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볼(Punch Bowl) 전투(戰鬪)
휴전선 철책 / 제4 땅굴 / 펀치볼 전투전적비 / 을지전망대
한국전쟁(6.25) 때 가장 치열한 공방전을 치루고 대승을 거둔 전투 중의 하나가 펀치볼 전투라고 할 수 있는데 펀치볼(Punch Bowl)은 해안단구(亥安段丘)로 움푹하게 들어간 분지(盆地)이다.
1951년 8월 31일, 미 해병 1사단과 우리 국군해병 제1연대는 합동작전으로 펀치볼을 차지하고 있던 북한군을 공격하는데 워낙 주변에 험준한 고지(高地)가 많았고, 고지마다 방어진을 설치하고 완강히 저항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9월 20일 마침내 펀치볼을 함락하는데 성공했다니 꼭 20일간의 혈투였다.
당시 UN군은 해안면(亥安面) 일대가 마치 화채그릇(Punch Bowl)처럼 생겼다 하며 펀치볼이라고 불렀는데 주위가 모두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高地)로 이루어져 있다. 고지전이 중심이 되었던 6.25 전투에서 너무나 유명한 피의 능선 전투, 도솔산 전투, 가칠봉 전투 등 치열했던 전투가 이 부근에서 이루어졌다.
이 전투에서 우리 국군해병은 가장 중요한 고지였던 1026고지(모택동고지)와 924고지(김일성고지)를 점령하는 쾌거를 올린다.
이곳에 가면 펀치볼지구 전투전적비, 제4땅굴, 을지전망대, 전쟁기념관 등을 정비해 놓아서 수많은 안보여행자들이 다녀가면서 순국선열(殉國先烈)들의 고귀한 희생을 추모(追慕)하는 곳이다.
비무장(非武裝) 지대
양구군은 직접 휴전선과 접하는 곳이다 보니 북쪽은 철책이 높다랗게 쳐져있고 곳곳에 초소(哨所)가 세워져 있어 국군들이 수시로 순찰을 도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대남방송과 대북방송이 시끄럽다.
철책이 굉장히 높고 전기도 통하게 하여 함부로 다가갔다가는 감전되기도 쉬운데 이따금 북한병사가 이 철조망을 넘어 남쪽으로 귀순하는 경우도 있다니 놀랍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남북한(南北韓)의 경계가 북위 38도선으로 ‘삼팔선’이라고 했는데 6.25동란 중 휴전협정이 맺어지면서 당시 전쟁이 진행 중인 곳에서 멈추고 그곳을 경계로 한 것이 휴전선(休戰線)으로 동쪽은 북위 38도선 보다 위쪽으로, 서쪽은 38도선 보다 남쪽으로 그어져 직선(直線)이던 것이 곡선(曲線)이 되었다.
현재 휴전선(군사분계선)이 그어져있고 휴전선에서 남북으로 2km에 북방한계선과 남방한계선이 그어져 철책이 세워졌는데 그 안쪽이 비무장지대(DMZ-Demilitarized Zone)이다.
비무장지대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음은 물론, 간혹 양측의 양해 하에 들어갈 일이 있으면 무장(武裝)을 할 수 없으므로 비무장지대라는 명칭이 붙었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동물의 천국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 대성동(臺城洞)마을과 북한의 가장동마을은 양측의 양해 하에 비무장지대 안에 마을을 인정하여 유일한 비무장지구(非武裝地區) 내의 마을이 되었다.
물론 이곳을 들어가려면 군인들이 지키고 있어 철저한 신분검사를 받아야 허가증이 발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