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이다. 화기운의 극단이며 열을 품은 물체이다.
삼복더워가 생각나는 순간이니 무덥고 푹푹 찌는 상황이다.
납음天上火 천상화는 산하를 온난하게 하며 우주에서 비추는 불이다
무오년은 월주도 무오월이 된다.월에 따라 운수변동이 크므로 무년과 계년은 유념해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강한 화기로 수기를 잘사요하여 해군이 강화되고 바다로 향하여 각국간 교류도 많은 편이다.
화기운이 강한 양상원갑자엔 전쟁이 종료되고 무인이 집권한다
음상원갑자엔 백제,고려가 화북세력 한군현,거란족과 싸운다
중간상태인 양중원갑자엔 지진이나고 분열이 난다.
음중원갑자엔 바다건너 전쟁이 많았고
화기운이 덜한 양하원갑자엔 수나라,네덜란드,공손씨 등 세력이 격퇴당함.
음하원갑자엔 무오사화,무굴제국망하는 등 정신을 중시하는 세력이 퇴색함.
체인 무오일주 다방면 유명인 많다. 김우중,가수 설운도,축구 김병지,태권도 문대성,축구 김남일,발레강수진,아나운서 황수경이다.
자신에게 철저하고 자기가 하는 일에 책임감이 강하다.부지런하다
하원갑자
2038년 독일에서 석탄 화력 발전소가 2038년 모두 퇴출 된다
유닉스 시간에 32비트 정수형을 쓰는 모든 컴퓨터의 시계가 UTC 0 기준으로 2038년 1월 19일 3시 14분 7초[1](대한민국 표준시 UTC+9 기준으로 2038년 1월 19일 12시 14분 7초)가 지나는 순간 음수값이 적용돼 1901년 12월 13일 20시 45분 52초나, 자동으로 오류를 감지하고 초기값인 0, 즉 1970년 1월 1일 0시 0분 0초로 돌아가게 되는 버그를 칭한다. 영어론 Year 2038 problem, Unix Millennium bug 등으로 표기한다.
60년전 한국에선 지속되는 고도성장으로 민간경제는 크게 나아졌는데 반해 물가고와 심각한 생필품품귀현상이 발생하고 부가가치세 신설로 불만이 많아져 12월에 총선에서 부가세철폐를 내세운 신민당에 민주공화당이 참패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입지가 크게 악화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여파는 2차 오일쇼크와 겹쳐서 부마항쟁, 10.26 사태로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1678년 허적에 의해 조선에서 상평통보를 주조하여 사용하다.
루이14세 제3차 영국-네덜란드 전쟁 때에도 네덜란드에 침입하여(1672년~1678년) 많은 영토를 빼앗았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네덜란드를 지원한 독일로부터 알자스 로렌 지방도 획득하였다.
60년전 30년전쟁시작 , 독일이 약해짐
프로이센 제후가 적손없이 죽자 사위인 브라덴부르크 지그스문트제후가 승계.
40년전 일본에서 시마바라의 난이 진압되었다.
나가사키의 데지마에서 포르투갈 상인이 추방되고 네덜란드 상인이 일본과의 무역을 독점하게 된다
30년전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어 30년 전쟁이 막을 내렸다.
20년전 덴마크-노르웨이와 스웨덴 사이에 로스킬레 조약이 맺어졌다.
네덜란드가 실론에 거점을 마련하여, 포르투갈과 대결하게 되었다.
20년후 탕평책을 지시함 11월 노산대군의 묘호를 단종으로 추봉함
30년후 릴 공성전 발발.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에 국력이 소모된 에스파냐가 북아프리카의 오랑을 일시적으로 포기한다
40년후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오스트리아가 위트레흐트 조약의 규정을 위반하는 에스파냐의 행동을 제지하기 위하여 사국동맹을 맺었다.
베네치아와 오스만 제국의 전쟁을 종결하기 위하여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 베네치아가 파사로비츠 조약을 맺었다.
50년후 덴마크 태생의 러시아 제국의 항해가 베링이 베링 해협을 항해하였다.
스코틀랜드 사람 체임버스가 체임버스백과사전을 간행하였다.
조선에서 운휴 손녀사위 이인좌의 난이 발생하였다
60년후 루이15세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 1733~38년)은 빈 조약으로 마무리되었다(1738년). 그 조약에 의해 마리아 테레지아와 로렌 공 프랑수아의 결혼이 성립되었고 로렌 지방이 프랑스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이후는 불리한 결과가많음.
1318년파우가르트 전투에서 노르만 - 잉글랜드군대가 에드워드 브루스를 전사시키며 스코틀랜드 - 아일랜드 군을 격파하였다.
고려에서 불법점유한 토지, 노비를 원 주인에게 환원시키기 위한 관청인 찰리변위도감이 설치되었다.
60년전 훌라구의 몽골군이 바그다드를 함락하여 무차별적인 살인과 강간, 약탈을 자행하였고 지혜의 집이 소실되었다. 아바스 왕조는 멸망.
3월 - 몽케 칸의 몽골 제국군이 성도를 함락하였다
베트남의 쩐 왕조가 몽골 제국에 복속하였다.
최의의 죽음으로 최씨정권이 몰락하였다.
킵차크 한국군이 리투아니아를 공격하였다.
1차 제노바 - 베네치아 전쟁 발발, 아코 해전
아시아 화산폭발여파로 기후 갑자기 한랭
40년전 탈리아코초 전투에서 앙주 공 샤를이 콘라딘의 군대를 대파하고 시칠리아의 왕 카를로 1세로 즉위하였다. 이로써 앙주 가문이 시칠리아를 지배하게 되었다. 앙주 제국의 성립.
카를로 1세에 의해 콘라딘이 처형되며 호엔슈타우펜 왕조가 몰락하였다.
30년전 쩐흥다오가 이끄는 베트남 군이 2차 백등강 전투에서 원나라 군대를 대파하여 후퇴시켰다
20년전 - 괼하임 전투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알브레히트 1세가 독일의 왕인 나사우 가문의 아돌프를 전사시켰다. 본격적인 합스가문의 재패는 130년이후.
20년후 오스만 제국이 니코메디아를 점령하다
30년후 백년 전쟁을 치르던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흑사병의 여파로 사실상 휴전하였다. (~1355년)
40년후소작농들이 자크리의 반란을 일으켰고 에티엔 마르켈의 파리 포위군과 동맹하였다
50년후 주원장 명건국.기후 한랭해짐
60년후 로마에서 교황 우르바노 6세가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나 프랑스의 추기경들이 이를 무효라고 선언하며 대립교황인 클레멘스 7세를 선출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로마와 아비뇽에 각각 한 명의 별개의 교황이 존재하게 된 서방 분열이 일어났다. 이 분열은 1418년 콘스탄츠 공의회에 의해서 정상화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제노바와 베네치아 간의 4차 제노바 전쟁이 발발하였다.
958년 고려 과거제 실시
958년 후주 南唐의 항복을 받고 화평을 맺음.
하랄이 덴마크왕 즉위
60년전 샤를 3세가 서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40년전 태봉의 시중인 왕건이 역성혁명을 일으켜서 태봉의 왕 궁예를 처단하고, 태봉을 멸망시켰다.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고려의 초대 왕이 되었다
30년전
20년전 발해의 유민 열만화가 서경압록부에서 거란에 대항해 정안국을 건국했다.
거란이 현 베이징에 남경 석진부를 설치하였다.
탐라국이 고려에 합병되었다
20년후 (新羅) 56대 왕 경순왕(敬順王)(음력 4월 4일)사망
30년후키예프 공국의 블라디미르 대공이 세례를 받고 그리스 정교를 도입했다.
알 만수르가 후우마이야 왕조 군대를 이끌고 자모라를 점령하고 기독교 수도원들을 파괴하였다. 이어서 그는 레온을 점령, 쑥대밭으로 만든다. 이에 레온 왕실은 칸타브리아 산중으로 숨어든다
40년후 후우마이야 왕조, 레온 왕국을 침공하여 자모라의 요새들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50년후 갈리시아 왕국, 다시 한번 레온 왕국의 왕위를 차지하며 동군연합이 결성된다. (포르투갈 - 갈리시아 - 레온 - 카스티야)
페샤와르 전투에서 마흐무드 지휘의 가즈니 왕조 군대가 힌두 연합군을 격파하였다
60년후 비잔틴 제국 군대가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마지막 저항군 지도자를 생포하였다. (불가리아의 멸망)
8월 14일 - 폴란드 왕국의 볼레스와프가 페체네그로부터 키예프의 항복을 받고 공국을 재편하였다.
10월 - 2차 칸나이 전투 비잔틴 군대가 노르만 - 롬바르드 군대에 대승을 거두었다.
12월 - 요나라 군대가 고려를 침공하며 3차 여요 전쟁이 발발하였다.
598년 고구려, 수나라와 전쟁하다. 장마가 닥쳐 수나라의 30만 대군은 끝내 5만 명의 정예병을 이끈 고구려의 장수인 병마원수강이식의 전략에 말려들어 결국 대패하여 병력을 대부분 잃고 퇴각하고 만다.백제는 혜왕즉위,일본백제조신의 집안에서는 그를 시조로 받든다
60년전 538년백제가 사비로 천도하다.백제가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다.일본에 불교 전함
3월 - 동로마 제국, 로마 근교 밀비우스 다리에서 동고트군을 격파하다
40년전 힐데베르트 1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프랑크 왕국의 영토가 그의 형제인 클로타르 1세에게 돌아가게 되었고, 클로타르 1세가 프랑크 왕국을 재통일하게 된다.
아바르족과 슬라브족이 발칸 반도의 판노니아 일대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발호로 인하여 기존에 이 지방을 차지하고 있었던 랑고바르드족이 북부 이탈리아로 점차 이동하게 된다.
558년 세워진 아바르제국은 훈족의 멸망 후에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의 유목민 ‘아바르 족’이 헝가리의 ‘판노니아’(Pannonia) 평원지대에 세운 나라입니다.
30년전 전해 게피드족을 몰살시킨 후 색슨,불가르 등 여러 야만족을 불러모아 랑고바르드족이 전염병으로 인구대부분이 죽어간 북부 이탈리아에 랑고바르드 왕국을 세웠다.
황초령,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졌다.
양견부친 양충사망
20년전신라가 백제의 알야산성을 공격하였다.
신라의 진지왕이 중국의 진(육조)에 사신을 보내 수교하였다.
10년전 바흐람 추빈이 이끄는 1만 2천명의 사산조 페르시아군이 돌궐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북부 이탈리아에서 랑고바르드족의 군대가 군트람이 이끄는 부르군트 왕국의 침략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20년후 수나라 망하고 당이 건국됨,고구려 영류왕 즉위
30년후 아르다시르 3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메디나의 무함마드와 메카의 쿠라이시족 사이에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후다이비야 협정)
서돌궐이 사산조 페르시아의 트빌리시를 약탈하였다
40년후 이슬람 제국이 비잔티움 제국의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아나톨리아 지방과 아르메니아를 공격하였다
50년후
60년후 658년, 659년(의자왕 19년) 4월에는 다시 신라의 독산성과 동잠성을 쳐들어오는 등 맹렬하게 밀어붙였다.대야성함락
238년 동천왕, 위나라 군대를 도와 공손씨 세력을 멸망시킴.
왜 비미호 여왕 위에 조공을 바침
선비의 등장, 막호발 위나라에 여러 부를 이끌고 요서에 들어와 살았다가 238년에 사마의가 이끄는 위나라의 군사와 고구려에서 파견한 연합군이 공손연을 공격할 때 사마의를 따라 종군해 공을 세우면서 솔의왕으로 임명되었으며, 극성 북쪽에서 부를 처음으로 건국해 대릉하 유역을 근거지로 주위의 선비 집단을 거느리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60년전 남흉노 도특약시축취는172년에 이릉약시축취가 죽자 선우에 즉위했고 당시에 선비족에서는 단석괴가 동, 중, 서 등 세 지역의 선비족을 통합하는 등 강성한 세력을 이루고 한나라를 여러 차례 공격했는데, 177년 6월에 한나라에서 하육을 호오환교위, 전안을 파선비중랑장, 장민을 흉노중랑장으로 임명해 세 장수에게 선비족을 공격하게 했고 한나라의 군대가 선비족을 공격하면서 전안이 운중, 하육이 고류 등으로 나아갔다.
도특약시축취는 장민과 함께 안문으로 나아가면서 세 군대가 선비족을 공격했는데, 단석괴가 삼부의 대인에게 명해서 무리들을 거느리고 나아가서 싸우게 하자 맞서 싸웠지만 패했다. 178년에 사망해 호징이 뒤를 이어 선우가 되었다.
40년전 고구려 환도성이 축조되었다.
하비성에서 조조군이 여포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조조는 이 전투의 승리로 서주를 탈환하고 여포, 고순, 진궁을 처형하였다
30년전 볼로가세스 6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왜가 신라를 공격했으나 이음(利音)이 이를 막아내었다.
10월 - 장판 전투
11월 - 적벽 대전
20년전 유비에 맞서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한중으로 향한다.
유비가 한중으로 진격해 양평관에 주둔한다.
백제군이 신라의 장산성을 공격하였으나 패하였다.
- 엘라가발루스가 할머니인 율리아 마이사에 의해 로마 제국의 황제로 추대되었다
20년후 손권아들 손휴 3대황제되다, 권신 손침제거
30년후 미추왕무려 남당에서 정치와 형벌의 잘잘못을 묻다
40년후 백제 군사가 괴곡성을 포위하자 파진찬 정원이 이를 막다
50년후가르다 호에서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가 지휘하는 3만 5천명의 로마 제국군이 게르만족 군대를 격퇴하였다.
나이수스에서 로마 제국이 게르만족 군대를 격퇴하였다.
로마 황제 갈리에누스가 암살당하고,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가 로마 황제가 되었다
60년후 기림 이사금이 신라 15대 왕이 되었다.
백제의 책계왕이 백제를 공격하던 낙랑군과 맥인에 맞서 분전하다가 적병에게 살해당하였다. 이후 분서왕이 백제 10대 왕이 되었다.
갈레리우스가 사산조 페르시아를 다시 쳐서 수도 크테시폰을 점령했다
BC 123년 가이우스 그라쿠스 호민관에 취임, 형의 유지를 이어 개혁 실시
BC 123년, 위청이 정양(定襄)에서 출발하여 흉노 병사 1만명을 격파
60년전 이탈리아 북부 피사, 파르마에 로마 식민지가 건설되었다.
로마의 정치인 티투스 퀸티우스 플라미니우스가 비티니아에 있던 한니발 바르카 장군의 항복을 요구하였고 비티니아의 왕인 프루시아스 1세마저도 로마의 이같은 행위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이자 한니발은 유언을 남기고 반지에 숨겨두었던 독으로 자살하였다
60년후 셀레우코스 왕국은 시리아 지역으로 축소되어 나중에 폼페이우스(Pompeius)의 승리로 기원전 63년에는 왕국 자체가 로마의 영토로 병합되었다.
테미스토클레스기원전 483년에는 라우레이온 은광산(銀鑛山)에서 나오는 수익을 군함건조에 충당하도록 민회(民會)를 설득, 이에 반대하는 아리스테이데스를 도편추방하고, 200척의 3단노선(三段櫓船)을 보유하게 하여 아테네를 그리스 제일의 해군국으로 만들었다.
>BC 483 년에 석가가 죽자 ,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승단을 세웠고 , 곧이어 불교 철학은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 중국 , 일본 및 동남아시아에는 인도에서보다 더 많은 추종자들을 낳았다
크세르크세스 1세BC 483년 이후로는 아토스곶[岬]의 지협(地峽)에 운하를 만들고 또 다르다넬스해협에 선교(船橋)를 가설하는 등 그리스원정(제3차 페르시아전쟁) 준비를 하였다
BC 483년 남부 아티카에서 풍부한 은 광맥이 발견되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이 뜻밖의 횡재를 강력한 전함 구축에 사용해야 한다고 아테네인들을 설득했다
기자조선때 문혜왕원년(BC843년)에 윤환법을 세워 빈민구제
BC843년 아시리아왕 샬마네세르 3세의 비문에 보이는 파르수아(Parsua)가 최초의 페르시아의 기록이다.
이집트 파라오의 심한 학대로 모세에 의한 히브리 民族의 이집트 탈출(BC 1203년경)이 감행된다.
람세스2세의 13번째 아들인 메렌프타는 BC1203년부터 1213년까지 10년간 이집트를 통치한 왕으로 리비아와 해적들로부터 영토를 지켜왔다
하원갑자
1858년 5월 11일 - 미네소타 주가 32번째 미국의 주가 됨
6월 27일 톈진조약을 맺다.
7월 29일 - 미국과 일본이 미·일 수호 통상조약을 맺고 1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사다 사망
양이에 반대하는 웅번들에게 인세이의 대옥이라 하여 이이 나오스케 주도 하의 대규모 숙청이 이루어지짐
조선은 철종 역시 실권은 안동 김씨에게 있었다
9월 8일 - 무굴 제국 멸망. 이후 인도는 영국 식민지로 편입되다.
60년전 나폴레옹이 카이로를 점령.
8월 1일 - 호레이쇼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이 나폴레옹 원정대를 수송해 온 프랑스 해군을 격파. 이로써 나폴레옹 원정대는 이집트에 발이 묶이게 된다
40년전 프랑스군이 바티칸을 점령.
- 이베리아 반도 전쟁: 마드리드의 시민들이 프랑스군에 대항하여 봉기를 일으킴. 다음날 프랑스군에 의한 대량 학살이 자행. - 마흐무트 2세가 오스만 제국의 술탄으로 즉위하였다.
- 틸지트 강화의 뒷처리를 위해 에르푸르트에서 나폴레옹과 알렉산데르 1세가 회담을 갖다.
30년전 카스퍼 하우저가 뉘른베르크에서 최초로 발견되다.
시몬 볼리바르가 페루에 선전포고.
브라질 제국과 아르헨티나가 우루과이의 독립을 승인.
20년전 니카라과가 독립을 선언.
시베리아 영하76도 기록
보통선거를 요구하는 차티스트 운동이 영국에서 거세지다. 인민헌장이 발표되다.
- 미국 정부에 의해 체로키 족이 강제로 이주당하다. (눈물의 길)
20년후 러시아-터키 분쟁의 조정을 위한 베를린 회의 (~7.13).
10월 15일 - 미국 에디슨 전기 회사(현재의 제네럴 일렉트릭)가 영업을 시작하다.
10월 21일 - 비스마르크, 사회주의자 탄압법 의회 통과.
30년후 벨기에 스파에서 세계 최초의 미인대회가 열렸다.
- 루이스 르 프린스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무성 영화 《Roundhay Garden Scene》가 개봉했다.
40년후 대한제국에서 독립협회가 주관한 만민공동회가 최초로 열렸다.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을 호시탐탐 노리는 와중에서 그나마 가장 자유로운 해였다.
50년후미국에서 재미 한국인 전명운, 장인환 두 열사가 친일파 미국 정치인 더럼 스티븐스를 저격했던 해로 잘 알려져 있었다. 오스만 제국에선 청년 장교들의 혁명으로 헌법정치가 부활하였다.
60년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조인되었다.
: 독일 제국 최후의 공세인 루덴도르프 공세가 시작되었다.
: 쑨원이 1차 군정부에서 사실상 축출되면서 1차 호법운동 종결.
1차대전끝.
연해주 아시아최초 사회주의 정당 한인사회당 창당.이동휘 위원장.군사부장 유동열.김립은 잡지 자유종출간하나 연해주 백위파정권 들어서자 김알렉산드라 총살당함.
국내엔 여운형.김규식 등이 신한청년당 조직.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 파견키로함.
대한국민회의도 이승만.정한경을 파견키로함.
1498년 무오사화(戊午士禍)는 1498년 음력 7월 유자광과 연산군이 김일손 등의 신진세력인 사림파를 제거한 사화이다
프랑스 루이12세 즉위 샤를 6세의 동생인 루이 1세 드 발루아의 손자이며, 아쟁쿠르 전투 이후 잉글랜드에서 25년을 보낸 샤를 도를레앙의 아들이다.
60년전 과학자 장영실이 자동 물시계 옥루를 만들었다.
최치운 등이 원나라 왕여가 편찬한 무원록에 주해를 더하고 음훈을 붙인 의서인 신주무원록을 편찬하였다.
페루에서 잉카 제국이 건국된다.
40년전 마티아스 코르비누스가 헝가리의 국왕에 즉위하였다.
- 포르투갈의 아폰수 5세가 북아프리카의 Ksar es-Seghir를 정복하였다.
30년전 세조사망 예종즉위
20년전줄리아노 데 메디치 : 이탈리아의 정치가, 로렌초 데 메디치의 동생사망
20년후 조광조 소격서의 폐지를 주장하여 관철시키고 유학자 정치를 구현하려 함으로써 유학과 문치에 뜻을 둔 중종에게 각별한 대우를 받았다. 특히 동부승지를 거쳐 1518년 음력 11월 사헌부 대사헌이 되었다
30년후나르바에스가 카리브 해 북안 지역 (텍사스 해안) 을 탐사한다.
말레이에서 조호르 술탄국이 성립되었다
40년후신성 동맹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 프레베자 해전이 벌어져 오스만 함대가 승리하였고, 이로써 오스만 제국은 동 지중해의 제해권을 얻었다
50년후지그문트 1세 : 폴란드의 국왕 사망
60년후 - 엘리자베스 1세가 영국 여왕으로 즉위하였다.
독일 카를5세.메리여왕사망
1138년 콘라트 3세 초대 호엔슈타우펜 왕조의 독일왕 등극
헝가리 왕국이 보스니아를 정복하였다.
금나라와 남송 당국이 일단 화의에 합의하였다
60년전 송나라의 철강산업이 연간 12만 5천 톤을 생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영국은 19세기에 달성)
런던탑 건설이 시작되었다
멜리히슈타트 전투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가 대립왕 루돌프를 패배시켰다.
50년전 현존 최고의 대학인 볼로냐 대학이 설립되었다.
송나라의 심괄이 당대 과학기술을 집대성한 몽계필담 저술을 완료하였다. (활판 인쇄에 대한 첫 언급)
40년전 보두앵 1세가 우투르메르 (레반트/샴) 의 첫 십자군 국가인 에데사 백작국을 설립하였다.
- 안티오키아 공방전에서 십자군이 안티오크를 함락했다. 안티오크 공국의 수립.
30년전 헝가리 왕국의 콜로만이 슬로바키아의 니트라 공국을 멸하고 합병하였다.
루이 6세가 프랑스의 왕이 되었다
윤관의 고려군이 동북9성을 개척하였다
20년전 보두앵 2세가 예루살렘 왕국의 왕이 되었다.
- 그레고리오 8세가 대립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금나라 군대가 거란의 동경 요양부를 함락, 요동을 정복하였다.
송나라와 금나라가 해상의 맹약을 맺고 요나라에 대한 연합 전선 구축을 합의하였다
10년전 금나라에게 수도 카이펑이 함락된 이후 송나라가 양저우에 임시 정부를 설립하였다.
포르투갈이 실질적인 독립을 얻었다.
대월 리왕조의 신종이 즉위하였다.
10년후
잉글랜드 플랑드르의 십자군이 알제리의 오랑을 함락하였다.
포르투갈의 왕 아폰수 1세가 이슬람 세력이 점령하였던 아브란트스를 정복하였다.
20년후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제 2차 론칼리아 제국 의회를 열어 북 이탈리아의 자치 도시 (코뮌) 들에 대한 자신의 지배권 회수를 주장하였다.
프랑스 공주 마가렛이 출생 후 바로 잉글랜드에서 3살인 헨리 왕자와 약혼하였다. 벡셍 지방이 지참금으로 와서 앙주 - 플랜태저넷 왕조의 강역이 확대된다
30년후 시르쿠의 장기 왕조 군이 예루살렘 왕국군을 격파하였다. 십자군의 해군이 이집트의 타니스를 습격한 후 아말릭 1세의 본대를 호위하며 후퇴하였다.
잉글랜드의 왕자 리처드가 아키텐 공작이 되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 수즈달 공국이 독립하였다
40년후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아를에서 부르고뉴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조지아 국왕 게오르그 3세가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딸 타마르를 공동 통치자로 임명하였다.
피사의 사탑 3층이 완성되며, 탑이 기울기 시작하였다
남송의 유학자 주자가 백록동 서원을 재건하였다
50년후 알폰소 9세가 레온 왕국의 왕이 되었다.
잉글랜드의 리처드가 필리프 2세와 연합하여 아버지 헨리 2세를 공격하였다.
잉글랜드에서 살라딘 세가 부과되었다
60년후 브런즈윅의 오토가 웰프 가문에 의하여 독일의 왕으로 추대되었다.
독일 십자군 대부분이 레반트를 떠났다.
만적의 난이 발발하였다
778년 발해문왕 일본에서도 문왕을 고려왕이라고 표현하고 국서를 보내왔다.
일본은 778년에 사신을 보낼 때에도 송(送)고려객사라고 하여,발해를 고려라고 불렀다
60년전 우마이야 왕조군이 대규모의 병력을 이끌고 트라키아에 상륙하여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하였으나, 성벽의 견고함과 그리스의 불을 통한 해전에서의 선전, 기근과 질병 등이 아랍 군대를 괴롭히면서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략은 진척되지 못하였다.
펠라기우스가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아스투리아스 지방에서 우마이야 왕조의 이베리아 총독이던 무누자의 군대를 몰아내고 기독교 왕국인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세우면서 아스투리아스의 초대 왕이 되었다. (코바동가 전투)
40년전 롬바르드 인들이 동로마의 이탈리아 총독부가 위치한 라벤나를 점령하였으나 동로마-교황 군에게 쫓겨났다.
세바르가 불가리아의 칸이 되었다.
30년전
20년전당나라에 귀순했던 사사명이 13만 병력을 모아 범양에서 당나라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
당나라의 하남 절도사 최광의 휘하의 병력이 사사명이 이끄는 반란군에게 격파당하였다
20년후 신라안정기의 마지막소성왕 즉위
30년후프랑크 왕국 군대가 카탈루냐의 토르토사를 공격하나 후우마이야 왕조 수비대의 항전으로 실패하였다.
이드리시 왕조의 이드리스 2세가 장성하여 볼루빌리스를 떠나 페스에 입성, 친정을 시작하였다
40년후
50년후 시라쿠사에서 아글라브 왕조의 해군이 비잔티움 제국과 베네치아 공화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청해진이 설치되었다
60년후 신라의 상대등으로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김명이 이홍과 함께 군사를 동원하여 반란을 일으켜 희강왕의 근신들을 살해하고 이에 희강왕이 궁중에서 목매어 죽은 김명의 난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김명이 신라의 왕위에 즉위하여 신라 제 44대 왕인 민애왕이 되었다.
웨식스의 왕 에그버트가 이끄는 웨식스군이 바이킹을 격퇴하였다
418년 눌지왕 고구려와 왜에 볼모로 보낸 복호와 미사흔은 418년 박제상을 시켜 돌아오게 함
직지사 설립
60년전 고국원왕 전연에 밀리는 시기
40년전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 하드리아노폴리스 근처에서 고트족 군대가 황제 발렌스가 이끄는 로마 제국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발렌스는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12000명 살상되고 로마군은 약화됨.
30년전 테오도시우스 1세가 발렌티니아누스가 사바 강변에서 마그누스 막시무스의 군대를 격퇴하였다. 이후 막시무스는 도망쳐서 아퀼레이아까지 퇴각한 뒤 항복하였다.
- 마그누스 막시무스가 테오도시우스 1세의 부하들에 의해 처형당했다.
20년전난한이 후연의 황제 모용보를 살해하고 후연 3대 황제가 되었다.
- 난한이 모용성을 따르는 군대에게 살해당하였고 이후 모용성이 후연 제4대 황제가 되었다.
모용덕이 남연을 세우고 남연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10년전 모용희를 죽이면서 후연을 멸망시킨 후 고구려 유민들의 지원으로 북연을 건설했고 408년에 모용희, 부황후를 휘평릉에 장사지내면서 모용희를 소문황제로 추증했으며,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사신을 보내자 고운도 고구려에 사신을 파견했다.
테오도시우스 2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20년후 야즈데게르드 2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사산 제국이 유목 민족에 맞서 캅카스 동부 고갯길인 데르벤트에 거대한 요새를 세웠다
30년후 북위 구겸지사망
40년후 자비 마립간 즉위.
50년후 468년엔 고구려 장수왕이 말갈 1만 병사와 함께 신라 북쪽 변경의 실직성(강원도 삼척시)을 습격해 빼앗았다
서로마 제국의 황제 안테미우스가 군대를 보내 사르데냐를 탈환하고 시칠리아에서 반달족을 축출하였다.
튀니지의 캡본에서 가이세리크가 이끄는 반달족 군대가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의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반달족의 함대가 로마에 상륙, 도시를 약탈하였다
60년후 478년 봄에 해구는 은솔 연신 등의 무리와 더불어 대두성에 웅거하여 모반을 일으켰다. 이는 해씨와 마찬가지로 한성을 기반으로 했던 귀족인 진씨(眞氏) 가문이 삼근왕을 도와 해씨 가문에 대항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해씨가문과 진씨가문의 대립속에 결국 해씨가문이 밀려나면서 해구는 지역 토착세력인 은솔 연신(燕信)과 함께 대두성(大豆城)에서 격렬히 항거했는데, 이때 해구는 삼근왕이 보낸 좌평 진남(眞男)의 군사 2천도 격퇴하였다
58년 Roman–Parthian 전쟁 58–63의 로마 제국과 파르티아 제국 사이에 아르메니아, 두 영역 간의 전투, 로마 네르바 시대
서흉노멸망 제1차 흉노 분열 때 동흉노의 호한야선우가 한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서흉노를 멸함
석탈해2년차.태조왕 6년차
60년전
40년전 신라에 메뚜기떼의 재해가 있어 경주에 가뭄이 들었다. 창고의 곡식을 풀어 굶주린 백성들을 진휼하였다.
30년전다루왕이 백제 2대 왕이 되었다
20년전 알렉산드리아에서 반유대 폭동이 일어났다
10년전 모본왕이 고구려 제 5대 왕이 되었다.
허황옥이 배를 타고 금관국으로 도착하여 왕비가 되었다.
20년후 로마의 아그리콜라 장군이 웨일스 북쪽에 살던 오르도비치 족을 토벌하였다.
파코루스 2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30년후 화제가 후한 제4대 황제가 되었다.
클레멘스 1세가 4대 로마 교황이 되었다
40년후 트라야누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50년후 신라가 비지국, 다벌국, 초팔국을 병합하였다
60년후 고구려의 태조대왕이 예맥과 함께 후한의 현토를 공격하였다
셀레우코스 1세 BC 303년에 이집트에서 시리아 남부지역까지를 포괄하는 프톨레미 왕조(Ptolemaic Kingdom),
아시리아의 아슈르바니팔(BC 669~627 재위)은 BC 663년, 이집트의 깊숙한 도시 테베까지 점령했다. 아시리아의 국력이 절정에 달한 것.
팔레스타인 땅에 또 다시 정착한 유대인들은 BC 1023년에 사울왕과 따윗왕이 예루살렘에 큰 성곽을 쌓고 유대 왕국을 창건
단군세기 에 기록된 BC1743년 오성취루 현상(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일렬로 늘어서는 현상)은 천문학적으로 증명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