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12시간을 날아가 영국 런던 히드로(Heathrow) 공항에 홀로 도착한 기자를 마중 나온 것은 웅장한 크기의 은색 롤스로이스 팬텀과 머리가 희끗한 정장 차림의 할아버지 운전사였다. 방금 전까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입국심사대를 통과해 함께 짐을 찾았던 주변 사람들이 커다란 롤스로이스와 동양인 여행객을 번갈아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들은 아시아의 어느 갑부집 아들이 크리스마스 휴가를 위해 잠시 영국 별장에 놀러 온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집사(?)처럼 자연스럽게 인사한 후 핸드캐리어를 던져주고 드넓은 뒷자리에 앉았다. 찌뿌듯한 런던 날씨에 대한 불평과 역주행 같은 좌측통행(우핸들)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차는 어느덧 런던에서 남쪽으로 60마일(약 96km) 정도 떨어진 작은 도시 치체스터(Chichester) 굿우드(Goodwood)로 접어들고 있었다. 약 1시간 반 동안 롤스로이스의 퍼스트 클래스 픽업이 끝나고 도착한 곳은 아담하고 포근한, 피쉬 하우스(The Fish House)라는 작은 호텔이었다.
역사와 전통이 담긴 굿우드
2003년 1월 1일, BMW 지휘 아래 롤스로이스 팬텀이 새롭게 부활했다. 팬텀은 롤스로이스의 역사와 디자인을 잘 살려낸 초특급 호화 울트라 럭셔리 프리미엄 세단으로 평가받으며 전세계의 기업체 회장, 젊은 IT 회사 사장, 아랍계 왕자, 유럽의 공주, 할리우드 영화배우, 흑인 래퍼들로부터 주문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 팬텀 베이스의 드롭헤드 쿠페와 컨버터블을 선보이며 판매량을 늘려갔다.
자신감을 얻은 롤스로이스는 2006년 가을, 파리오토살롱에서 팬텀보다 작은 크기의 세단, 코드명 RR4의 개발에 들어갔다는 공식발표와 함께 스케치 몇 장을 공개하며 관심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2009년 3월, 코드명 RR4가 제네바오토살롱에서 200EX라는 컨셉트카로 공개되었다. 1906년에 등장한 롤스로이스 실버 고스트를 이어받아 이름을 ‘고스트(Ghost)’로 정하고 2009년 여름부터 영국 굿우드 롤스로이스 공장에서 양산을 시작했다. 바로 이 차를 시승하기 위해 기자는 영국 굿우드에 있는 롤스로이스 본사까지 날아오게 된 것이다. 핸드폰도 잘 터지지 않는 작고 포근한 호텔에 여장을 풀고 다음 날 아침, 중국에서 온 3명, 일본과 인도에서 온 1명씩의 자동차 전문지 기자들과 함께 아시아 미디어 팀을 이뤄 호텔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롤스로이스 본사와 공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매년 굿우드 페스티벌로 클래식카와 컨셉트카의 축제가 열리는 굿우드 모터 서킷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다. 들판이 쭉 펼쳐진 낮은 구릉지 위에 자리를 잡은 롤스로이스 굿우드 본사와 공장은 호수와 나무들 속에 어우러져 있었다. 아시아 미디어 팀은 고스트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을 듣고 롤스로이스 공장을 둘러본 후, 본격적인 고스트 시승을 시작했다. 본사 입구에는 6명의 기자들을 위해 3대의 검정 고스트가 도열되어 있었다.
누가 고스트를 ‘베이비’ 롤스로이스라고 했던가? 실제로 보면 절대로 ‘베이비’라는 수식어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풍채를 지니고 있다. 팬텀과 드롭헤드에도 절대 밀리지 않을 카리스마로 ‘베이비’보다는 ‘팬텀과 피를 나눈 형제’라는 수식어가 알맞을 듯싶다.
감히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로 크고 꼿꼿하게 서 있는 파르테논 신전 스타일의 팬텀 그릴에 비하면 고스트의 것은 크기가 작아지고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어 범퍼와 보디 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릴 위에는 두 날개를 펼치고 있는 여인의 형상롤스로이스 엠블럼, 환희의 여신상(The Spirit of Ecstasy)이 보인다. 길게 늘인 직사각형 헤드램프와 그 밑으로 얇고 긴 LED 데이라이트(국내에서는 미등)가 조화를 이룬다. 팬텀과 드롭헤드에서 보여줬던 직사각형과 원형 헤드램프의 조합과는 차별화를 두었지만 누가 봐도 무표정으로 무섭게 쳐다보는 듯한 롤스로이스의 얼굴은 그대로 빼어 닮았다.
그릴, 헤드램프, 보닛의 높이에 맞춰 뒤쪽으로 쭉 이어진 높은 벨트라인은 사이드 윈도를 거쳐 테일램프까지 이어진다. 팬텀은 리무진처럼 C필러를 극단적으로 두껍게 만들었지만 고스트는 C필러 안에 삼각창을 넣어 일반 대형 세단의 라인과 비슷해졌다. 롤스로이스 형제들이 주변을 압도하는 앞모습을 가졌다면 상대적으로 뒷모습은 심심할 정도로 심플하고 얌전한 편이며 고스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앞에 45, 뒤에 40 시리즈 굿이어(Goodyear) 런플랫 타이어가 20인치 휠에 끼워져 있다. 워낙 크고 균형잡힌 보디 덕분에 20인치 사이즈도 그렇게 커 보이지는 않는다. 팬텀과 드롭헤드에서도 사용해 이제는 롤스로이스만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오뚝이’ 센터 캡은 휠 가운데 RR 로고가 달리나 서나 언제나 똑바로 수평을 맞춘다.
고스트는 전체적으로 롤스로이스 디자인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좀 더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다. 팬텀이 커다란 덩치에 차갑고 카리스마 있는 표정으로 좀처럼 다가가기가 힘든 ‘회장님’이라면 고스트는 좀 더 젊은 이미지에 함께 회식도 할 수 있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사장님’의 느낌이다.
면장갑을 끼고 운전해야 할 듯
롤스로이스 관계자에게 넘겨받은 고스트의 스마트키는 어제 공항 픽업에서 봤던 팬텀의 것보다 1.5배는 크고 2배는 고급스럽다. 앞에는 도어록 버튼과 함께 환희의 여신상 로고를 넣었고 뒤에는 RR 엠블럼을 정성스럽게 박아 놓았다. 특히 스마트키 버튼으로 보닛 끝에 있는 환희의 여신상을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스마트키를 지니고 차체로 다가가 차가운 크롬 손잡이를 당기면 고스트가 반응하기 시작한다.
화려하고 고급스럽고 클래식한 고스트의 실내는 모던 디자인으로 재탄생한 앤틱 가구로 꾸며진 응접실 같다. 나뭇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밝은 우드그레인이 반짝이고, 면장갑을 끼고 만져야 할 것 같은 블랙 하이그로시 바탕의 버튼은 크롬 도금을 입고 있다. 그리고 실내화를 신고 타야 할 것 같은 바닥 매트는 감촉까지 곱고 부드럽다.
실내 전체에 사용하는 우드그레인은 나이테와 색상을 맞추기 위해 차 한 대 당 한 그루의 나무를 사용하는 것을 원칙을 삼는다. 대시보드와 도어, 시트에 들어가는 가죽도 목장에서 방목된 소에서 최상의 가죽을 얻고 색상과 가죽 질의 일관성을 위해 같은 시간대에 함께 작업하고 염색한다.
3스포크 스티어링 휠은 클래식카처럼 손잡이가 얇고 지름이 일반 승용차의 것보다 큰 편이다. 가볍고 부드럽게 돌아가는데 동시에 앞바퀴에 실리는 차의 무게도 느껴진다. 반짝이는 크롬 도금의 시동 버튼을 꾹 누르면 12개의 실린더가 움직이며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차체 바닥에 뿌린다. 그리고 대시보드 중앙의 우드 커버가 천천히 올라가면서 내비게이션과 정보가 담긴 화면이 등장한다.
하얀 바탕의 아날로그 계기판 밑에는 좌우로 길게 디지털 정보 화면이 깔려 있다. 계기판 가운데 있는 속도계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연료량과 엔진온도를 알려주는 게이지가, 왼쪽으로는 rpm 대신 낯선 엔진출력계가 있다. 팬텀과 드롭헤드에서도 볼 수 있던 것으로 얼마의 엔진 힘이 남았는지를 %로 보여주는 게이지이다. 예를 들어 시속 120km로 정속주행할 때 엔진출력계 바늘이 80% 부근을 가리키는데 이는 V12 엔진에 아직 80%의 힘이 남아 있음을 뜻한다.
고스트에는 팬텀과 드롭헤드처럼 스티어링 휠 오른쪽에 작고 얇은 칼럼식 기어 레버가 있다. 이것을 위아래로 움직여 R, N, D로 이동하고 레버 끝에 버튼을 눌러 P에 놓을 수 있다. 작은 레버 위에는 더 작은 ‘LOW’ 기어 버튼만 있을 뿐 요즘 소형차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패들시프터도 없다. 알아서 변속하는 롤스로이스식의 주행 패턴에 따라 그냥 운전하라는 뜻이다. 제원표를 통해 8단 자동변속기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주행하는 내내 언제 시프트업이나 시프트다운되는지 알아채기가 힘들어 무단변속기(CVT)라고 해도 믿을 뻔했다.
팬텀과 드롭헤드를 타면서 불편했던 점은 콘솔박스를 열고 두 단계의 버튼 조작으로 시트 포지션을 맞추는 것이었는데 고스트에서는 이것이 시트 아래 옆쪽으로 내려가 앉아서 손만 내리면 쉽게 조절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또한 팬텀에 비해 작다고 느꼈던 내비게이션 화면이 고스트에서는 와이드형 10.2인치 디스플레이가 들어갔다.
앞차와 거리를 조절하는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이나 적외선 감지로 깜깜한 밤에 보행자를 볼 수 있는 나이트 비전 등은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다. 대시보드의 작은 버튼으로 조작하는 차선이탈감지 기능은 깜빡이 없이 차선을 밟았을 때 스티어링 휠에 진동을 주는 방식으로 BMW의 것을 가져왔다. 앞유리에 속도와 내비게이션 정보가 나오는 헤드업디스플레이(HUD)도 BMW의 것이다.
잡아당기고 눌러 조작하는 실내 환풍구 개폐와 다이얼식으로 돌리는 공조장치도 작동은 풀 오토 전자식이지만 조작은 아날로그 느낌이 나도록 신경을 썼다. 다만, 오디오와 내비게이션 조작은 i드라이브로 한다. 로고만 롤스로이스가 들어갈 뿐 BMW의 i드라이브와 같은데 컴퓨터 사용에 익숙한 기자라면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지만 조금 나이 드신 분들은 아직도 쉽게 다가오지는 않을 방식이다. 클래식한 아날로그 느낌을 선호하는 롤스로이스답게 좀 더 직관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더라면 하는 바람도 있다.
BMW의 정교한 기술과 접목
고스트에 들어간 V12 6.6L 직분사 트윈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570마력에 최대토크 79.5kg·m로 람보르기니 가야르도보다 높은 출력에 무르시엘라고보다 강력한 토크를 자랑한다. 롤스로이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엔진이자 윗급 팬텀과 드롭헤드의 V12 엔진보다 최신형으로 최고출력은 110마력이나 높다.
V12도 충분한데 굳이 트윈 터보까지 달아 높은 성능을 끌어낸 엔진이 고스트에 필요 하냐는 질문에 롤스로이스의 엔지니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실 롤스로이스의 고객들은 엔진 배기량, 마력, 토크 수치에 민감하지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최고를 지향하는 롤스로이스답게 V12 엔진에 직분사 기술과 트윈 터보를 달아 배기량을 더 늘리지 않으면서도 높은 성능을 뽑아냈습니다. 이와 함께 전세계의 배기가스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롤스로이스의 기술을 증명하는 셈이죠.”
롤스로이스 고스트와 경쟁하는(롤스로이스 측에서는 경쟁자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벤틀리의 W12와 마이바흐의 V12 엔진에도 트윈 터보를 달고 있기에 이들과 맞서려면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롤스로이스 고스트의 V12 직분사 트윈 터보 엔진은 BMW 760Li V12 6.0L 직분사 트윈 터보 엔진과 함께 BMW 뮌헨에서 동시에 개발했다고 한다. 롤스로이스용은 배기량을 600cc 늘려 낮은 엔진회전수에서 더 높은 출력과 토크가 나오도록 설계했다.
미니버스만큼 무거운 2.4톤의 고스트 차체를 정지에서 시속 100km 가속까지 밀어붙이는데 4.9초밖에 걸리지 않지만 수치로 따지는 성능은 롤스로이스에게 큰 의미가 없다. 충분한 파워와 넉넉한 토크를 바탕으로 성인 4명을 태우고도 언덕길에서 지구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여유 있는 주행이 가능하다. 그리고 귀찮게 뒤를 따라오는 파파라치도 마음만 먹으면 백미러의 점으로 따돌릴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 충분하다.
메르세데스 벤츠 S600L보다 긴 5.4m 길이와 풀사이즈 SUV 만큼 넓은 폭의 차체를 이끌고 영국 남부의 좁은 왕복 2차선 시골길을, 그것도 익숙하지 않은 우측 스티어링 휠을 잡고 좌측 도로로 주행하는 것은 제법 부담되는 일이었다. 특히 앞에서 트럭이나 버스가 마주 올 때는 온 신경을 모아 바짝 긴장해야 했다. 그리고 코너를 돌 때마다 차선을 밟았는지 차선이탈감지 기능이 작동해 스티어링 휠이 계속 부르르 떨며 경고를 주었다.
하지만 한 시간 이상 주행하다보니 곧 익숙해지면서 고스트의 큰 차체가 느껴지지 않았다. 안락하고 고급스러운 GT 쿠페를 탄 듯 빠르면서도 부드럽고 안정감 있게 코너를 착착 돌아나가기 시작했다. 고스트는 운전자가 실내에서 차의 높이를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에어 서스펜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웬만한 고급차에서도 볼 수 있는 스포츠 모드 같은 서스펜션 세팅은 전혀 없다. 언제나 부드럽고 안정감 있게 차체의 움직임을 잡아주며 달리는 롤스로이스식의 세팅만 믿고 즐기라는 뜻이다.
고스트의 운전대를 인도 기자에게 넘기고 뒷자리로 옮겨 탔다. 앞뒤 도어가 좌우로 열리는 롤스로이스 특유의 코치(coach) 도어는 고스트에서도 이어받았다. 일명 자살문(suicide) 이라고도 불리는 뒷문은 조금 작아 보이지만 C필러를 축으로 거의 90。 가까이 활짝 열려 타고 내리기에는 문제없다. 팬텀과 드롭헤드처럼 앞 도어 속에는 롤스로이스 로고가 박힌 크롬 장식의 최고급 우산도 숨어 있다.
뒤로 쭉 물러나 있는 뒷자리에 앉아 고개를 돌리면 뒤에 있는 삼각창(quarter glass)을 통해 밖을 내다봐야 한다. 밖에서 보면 뒷좌석 승객의 얼굴이 C필러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데, 프라이버시 확보를 위한 디자인이다. 호사스럽고 화려하면서 클래식한 인테리어는 뒷좌석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옵션으로 제공되는 9.2인치 LCD 화면은 앞시트 뒤에서 펼쳐져 나온다. 팔걸이에 있는 롤스로이스식 i드라이브를 통해 좌우 따로 내비게이션부터 CD와 DVD 등의 화면으로 세팅할 수 있다. 물론 독립식 2인승 뒷자리는 옵션으로 가능하고 고스트의 익스텐디드 롱 휠베이스 버전은 검토 중이라고 한다.
롤스로이스의 경쟁자는 없다
롤스로이스 관계자들은 고스트의 경쟁자가 벤틀리 플라잉 스퍼, 마이바흐 57,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가 아니라 프랑스 남부 지중해에 있는 별장, 캘리포니아의 해변가에 있는 요트, 거실에 장식된 미술품 등이라고 했다.
고스트는 팬텀과 드롭헤드에 이어 롤스로이스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지만 밖에서는 메르세데스 벤츠 S600L보다 윗급으로 포진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롤스로이스의 디자인과 풍채를 그대로 이어받았고 현대적인 디자인을 가미했으며, 최고 품질의 가죽과 나무로 꼼꼼하게 마무리한 실내에는 영국 롤스로이스의 장인정신이 듬뿍 담겼다. 여기에 든든한 백그라운드인 BMW의 정교한 엔지니어링과 첨단기술도 함께 녹아들었다. 이런 롤스로이스를 구입하는 것은 단순히 지구상의 최고급 자동차를 탄다는 의미 외에 롤스로이스의 전통과 역사까지 향유함을 의미한다.
나만의 롤스로이스를 만든다
비스포크(BESPOKE)
샛노란 드롭헤드 컨버터블에 대시보드도 노란색, 가죽시트도 노란색, 심지어 발판 매트까지 전부 노란색이다. 미국의 유명 래퍼가 주문한 롤스로이스 드롭헤드 컨버터블이다.
이렇듯 롤스로이스는 맞춤 정장을 주문하듯 자기만의 롤스로이스를 주문하는 비스포크(Bespoke) 오더가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외부 색상 16가지에 실내 가죽 컬러 12가지 그리고 여러 종류의 우드그레인까지 선택하면 무려 4만4,000가지에 이르는 조합이 나올 수 있다고.
아랍에미리트의 한 고객은 펜텀, 드롭헤드 쿠페와 컨버터블까지 3대를 전부 파란색 보디에 흰색 포인트의 투톤으로 칠하고 실내를 온통 흰색 가죽으로 꾸며 달라는 주문을 했는데, 장장 6개월에 걸쳐 완성한 3대의 ‘두바이판 롤스로이스 종합세트’는 한동안 사내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또 드롭헤드 쿠페를 주문한 스코틀랜드에 사는 고객은 영국 왕실에서 사용하는 고유의 체크무늬 천을 직접 가져와 그것으로 실내를 꾸며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2006년에는 홍콩에 있는 페닌술라 호텔 본사에서 14대의 팬텀을 한꺼번에 주문해 롤스로이스 역사상 가장 많은 대수의 오더를 기록했다. 모두 익스텐디드 롱 휠베이스 모델에 페닌슐라 그린이라는 진한 녹색으로 칠했다. 호텔 VIP의 이동을 위해 뒷좌석 에어컨을 강화하고 화면조작을 보다 편리하게 바꾸는 한편 핸드타월을 위한 쿨박스를 넣고, 트렁크에는 가죽으로 된 짐의 손상을 막기 위해 나사 하나까지 안으로 들어가게끔 세심하게 제작했다.
그밖에 팬텀 익스텐디드 롱 휠베이스 모델에 인터폰이 장착된 파티션을 달거나 글러브박스 안에 시가 휴미더를 넣고, 진주로 장식한 대시보드에, 조명을 넣은 환희의 여신상을 넣는 등 전세계에서 독특한 주문이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이미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렉시콘 오디오 시스템의 교체나 V12 엔진 튜닝 또는 롤스로이스의 상징인 그릴을 바꿔달라는 등의 요구는 원칙을 벗어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법적, 기술적 문제가 없는 한 최대한 고객의 요구를 들어준다.
롤스로이스 비스포크 주문을 하고 싶다면 영국에 휴가를 즐기러 가면서 직접 굿우드 롤스로이스 본사를 방문해 오더를 넣어도 되고 전세계 30개국에 있는 70여 개의 롤스로이스 딜러(서울 청담동에도 있다) 중 하나를 찾아가 색상과 가죽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원하는 조합으로 주문할 수도 있다. 이후에 할 일은 참을성과 인내심을 가지고 6개월만 기다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