후손을 사학이 손 못 대게 궐기하자 ㅜㅜ어디부터 손을 써야할지....매번 암담 참혹합니다
독립군토벌하던 자의 후손이 잘먹고 잘사는 나라, 친일파의 딸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 국민인 것이 부끄럽습니다.
김석원의 묘는 성남고등학교 뒷 동산에 있습니다.
친일이 집합체군요 사학개정법 새누리가 반대한 이유가 명확해지는순간
대좌가 대령인가요?
그렇습니다... 지금도 북괴들이 사용하는 계급이죠... 소좌, 중좌, 상좌, 대좌
민족 반역자를 몽땅 갈아마셔 버릴 그 날이 와주길 기원합니다...
민족 반역자와 권력을 부당하게 이용하여 배를 불린 이명박 같은 녀석의 재산은 몽땅 몰수해야할 것입니다. 공소시효도 없이 몽땅 몰수하는 법을 만들어야할 것입니다.
쩐두환이도 다까끼 마사오도 닭근혜도... 권력을 부정하게 이용해서 배룰 불린 쓰레기 처단법을 만들어야할 것입니다.
우리민족의 진정한 해방의 날이 와주길 기원합니다...
민족반역자의 딸과 그 무리들이 어떤 짓을 할지모르니... 답답합니다...
우리나라는 언제 친일세력청산을 할련지 .....
머... 좋은 자료라 할수있는데.....왜 익명을 쓰나요??? 부끄러운가요???
그어떤일보다 친일청산시급합니다.그들을 죽이거나처벌하자는게아니고 반성하고 우쭐대지말고 조용히살라는겁니다.생각같아선 씨를말려버리고싶을때도있지만 우리는선량한백성들입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