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45
입법 청원을 취소한다
신뢰는 사회적 자본의 핵심으로 일컫는다. 이러한 신뢰 자본이 최근 들어 급속히 붕괴하고 있다는 지적이 들린다. 사회공동체에서 신뢰가 무너지면 당연히 거래비용이 증가한다. 이제부터라도 신뢰를 해치는 사람이나 집단이 있다면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신뢰의 중요성에 관한 연구가 있다. 서울대 김병연 경제학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10% 상승할 때 거래비용이 줄어 경제성장률이 0.8%나 높아진다고 한다. 실증(實證)을 떠나 신뢰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짐작하게 한다.
우리나라에 유독 거짓말 범죄가 많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소위 3대 거짓말 범죄라고 칭하는 사기, 위증, 무고와 같은 거짓말 범죄의 통계자료는 다른 저신용 국가에 견주어도 낯부끄러운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범죄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짓말은 갈등으로 귀결된다. 거짓말이 판치면 음모론이 범람하고 그 쓰레기 위에 사회적 갈등이 층층이 쌓인다. 음모론에 젖은 사람들은 우연적 사건이나 현상까지도 누군가가 기획한 창작물로 해석한다. 눈뜨면 볼 수 있는 사실조차 적대세력의 음모라고 여기면 사회갈등이 심화하고 갈등은 또 다른 거짓을 만들어 낸다.
최근 거짓말의 폐해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 있었다. 유흥업소에서 첼로 연주하는 여성이 사적 영역에서 한 거짓말 하나가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 물론 거짓이 증폭되는 과정과 정치적 갈등은 불신의 순환고리를 그대로 보여줬다.
악의가 아니라면 플롯이 너무 허접하여 묻고 따질 일도 아닌데, 그따위 거짓에 매몰되는 정치권에 이성과 집단지성이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우리 사회의 지도자라는 점이 참담하다.
거짓에도 급수가 있다. 가장 나쁜 거짓말은 누군가를 해하기 위해 음모를 꾸며 하는 거짓말이다. 이런 악질들은 거짓을 통해 자기 이익을 취하는 것조차 능력으로 생각한다. 거짓말 중에 가장 고약한 유형이다. 사실을 부풀리거나 왜곡하는 일도 흔하다. 교활한 자들이 상대를 음해할 때 쓰는 대표적 수법이다. 그런가 하면 거짓말이 입에 붙은 사람들도 있다. 하찮은 일상까지 병적인 거짓말로 일관하는 사람들은 제 실속도 없이 거짓말제조기로 불리게 된다. 멍청한 거짓말쟁이들이다.
세상에는 착한 거짓말도 있다. 타자를 위해 하는 거짓말로 이른바 하얀 거짓말이다. 다만 이런 거짓말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선한 거짓말은 없다고 하지만 다른 이를 위로하거나 칭찬하기 위해 입술에 침 바르는 것까지 탓하기는 어렵다.
사실 거짓말의 달인은 따로 있다. 그들은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제멋대로 읊어댄다. 심지어 내가 하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선포하고 떠든다. 더하여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늘어놓을수록 박수를 받는다. 소설가다.
잘 꾸며낸 소설은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독자의 삶을 좀 더 진지하게 만들고 영혼의 상처에 연고를 발라준다.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유희의 정원을 만들어 주고 복수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칼을 쥐지 않고서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그만하면 거짓말 중에서 가장 근사하고 필요한 거짓말이다.
거짓 행동은 생명체의 본성이라는 주장이 있다. 카멜레온이나 문어는 속임수의 끝판왕이다. 진화생물학자들은 그중에서도 인간의 거짓 행동이 가장 고차원적이며 거짓을 통해 오늘날의 인류문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믿는다.
영장류를 연구한 앤드루 화이튼과 리처드 번은『교활한 지능』이란 책을 출판하면서 인간의 지능은 ‘사회적 조작, 속임수, 교활한 협력’에서 발달했다고 주장한다. 영장류의 속임수를 관찰한 결과 생물종이 속이는 빈도는 뇌의 바깥층인 ‘신피질’의 크기에 정비례한다는 근거에서다. 쉽게 말하면 거짓말을 잘할수록 뇌도 크다는 이야기다.
거짓 행동의 일상화를 조사한 것도 흥미롭다. 영국 런던과학박물관의 관찰에 따르면 영국 남성들은 하루 평균 3번, 여성은 하루 2번꼴로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거짓말을 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사회구조가 치밀해질수록 거짓말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작아진다. 그것 또한 문명의 진보다.
유대인들의 첫째 덕목은 정직이다. 부모들은 어린 자식에게 돈을 버는 방법에 앞서 정직을 가르친다. 그들이 어떻게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브레인이 되고 부를 거머쥐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정직이 중요한 자본이 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거짓이 횡행하면 집안 안방에까지 CCTV를 달아야 할지 모른다. 통제사회의 정치철학이 거짓을 기초로 하는 이유다. 그리 보면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근원도 서로의 믿음이 붕괴하는 데 있다. 거짓말의 해악이 이처럼 크다.
적지 않은 기업에서 AI 면접이 시도되고 있다. AI의 눈이 사람의 눈보다 예리하다는 것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다만 AI 면접 솔루션의 알고리즘은 개발회사의 영업비밀이다. 음성분석기술, 안면분석기술, 심리검사기술 등이 AI 면접의 핵심기술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여기에 답변의 일관성을 추적하면 거짓말을 족집게처럼 찾아낸다고 한다.
거짓은 비용이다. 국회의원도 면접 보는 AI를 통해 자질검증을 했으면 한다. 모르긴 해도 여야를 막론하고 누리끼리한 배지를 달고 있을 사람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입법 청원은 언감생심이요 감히 무례의 벌을 자초하는 일이니 취소한다. 그동안 거짓을 일삼는 자들에게 베풀었던 시민의 관용이 이제 거두어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