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십자가가 있느냐?(20P)
♥ 제68차 성령 컨퍼런스(conference) 안내 2021.4.5.월.오후2시-7.수.오후1시(2박 3일) ♥
*이 3일 간의 대성회는 너무나 좋은 것인데,
사람들이 알지 못하여 오지 못합니다.
오시는 분들은 그 신앙과 삶이 획기적으로 변합니다.
육적, 육신적인 신자가 아니라,
진정한 영적 신앙인으로 거듭납니다.
성령과 은사에 정통하고, 영계를 열 수 있습니다.
성령과 은사의 맥을 관통해 줍니다.
특히 목사님들과
부흥강사의 길을 걷는 분은 필수 코스로 훈련 받을 기회입니다.
성회 진행 문의:강한나 부목사 010-2443-1272
장소:서울 노원구 노원로 26가길(상계동) 25
코롱A 상가 3층,
새성교회당
*네비로 ‘새성교회’ 치시면, 바로 나옵니다.
강사:배종부 지도목사
참가비:5만원
(성령의군대 배종부 농협 3560393-047263)
사전 등록자(통보자) 만 참석할 수 있습니다.
<성령 컨퍼런스>에 3일 간 전심으로 성령 훈련을 받을 사람만 들어 올 수 있습니다. 2박 3일 간의 계속되는 일정 도중에, 그만 둘 수 없습니다.
아래는 성령 컨퍼런스(conference)의 기본 성령 주제 강의와 워크숍 목차입니다.
강의안은 성령에 대한 깊고 주옥 같은 말씀들로, 일체 외부로 유출하지 않습니다.
*배종부 지도목사의 강의 중간 중간에 지부장급 이상 장군들의 5분 찬양과 10분 단상과 5분 통성기도 인도가 있습니다.
제1일:
1강.월 오후 2:00- 4:00 배종부 목사-성령 서론(聖靈 序論):
2강.월 오후 4:00- 6:00 배종부 목사-신유(神癒):
3강.월 저녁 7:00- 8:00 특강 박민 목사
4강.월 저녁 8:00-10:00 배종부 목사-예언(豫言):
제2일:
5강.화 오전 9:00-11:00 배종부 목사-영분별(靈分別):
6강.화 오전 11:00-13:00 배종부 목사-축사(逐邪):
7강.화 오후 2:00- 4:00 배종부 목사-영안(靈眼):
8강.화 오후 4:00- 6:00 배종부 목사-방언과 방언 통역(方言 通譯):
9강.화 저녁 7:00- 8:00 특강 방성용 지도목사
10강.화 저녁 8:00-10:00 배종부 목사-성령의 기름 부음:
제3일:
11강.수 오전 9:00-10:00 특강 배종부 목사
12강.수 오전 10:00-12:00 배종부 목사-생수(生水)의 강(江):
13강.수 오후 12:00-13:00 배종부 목사-100배 축복(祝福)의 원리:
시작하는 날 월 오후 1시 30분 - 2시까지,
서울 지하철 4호선 노원역 1번 출구에서,
3447 흰색 승용 차량으로 픽업합니다.
2시 이후에는 택시를 이용하여 코롱A로 오시거나,
1132번, 1154번 버스를 타시고,
두 정거장 지나 ‘상계중학교’ 에서 내리셔서 길을 건너 오시면,
코롱A 상가 3층에 새성교회가 보입니다.
차량 담당자 이사라 권사에게
필히 전화하세요.
010-4209-5869
차량을 갖고 오시는 분은 반드시 코롱A 지하 2층에 주차하시고,
'새성교회' 라고 메모하셔서, 차 안에 보이게 두셔야 합니다.
다른 장소는 스티커를 부착합니다.
宿食(숙식)은 ‘건영 스파벨리’ 사우나 티켓을 매일 개인당 드리며,
화, 수 아침은 禁食(금식)입니다.
새성교회당에서 여자 분들은 숙박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 문제로, 이번에 한하여 새성교회당(여)과 호텔(남, 4-5만, 개인 부담, 안내해 드림) 에 각각 주무셔야 합니다.)
뜨거운 찬양,
불 붙는 기도,
명쾌하고 폭발적인 성령과 悔心(회심)의 말씀 강의,
3일 간의 지속적인 성령에의 젖음,
은사와 능력의 폭발,
눈물의 통회,
생수의 강,
영적 새출발의 결단이 일어납니다.
성령 받고,
은혜 받은 종들 개개인에게,
각자 영권, 인권, 물권의 100배 축복이 넘치도록 부어집니다.
♥ 제68차 <성령 컨퍼런스> 개회에 즈음하여... ♥
여기 <성령의군대>가 ‘제68차 성령 컨퍼런스’ 로 대행진합니다.
성령을 받으십시다.
은사를 훈련하십시다.
능력을 받으십시다.
성령으로 떨치고 일어 서서 새출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 하십시다.
3일 간의 성령의 대축제가 여러분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이 힘든 위기의 시간들을 승리로 장식케 해 드릴 것입니다.
뜨거운 痛悔(통회)의 눈물이 살아 나고, 강력한 祈禱(기도)가 회복되고, 恩賜(은사)가 터지고, 성령의 能力(능력)을 받게 될 것입니다.
놀라운 성령의 영권, 인권, 물권이 회복되어, 이 고통의 시간들을 승리로 장식케 될 것입니다. 능히 성령의 비전으로, 앞으로 달려 갈 영적 底力(저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다 같이 오셔서 함께 성령 받고, 은사 받고, 능력 받아, 능히 떨치고 이기고 승리하십시다.
환영합 니다. 어서 오십시오.
<성령의군대> 지도목사
서울 새성교회 담임목사
배종부 드림
♥ <성령 컨퍼런스>의 10가지 이상의 선물 ♥
<성령 컨퍼런스>에 오시면, 아래 10가지 이상의 선물이 주어집니다.
1.靈界(영계)를 돌파하는 성령 신앙의 마지막 봉우리가 점령됩니다.
2.성령 신앙과 은사와 능력의 세계 전반이 체계적으로 정리됩니다.
3.강한 영권이 주어져, 말씀과 기도의 권능이 강력해집니다.
4.幻想(환상)과 靈眼(영안), 각종 恩賜(은사)가 열립니다.
5.삶과 재정의 ‘100배 축복권’ 이 주어집니다.
6.성령 동행의 삶으로, 죄가 끊어지고, 인격이 변화됩니다.
7.영 혼 육이 그야말로 충만하게 행복해집니다.
8.말로만 듣던 ‘기적’ 과 ‘능력’ 이 실제로 기도 응답으로 주어집니다.
9.그냥 성령의 임재가 느껴지고, 내 몸으로 성령의 기름 부음을 체험합니다.
10.심령의 뿌리까지 깨어지는 폭발적인 ‘悔心(회심)의말씀’ 과 강의를 통해, 자기를 부인하게 되고, 진정한 성령의 사람이 됩니다.
♥ 2021년 <성령의군대> 정기집회 안내 ♥
담임 배종부 목 사 010-2940-1717
안내 강한나 부목사 010-2443-1272
사무 이사라 권 사 010-4209-5869
1.매주 월, 화, 수 오후 2시, 저녁 7시 <기적 기도대성회> 6회
*연중 중단 없이 언제나 상시적으로 개회
주소:서울 노원구 노원로 26가길 25, 코롱A 상가, 새성교회
매주 고정강사 새성교회 배종부 목사 3회 설교
매주 3명의 <성령의군대> 지부장 중심 부흥강사 교대 집회 인도
2.매월 첫주 월, 화, 수 <성령 컨퍼런스>
새성교회당,
2박 3일 숙식하며 연속 진행,
월 오후 2시 개회, 수 오후 1시 폐회
3.목요 산상기도교회
매주 배종부 지도목사 개인 전국 1,000m 고지 이상 순회 <산상기도교회> 운영
월 1회, 제 3주 목 오전 10시 <연합산상기도교회> 운영
4.토요 <성령사관학교>
새성교회당
매주 토 오전 10:00-오후 4:00
상시 등록 가능
♥ ‘殉命의사람’ 배종부 목사 13대 특별기도 ♥
사전 예약하는 분에 한하여,
1>.축복기도, 2>.신유(神癒)기도, 3>.예언기도, 4>.영분별기도, 5>.축사(逐邪)기도, 6>.방언통역기도, 7>.영적무장기도, 8>.십자가확인기도, 9>.문제해결기도, 10>.은사전이(轉移)기도, 11>.사명기도. 12>.사랑하는 사람의 중보기도 13).내적치유 기도 등등...
모든 삶의 전반적인 문제를 두고, 충분히 개인기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네 십자가가 있느냐?(20P)
2021.3.31.수. 이렇게도 살아 가는 방식...(오직 성령으로 살다,5P)
이 글은 오직 ‘믿음’ 으로 미리 쓰는 글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박목사님. 강사비 43만 송금했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7천만원 받아, 7백만원 십일조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아멘. 우리의 예언과 기도가 이루어 질지어다.”
그리고,
( ) 개월이 지나
이 돈들이 그대로 와서,
우리의 예언이 이루어졌다.
소중한 박목사님!
이 돈들이 우리에게 온다는 확신이 와서,
미리 믿음의 글로 보내 드리오니,
준비기도 하십시다.
사람은 자기의 일이 되지 아니하면,
진정으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강 건너 불은
내가 끌 불이 아닙니다.
박목사님은 7,000만을,
저는 700만을 기도합니다.
히11: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이 무엇이냐?
1>.확신하는 것이다.
2>.믿고, 헌금을 심는 것이다.
3>.기다리는 것이다.
4>.말씀을 믿는 것이다.
5>.구체적으로 믿는 것이다.
6>.추호도 남김 없이 하나님을 믿고,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어제 하루 동안 돈이 무려 156만 들어 와
이0순 권사 생활비 70만,
000 목사 강사비 40만,
000 목사 강사비 43만 내보냈다.
총 153만이다.
통장 잔고는 역시 매일 매일 0이다.
“주님. 제가 이렇게 하루 하루 사는 게 맞아요?
저의 빚들을 갚아 주세요.
<성령의군대> 세계선교센타를 주세요...”
그리고 잔잔히 들려 오는 주님의 힘 있는 음성...
나는 주의 음성을 직접 듣는
놀라운 은사와 靈界(영계)가 열린 ‘성령님의侍從’ 이다.
“배목사야!
네가 맞단다.
네가 너를 위하여 돈 한 푼 저축하거나 모으지 아니하고,
나의 뭍 종들이 가난과 어려움에 허덕일 때에
그 때 그 때에 너희 피를 輸血(수혈)했으므로,
나도 너를 매일 매일 輸血(수혈)하는 것이다.
너는 오직 하루 하루만 살아라.
네가 무슨 수로 100억대의 <성령의군대> 세계선교센타를 준비하겠느냐?
오늘 네가 하루 하루 힘든 주의 종들에게 내보내는 이 피 흘리는 선교비가
곧 <성령의군대> 세계선교센타 준비 자금이니라.
내가 부흥단장 000 목사가 예언으로 말한 대로,
한 사람을 통하여
그냥 네게 주리라.
너는 그의 말씀을 3,000만 예물을 드려, 네 것으로 사지 않았느냐?
너는 언제나 믿음으로 행하고,
네 눈으로 보는 것을 행치 아니하였다.
그것이 바로 내가
네게만 준 믿음이다.
믿음이 있는 자는
그 믿음이 있는 만큼, 내가 들어 쓰리라.
너의 믿음이 크니,
네 믿음의 크기 만큼, 내게 선물을 주리라.”
“아멘. 제가 오직 이 믿음으로 하루 하루 물 위에 나의 식물을 던지며, 나를 위해 일체의 준비를 하지 아니하고 오늘만 살겠나이다.”
전도서11:1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전도서 11: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2021년 3월 30일 화요일
[배종부] [오전 4:25] 지난주일저녁부터수요일저녁까지부안흰돌교회에서총10회부흥성회인도하시는강한나목사님을위해기도해주시기바랍니다.
저배종부목사는김의식목사님의 <치유하는교회> 새벽부흥성회인도차와있습니다.
저를위해서도기도해주십시오.
[권재천목사대전영음교회] [오전 6:00] 하나님은 <성령의군대> 장군들과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합니다.
[배종부] [오전 6:27] <치유하는교회> 새벽부흥성회인도하고돌아갑니다.
35분설교했습니다.
강사비를100만주시네요.
70만,30만선교비보내야겠습니다.
저의 ‘5병2어선교경제’ 를축복하시는주님!
참기쁘고감사합니다.
[강한나 목사 새성교회] [오전 7:19] 와~!!!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새벽기도 마치고
이제 돌아왔어요
부족하지만 기도해 주심이
많이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놀랍습니다
오늘 두 분 강사님이 새성교회에
오시는데
주님이 강사비를 채워 주셨네요
부안흰돌교회 담임목사님께서
<성령 컨퍼런스> 가고 싶다 하셔서
설명 드렸습니다
담주에 <성령 컨퍼런스>에 큰 은혜가 넘치길
기도합니다
[배종부] [오전 8:02] 아침해뜨기전35분잠간일하고100만을버니,
나는얼마나고급인력이며
복된하나님의사람인가?
받은100만강사료를바로선교비로70만내보내고,
오늘<기적 기도대성회> 설교 강사비 30만 이상, 30만 이상 2회 내보낼 것이니,
나는얼마나큰하나님의부자인가?
복되도다.그이름 ‘殉命의사람’ 배종부목사로다.
가득하도다.
나비록돈이없으나,
‘5병2어선교경제’ 의주인공이니,
그영혼복되도다.
[조에스더 사모 구미 샘솟] [오전 8:06] 목사님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돈이 목사님 것이네요
목사님께서 움직이면 돈이 들어 오는데
걸어 다니시는 은행이군요
축복입니다 샬롬 ~^^
[배종부] [오전 8:09] 그냥하루하루 ‘영적푼수’ 로,
‘영적또라이’ 로살아갑니다.
지금은
하도하도머리가똑똑한신앙인들이많길래
좀더순수해지자고,
바보처럼살자고
이런짓도합니다.
양해해주시길...
[조에스더 사모 구미 샘솟] [오전 8:13] 그래서 주님께서는 기뻐하시고 사랑하십니다
완벽 보다 1% 부족하고
어린 아이처럼 단순하고 순수하시니까
주님께서 목사님을 크게 들어 쓰시네요
대단하셔요
부럽습니다 ~^^
[정종윤 목사 고창 성송서부교회] [오전 8:59] 어제 나와 동행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니
감사하고,
오늘도 나를 인도하실 하나님을 소망하니
감사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이길 기도합니다
[배종부] [오후 3:54] <기적 기도대성회> 에기적을베풀어주소서.
정말제가이렇게강사비를준비하는것이합당한주님의뜻이온지요.
제가이성회를살리려고몸부림을칩니다.
방00 목사님 50만,
박00 목사님 50만 강사비 주소서.
제아픈몸을고쳐주소서.
4월에도2군데부흥성회인도하고,
300만사례2곳을주소서.
[배종부] [오후 3:54] 저의신음과이0순권사의신음을들으시고,
이0순권사의생활비70만주셨습니다.
[배종부] [오후 3:55] 아픈몸이나을지어다.
나을지어다.
[배종부] [오후 3:55] 카드빚다털어주소서.
갈라디아서 6:11-18절
* ‘십자가’ 설교를 한 후에, 자기 십자가를 분별하여 보여 준다.
그리고 통회하고, 자기 십자가를 잘 지고 가게 한다.
(갈6:11)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12)무릇 육체(肉體)의 모양(貌樣)을 내려 하는 자(者)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割禮)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를 인(因)하여 핍박(逼迫)을 면(免)하려 함뿐이라.(13)할례(割禮)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律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割禮)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肉體)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1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主)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 외에 결(決)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世上)이 나를 대(對)하여 십자가(十字架)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世上)을 대(對)하여 그러하니라.
(15)할례(割禮)나 무할례(無割禮)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者) 뿐이니라.(16)무릇 이 규례(規例)를 행(行)하는 자(者)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平康)과 긍휼(矜恤)이 있을지어다.
(17)이 후(後)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痕跡)을 가졌노라.
(18)형제(兄弟)들아. 우리 주(主)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恩惠)가 너희 심령(心靈)에 있을지어다. 아멘.
마태16: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 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 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 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1.십자가의 세상적 의미
우리 각자에게는 자기 십자가가 있다. 자기 십자가는 두 종류이다. 하나는 세상의 십자가, 하나는 주님의 십자가이다. 주님이 상 주시는 십자가는 내가 주님의 십자가를 얼마나 졌느냐 하는 것이다. 세상의 십자가는 상이 없다.
그런데 정작 자기 십자가를 모르고, 자기 십자가가 없는 사람들이 수 없이 많다. 이는 엄밀히 말하면 신자가 아니다.
자기 십자가를 똑바로 알고, 잘 지고 가는 사람이 열 명 중에 한 명이라도 있을까? 내가 목사로 살아 보니까, 100명 중에 한 두명 있을까 말까 생각된다.
자기 십자가가 없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예수 믿는 것은, 사도 바울의 말을 빌리면 마치 향방 없이 달리는 것과 같다. 어디로 가는지모 모른 채 정신 없이 달려 가는 것이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를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 가야 하는데...
빌3:13절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
푯대를 바라 보며, 과거를 다 잊어 버리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오로지 앞만 바라 보며 달려 가는 한 경주자!
그가 바로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자기 십자가가 없다는 말은 사명이 없다는 말이다. 믿음생활에 줒대가 없다는 말이다. 십자가가 있나 없나 영분별 기도를 해 보면 정확하게 나온다.
자기 십자가, 자기 사명이 없는 사람은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할 뿐이다. 외형적으로만 예수 믿으려는 것이다.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고, 할례를 그렇게 또 받는다. 신앙의 내적인 의미와 거룩함, 영적 진보는 아무 것도 없다. 외형적 형식만 찾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면이다. 내 안에 거룩함, 성령, 십자가, 사명, 주를 사랑함... 등이 자라 가야 한다. 그래서 믿음은 반드시 훈련 받아야 한다. 훈련 받지 않은 믿음은 검불과 같다.
고전2: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 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믿음은 불에 태워 연단 받고 훈련 받아야 한다. 신앙은 말이나 생각이 아니다. 삶의 경험이다. 삶이 되어야 진짜 신앙이다.
계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사도 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다. 그는 십자가를 발견한 이후에는 다른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고, 부질 없는 것이 되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과 나는 못 박혔다. 세상 것을 먹지 않았다. 세상 돈을 쓰지 않았다. 세상 잠을 자지 않았다. 그는 모든 영역에서 거듭난 삶을 살았다.
(1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主)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 외에 결(決)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世上)이 나를 대(對)하여 십자가(十字架)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世上)을 대(對)하여 그러하니라.
(17)이 후(後)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痕跡)을 가졌노라.
사도 바울은 핍박을 받을 때에는, “나를 힘들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으로 가졌노라.” 했다.
내게는 100배 축복권이 있다.
선포하고 그대로 기도하니, 성도들이 즐거이 받았다.
지난 몇 달 동안 부흥성회 현장 마다 그런 일들을 경험했다. 헌금이 쏟아졌다.
이런 고백을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축복권이 있다.
나는 성령으로 산다.
나는 하늘의 가치관, 인생관으로 산다.
나의 십자가는 무엇일까?
나는 십자가가 있나?
나는 무엇을 위해 달려 가나?
사도 바울은 저렇게 담대하게 목숨을 내놓고 달려 가는데 나는 뭔가?
십자가의 세상적 의미는 사형 틀이다. 신앙적 의미의 십자가는 예수를 믿는 자가 자기 각자가 받은 예수님의 사명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죽음과 부활의 상징이다. 이 십자가는 그대로 나의 십자가가 되어야 한다.
십자가는 목에 걸어 놓는 것이 아니다. 손목에 차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진지하게 자기 십자가를 물으라. 일생을 걸고 그 십자가를 지고 살아 가라.
오늘밤 예물 드리며 나의 십자가를 주님 앞에서 결단하라. 하나님 나라 가치를 위하여 서원하고 결단하라.
(1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主)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 외에 결(決)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世上)이 나를 대(對)하여 십자가(十字架)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世上)을 대(對)하여 그러하니라.
사도 바울에게는 십자가 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없다. 있다고 해도 내 인생의 우선 순위에서 저 밖으로 밀려 나가 있다. 목사들이 십자가를 지는 자세가 되어 있지 아니함으로, 목회가 안된다.
나의 자랑은 십자가 뿐이다. 바울의 십자가는 설교용이 아니다. 말이 아니다. 장식용이 아니다. 그는 십자가를 지고 살고, 십자가를 위해 살고, 십자가를 지고 죽었다.
우리의 십자가는 내 십자가가 아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져야 한다. 내게 주신 사명에 따라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주님이 “나의 돈을 주라.” 하면 순종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필리핀으로 가라.” 하시면 가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죽으라.” 하면 죽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나의 안전벽을 추구하는 이성적 판단이 가장 성령의 역사를 거역하는 주범이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갈 때 우리 옛사람이 따라 온다. 저울질 하게 한다. 불평, 불만, 원망하게 하고, 회개하고 돌아 왔다가 이내 다시 죄를 짓게 하고, 드렸다가 또 실망하게 하고, 곤궁에 빠졌다가 또 인내하게 하고... 이 모든 과정을 꾸준히 이겨 나아 가야 한다.
누가 항구적인 믿음을 보일까?
누가 주님에 대한 정절을 보일까?
넘어지고, 낙심 중에 있다가 다시 일어 나고, 다시 또 회복되고... 그리고 웬만해 지니까 든든해진다.
나는 돈이 필요 없다. 그런데 내 주변을 둘러 보면, 수천만원의 돈이 있어도 부족하다.
그러나 내가 걱정할 것 없다. 나는 내 몫에 태인 것만 하자. 무거운 짐을 지고 눌리지 않는 비결은 하루 하루 사는 것이다.
내일은 내일 처리하면 되지!
나는 염려하지 않는다.
남에게 줄 돈은 염려하며 기도했으나, 내가 쓸 돈을 염려해 본 적이 없다.
바울은 자기의 연약함과 못남을 자랑했다. 성령의 도우심을 자랑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했다.
바울의 과거는 정말 자랑할 만한 찬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분토처럼 다 내버렸다. 이제는 자랑이 바뀌었다.
고후11:21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30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31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
바울은 남들이 말로만 지는 그 십자가를 자기의 몸으로 지고, 끝까지 갔다...
아아! 나는 죽고 모든 것이 부활되기 원한다. 내 생각, 감정, 목회, 설교, 돈, 사역...은 다 죽고, 주님의 것으로 부활하기 원한다.
나는 부흥성회 인도를 가는 어려운 교회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 돈을 아껴 주기 위해서이다. 시간 시간 헌금하고, 헌금을 독려한다. 한번은 십일조를 하지 않는 그 교회 재정집사를 불러 내, 박살을 냈다.
말로, 생각으로 십자가를 지지 말고, 몸으로 삶으로 십자가를 지니, 삶의 흔적이 나온다.
내 몸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흔적이 있으니, 나를 괴롭게 하는 자는 곧 예수님을, 성령님을 가로 막는 것이다.
사모도, 동생도, 교인도 가로 막는다.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내가 주님께 받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돈을 보낼 때, 사람과 의논하지 않는다.
설교할 때, 누구의 말을 듣지 않는다.
십자가를 지는 일은 손해 나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계속 가다 보면 하나 받고 둘을 심고, 열을 심고 둘을 받는다.
고통스럽다. 그러나 계속 가야 한다.
“힘들고, 어렵고, 시험 든다...” 는 말은 아직 훈련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자기가 목사의 사명이 있는지 기도해 달라고 한다.
나의 사명을 깨닫는데 남에게 기도 받고, 안수 받아 해결한다고?
아니다. 자기 사명은 자기의 기도 골방에서 주님께 직접 받아야 한다.
세상에... 이런 엉터리 들이라니...
나의 사명은 한국강산을 성령으로 새롭게 하는 일이다.
예수님 만나, 성령님 만나 나의 사명을 받으라.
나의 십자가를 받으라.
고난, 고통, 희생, 눈물, 포기, 헌신하게 하셔서, 나의 십자가의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시고, 불 같이, 바람 같이, 생수 같이, 폭포 같이, 정금 같이 쓰시는 것이다.
가난도, 아픔도, 눈물도, 길이 막힘도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의 필수 과정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나쁜 것이 없다.
십자가는 이제까지 고안됐던 것들 중 가장 잔인한 형태의 사형도구였습니다. 십자가보다 더 고통스러운 형벌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보다 더 극악무도한 고문은 역사 이래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참으로 그보다 더 부끄러운 죽음도 없었습니다. 그토록 처절하고 끔찍한 것이 십자가 상의 죽음이었기에, 로마인들은 로마시민은 어느 누구도 그 같은 사형 집행을 받지 않도록 법으로 제정하여 놓기까지 하였었습니다.
유대인들 역시 십자가를 경멸하였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저주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신21:23참조). 그러므로 십자가는 인류 역사를 통하여 누구에게나 혐오의 대상이 되어 왔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그 처절한 죽음의 형틀은 그리스도인들의 큰 자랑이 되었습니다.
2.십자가의 신앙적 의미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대하여 그렇게 열광할 수 있게 되어진 것일까?
기독교의 상징이 하필이면 왜 그와 같이 끔찍한 십자가가 되어야만 했을까?
2,000여년 전에 살았던 한 사람의 죽음이 오늘 이 세대를 살아 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효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리스도인들은 왜 목에 십자가를 매달고 다니는가?
교회의 벽이나 종탑 위에 달린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상은 끊임없이 그러한 물음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오늘의 우리들도 이에 대하여 정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연명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정답을 찾기 전에 갈라디아서 6장 14절 이하에서, 바울이 고백하고 있는 그의 신앙고백부터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사료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십자가를 향하여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는 바울의 심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십자가 만이 자기 자신의 가장 큰 자랑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바울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그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생애에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을까요?
어떻게 바울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그토록 자랑거리가 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3.바울의 자랑거리인 십자가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그의 생애의 가장 소중한 것이요,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 십자가는 신비적인 것도 아니며, 단순히 상징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술적인 묘사도 결코 아니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의 십자가는 삶의 중심 축이요, 역사적이요, 실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생애를 되돌려 놓은 "대분수령"이 되기도 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세상에서 자랑할 것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1) 당대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 유대인으로서의 특수층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바로 그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3) 엘리트 유대인의 최고 영광스러움은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공부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사시를 받았던 그 시대의 엘리트였습니다.
4) 바울은 자국어인 히브리어는 물론이고, 헬라어에도 능통했던 어학의 천재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십자가를 만난 이후부터는 그 어떤 것도 자랑하지 않기로 하고, 그 모든 것들을 분토와 같이 버리고, 세상적인 모든 자랑거리를 단호히 거절하였었습니다.
(1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主)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 외에 결(決)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世上)이 나를 대(對)하여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世上)을 대(對)하여 그러하니라.
(빌3:4)그러나 나도 육체(肉體)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萬一)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肉體)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내가 팔일(八日)만에 할례(割禮)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族屬)이요 베냐민의 지파(支派)요 히브리인 중(中)의 히브리인이요 율법(律法)으로는 바리새인(人)이요, (6)열심으로는 교회(敎會)를 핍박(逼迫)하고, 율법(律法)의 의(義)로는 흠(欠)이 없는 자(者)로라. (7)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有益)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爲)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主)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知識)이 가장 고상(高尙)함을 인(因)함이라. 내가 그를 위(爲)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發見)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義)는 율법(律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義)라. (10)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復活)의 권능(權能)과 그 고난(苦難)에 참예(參與)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어찌하든지 죽은 자(者) 가운데서 부활(復活)에 이르려 하노니,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穩全)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형제(兄弟)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向)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賞)을 위(爲)하여 좇아 가노라.
그는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그의 서신에서 강한 부정적인 용어를 세 번씩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혹은 “하나님께서 금하셨다!” 고 확언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어떤 것에 대해서 “자랑한다” 는 것은 그것을 찬양하고 높이거나, 혹은 경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심자가 이외에 것은 결코 높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4.바울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십자가
우리는 바울을 이와 같이 바꾸어 놓은 십자가를 찾아 가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로 바울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달리셨던 그 십자가였습니다.
예수께서 그 십자가에 달리시지 않았었더라면, 바울이 그의 하나 밖에 없는 자기의 목숨을 십자가에 걸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므로 일어난 역사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다 이루었다." 곧 구속이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거룩하시며, 우리는 죄에 빠진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 스스로는 결코 구원을 획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거룩하신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우리들의 죄의 문제를 책임지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고 우리는 말합니다. 그것은 곧 그 분에게는 죄와 불의함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분은 완전하시며, 그 분께서 거하시고 계시는 하늘나라 또한 그 분이 완전하심같이 완전한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 같이 우리 또한 거룩하지 않은 한 우리는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히 12:14 참조)
어떤 사람들은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사랑하고 용납하며, 이해하는 하나님, 그들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하늘나라에 올라 갈 수 있도록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원합니다.
그들은 하늘나라에 들어 갈 충분조건으로 요구되는 하나님의 기준, 다시 말하자면 "내가 거룩한 것 같이, 너희도 거룩하라."는 하나님의 요구를 거절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지 거룩케 된 자, 곧 구원 받은 자 만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기준을 따르든지, 아니면 자신의 기준을 따르든지 한 가지의 선택권 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임의대로 상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특성에 따라서 만민을 공의로 대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죽으셨고,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것만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길이었습니다.(히 9:22 참조)
우리가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그 분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의로 옷을 입히십니다.(고후 5:21 참조) 그러나 죄가 처리되는 이 모든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죄의 용서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십자가와 또한 구원을 마련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죄를 맡아 주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못 박히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14절)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바울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는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혔고, 세상은 그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14절)
(1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主)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 외에 결(決)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世上)이 나를 대(對)하여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世上)을 대(對)하여 그러하니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것과 그리스도가 자신의 것이요, 성령께서 그의 심령 속에 내주하고 계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1)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두는 그 날, 우리의 위치가 달라지는 일이 발생합니다.
2) 그 날 우리는 전적으로 새로운 의식을 갖게 되며, 세상의 헛된 일에 무관심하게 됩니다.
3) 그 날 우리는 그 모든 사악한 체계에 대하여 죽고, 그 대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빌 3:20) 우리의 아버니가 거기 계시며, 우리의 구세주 또한 거기 계십니다. 우리의 본향도 거기 있으며, 우리의 상급 또한 거기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혼의 촉수를 높여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사람이 될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5.예수의 흔적(스티그마)인 십자가
바울은 갈라디아서 6:17절에서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의 흔적들"은 어떤 것들인가요?"
바울이 이제껏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았던 모든 타격은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겨냥되었던 사탄의 화살들이었습니다. 세상은 예수를 공격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 분께서 이 세상에 육체로 계시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예수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바울을 공격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바울이었기에, 그는 고난 받는 기쁨을 즐겼던 것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세상이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것은 자연인 그리스도인이 아니요, 곧 예수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때문에 진리를 위하여 받는 핍박이 있다면, 그것은 실상 예수 그리스도께 겨냥된 핍박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대신해서 받은 것일 뿐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인하여 받았던 핍박의 상처를, 흔적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감사했던 것입니다.
6.예수님의 십자가, 나의 십자가 - ‘나의 십자가’는 무엇일까?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아파해야만 했던 흔적들이 있습니까?
아니,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묵묵히 참아 내고 있는 아픔이 있습니까?
그것은 사랑의 흔적들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있는 자랑스러운 사랑의 흔적들입니다. 그 흔적들이 여러분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금번 사순절에 다시 한번 더 십자가를 바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랑스러운 십자가로 십자가를 바라 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은 자라 가는 것!
사람 때문에 시험 들지 않으리라.
환경의 호불호(好不好)로 인하여 시험 들지 않으리라.
돈 때문에 시험 들지 않으리라.
그 어떤 일로도 시험 들지 않으리라.
시험이 든다는 것은 연약하다는 것이며, 연단과 훈련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다.
나의 십자가는 무엇일까?
어떻게 나의 십자가를 발견하는가?
1.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2.그 예수님께 나의 십자가인 사명을 받아야 한다.
3.분명히 자기의 사명을 깨닫고, 남은 일생을 그 사명의 길을 걸어야 한다.
4.고난과 희생, 삶의 댓가를 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