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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신임회장은 취임사에서 “세계제패 종목인 탁구협회 회장직을 맡아 짐이 무겁다.”고 신중하게 서두를 열었지만, 당시 대한체육회 가맹단체 회장 중 최연소(당시 50세) 회장답게 “하루를 해도 화끈하게 하겠다.”고 젊은 사람 특유의 파이팅을 보였다. 세계정상 탈환이 난관에 부딪친 탁구외교, 이에리사.정현숙 선수의 은퇴발표로 인한 설득작업과 후계자 육성 등 큰 문제가 산적한 탁구협회를 떠맡은 최 회장은 이듬해인 77년 4월의 제34회 영국 버밍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73년 사라예보 세계선수권대회의 영광을 되찾는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충분한 재정적 뒷받침 속에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앞으로 남은 1년 2개월 동안 정진한다면 다시 한 번 우승할 수 있다고 신념을 밝힌 최 회장은 만약 실패하면 회장직에서 깨끗이 물러날 것이라고 대단한 결의를 보였다.
힘들게 모금한 2억여 원이 국고로 흡수되어 실현을 못보고 있던 세계제패 기념 탁구전용 체육과 건림문제는 재임기간 중 별도의 체육관을 건립하여 꼭 탁구인들의 염원을 풀어줄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용산중학교 시절부터 탁구선수 생활을 직접 체험하고 전국대회 단식에도 입상한 바 있는 플레이어 출신의 회장을 맞이한 협회는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최원석 회장은 또한 아시아 탁구계에서 중국.북한을 끌어들인 일본과 주도권을 놓고 싸우다 고립된 한국 탁구의 방향전환을 위해 그해 4월 26일부터 평양에서 개최되는 제3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 후 ATTU 가맹 외교를 펴기로 방침을 정했고, 일본 남녀 실업팀을 서울에 초청, 한.일 탁구 교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젊은 회장의 취임과 함께 남녀 신인선수들을 대거 기용, 젊어진 한국 탁구는 코르비용컵(여자단체 우승컵)이 있는 영국 버밍엄을 향해 파이팅에 넘친 출발을 했다. 여전히 중국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부슬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으나 ‘젊은 선장’ 최원석 회장을 영입한 탁구계의 발걸음에는 한 발 한 발 희망이 묻어났다.
서독오픈대회 파견 선수단 선발 및 훈련
1976년 1월 23일 출범한 최원석 회장 체계의 협회는 2월 27일~29일까지 하노바에서 개최되는 서독국제오픈대회에 출전할 대표선수 11명(남자 5명, 여자 6명)을 선발했다.
29일 문화체육관에서 막을 내린 대표선수 선발전의 결과는 여자부에서 8승 2패로 1위를 차지한 이경주와 2위 이기원(이상 산업은행), 3위 장찬주(호수돈여고), 4위 배옥엽(외환은행)이 선발되었고, 남자부에서는 8승 1패로 1위를 차지한 강문수(공군)와 2위 윤길중(성수고), 4위 지용옥(통운)이 선발되었다.
협회는 선발전에 불참한 이에리사와 정현숙(이상 신탁은행)을 추천, 여자대표 6명을 확정했고, 남자선수도 최승국(통운)과 이상국(한국기계)을 추천하여 최종 5명을 확정했다. 임원은 단장에 최원석 회장, 총감독 천영석, 감독 박성인, 주무 정용규, 코치에는 유진규.손병수 씨를 선임했다.
선수단은 2월 1일~20일까지 청주 실내체육관에서 추위를 무릅쓰고 강화훈련을 실시한 뒤 2월 21일 장도에 올랐다. 선수단은 2월 22일 일본탁구협회가 중국선수단을 초청하여 친선경기를 가진 도쿄 현지를 직접 참관하여 전 선수단이 일.중전의 기술 분석을 마치고 2월 24일 하노바 현지에 도착했다.
이에리사 우승, 정현숙 준우승
서독국제 오픈대회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 일행 17명은 참가국 27개국 중 제일 먼저 하노바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여장을 풀고 하노바 스포츠홀에서 현지 훈련을 가졌다. 이번 선수단 파견에 있어 한 가지 특기할 점을 출발 12일 전 정현숙 선수가 급작스런 맹장염 수술로 참가를 포기하고 은퇴발표까지 했지만,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더라도 동 대회에 참관만이라도 하라는 최원석 회장의 설득으로 재기, 여자 선수단 주장으로 현지에 파견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현숙 선수는 짧은 시간동안에 컨디션을 회복, 단체전 및 개인전에 출전하기로 하고 첫날의 스웨덴전 등 여러 경기에서 단식 5게임, 복식 1게임에 출전해 한국의 결승 진출에 크게 공헌했다. 결승에서 중국에게 1대 3으로 패하기 했으나 불편한 몸을 가지고도 투혼을 불사른 정현숙은 이에리사와 호흡을 맞춘 복식에서 중국의 에이스 장립.주상융 조를 2대 0으로 이기면서 1점을 획득, 세계최강의 복식조임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어 실시된 개인전에서 이에리사와 정현숙은 또다시 분전하여 여자단식 준결승전에서 이에리사는 세계 챔피언인 중국의 장립을 3대 1(14, 16, -15, 18)로 꺾었고, 정현숙도 역시 중국의 주상융과 맞서 첫 세트를 14대 21로 빼앗겼으나 2세트에서 분발, 21대 16으로 이긴 다음 풀세트까지 끄는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결국 3대 2(-14, 16, -20, 19, 20)로 득의의 역전승을 거뒀다. 한국 선수끼리 패권다툼을 벌인 결승전에서는 이에리사가 정현숙을 3대 1(13, -20, 15, 19)로 꺾고 우승함으로써 여자탁구 세계 여왕의 저력을 과시했다.
한편 여자복식에서 이에리사.정현숙 조는 중국의 주상융.웨이리친 조와 풀세트 접전 끝에 세트스코어 3대 2(-13, 9, -15, 16, 19)로 역전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라 역시 중국의 장립.알형 조와 맞섰으나 0대 3(-15, -14, -14)으로 완패,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날 한국의 신인 이기원.이경주 조는 준결승까지 올랐으나 중국의 장립.알형 조에 아깝게도 1대 3(18, -20, -13, -12)으로 역전패 해 3위에 머물렀다.
대회 마지막 날인 2월 29일은 온통 한국 여자탁구를 위한 날인 것 같았다. 한국이 여자단식이 제패한 것은 72년 스칸디나비아 오픈대회에서 거둬들인 이에리사의 우승과 74년 바로 이 서독오픈대회에서 여자단체전 우승과 더불어 2관왕을 차지했던 정현숙의 우승과 함께 이번이 3번째였다.
여자단체전에서 우승한 중국 선수단은 개인전이 벌어지는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준결승전에서 이에리사가 장립에게, 정현숙이 주상융에게 각각 기습공격을 퍼붓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4탁 경기에서는 이에리사 대 장립, 6탁에서는 정현숙 대 주상용이 각각 1포인트씩 주고받으며 불꽃 튀는 접전을 벌였다. 게임이 시작된 지 50분이 지나 이에리사가 4세트에서 19대 16으로 게임을 끝내려는 순간 경기장 안을 흥분의 도가니. 이에리사가 21대 19로 이겨 끝내 3대 1로 장립이 패하자 중국 벤치는 고개를 떨구었다.
정현숙 선수마저 주상용을 3대 2로 이겨 단식 패권을 한국끼리 다투게 되자 이에리사와 정현숙 선수는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서독오픈탁구 석권의 의미
한국여자 탁구는 2월 29일 서독오픈 개인 단식전에서 중국을 압도하며 1,2위를 독점함으로써 불퇴전의 의지와 정상 재탈환의 희망을 비쳐주었다. 단체전에서는 비록 연패의 고배를 들고 말았지만, 개인전에서 장립, 주상융, 알형, 웨이리친 등 중국의 정예들을 차례로 제압한 이에리사와 정현숙의 하노바 승전을 이들이 아직도 세계 톱 레벨의 선수로 건재하고 있음을 증명한 것이기도 했다.
이로써 이에리사는 지난 2년간의 슬럼프에서 완전히 회복되어 다시 위력을 보여주었고, 은퇴의사를 번의한 정현숙은 맹장수술 후의 컨디션 이상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페이스를 지켜 그 이듬해에 있을 세계대회의 전망을 한층 밝게 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두 선수 외에 신인 이경주, 이기원도 이번 경험으로 자신감을 얻었다. 따라서 한국 여자 탁구는 73년 사라예보의 영광 이후 다시 한 번 세계정상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이번 대회를 통하여 확인했던 것이다.
그러나 개인단식에서의 승리만으로 지난번 제7회 아시아 경기대회와 켈커타 세계대회에서 연패했던 중국 콤플렉스를 깨끗이 씻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단체전과 개인복식의 예전내용을 종합 분석해 볼 때 중국 탁구는 선수층의 폭이나 기술의 변화라는 점에서 한국보다 분명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 선수들은 캘커타 대회 당시보다 한 발 앞선 기술, 특히 이질의 특수 러버를 활용한 마법과도 같은 요술의 플레이를 하고 있었고 제2, 제3의 비밀무기를 만들어 탁구왕국의 무한한 저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따라서 한국은 이번 대회의 내용을 토대로 하여 중국의 ‘요술 러버’플레이를 깨뜨릴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그들의 비밀무기에 대비한 치밀한 작전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선수단은 3월 8일 사라예보 이래 3년 만에 처음으로 거국적인 환영을 받으며 개선했다. 공항광장의 환영식에 참석한 후 6대의 오픈카에 분승, 김포-제2한강교-서소문-무교동 체육회관 앞에 이르는 카퍼레이드를 벌여 연도에 늘어선 수많은 학생, 시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았고 고층건물에서 떨어지는 오색종이가 개선 선수단을 더욱 환영해 주었다.
특히 당시 서독오픈대회의 우승은 의욕을 갖고 협회 회장직을 맡은 최원석 회장에게 크나큰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는 점에서도 작지 않은 성과로 기록될 만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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