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짜인가? 5-진짜는 방향이 다르다. (약4:11)
하나님께 우리의 신앙이 진짜로 인정받기를 소원하면서 ‘나는 진짜인가?’ 말씀을 나누고 있어요.
오늘은 다섯 번째, ‘진짜는 방향이 다르다.’를 나누려고 해요.
본문에서 야고보는 “비방하지 말라. 판단하지 말라.” 말씀해요.
두 가지는 같은 것인데, 구분하자면 판단은 ‘마음의 생각’이고 비방은 ‘입술의 말’이죠.
판단은 내적인 결정이고 비방은 외적은 표현긴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사실 남 얘기를 좋아해요.
잠언에서도 이것을 인정해요.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잠18:8) 말씀해요.
여기서 남의 말을 하는 것은 험담과 비방을 말해요.
이것은 맛있는 별식과 같다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미를 냠냠 쩝쩝대며 먹는 것처럼 좋아한다는 것이죠.
실제로 우리는 종종 남의 이야기 하는 것이 좋아서 거기에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해요.
그런데, 그 남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누군가에 대한 비방과 판단이 들어 있다는 안타까움이 있어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요.
그런데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1:1)에게, 고향 땅이 아닌, 딴 세상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들, 하나님의 가치관과 다른 이방 세상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는 그들과 달라야 한다.“고 말씀해요.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아야 한다. 남에게 초점을 맞추고 판단하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않아야 한다. 남에게 잣대를 갖다 대고 비방하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달라야 한다.”고 말씀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야고보는 남에게 초점을 맞추던 습관을 버리고, 이제부터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죠.
★방향을 바꾸라고 하세요.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방하는 일을 이제는 제발 그만두고 자기 자신을 성토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도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큰)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작은)티를 빼리라.”(눅6:42) 말씀하시고, 간음하다 현장에서 걸린 여인을 돌로 치려는 사람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 말씀하셨어요.
믿음의 사람은 다른 사람을 쉽게 재단하거나 평가하거니 비난하지 않아요.
자기 눈의 들보를 보기 때문이죠. 자기 안의 죄를 보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르치려고 하기 보다는 다만 겸손하게 배우려 해요.
목회하면서 일반적인 특징을 발견한 것이 있어요.
육신적으로 나이가 어리든 영적으로 미성숙하든, 이런 사람들은 대게 남 이야기를 많이 해요. 탓하고 흠 짓 내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반대로 육신적으로든, 영적으로든 성숙한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에서 출발해요. 자기 자신을 돌아봐요.
★진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도구로 쓰지 않아요.
★말씀 앞에 남을 세우지 않고 나를 세워요. 나를 먼저 살피고 나를 먼저 판단해요.
★말씀을 남을 판단하는 돋보기로 사용하지 않고 나를 판단하는 현미경으로 사용해요.
★그래서 저는 설교할 때 이 부분을 상당히 조심하려고 애써요.
설교에는 두 기둥이 있는데, 말씀(Text)과 현실(Context)이죠.
현실을 말씀으로 해석하고 진단해요. 말씀으로 현실을 전망해요.
그런데 이 Context(현실, 상황)에는 국외, 국내, 교회, 성도님들이 있어요. 이 Context를 염두에 두고 설교해요.
특별히 설교의 청중인 성도님들과 교회를 분석하고 설교하죠.
★그런데 이 Context에서 절대 빠트리지 않으려고 유의하는 것이 있어요. 설교자 자신이에요. 제 자신이에요.
★성도님들과 교회를 분석하고 설교를 해야 하지만, 동시에 항상 그 청중에 나를 포함시켜요.
★그래야 좀 더 진정성 있고 진실한 설교가 가능해지고 고백적인 설교가 가능하기 때문이에요.
★설교를 듣는 대상에서 나를 빠트리면 “나는 못하지만 여러분은 하세요. 배려와 사랑보다는 명령과 질타”가 되기가 쉽기 때문이에요.
본문을 다시 볼까요.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11,12a절)
가장 먼저 제가 새기고 또 새겨야 할 말씀이에요.
야고보는 ‘판단은 하나님 소관’이라고 하세요. 그럼에도 판단하고 비방한다면, 그것은 곧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일이 된다고 하세요.
하나님이 앉아야 할 자리에 사람인 내가 앉는 무서운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하세요.
사랑하는 여러분, ★나를 향합시다! 나의 내면을 향합시다!
‘하나님 말씀이 내게 주시는 깨달음은 무엇인가? 이 말씀은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가? 이 말씀으로 내 삶을 어떻게 바로 세울 수 있을까? 이 말씀 앞에 나는 괜찮은가? 내가 누구에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돌을 던질 자격이 있을까?’ 생각하며 방향을 내게로 향할 수 있기를 바래요.
그래서 진짜로 성숙되어지기를 축원 드려요.
◆그런데, 야고보는 판단하고 비방하는 일을 그치라 하면서, 대신에 선을 행하라고 하세요. 13절~17절의 말씀이죠.
어떤 상인이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13절) 장담하며 자신을 자랑했어요.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곳의 사람들, 부자로 사는 세상 사람들이 그랬다는 것이죠.
그런데 야고보는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16절) 말씀해요.
이제 너희도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적인 것을 자랑하고 있다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처럼 변했다는 거예요. 그러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17절에서 결론을 말씀하세요.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세상 사람들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라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처럼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방하는 대신에 선을 행하라고 하세요.
★그러면서 14절에서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하세요.
13절 말씀을 보셨죠.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13절)
이들은 “오늘과 내일”이라는 ‘시간’을 자신의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어느 도시로 가겠다.”면서 ‘환경’에 대한 선택권도 자기에게 있다고 확신해요.
그리고,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할 것이라는 ‘기간’ 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도 자신이 정할 수 있다고 확신해요.
“이익을 보리라”며 ‘결과’에 대한 확신도 가졌어요.
★그런데, 야고보는 “아니다. 안개다.” 말씀해요.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왜 갑자기 이 말씀을 하는 걸까요? “그 인생 네 것이 아니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 순간 사라질 수 있다. 이것을 아는 진짜 그리스도인은 인생을 판단하고 비방하는 일로 쓰지 않고 선을 행하는 일로 쓴다.” 이것을 말씀하기 위해서였어요.
★진짜라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선을 행하는 기회로 삼으라 하세요.
★진짜라면 내게 주어진 것을 자랑하기 보다는 선을 행하는 도구로 사용하라고 하세요.
★베드로도 같은 말씀을 했어요.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1:22) 말씀하면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벧전1:24) 말씀해요.
살아 있을 때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는 거예요.
솔로몬이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라.”(잠27:1) 말한 것처럼, 내일 일을 알 수 없으니 “있을 때 잘해”였어요.
★모세가 이런 고백을 해요.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9,10)
인생이 순식간에 다 지나갔다고 말해요.
그리고 이런 기도를 드려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순식간에 날아가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요.
★다윗도 고백해요.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시39:5)
인생이 짧다는 것이죠. 그리고 기도해요.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시39:4)
인생을 뜻있게 살기 위해 기도를 드려요.
★우리에게도 이런 기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내게 있는 것을 자랑하는 미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내게 있는 것으로 선을 행하는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사도 바울이 말씀해요.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6:10)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미 안개 같은 인생, 풀 꽃 같은 인생, 날아가는 인생, 한 뼘 같은 인생의 많은 날을 살아왔어요.
얼마 남지 않았어요. 지금이 기회이죠. 지금이 마지막 남은 기회에요.
이 남은 기회를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사용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 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