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장신논단 제50집 1호 / KCI등재 2018. 04
칭의에서 정의로
- 이신칭의에 대한 사회윤리적 접근 -
성 신 형 (숭실대학교 베어드학부대학 조교수, 윤리학)
Ⅰ. 들어가는 말
Ⅱ. 바울의 이신칭의
Ⅲ. 루터의 이신칭의
Ⅳ. 칭의에서 정의로
Ⅴ. 나가는 말
<국문 초록>
본 논문은 ‘이신칭의’에 대한 사회윤리적인 해석을 위해서 이신칭의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두 신학자 바울과 루터의 신학과 그 사회윤리적인 의미를 살피고 있다. 우선 바울과 루터가 살았던 시대의 배경을 살피고, 바울과 루터가 이신칭의 교리를 주장했던 그 사회적인 의미를 살핀다. 아울러서 이신칭의의 사회윤리적인 함의를 논증하고 있다. 우선 바울의 시대의 칭의는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분쟁 속에서 만들어진 기독교신앙의 원리로, 이것은 단순한 교리적인 차원의 의미가 아니라, 그 타인을 배제하지 않고 포용한다는 사회윤리적인 함의가 있다. 아울러서 루터가 자신의 시대에 이신칭의를 주장하게 된 배경은 잘못된 교황권에 저항하면서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지키고 양심에 입각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논증 속에서 본 논문은 바울의 칭의론에서 발견되는 사회윤리적인 의미는 타인을 배제하지 않고 사랑으로 포용하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함을 밝히고 있으며, 루터의 칭의론에서는 양심의 자유를 따르면서 세계를 위해서 봉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논증은 이신칭의가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얻기 위한 단순한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따르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주제어*
이신칭의, 바울, 루터, 배제와 포용, 양심의 자유, 정의
Ⅰ. 들어가는 말 *
1999 년 10 월 31 일 독일 아우구스부르크에서 루터교세계교회연맹과 가톨릭 교회는 칭의 교리에 관한 합동 선언문( Joint Declaration on the Doctrine of Justi- fication )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문이 발표된 후에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는 선언 문에 대한 의의를 설명하면서, 기독교(가톨릭교회와 개신교)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다시 한번 확인한 것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 선언은 비록 서로가 완전하게 만족할 만한 일치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서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장이 열린 것으로 1960 년 제 2 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결의한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와의 에큐메니컬 대화를 시작한 이래로 가장 큰 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 이와 같이 칭의는 기독교가 함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핵심 교리이다.
그러나 칭의의 중요성에 비해서 칭의의 윤리적 의미에 대해서는 깊게 다루어 지지 않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가톨릭교회에서는 20 세기 들어서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하였고, 개혁교회에서는 오랜 동안 칭의에 대해서 다루어왔지만,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칭의의 교리를 ‘믿음’에 대해서만 강조하고 ‘의’의 문제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다루지 못했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의’의 문제에 깊은 관 심을 가지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한국교회가 ‘의’의 문제에 대해서 소홀하게 여긴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 배경들이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믿음’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의’의 문제를 소홀하게 여겨온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한편, 이에 대한 반대로 ‘의’ 혹은 ‘행위’에 대해서 지나치게 강조하고 ‘믿음’을 약화시키는 경향도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윤리와 교리의 갈등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현상을 둘의 단순한 갈등으로 보는 것은 정확한 분석이라고 볼 수 없다. 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칭의의 논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신학적·윤리적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신학과 윤리가 서로 상반된 것이 아니라, 신학적 깨달음과 윤리적 행동은 기독교인들이 함께 추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최근 종교개혁 500 주년을 맞이하면서 루터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루터의 윤리에 대한 연구 중에서 두 왕국론에 대한 해석, 2) 덕윤리를 중심으로 한 칭의론 해석 3) 등이 사회윤리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연구의 토대를 바탕으로, 본 연구는 이신칭의 교리의 사회윤리적인 접근을 시도하려고 한다. 본 연구는 이신칭의를 중점적으로 주장했던 바울과 루터의 상황과 그 시대의 사회적인 배경을 살핀 후에, 그 신학적인 의미를 고찰하고자 한다. 이러한 고찰을 바탕으로 사회윤리적인 함의를 이끌어내려고 한다. 특히 ‘하나님의 의’의 개념과 ‘믿음’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면서, 칭의의 사회윤리적인 의미를 ‘정의’를 중심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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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2017 년 11 월 25 일에 개최된 한국기독교사회윤리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임을 밝힌다.
1) 박일영, “루터의 칭의론의 중심성과 그 현대적 의미,” 연세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서울: 연세대학교, 2002 ), 1-5 .
2) 이창호, “‘율법과 복음’론과 ‘두정부’론의 상관성과 사회윤리적 함의 탐색 - 루터와 바르트를 중심으로,” 『기독교사회윤리』 34 ( 2016. 4 ), 139-74 .
3) 이근식, “루터의 덕의 윤리에 관한 연구: 루터의 칭의론을 중심으로,” 『기독교사회윤리』 35 ( 2016. 8 ), 39-66 .
Ⅱ. 바울의 이신칭의
처음 예루살렘에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만들었던 공동체(교회)는 유대교의 한 분파로 여겨졌다. 이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역사 속에서 기다려오던 메시아를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메시아를 만났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다른 유대인들의 눈에 이들은 종교적 광신도에 불과했다. 아주 강력한 규율로 서로를 묶고 있었으며, 심지어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도 이 공동체에 구성원이 될 수 있었다. 이들에게는 커다란 딜레마가 있었는데, 그것은 이방인들이 이 공동체에 구성원이 되려면 유대인들의 율법, 특히 할례의식을 행하는 일과 경제적으로 평등한 일원이 되는 것이었다. 예수에 대한 강력한 헌신과 곧 임하게 될 예수의 재림(종말)에 대한 믿음이 이들에게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고 성공적인 공동체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이 공동체의 성공은 유대종 교지도자들을 긴장하게 만들었고, 결국 이들은 유대교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결국 심한 박해와 함께 이 공동체가 처음 세워졌던 예루살렘의 공동체 구성원들은 흩어지게 되고 말았다. 사마리아, 페니키아, 시프리아, 시리아 등 여러 곳으로 흩어진 이들은 안티오키아(안디옥)에서 다시 공동체를 재정비하게 되었다. 이제 이들은 자신의 믿음을 전하는 선교적 공동체로 자신들의 공동체를 새롭게 바꾸었다. 이 일을 위해서 가장 헌신적으로 앞장섰던 사람이 바울과 바나바였다. 이 둘은 당시 그들의 삶의 자리였던 소아시아에서부터 로마에 이르기까지 왕성하게 다니면서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증거하였고, 이들이 전한 것을 기초로 곳곳에 많은 새로운 공동체들이 생겨났다. 4)
학자들에 따라서 이 지역에 교회들이 세워진 순서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데살로니가 교회와 갈라디아 교회가 비교적 초장기에 만들어졌으며, 이후 로마를 비롯한 여러 다른 지역에 점차로 교회가 세워졌다. 이들 교회들을 위해서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내용은 매우 간단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처형 당하도록 내어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었다. 바울의 전체 서신에서 이 부분이 일관되게 드러난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바울복음의 핵심을 ‘이 신칭의’교리라고 생각하지만, 이신칭의는 바울복음의 핵심내용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교리가 오늘날 복음의 핵심으로 여겨지게 된 것은 교회의 역사, 특히 종교 개혁과 그 이후 개혁교회가 발전되는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 5)
바울의 이신칭의는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 주로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와 로마서가 기록되던 시대의 사회적인 상황은 사뭇 다르다. 이 두 서신서에 동일하게 이신칭의가 강조되었지만, 그 사회적인 상황은 서로 다르게 전개되 고 있다. 우선 갈라디아서가 기록되던 당시에 사회적인 상황은 선교가 왕성하게 전개되면서 당시의 교회의 필요에 따라서 이신칭의를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 유대인들이 아닌 비유대인(이방인들)6) 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서 갈라디아서가 기록되었다. 반면 로마서는 클라우디우스( AD 41-54 , 성서에서는 글라우디오라고 함) 황제가 49 년경에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는 명령을 내린 후에 기록되었다. 이 명령에 따라서 로마에 세워진 교회 안에 유대인들은 추방되었고, 비유대인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운영되다가 클라우디우스가 죽은 이후 유대인들은 다시 로마로 돌아왔다. 다시 로마로 돌아온 유대인들과 계속해서 로마에 있었던 비유대인 기독교인들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 상황을 보면서, 바울은 로마교회에 편지를 썼다. 이런 상황을 통해서 볼 때에 로마서는 로마에 있는 교회에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관계를 고려하면서 기록된 것이었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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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Michel Clevenot, Les Hommes de la Fraternite , 이오갑 옮김,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1 세기 그리스도교의 역사』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3 ), 109-23 .
5)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자세하게 언급하려고 한다. 그런데 본 논문은 이신칭의의 역사를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루터와 종교개혁가들이 어떻게 이신칭의를 발전시켜갔 는가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언급하기 보다는 루터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어서 언급하도록 하겠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서충원의 박사학위논문 “바울의 칭의교리에 대한 종교개혁적 관 점과 새 관점의 논쟁 연구” (숭실대학교대학원, 2010 )를 참고하라.
6) 이방인이라는 표현이 맞는 표현인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이방인이라는 표현이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을 배제하는 어감이 크다. 차라리 비유대인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본 논문에서 이후에는 이방인이라는 용어 대신 비유대인 이라고 쓰도록 하겠다.
7) 이한수, 『바울 사도가 쓴 러브레터』 (서울: 솔로몬, 2013 ), 240-41 . 그리고 Michael J. Gor- man, Apostle of the Crucified Lord: A Theological Introduction to Paul and His Letter , 소기천 외 역, 『신학적 방법을 적용한 새로운 바울연구개론』 (서울: 대한기됵교서회, 2014 ), 430-31 .
이와 같이 바울이 두 편지를 쓰던 당시 상황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같은 이신칭의를 말하는 데에 있어서도 사뭇 다른 뉘앙스를 만들어냈 다. 갈라디아서가 쓰여진 상황을 살펴보면, 갈라디아는 소아시아지역 북부(지금의 터키 남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이곳에 세워진 교회는 바울이 1 차 전도여행 중에 초기에 설립된 교회로 알려져 있다. 바울은 이곳에서 2 년 정도 목회를 하면서 교회를 세웠고, 이후에 다른 지역으로 선교를 떠났다. 문제는 바울이 떠난 이후에 발생했다. 이 교회에 유입된 예루살렘 출신 유대인 설교자들이 비유대인 기독 교인들에게 유대인들의 예식, 특히 할레를 강조하면서 유대인의 의식을 철저하게 지킬 것을 주문하였다. 그러면서 이들은 바울의 복음에 대해서 반박하였고, 바울 의 정통성(사도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비유대인들을 설득하였다. 이에 바울은 유대인 설교자들을 향해서 자신의 정통성에 대해서 변론하였다. 그리고 비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유대인들의 의식을 지키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유대인 설교자들의 주장에 반박하였다. 이 반박을 위한 바울의 논조는 매우 강하게 표현되었다. 바울은 할례는 은혜의 구원을 받는 데에 무익한 것임을 강조 하면서 믿음의 의를 이룰 것을 강조하였고, 기독교인들의 삶은 믿음에 따르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일임을 일깨웠다. 8)
한편 로마교회는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가 아니었다. 로마교회의 설립자는 알려져 있지 않고, 당시 로마로 이주한 유대인기독교인들에 의해서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에 정착한 이들이 로마에 저항하는 세력으로 등장하자, 급기야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유대인들 추방 명령을 내렸고, 교회에는 비유대인 기독교인들만 남게 되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사망 후에 유대인들은 다시 로마로 돌아왔고, 돌아온 유대인 기독교인들과 비유대인 기독교인들 사이에 유대인의 의식을 행하는 문제로 갈등이 빚어졌다. 이런 상황을 바라본 바울은 이들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로마서를 기록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는 갈라디아서와 같은 이신칭의에 대한 강조가 등장하지만, 바울의 논조는 유대인에 대 한 공격보다는 비유대인이 유대교 전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 하면서, 유대인의 대표적인 조상인 아브라함의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논 조는 물론 이신칭의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비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유대교의 전통이 전혀 무의미한 것이 아님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신칭의에 기초해서 유대교적인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더 나아가서 로마서의 강조점은 로마교회에서 발생한 인종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데에 있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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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ichael J. Gorman , 『신학적 방법을 적용한 새로운 바울연구개론』, 247-52 .
9) 위의 책, 429-33 .
두 서신서의 저작 동기와 개인적/사회적 배경의 차이는 이신칭의라는 공통 관심에 대한 차이를 드러낸다. 갈라디아서의 관심은 유대인들의 허위의식을 고발하면서, 유대교전통에서 말하는 의로워지는 길은 율법으로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함을 역설한다. 그러면서 여기에 기독교인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이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길은 성령을 따르는 윤리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반면, 로마서는 유대인과 비유대인들의 갈등 상황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면서, 유대인이나 비유대인 모두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길에 도달할 수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길이다. 갈라디아서에 제기된 유대교 설교자들과 바울의 논쟁의 핵심은 율법, 특히 할례에 대한 문제였다. 바울 이후에 갈라디아 교회에 방문해서 목회를 했던 유대 교 설교자들은 비유대인들에게 할례를 받아야 함을 강조하였는데, 바울은 이에 대해서 심각하게 반대하였다. 이러한 율법의 강조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바울은 믿음을 강조하였다. 바울이 세운 대립은 ‘율법’과 ‘그리스도를 믿음’이었다. 10) 바 울의 논점은 율법에 대한 폐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롭게 되는 길(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은 율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길임을 밝히는 것이 었다. 율법에 대한 강조는 비유대인에게 할례를 강요함으로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을 배제하고, 할례(율법)의 범주 안에 기독교인이 될 자격(의로워지는 기준)을 만듦으로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분명하게 거부하면서 믿음을 강조한다. 믿음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피스티스( πίστις )는 충성 ( faithfulness )을 뜻한다. 이 충성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함을 말하는 것으로, 믿 음(신실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을 얻기 위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의에 빠져서 자유를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유로운 사람으로서 살 아가는 새로운 의(윤리)의 기준을 말하는 것이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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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유승원, “믿음은 곧 행함이어야 한다-이신칭의 논쟁의 역사적 기원,” 『민중과 신학』 6 ( 2001. 6 ), 31-35 .
11) 위의 글, 37-41 . 김덕기, 『바울의 문화신학과 정치윤리』 (대전: 도서출판 이화, 2007 ), 380 . 폴 틸리히는 그의 책 『문화의 신학』과 『조직신학』 3 권에서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종교 적인 의나, 사회 제도적인 차원의 윤리적인 기준을 따르면서 인간을 자유롭지 못하게 속박 하는 ‘도덕주의’를 비판하면서 윤리란 ‘도덕주의’를 극복하고 신율을 따르는 ‘도덕성’을 회복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믿음과 윤리의 관계에 잘 적용된다.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바울의 논쟁은 의(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와 믿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함/충성)의 윤리적인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이러한 상 관관계는 당시의 사회문화적인 상황과 연결되어 있다. 갈라디아의 비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의 전통, 그리스철학과 문화, 그리고 로마의 지배 아래에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야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들은 의롭게 되는 일과 그리스도를 믿음에 대해서 혼동하고 있었다. 유대교 전통에서의 의의 개념은 하나님의 의와 연결되는 것으로 율법의 준수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완전한 율법의 준수로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 전통에서의 의의 개념은 헬레니즘의 ‘의로움’ 모티브와 연결되는 것으로 소크라테스와 같은 철학자의 의로운 죽음과 그에 대한 보상의 개념에서 다루어진다. 이러한 의로움의 모티브가 기독교의 예수의 의로운 죽음의 모티브와 연결된다. 로마 제국에서 강조한 충성은 사회적인 유대관계, 즉 연대성과 연결된다.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과 비유대인 간의 새로운 연대성을 형성하고 유대관계를 만들어내는 기본적인 토대가 이러한 믿음(충성, πίστις )에 대한 개념에 있다. 12) 이런 상황 속에서 갈라디아교회에 온 유대인 기독교 설교자들은 유대적인 전통(특히 할례)을 따를 것을 요구하였고, 이 속에서 갈라디아교회의 비유대인 기독교인들은 혼란스러 워하였다. 의롭게 되는 삶을 살 것(유대교적인 전통을 따를 것)과 새롭게 형성된 예수 공동체(교회)를 위해서 예수에 대해서 충성할 것을 요구받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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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김덕기, 『바울의 문화신학과 정치윤리』 , 380-83 .
이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의롭게 되는 길은 율법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삶을 사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새로운 공동체(교회) 의 연대성을 확립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길은 삶을 억압하는 율법을 따 르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 자유를 선택하고, 그 자유에 따라서 그리스도에게 충성 하는 삶이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조건은 자유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자유를 실천하는 삶은 성령을 따르는 삶이다. 성령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따르라고 하신 삶의 윤리에 기초해서 살아가면서 성령의 열매(갈라디아서 5 장)를 맺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율법의 경직성을 넘어서 그리스도의 법을 따름으로 ‘서로 짐을 져주는(갈라디아서 6 장 2 절)’ 연대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13) 이와 같이 바울은 그리스도에 충성하는 새로운 삶의 윤리를 주장하고 있다. 로마서에서 드러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길(칭의)에 대한 바울의 논지는 갈라디아서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대로 당시 로마교회의 상황에 비추어볼 때 조금 더 논리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다. 갈라디아서의 논지가 유대교 기독교인들이 주장한 율법주의에 대한 반론이었다면, 로마서의 핵 심 논지는 비유대교 기독교인과 유대교 기독교인들 사이의 화해와 연대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보여준 하나님의 의를 따르는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믿음)에 대해서 다시 강조하 고 있다. 바울은 로마서 3 장에서 율법과 율법의 행위를 구분하면서 율법의 행위를 따르는 것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역설하고 있다. 여기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바울은 율법(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법)에 대해서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율법을 완성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의 행위임을 바울은 주장하고 있다. 믿음은 율법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다. 결국 믿음이란 삶의 문제 즉 윤리의 문제임을 바울은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14)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는 율법에 대해서 비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는 믿음에 대해서 강조하면서 서로 십자가를 지는 은혜와 환 대의 공동체를 만들 것을 바울은 역설하고 있다(로마서 14 장). 율법은 자신의 의 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고, 율법의 정신은 유대인이나 비유대인 모두를 사랑으로 환대하는 윤리적인 삶을 따르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은 십자가를 함께 지면서 서로 환대하고 함께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로마서 15 장). 15) 이것은 당시 로마에서 사람과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을 넘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보편적인 공동체이며, 하나님 앞에서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죄인)이 모여서 만드는 은혜의 공동체이며, 더 이상 차별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환대의 공동체이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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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위의 책, 392-97 .
14) 위의 책, 354-55 .
15) Michael J. Gorman , 『신학적 방법을 적용한 새로운 바울연구개론』, 502-503 .
16) 김학철, 『 사도 바울의 새 시대의 윤리-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기쁨』 ( 파주: 문학동네,2016 ), 198-203 .
이상에서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의 사회적인 상황과 배경에 대해서 살피면서 바울이 주장한 이신칭의가 사회윤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바울의 이신칭의는 구원의 전제조건으로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율법을 폐기하는 것을 주장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울은 낡은 유대교적인 전통에 사로잡혀 있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그것을 벗어나서 자유를 선택할 것을 역설하면서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였다(갈라디아서). 그리고 비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는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은 배제와 다툼이 아니라, 믿음으로 완성하는 율법,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는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갈 것을 역설하였다(로마서). 이와 같이 바울이 말한 이신칭의는 믿음과 행위의 일치를 위해서 윤리적인 삶을 살 아가는 존재가 그리스도인임을 보여주고 있다.
Ⅲ. 루터의 이신칭의
루터의 관심은 교황(교회)의 잘못된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는 전근대적( pre- modern ) 인간의 삶의 양식을 벗고 양심의 자유를 따르는 근대적( modern ) 인간이 되는 것이었다. 17) 루터가 살던 시대의 상황이 그리고 루터의 개인적인 삶의 정황이 그를 전근대성을 넘어서 근대성으로 진입하게 만들었다. 광부였던 아버지가 중산층으로 성공하면서 루터는 에르푸르트 대학에서 인문학사를 마치고 중산층의 삶을 살기 위해서 법률대학원에 진학해서 근대적 인문학의 소양을 키웠다. 개인적인 신앙의 경험으로 법률학도에서 신학도로 변신한 루터는 전근대적인 신앙의 힘을 벗어나지 못한 채 신학의 길을 시작했으며,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서 6 년간 혹독한 신학훈련을 받고,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1512 년 신학박사학위를 수여받은 후로는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신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1514 년에는 비텐베르크 교회의 주임사제로 부임했다. 루터는 성서에 대한 뛰어난 가르침으로 사람들에게 감화를 끼쳤다. 18) 가톨릭 사제로서 루터는 전근대적인 삶에서 출발했으나, 당시 그가 받았던 근대적인 영향들(대학에서의 인문교육(르네상스), 중산층의 삶(상업혁명 이후의 부르주아계급의 성장), 근대민족주의의 시작 등)은 루터에게 전근대적인 삶의 자리를 벗어나서 근대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게 만들었다. 19) 다시 말해서 사제로서 로마 교회의 지도를 따르면서 전근대적인 삶을 살았던 그에게 근대적인 시작을 알리는 커다란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은 1517년 10월 31일에 자신의 양심의 자유를 따라서 면죄부 판매를 거부하는 95 개조의 반박문을 붙인 사건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루터 개인의 상황뿐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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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물론 루터가 근대적 인간에 대한 자의식이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전근대성이나 근대성이라는 개념은 현재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루터에게 근대적인 자의식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단지 이러한 분석을 할 수 있는 것은 현대인들이 만들어놓은 틀에 따른 것일 뿐이다.
18) James Reston, Luther’s Fortress: Martin Luther and His Reformation Under Siege , 서미석 역, 『루 터의 밧모섬-바르트부르크성에서 보낸 침묵과 격동의 1 년』 (고양: 이른비, 2016 ), 21-25 .
19) 당시의 이러한 변화를 두 축으로 말한다면 스콜라주의와 인문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Bern- hard Lohse, Martin Luther’s Theology: Its Historical and Systematic Development , 정병식 역, 『마틴 루터의 신학-역사적이며 조직신학적으로 본 루터 신학』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2 ), 29-31 . 루터가 살던 시대의 배경과 루터의 신학적인 배경에 대해서는 Heiko Obermann, Luther: Mensch zwischen Gott und Teufel Severin und Seidler Verlag , 이양호, 황성국 공역, 『하나님과 악마 사이의 인간 루터』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5 ), 173-229 를 보라.
루터가 신학을 공부하던 시기의 신학교육은 아우구스티누스로 대표되는 교부철학의 전통과 토마스 아퀴나스로 대표되는 스콜라 철학의 전통에 기초하고 있 다. 이 시기에 가르친 구원관은 바울이 이야기한 구원관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속죄의 교리를 받아들여 재해석하면서 구원의 교리를 만들 어갔다. 이 시기에는 이신칭의 교리는 크게 대두되지 않았다. 구원과 관련된 중세 가톨릭교회의 전통은 크게 아우구스티누스와 스콜라 철학에서 드러났다. 구원의 교리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스콜라 철학의 해석은 원죄와 속죄, 그리고 세례(유아 세례) 교리에서 드러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원죄를 ‘탐욕’, 즉 ‘치유 불가능한 병적인 성향’으로 보았고, 은총을 받게 되면 탐욕은 약한 불씨로 변하고, 이것은 죄를 지을 가능성은 있지만, 죄의 성격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보았다. 한편 스콜라 시대의 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러한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원죄를 아담에게 주어진 ‘본래적 의’가 죄로 인해서 상실된 ‘의의 결핍’으로 보고, 성례전을 통한 ‘은혜의 행위’를 통해서 이러한 결핍상태가 사라지게 된다고 보았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러한 의견들을 받아들이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인 방법론을 이용하여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를 욕망이라는 질료로 해석하고 ‘의의 결핍’ 을 형상으로 해석하여 죄와 구원의 길을 설명하였다. 20)
이상의 신학적인 차원에서 속죄의 교리를 교회의 삶에서 실행하는 방법은 성례전, 특히 고해성사를 통한 죄의 용서였다. 가톨릭교회의 고해성사는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고해신부가 고백된 죄를 사하는 첫 단계를 거친 후에 고해신부는 죄에 따라서 그 벌에 해당하는 보속(참회고행)을 명령한다. 이 참회고행을 면제하는 것을 대사라고 한다. 대사제도는 교황 우르바누스 2 세가 1095 년 1 차 십자군 원정 에 참여하는 병사들에게 처음 베풀었고, 1343 년 클레멘스 6 세의 교서를 통해서 교회의 공식적인 제도가 되었다. 21) 한편 면벌부( indulgence )는 대사제도의 일환으 로 사용되던 것으로 11 세기 프랑스 남부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22) 루터 당시 교황청의 부패는 극에 달했다. 성직 매매와 면벌부의 남용으로 교황청은 막대한 부를 누렸다. 그런데 1515 년에 자본가 출신의 레오 10 세가 교황이 되면서 호화생활을 위한 자금이 더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 성직매매와 면벌부 판매는 더욱 극심해졌다. 한편 성베드로성당을 중건하기 위한 자금을 조성하는 데에도 면벌부는 요긴하게 쓰였다. 23)
한편 브란덴부르크의 제후였던 알브레히트는 이 지역의 대주교가 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교황에게 이 자리를 사기 위해서 엄청난 돈을 대출해서 이 자리를 구했으며, 동시에 교황청에 면벌부를 팔 수 있는 권리까지 부여받았다. 그는 면벌부가 단순한 대사의 용도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죄를 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면벌부의 판매를 부추겼다. 면벌의 논리로는 고해성사가 필수적이었지만, 면죄의 논리로는 고해성사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던 것이었다. 24) 이러한 전략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면죄부가 되어버린 면벌부를 사기 위해서 사람들은 애를 썼고, 교회의 재산은 점점 더 불어났으며, 그 과정에서 민중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져갔다. 이제 면벌부의 구매는 성사의 한 부분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되 었고, 이런 규범을 따라가기 위해서 민중들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뿐아니라, 종교적인 측면에서도 이전보다 훨씬 더 예속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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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정병식, “칭의와 성화를 통해서 본 루터 신학의 현대적 의의,” 『신학사상』, 135 ( 2006 ), 78-79 .
21) 박준철, “ 16 세기 독일 종교개혁의 열설: ‘영적 자유’와 민중규율화,” 『서양중세사연구』 39 ( 2017. 3 ), 149 .
22) 면벌부는 대체적으로 면죄부라고 번역하는데, 그 원래의 의미를 따지면 면죄부라는 번역보 다는 면벌부라는 번역이 더 타당하다. 처음에 시행된 것이 대사제도를 위해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면벌부는 당시 살인, 축첩, 신성모독, 도둑질, 위증, 마술 등의 중죄를 대사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면벌부는 본래의 의도인 대사용으로만 쓰였던 것이 아니라, 이후 가톨릭의 부패상황과 맞물려서 면벌부가 죄를 사해주는 면죄부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23) James Reston , 『루터의 밧모섬-바르트부르크 성에서 보낸 침묵과 격동의 1 년』, 26-30 .
24) 김성봉, “오늘날에 있어서 이신칭의”, 『조직신학연구』 6 ( 2006 ), 139 .
25) 박준철, “ 16 세기 독일 종교개혁의 열설: ‘영적 자유’와 민중규율화,” 150 .
이 시기에 루터는 사제이면서 교수로서 시편, 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 등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구원의 의미를 탐구하였다. 1513 년 비텐베르크대학에서 시편을 강의하던 중에 그는 구원의 의미에 대해서 처음 깨달음을 얻게 된다. 죄인임을 인정하는 최소한의 양심도 없이 교회가 정해주는 선행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과연 구원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묻게 되었다. 이것이 루터의 이신칭의론의 첫 단추가 되었다. 이후 1515 년에 로마서를 강의하면서 그는 이신칭의를 정초 하게 되었다. 26) 이 시기에 독일에서는 면벌부 판매가 극에 달했는데, 알브레히트는 면벌부를 효율적으로 판매하기 위해서 도미니크 수도사 텟첼을 고용해서 면벌부가 면죄하는 능력까지 있음을 설교하게 했고, 루터는 이에 반박하는 설교를 세 차례 했다( 1516 년 7 월 27 일; 10 월 31 일, 1517 년 2 월 24 일). 27) 마침내 루터는 자신 이 몸담고 있었던 대학의 교회인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1517 년 10 월 31 일에 면벌부 판매에 반대하는 95 개조의 반박문을 붙였다. 이는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루터를 정죄하고자 했던 교황청은 루터를 소환하려고 했으나, 루터는 이에 불응하면서, 1520 년 종교개혁의 기초가 된 세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28) 루터는 로마서 1 장 17 절을 대면하면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게 되는 이 신칭의의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루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언급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의가 행위를 따른다고 주장하지만,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의가 행위에 앞선다고 주장한다. 즉 루터는 행위가 의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였다. 29) 루터는 1532년 한 탁상담화에서 “하나님의 의라는 말이 내 양심을 강타했다”고 말하면서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의’ 즉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건임 을 주장하였다. 30) 이와 같은 깨달음은 루터에게 민중을 무시하고 교황청의 권위 만을 내세우는 교황의 횡포에 침묵할 수가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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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김용주, 『칭의, 루터에게서 묻다』 (서울: 좋은 씨앗, 2017 ), 김용주는 이 책에서 루터의 칭의론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수도사시절의 개인적인 갈등, 신학을 교수하면서 시작한 시편 강의와 로마서 강의를 통한 이신칭의의 기초 세움, 종교개혁을 본격적으로 해 나가면서 썼던 논문들과, 1531 년의 갈라디아서 강의, 1535 년 창세기 강의 등을 통한 이신칭의론의 발전에 대해서 잘 다루고 있다. 사실 루터가 갈라디아서를 처음 강의 한 때는 1517 년이다. 루터의 갈라디아서 강의가 처음 출간된 것은 1519 년이다. 이어서 루터는 히브리서를 강의하였다. 루터는 1531 년에 갈라디아서를 다시 강의하면서 이싱칭의를 다시 밝히면서 완성한 것이다. 루터의 갈라디아서 강의가 전집으로 출간되면서 사용된 문헌이 1531 년 강의 문헌이기 때문에 1531 년 문헌으로 다룬 것으로 보인다.
27) 정병식, “면죄부 반박 95 개조에 나타난 루터의 신학적 비판,” 『 한국교회사학회지』 35 ( 2013 ), 197 .
28) 이 논문은 교황청의 권의에 의문을 제기하는 “독일 크리스찬 귀족에게 보내는 글”과 교황청 의 성례전을 비판하면서 성례의 의미를 해석한 “교회의 바벨론 감금”과 이신칭의의 바탕에서 신앙의 양심의 자유와 기독교인의 삶에 대해서 기록한 “기독교인의 자유”이다. 이 논문 은 각각 1520 년 8 월, 10 월, 11 월에 각각 발표되었다. 한국어로는 지원용 번역하고 컨콜디 아사에서 1993 년에 출간한 『말틴 루터의 종교개혁 3 대 논문』을 참고하였다.
29) Martin Luther, Luther: Lectures on Romans , 이재하, 강치원 옮김, 『루터: 로마서 강의』 (서울:두란노아카데미, 2011 ), 105-106 .
30) 정병식, “칭의와 성화를 통해서 본 루터 신학의 현대적 의의”, 81 쪽에서 재인용. 마르틴 루터의 『탁상담화』( Martin Luther , Table Talk )는 이길상에 의해서 번역되어 2005 년 크리스찬 다이제스트에 의해서 출간되었다. 『탁상담화』는 종교개혁 기간 동안에 루터가 각종 회의나 모임에서 한 이야기들을 어록의 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탁상담화』를 통해서 루터의 신학적 인 사상에 대해서 살필 수 있으며, 칭의에 대한 내용은 217-233 에 나와 있다.
루터는 이제 95 개조의 반박문을 통해서 교황청의 권위에 대항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95 개조 반박문에서 ‘면벌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음( 21 조)’을 강조하면서 ‘돈이 봉헌함에 쨍그랑하고 떨어지면 영혼이 연옥에서 구원받게 된다는 것은 단순한 인간적인 교리( 27 조)’일 뿐이며, 그것은 ‘탐욕과 욕망이 커지는 것( 28 조)’일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민중들을 착취해서 베드로 대성전을 재건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임( 50 조)’을 명확히 하면서, ‘교황의 수입이 세상에서 제일 많은데, 그의 돈으로 대성전을 다시 지으라( 86 조)’고 항변하였다. 31) 이와 같이 루터는 95 개조의 반박문에서 돈과 구원을 연관시키는 일은 신학적인 차원에서 잘못된 일일 뿐 아니라, 그것은 단순히 민중을 착취에서 자신들을 배불리는 일일 뿐임을 역설했다. 루터의 반박문은 당시 새롭게 발견된 인쇄술을 타고 유럽전역에 퍼져나갔다. 이제 루터는 교황청에서 가장 경계하는 인물이 되었으며, 교황청에서는 종교재판을 열어서 루터를 정죄하려고 하였다. 작센의 선제후 프레드리히의 보호 아래 루터는 교황청에 소환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갔고, 종교개혁의 작은 불씨는 거대한 불길이 되어 타올랐다. 개혁의 불길은 교회의 지도자들 뿐아니라, 다수의 인문주의자들, 그리고 민중들 사이에 급속도록 퍼져 나갔다. 1521 년 교황청의 한 사절의 “독일은 전면적 봉기에 놓여 있습니다. 열 중 아홉은 ‘루터!’를 외치고 있습니다”는 보고는 이를 잘 보여준다.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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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https://www.luther2017.de/en/martin-luther/texts-sources/the-95-theses/ ( 2017 년 11 월 11일 접속).
32) 박준철, “ 16 세기 독일 종교개혁의 열설: ‘영적 자유’와 민중규율화,” 154-55 에서 재인용.
루터의 종교개혁에 기초를 잘 보여주는 문헌은 1520 년에 발간된 ‘종교개혁 3대 논문’이다. 루터는 ‘독일 크리스찬 귀족에게 보내는 글’에서 교황청을 “탐욕 과 강도의 소굴” 33)로 묘사하면서 교황청의 권위에 저항할 것을 요청하였다. 다음으로 루터는 ‘교회의 바빌론 감금’에서는 “면죄부는 로마의 아부자들의 사악한 책략” 34) 이라고 비판하면서 성서에 근거한 성례전을 행할 것을 역설하였다. 끝으로 루터는 ‘기독교인의 자유’에서 “바벨론이나 소돔보다도 로마 교황청이 더 부패하였고, 완전히 타락하였으며 불경건하다” 35)고 비판하면서 기독교인의 본질에 대해서 역설하였다. 36) 그 어떤 권위에도 매여 있지 않은 진정한 자유로운 존재인 기독교인은 단지 이 세계를 향해서 사랑으로 봉사하는 존재라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 기독교의 본질이 되고 있다. 선행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다. 오히려 선행은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유로운 존재가 된 기독교인이 이웃을 위한 사랑의 표현이다. 기독교인의 선행은 사랑의 본을 보여주신 그 리스도를 따르는 것일 뿐이다. 이제 교회는 가톨릭교회의 성례전 37) 을 거부하고 성찬과 세례만을 교회의 성례로 결정하였다. 새로운 공동체에서는 교황의 권위아래 기독교인들의 계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으로 구원을 받는다. 이러한 공동체의 이념으로 탄생한 개혁교회는 유럽사회에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루터는 당시의 사회적인 상황과 세계사적인 흐름 속에서 종교개혁의 기초가 된 이신칭의의 토대를 만들었다. 루터의 이신칭의는 단순하게 루터 개인의 신앙적인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이신칭의는 성서 속의 바울이 자신의 시대속에서 깨달았던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루터가 재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루터가 이신칭의를 재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시대적인 흐름과 사회적인 억압의 구조에서 신앙 뿐아니라 삶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변화의 흐름에 그 원인이 있었다. 양심의 자유에 기초한 믿음의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루터의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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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Martin Luther, Three Treatises , 지원용 역, 『말틴 루터의 종교개혁 3 대 논문』 (서울: 컨콜디아사, 1993 ), 56 .
34) 위의 책, 160 .
35) 위의 책, 282 .
36) 위의 책, 295 . 루터는 기독교인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기독교인은 더할 수 없이 자유로운 만물의 주이며 아무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다. 기독교인은 더할 수 없이 충의로운 만물의 종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된다.”
37) 가톨릭교회는 7 가지 성례를 고수하고 있다. 7 가지 예식은 세례, 견진성사(또는 견신례), 성만찬(영성체), 고해성사, 종유(병자)성사, 서품(성직수임)성사, 혼인성사 등이다.
Ⅳ. 칭의에서 정의로
바울과 루터가 이신칭의를 내세웠던 것은 단순한 교리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인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을 전환하는 일이었다. 바울 시대의 최대의 과제였던 유대인과 비유대인 간의 포용과 배제와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기초가 이신칭의였다. 교황청의 불합리한 요구로 인해서 착취당하고 있었던 민중들의 양심을 일깨우고 아무런 생각 없이 교황청의 명령에 따라서 행동하는 의미 없는 행위가 아닌 믿음의 결단과 행 동을 통한 개혁된 교회를 만들고자 했던 기초가 루터의 이신칭의였다. 이와 같이 이신칭의는 행위의 무용론을 강조하고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구원의 방법에 대한 교리가 아니라,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의(윤리)에 도달하는 결단임을 보여주는 교리이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사 속에서 이신칭의는 너무 쉽게 잊혀지거나 왜곡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바울의 이신칭의는 교회가 형성되고, 유대인과 비유대인 간의 논쟁이나 갈등이 사라지게 되자, 그 논의 자체가 사라지게 되었다. 앞서 논의한 대로 중세시대의 구원과 관련된 논의는 죄의 문제를 다루면서 죄를 용서받고 구원 받는 길로서 성례전을 중시하게 되었다. 성례전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죄용서와 구원은 민중들을 아주 쉽게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복 종에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서 믿음의 행위로 만들어지는 사랑의 공동체의 모습이 아닌, 탐욕과 권력욕에 사로잡힌 종교지도자들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에 저항하고자 루터는 다시 이신칭의의 깃발을 들고 교황청의 권위에 저항하였다. 양심의 자유를 따르는 진정한 자유로운 기독교 인으로서 세계를 향해서 사랑으로 봉사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정신의 토대위 에 개혁교회는 만들어졌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런 정신은 얼마가지 못했다. 정의를 향한 강력한 저항 정신은 루터의 개혁교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여지없지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루터파 교회를 만들어가면서 이신칭의에 기초해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여전히 과거의 성례전을 무비판적으로 따랐던 그 시대를 그리워하는 민중들의 무지를 지켜보면서 루터는 민중들에게 규율을 만들어주어야 할 필요를 느끼고 그렇게 시도하였다. 38) 이것은 개혁의 역설이었다. 자유를 위해서 사랑으로 행동할 것을 추구하던 개혁교회가 현실적인 한계 앞에서 다시 민중의 자유를 빼앗아버리는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이 만들어진 이후, 이신칭의의 교리는 개혁교회에서 너무 쉽게 변질되어 버리고 말았다. ‘하나님의 의’는 빠지고 ‘믿음’만 남게 되고 만 것이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바로 이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중세의 교회가 성례전만 따르면 죄용서를 받고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가르쳤던 그 모습, 루터가 너무 쉽게 양심의 자유를 포기하고 민중들을 규율화하 려고 했던 그 상황 …… 이 두 가지 상황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믿기만 하면 된다’ 고 하는 가르침과 연결된다.
이런 현상을 극복하고 이신칭의가 가지고 있는 본질을 다시 찾기 위해서 이신칭의의 윤리적인 기초를 잘 이해하고, 오늘의 현실에 맞는 이신칭의의 개념을 새롭게 고민함으로 계속해서 교회를 개혁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신칭의를 윤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덕주의를 넘어서 자유를 획득하는 하나의 신앙의 사건으로 이신칭의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도덕주의와 도덕성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 도덕주의는 때로는 권위의 문제로, 때로는 법적인 문 제로, 때로는 정의의 이름으로 인간에게 다가온다. 권위에 복종함으로 안전을 보 장받게 되는 가운데 인간은 도적적인 것을 선택한다. 법의 이름으로 보상이 약속되는 상황에서 인간은 도덕적인 행동을 한다. 분배의 정의가 윤리의 기초가 되어 버리게 되면 정의라는 형식만 남게 된다. 이러한 도덕주의는 극복할 대상일 뿐이 다. 어떤 조직(그것이 국가이든, 종교이든, 아니면 어떤 단체이든)이 자신의 힘을 유지하게 위해서 이러한 도덕주의를 이용한다. 이에 반해서 도덕성은 인간이 자신의 양심의 자유를 찾아서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스스로를 바로 세우는 과정이다. 이것은 외적인 전통이나 법, 혹은 종교적인 규율에서 오지 않는다. 이것은 내적인 법이다. 39) 바울이나 루터가 극복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도덕주의이다. 유대교의 전통과 로마 교황청의 전통에 따라야만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다는 가르 침에 대한 거부이다. 바울과 루터가 세우려고 했던 것은 도덕성이다. 타인에 대한 배제가 아닌 사랑으로 포용하는 정신과 양심의 자유를 따라서 타인을 사랑하는 정신이 이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도덕성이다.
이런 점에서 이신칭의가 제기된 사회적인 배경에 주목하면서 사회윤리적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바울이나 루터 모두 이신칭의를 강조하게 된 이유는 당시의 사회적인 상황에 대한 비판과 함께 정의로운 공동체, 즉 유대인과 비유대인 모두 포용하는 공동체, 교황청의 권위에 눌려서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는 공동체 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함(믿음)’으로 완성되는 ‘하나님의 (정)의’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신칭의의 교리는 ‘믿음’이 어떤 윤리적인 기준과 상관없이 주어지는 구원의 표지임을 의미하는 것이 더 이상 아니다. 오히려 칭의는 정의의 다른 모습이다. 즉 정의가 칭의를 완성한다. 정의는 정당한 몫을 정하는 일이다. 정의의 형식은 보복과 보상이다. 이것은 법률적인 의미의 정의이다. 잘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못한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 은 당연한 상식이다. 이것은 인간의 오랜 전통에 의해서 지켜온 정의이다. 그러나 분배와 징벌의 정의만으로 인간이 스스로 완전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 기 때문에, 이러한 정의의 개념을 넘어선 정의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창조적인 정의’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정)의’이다. 하나님은 정당한 몫의 분배나 징벌에 관심이 있으신 것이 아니라, 정당한 몫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관심을 보이신다. 이것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다. 40)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은 사람, 칭의)에게는 유대인이나 비유대 인의 구분도, 종이나 자유인의 구분도, 남자나 여자의 구분도 없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갈라디아서 3 : 2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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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박준철, “ 16 세기 독일 종교개혁의 열설: ‘영적 자유’와 민중규율화,” 153-57 .
39) Paul Tillich, Theology of Culture , ed. Robert C. Kimball, (London, Oxford &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59 & 1977), 136-45.
40) Paul Tillich, Love, Power and Justice , 성신형 역, 『사랑, 힘 그리고 정의』 (서울: 한들출판사,2017 ), 97-101 .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의’는 전통적인 법률(도덕주의적인)에서 말하는 유죄나 무죄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다. 유죄나 무죄를 판단하는 기준은 죄의 있음과 없음의 문제로 판단하는 것이지(율법을 따르는 일, 도덕주의), 하나님의 의로운 결정으로 용서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가 드러남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존재가 되어서 사랑으로 살아가는(도덕성) 것이 정의의 관점으로 보는 칭의이다. 41) 이것은 사랑과 용서로 완성되는 정의 이다. 사랑은 정의를 포함하고 있을 때에 진정한 사랑이 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포기하고 받아주는 것은 사랑의 포기일 뿐이다. 또한 정의는 사랑 안에 내재될 때에 진정한 정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정의가 사랑에 포괄되지 않을 때에 정의는 나와 타인을 학대하는 도구가 되고 만다(도덕주의). 사랑은 깨어진 것을 결합하게 해 주고 정의는 다시 결합된 것을 유지시켜 준다. 칭의에서 드러나는 창 조적인 정의는 사랑의 아주 구체적인 형식이다. 42)
칭의는 정의로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다. 바울이나 루터가 벗어나려고 했던 율법주의와 교권주의를 넘어서는 길이다. 이러한 것들을 넘어서서 새로운 기독교인으로 나아갈 때에, 공동체는 정의로워진다. 한국 교회가 칭의라는 교리를 ‘칭의주의’로 전락시켜서 그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수 단으로 삼는 일을 이제는 그만두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시는 것은 ‘믿음’ 을 가진 상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실함’으로 도덕주의(율법주의나 교권주의)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용서와 화해를 위해서 타인을 사랑하고 배려 하는 삶(도덕성), 즉 하나님의 정의를 따르는 그것이다.
Ⅴ. 나가는 말
이상에서 칭의의 신학적 논의가 제기되었던 바울과 루터의 개인적인 상황과 당시의 사회적인 배경을 살피면서, 칭의의 사회윤리적인 의미를 살펴보았다. 바울의 시대의 칭의는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분쟁 가운데, 하나님의 의(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믿음) 뿐임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한편 루터 시대 의 칭의는 교황청의 잘못된 권위에 반대해서 양심의 자유에 입각한 기독교인이 되기 위한 토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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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Nicholas Wolterstorff, Justice in Love , 홍종락 역, 『사랑과 정의』 (서울: IVP , 2011 ), 475-93 .
도덕주의, 도덕성이라는 용어는 틸리히가 사용한 용어를 대입한 것이다.
42) Paul Tillich , 『사랑, 힘 그리고 정의』, 102-106 .
이러한 칭의의 원리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윤리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타인을 배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포용해서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그 첫 번째 의미이고, 두 번째는 잘못된 권위에 무조 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양심의 자유에 복종하는 기독교인으로서 세계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는 정의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의 정의는 창조적인 것으로 정당한 몫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용서의 은혜로 부여받는 몫(구원)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가 기독교인들의 사회윤리의 기초이다. 이것은 단순한 상태로서의 믿음이 아닌 ‘예수에 대한 충실한 따름’을 실천하는 ‘신실함(믿음)’이다. 개혁의 정신은 개혁의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개혁의 순간에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개혁은 계속해서 진행될 때에 진정한 개혁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개혁은 완성된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진행될 때에 그 의미가 있다. 완성이 아닌 진행형으로서의 개혁일 때에 개혁은 진정한 개혁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바울과 루터가 극복하고 개혁하고자 했던 상황은 오늘날에도 존 재한다. 그런 점에서 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 개혁의 중심에 칭의(주의)가 있었다는 점을 깊게 생각하면서, 칭의의 사회윤리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가운데 계속 지속하는 개혁의 중심에 ‘하나님의 (정)의’가 세워질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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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From Justification to Justice:
A Christian Social Ethical Approach toward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SEONG Shin-Hyung (Ph.D.)
Assistant Professor
Christian Ethics Soongsil University
South Korea
This research delves into the social ethical implication of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as it concentrates on the Apostle Paul and the reformer Luther. This study searches the social backgrounds of both theologians as such, and how they developed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On the one hand, the Apostle Paul demonstrated justification since he found a serious conflict between Jewish and Gentile Christians. These Christians tried to excluded each other based on the ideology of law (Torah). Within this situation, Paul argued that Christ was crucified for all Christians, that is justification (by faith, not by law). On the other hand, Luther developed justification in order to make congregation follow the freedom of consciousness rather than the order of Catholic Church and the power of Pope. These arguments have the social ethical significance in that embracement and freedom are the foundation of ethical deeds for people. Thus, justification is a simple token to go to heaven, but it is the ethical foundation that makes a Christian follow the principle of justice which was established by the love of God.
Key Words *
Justification, the Apostle Paul, Martin Luther, Exclusion and Embracement, the Freedom of Consciousness, Just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