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불멸의 저력
숭산(嵩山) 태실봉(太室峯).
무수한 강호인들이 숭산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강호거상과 이룡일봉이 태실봉에서 접전을 벌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해팔황(四海八荒)의 무사들이 대거 태실봉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남(河南), 하북(河北), 안휘(安徽), 산서(山西), 강소(江蘇), 섬서(陝西), 절강(浙江), 촉도(蜀道) 너머 사천성(四川省)에서…….
중원천하에서 나름대로 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강호기협(江湖奇俠)들은 백 년(年) 만의 대결을 보지 않을 수 없다며, 태실봉을 향해 모여드는 것이다.
모여드는 사람들의 수는 이만(二萬)에 달했으며, 그 숫자는 보름이 가까워지며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다.
모름지기 삼만에 달하는 강호인들이 태실봉에 모이리라.
한 청년, 매우 허름한 차림새이다.
초립(草笠) 하나를 기웃 썼으며, 휘청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이곳 저곳을 기웃거린다.
그는 벌써 이틀을 태실봉 근처에서 보내고 있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태실봉으로 모여들고 있으되, 그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사실 옷차림과 거동으로 보아, 그가 강호계의 초인(超人)으로 소문난 강호거상(江湖巨商)임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능조운, 그는 사흘 내내 태실봉 일대를 뒤지고 다녔다.
그가 왜 이 곳 저 곳을 세밀하게 조사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할 일이었다.
십사야(十四夜)의 달이 뜰 때, 능조운은 고독히 서서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삼천이 넘는다. 거의 사천(四千)에 달하고 있다. 그들은 결전이 시작하는 찰나, 태실봉을 완전히 허물어뜨리도록 안배되어 있다. 폭발이 시작되면 적어도 만오천 명이 죽을 것이다.“
능조운은 준극봉(峻極峯) 중턱에 머물러 있었다.
이 일대는 지극히 조용했으며, 아마도 십 리 안에는 능조운 이외의 인물이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천(二千)이 필요하다. 하나하나 내외공(內外功)에 달통한 고수들로. 으음, 폭발이 시작된다 하더라도 나는 옷자락 하나 다치지 않을 자신은 있으나 다른 사람들이 무수히 죽을 것이다. 그러한 일은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
능조운은 눈길을 천천히 내렸다.
그는 검은 구름에 휘어 감겨 있는 하나의 거봉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길은 거봉의 중턱 즈음에 꽂혀 들었다.
"일시에 이천 고수를 동원할 수 있는 장소는 저 곳뿐이다.“
능조운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소림사(少林寺)가 세워진 곳이었다.
천하대보찰(天下大寶刹)인 동시에 무림의 거대세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호대세에는 절대로 끼여 들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지키고 잠들어 있는 진정한 거인의 대지.
소림사는 이 년 전에 봉파(封派)를 단행했다.
속가제자(俗家弟子)에게는 소림 무예를 시전하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졌으며, 출가(出家)한 승려 고수들에게는 하산(下山)이 금지되었다.
소림사로 가는 길은 모두 차단이 되었으며, 향화객(香火客)들의 방문과 강호인들의 방문은 완전히 통제되었다.
기실, 소림사는 의화검맹에게 배척당하고 있었다.
의화검맹은 소림사를 비겁자로 몰았으며, 신승 초의를 천하 죄인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또한 소림사의 무예를 시전하는 사람들은 뭇 고수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뒤돌아서야만 했다.
소림사는 깨어나지 못할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으며, 예정된 십 년 봉파가 끝이 난 후에야 소림사는 어느 정도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잠룡비전에서 가장 많은 고수를 희생시킨 방파는 바로 소림사였다.
마애십불(磨崖十佛),범천오백존자(梵天五百尊者),백팔철탁라마(百八鐵卓喇麻)…….
천사백 고수가 잠룡비전으로 가서는 돌아오지 못했다.
잠룡비전의 대폭발로 인해 소림사의 힘은 십분지일로 줄어들고 말았으며, 소림사의 현임 방장은 궁여지책으로 십 년 봉파를 선언하게 된 것이다.
"소림사에는 마지막 저력이 있다. 훗훗, 그것은 소림사의 현임 방장이라 하더라도 모르는 비밀이다. 신승 초의선사가 만에 하나의 경우에 대비해, 소림사에 감춰 둔 최후의 저력… 그것은 내가 명할 수 있는 세 개의 세력 가운데 두 번째의 세력이다. 지금 바로 그들을 깨울 때이다.“
능조운은 슬쩍 떠올랐으며, 한순간 그는 암흑에 파묻혀 버렸다.
최근 들어 그의 경공술은 점입가경으로 신장되었는데… 이유는, 무향이십구류(無香二十九流)를 터득했기 때문이었다.
술시(戌時 : 오후 열시경).
소림사는 완전한 어둠에 잠기어 있지 못했다.
백여 개의 불등(佛燈)이 야음을 어슴푸레하게나마 밝히기에, 완전한 어둠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대웅전(大雄殿)의 뒤쪽, 그 곳에는 방장(方丈)이 기거하는 하나의 선방(禪房)이 머물러 있다.
이름하여 와불승방(臥佛僧房).
현재 그 곳의 주인은 뇌법(雷法)이라는 일흔아홉 세의 노승이었다. 그는 박학다식한 노승으로, 소림 승려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는 역대소림사의 방장들 가운데 가장 곤혹스러운 처지에 처해진 인물이며, 역대 소림사 방장 가운데 가장 적은 힘을 지니고 전 강호의 협의도인들에게 야릇한 모욕을 받고 있는 입장이었다.
어디 협의도뿐이랴?
흑도사도(黑道邪道)의 무림인들 또한 소림사를 조롱하고 있으며, 소림사 내부에서조차 그를 비웃는 사람들이 허다했다.
그들은 이 년 전에 소림사로 들어와 금지들을 장악해 버린 십팔(十八) 혈의가람(血衣伽藍)들로, 과거에 소림사에서 파계당하고 승적을 박탈당한 소림의 이단자들이었다.
그들은 악마무후를 등에 업고 소림사로 들어섰으며, 소림사를 악마동맹의 순찰부(巡察府)로 삼고 소림사의 기진이보들을 변황으로 빼돌린 바 있었다.
태실봉의 결투는 그들에 의해 암중 조종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대소림사는 악마동맹 휘하세력인 천마혈천(天魔血天)의 순찰부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비극이되, 그것은 엄숙한 사실이었다.
본시 십팔 혈의가람은 소림 방장을 암살하고 장문인 지위까지 차지하고자 하였으나, 반발이 심할까 두려운 나머지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하여간, 소림은 깊이 잠들어 버렸다.
십팔 혈의가람이 이끌고 온 오백여 마도고수들이 도처에 머물며, 마작(麻雀)과 술로써 밤을 지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밤은 벌써 이 년째 계속되고 있었다.
십사 일의 밤.
뇌법승은 한 권의 경서를 공탁 위에 펼쳐 놓은 채 암송하고 있었다. 주름진 얼굴에는 고뇌(苦惱)가 깊이 스미어 있었다.
'암담할 뿐이다. 본사는 지난 천 년 간 강호계를 이끌어 왔는데, 이 년 전부터 몰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백도계마저 소림사를 배척하며… 산사 안에는 악마들이 버젓이 머물러 있으니…….‘
그는 이 년 내내 번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세속의 번뇌를 잊기 위해 승려가 되었는데, 세속인들보다도 더한 번뇌에 휘감겨 이 년을 보낸 것이다.
이 밤에도 그는 번뇌를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악마동맹은 소림사를 제일 두려워하였기에,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림사를 무기력하게 만든 것이다.
현재 소림사의 힘은 전성기에 비해 이십분지일도 되지 않았다.
뇌법선사가 읽는 책은 초의참불기(草衣參佛記).
그의 사조(師祖)가 되는 신승 초의가 소림사를 떠나기 이전에 지은 책으로, 뇌법승은 이 년 내내 초의참불기를 읽었다.
초의선사는 소림이 배출한 인물 가운데 가장 강했던 인물로, 전 무림을 좌지우지했던 강호계의 거목(巨木)이었다. 그가 소림에 머물러 있다면, 소림사의 힘은 천하무림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거대해졌을 것이다.
<마운(魔雲)이 오악(五嶽)을 휘어 감고, 숭산의 밤은 끝없이 이어지리라.
하나 옥불지(玉佛池)에 금색련(金色蓮)이 피어나는 날부터, 숭산은 천 년의 개벽(開闢)을 맞이하게 되리라!>
뇌법선사가 적어도 천 번은 되풀이해서 암송한 구절이다.
초의참불기의 마지막에 적혀 있는 구절.
뇌법선사는 그 구절을 풀이하고자 온갖 지혜를 다 짜 보았으나, 이제까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옥불지의 금색련… 일명 혈련화(血蓮花)이다.'
뇌법선사는 눈길을 낮은 창밖으로 돌렸다.
창 밖에는 호수 하나가 패여 있고, 호수 가득히 연화가 피어나 달빛에 젖고 있었다.
무수한 연화 가운데, 실로 기이한 연꽃이 하나 있었다.
언제나 봉우리를 다물고 있는 황금빛의 연꽃.
뇌법선사의 눈길은 그 봉우리에 머물렀다.
'소림사의 모든 무공을 터득한 사람은 달마신공(達磨神功)으로 알려진 패엽범천공(貝葉梵天功)을 시전할 수 있으며, 혈련화는 패엽범천공이 시전되어야만 개화(開花)가 된다.'그는 이 년 내내 그러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도 꿈이리라.
바로 지금, 그가 빤히 보고 있는 상태에서 지난 백 년 내내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던 혈련화가 천천히 개화되고 있지 않은가!
금빛 꽃잎이 벌어지며, 핏빛의 수술이 화려하게 드러난다.
"아… 아미타불… 꿈치고는… 너무나도 화려하고 신성하구나.“
뇌법선사는 저도 모르게 불호성을 발했으며, 두 눈을 비벼 가며 옥불지의 연꽃을 다시 한 번 보고나서는 저도 모르게 합장(合掌)을 하고 말았다.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그는 벼락 맞은 사람처럼 전신을 경련시켰다.
<옥불지(玉佛池)에 금색련(金色蓮)이 피어나는 날부터, 숭산은 천 년의 개벽(開闢)을 맞이하게 되리라.>
혈련화가 피어나다니……?
소림사에 남아 있던 마지막 전설은 드디어 시작되는 것인가?
달마조사(達磨祖師)가 씨를 뿌렸다고 전해지는 천년혈련화(千年血蓮花)에서 꽃이 피어났다는 것은 환상의 일이 아니었다.
이 밤, 너무나도 깊디깊은 밤에 한 송이 혈련화가 감미(甘美)로운 향기 가운데 화사하게 피어나는 것이다.
"전설이 시작되는 것이다……."
뇌법선사는 합장을 했다.
어린아이처럼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혈의십팔가람(血衣十八伽藍)이라 불리는 악승(惡僧)들은 밀담(密談)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안배에 따라 행동해야 하오."
우두머리 적수가람(赤手伽藍).
그는 눈이 멀고 혀가 잘린 벙어리 미녀 하나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는 털복숭이 손으로 미녀의 가슴을 떡 주무르듯 하면서 입술을 떼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어떤 일인가 벌어지고 난 후에, 태실봉으로 세력을 이동시키어 태실봉에 모여드는 자들을 척살하는 일이오!“
"크크… 오랜만에 피를 볼 수 있겠군. 사실, 이곳 생활은 너무나도 지겹고 권태스러운 것이었지.“
"대체 태실봉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군. 강호거상이란 자와 이룡일봉이 격돌하는 자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소림사를 움켜쥐고 있는 자들.
과거, 이들은 신승 초의에게 파문(破門)당하면서 다시는 소림사 무공을 쓰지 못하게끔 점혈당했다.
이들은 악마무후에게 몸을 맡기면서 마공을 얻었으며, 천마혈천의 십팔 순찰로 화신하여 소림사로 되돌아온 것이다.
드넓은 소림사.
천 년의 비밀이 도처에서 잠들고 있다.
수백 개의 고루거각(高樓巨閣)에는 무림의 역사를 이룩한 상고거불(上古巨佛)들의 체취가 남아 있다.
그 가운데 하나인 봉마금탑(封魔禁塔).
계도원(戒導院)에 소속되어 있으며, 소림사 제자들 가운데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사람들이 갇히는 장소이다.
그 곳은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서지 못하는 곳이다.
봉마금탑은 초의 신승이 잠깐이나마 소림사의 방장 지위에 머물렀을 때에 대대적으로 증축이 된 바 있다.
사실 봉마금탑을 증축하는 것은, 당시 소림사의 장로원(長老院)을 차지하고 있던 고승들에게 강한 반발을 받았던 일이었다.
하나 초의는 끝내 그 일을 해냈으며, 소림사의 불가(佛家) 속가(俗家) 제자들 가운데 수천 명의 반골(叛骨)들을 봉마금탑 안에 집어넣었다. 그 일은 당시 소림사 일대에 파란을 일으켰으며, 초의는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소림사 방장 지위에서 물러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가 소림사를 떠나고 나서 많은 고승들이 봉마금탑의 금제를 해제하고자 하였으나, 허사였다. 누구도 봉마금탑의 기관 장치를 무너뜨릴 수 없었으며, 그 안에 갇혀 버린 승인들을 외부로 끄집어 낼 수 없었다. 그것은 소림사가 강호에 밝히지 않은 치부 가운데에서 가장 큰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초의선사가 저지른 유일무이한 죄악이기도 했다.
봉마금탑!
꽤 오랫동안 절지였던 그 곳은 최근에 이르러서는 그 누구도 찾지 않는 장소로 화하고 말았다.
자시(子時)가 될 때, 하나의 흰 그림자가 봉마금탑 어귀로 표표히 날아 내렸다.
"이 곳이다."
팔짱을 낀 채 능공허도(凌空虛渡)로 날아든 자는, 그가 시전하는 무공에 걸맞지 않게 젊었다.
바로 능조운.
그는 봉마금탑으로 접어드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거석(巨石)을 본다. 거석은 본시 일 마장 밖에 있던 것으로, 그것을 지금 그 자리에 옮겨다 놓은 사람은 바로 초의였다.
능조운은 그의 의발전인(衣鉢傳人)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지혜는 석대숭에게서 전해졌으며, 그의 무공은 초의선사에게서 유래한다. 그의 기질은 잠룡비전에서 길러졌으며, 독특한 개성은 그의 짧다면 짧은 생애 가운데에서 형성이 된 것이다.
"무게가 이만 관(貫). 저 거대한 돌덩이를 떠메고 일 마장이나 멀리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은 당세에도 거의 없을 것이다.“
능조운은 이끼 묻은 거석을 바라봤다.
<조사지명(祖師之命)으로 접근을 금하노라!
개벽의 그 날이 되기 전까지 누구도 봉마금탑으로 들어서지 못한다!>
능조운은 글귀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렇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소림의 진정한 힘이 나타나는 날이다."능조운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손을 쳐들었다.
언제 쥐었는지 모르게 천묵혜성도(天默彗星刀)가 손에 쥐어졌으며, 도극(刀極)에서부터 한 줄기 은파(銀波)가 치솟아 올랐다.
그 날, 초의선사의 손이 쳐들리며 호수가 갈라졌었는데… 지금은 허무일도(虛無一刀)에 의해 거석이 정확히 반으로 쪼개어졌다.
거석은 소리도 없이 갈라졌다.
능조운은 하나의 유성이 허공을 가로지르듯이 떠오르고, 포물선을 끌며 봉마금탑으로 날아들었다.
"삼천(三千) 승(僧)이 오늘을 위해 연무(緣武)를 거듭하고 있다. 내게는 그들을 세 번 부릴 수 있는 자격이 있다. 훗훗, 그 누가 소림사의 뇌옥 안에서 진정한 소림사의 후예들이 숨어 연공하고 있다는 것을 추측하겠는가?“
우지끈- 꽝-!
폭음이 일어나며, 능조운은 철문을 부수면서 봉마금탑 안으로 날아들었다.
그 곳에는 절진이 펼쳐져 있는데, 능조운은 진세를 뚫고 들어가는 법을 완벽히 알고 있었다.
- 봉마금탑에 가라. 거기 소림의 위대한 저력(底力)이 머물러 있다. 극한의 인고(忍苦) 가운데 진정한 소림무예를 터득하기를 맹세하며, 스스로를 유폐시킨 인물들! 그들이야말로 소림사의 진정한 후예들이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노납의 무기명전인(無記名傳人) 대비(大悲).
노납이 비록 소림사를 떠난 사람이되, 대비 그는 노납이 의발전인으로 삼은 네게 복종할 것이다. 그들은 적어도 세 번, 너의 명에 따라 강호출도(江湖出道)할 것이다. 그들을 부린다면, 능히 십만마병(十萬魔兵)을 막을 수 있다.
드넓은 광장(廣場).
허공에는 종유석이 수 장 길이로 내리어졌으며, 어디서 흘러드는지 모를 빛으로 인해 광장은 언제나 새벽 같은 광휘에 가득 차 있었다.
<고행무문(苦行武門)>
벽에 네 자 글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보라! 수없이 많은 승려들이 면벽(面壁) 좌선(坐禪)하고 있지 않는가?
하나같이 너덜너덜한 승포(僧袍), 등 뒤쪽에 계도(戒刀)를 한 자루씩 놓고 있는데… 어찌나 오랫동안 한 곳에 놓아두었는지 푸른 녹이 표면에 가득하다.
면벽좌선하고 있는 삼천 승려.
나이가 어린 승려라 하더라도 육십을 넘으며,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백사십 세에 달한다.
완전한 적요(寂蓼).
호흡하는 소리조차 들리지를 않는다.
하나의 노승, 그는 결가부좌를 틀고 묵상하고 있다가는 방금 전부터 합장배례하는 자세에 들어서고 있었다.
대비선사(大悲禪師).
오랜 전에 죽었다고 하는 인물인데, 버젓이 살아 있었다.
그는 장경각주(藏經閣主)였던 인물로, 소림사의 무수한 승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암기력(暗記力)을 갖고 있었다.
그 이유로 인해 그는 초의선사에게 발탁되었으며, 소림사의 운명을 짊어지는 인물이 되고 말았다.
실로 오랫동안 봉마금탑의 고행무문에 머물며, 소림사의 영재들에게 소림무예를 가르친 대비선사.
그는 소림사의 진정한 저력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었다.
지금, 그의 앞쪽에는 하나의 금색(金色) 연화(蓮花)가 피어나고 있었다.
너무나도 찬란한 금파(金波)이다.
그러면서도 그 빛이 부드러워, 눈을 자극하지 않는다.
금색 연화를 자세히 본다면, 그 안에 한 사람이 머물러 있음을 보게 되리라.
금색 연화는 내가진기의 정화(精華)이며, 칠 갑자 이상의 내공을 지닌 사람만이 시전할 수 있는 호법금색무화(護法金色霧花)였다.
'아미타불… 드디어 깨어날 때가 된 것이다.'
대비선사의 주름진 뺨을 타고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우우웅……!
기이한 음파가 장내에 가득하다.
금빛 안개가 이리저리 흐르는 가운데, 일어나는 음파였다.
"신승의 후계자이시여! 오랫동안… 그대를 기다렸소이다!“
대비선사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오체투지(五體投地)하고자 하는데, 그가 아무리 애를 쓴다 하더라도 그의 이마는 땅에 대어지지 않았다.
너무나 부드러우면서도 항거하기 힘든 잠력이 그의 전신을 휘감으며 그가 오체투지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다.
- 오지 않고자 했었소! 승려들에게 선혈(鮮血)을 보는 일을 시킬 수 없기에! 하나, 여기 오고 말았소. 마세(魔勢)가 생각보다 강하기 때문이오! 내가 누구인지 알려 하지 마시오. 나는 소림사의 후계자가 되기에는 부끄러운 사람이오. 하여간, 지금 나는 최소한 이천 고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소. 그래서 여기 온 것이오. 준극봉(峻極峯)에서 태실봉(太室峯)에 걸쳐, 비천마익진(飛天魔翼陣)이라는 진세가 펼쳐지고 있소. 진세를 구축하는 자들의 숫자는 삼천구백(三千九百). 하나같이 품에 화탄(火彈)을 지니고 있으며, 오늘 밤에서 내일 새벽에 걸쳐 도처에 화약을 감추고 있소. 그들은 천마혈랑수(天魔血狼手)라 불리우고 있소! 모두 제거(除去)해야 하오. 감쪽같이! 내일 자시(子時)에!
이 날, 소림사의 저력이 소리 없이 깨어났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새벽이 되기 전까지 무려 삼천에 달하는 노승들이 너덜너덜한 옷을 걸친 채 비밀 통로를 통해 봉마금탑을 빠져 나갔다.
새벽이 되기 전, 그들은 소림사 인근 백 리(里)에 걸쳐 항마불멸진(降魔不滅陣)을 펼쳤다.
그러한 일이 소리 없이 진행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능조운에 불과했다.
십오야(十五夜).
만월(滿月)이 허공에 걸리었으며, 태실봉은 다른 곳과 달리 흑무에 휘어 감기고 있었다.
휘리리리링-!
가공스러운 광풍(狂風)이 휘몰아친다.
거석이 뿌리째 뒤흔들렸으며, 거목은 나목(裸木)으로 화했다.
유난히도 동굴(洞窟)이 많은 태실봉은 중턱에서부터 광풍질우(狂風疾雨)에 휘어 감기고 있었다.
태실봉 위로 올라서려 했던 사람들은 뜻밖의 광풍질우에 휘말려서 걸음을 제대로 옮길 수 없었다.
"누군가 진을 펼쳤다!"
"정상의 대결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의화검맹 쪽에서 진세를 쳤다.“
"으음, 이십 리에 걸쳐 진세를 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의화검맹의 일맹주(一盟主) 냉소서생(冷笑書生)이다. 그는 곤륜(崑崙) 종대선생(鐘大先生)의 후계자로, 고금제일지(古今第一智)로 불리는데… 역시 명불허전이다.“
"백 년의 대결을 보기 위해 이천 리 밖에서 왔는데, 빌어먹을! 더 이상 가지 못하게 되었군.“
태실봉에는 진세가 펼쳐졌다.
진세는 새벽에 갑자기 발동이 되었으며, 그로 인해 협의도의 검호협사(劍豪俠士)들은 백 년의 대결장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진세 외곽을 맴돌게 되었다.
사람들은 진세를 펼친 사람이 의화검맹 쪽 사람이라 여기고 있었으나, 결코 그렇지 않았다.
산정(山頂).
언제부터인가 세 개의 솥(鼎)이 걸리어 있었다.
품자형으로 세워진 세 개의 산정은 금(金), 옥(玉), 철목(鐵木), 각기 다른 재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연무가 자욱이 퍼지고 있었으며, 세 사람의 몸뚱이가 짙은 연무에 감추어져 제대로 보이지 않고 흐릿하게만 보였다.
바로 이룡일봉(二龍一鳳).
그들은 강호거상에게 도전장을 내었으며, 벌써 사흘째 태실봉 정상에서 강호거상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젊은 천재들, 이들은 당세 백도의 살아 있는 우상들이었다.
냉소서생(冷笑書生),금강거협(金剛巨俠),천무낭낭(天舞娘娘).
의화검맹을 강력한 세력으로 구축한 당사자들이다.
하나, 그들의 진정한 면모가 어떠한 것인지는 의화검맹의 호법장로(護法長老)들이라 하더라도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쓰으으… 쓰으으……!
금정(金鼎), 옥정(玉鼎), 목정(木鼎)에서 향훈이 일어나며 실로 나직한 목소리가 흐르기 시작했다.
"놈은 오지 않으리라!"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는 겁쟁이일 것이며, 그에 대한 소문은 과장된 것임에 틀림이 없다!“
맑으면서도 차가운 여인의 목소리이다.
또 하나의 목소리.
"강호거상은 온다. 정시에 올 것이다. 내가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상인(商人)이기 때문이다. 그가 진정한 상인이라면, 신용을 지키기 위해 죽음이라도 불사할 것이다.“
"큿큿… 온다면, 내려가지 못할 것이야. 사실 그 자는 강호에 우리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에, 설치고 다녔을 것이다!“
"흠, 하여간… 머지않아 결판이 나겠지."
세 명의 기린아(麒麟兒).
뜻밖에도 젊고 강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그들을 기른 세 명의 백도거목(白道巨木)들보다도 세 배 더 강한 절세고수들이었다.
또한 그들의 얼굴에는 백도인들답지 않게 어두운 그늘이 가득한데, 그것은 원죄(原罪)의 그늘이라 할 정도로 칙칙한 어둠이었다.
자시(子時)가 되어 갈 때였다.
우우우……!
꽤 먼 산령(山嶺)에서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귀기스러운 늑대의 울부짖음 소리가 밤의 고독을 유린하는 가운데, 꽤 많은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신호다."
"혈랑마후(血狼魔吼)! 시작하라는 신호이다."
휘휙- 휙-!
은잠(隱潛)해 있다가 늑대 울음소리에 행동을 개시한 자들.
하나같이 묵직해 보이는 철립(鐵笠)을 썼으며, 새까만 전포(戰袍)의 등에 쌍검(雙劍)을 십자로 교차하여 메고 있다. 어깨에는 강궁(强弓)을, 손에는 갑노(匣弩)를 쥐고 있다.
그들의 옷가슴에는 한 마리 핏빛 이리(血狼)가 수놓아져 있다.
꾸역꾸역……!
흑의무사들은 하나같이 영활한 신법을 시전하여 태실봉을 향해 이동해 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비천마익진(飛天魔翼陣)이라는 진세에 따라서 일사불란하게 이동하는데, 그들이 움직이는 곳마다 희미하나마 유황 내음이 떠돌았다.
"가자!"
"자시(子時)에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무후의 명령이시다.“
"강호거상과 이룡일봉은 폭사(爆死)될 것이며, 수많은 사람이 죽으리라. 우리들은 폭발을 일으킨 다음, 혈천(血天)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임무를 완수하게 된다.“
"나머지는… 소림사에 머물러 있는 혈의가람들이 처리하게 될 것이다.“
어둠을 뚫고 이동해 가는 자들.
아아, 이들은 바로 이 년 전에 잠룡비전을 허물어뜨린 장본인들이 아닌가?갑노(匣弩)와 강궁(强弓)으로 화전(火箭)을 쏘아 보내는 신기(神技)를 지닌 자들.
이들은 악마무후 사엽풍이 가장 믿고 있는 몇 개의 세력 가운데 하나였다.
이끼 낀 바위 위.
너덜너덜한 승포자락으로 전신을 휘어감은 승려 하나가 합장한 채 서 있다.
해골처럼 깡마른 신체이다.
그러나 그의 전신에는 성스러운 기세가 맴돌고 있었다.
그가 오랫동안 폐관면벽하는 가운데 익힌 고행미륵진결(苦行彌勒眞訣)로 인해 일어난 기세이며, 그 기운은 일대가 비천마익진에 의해 포위됨에 따라 보다 강해지고 있었다.
"자시(子時)에 일제히 제압해야 한다. 아미타불… 그 자들을 제거하는데, 단 하나라도 실수가 있다면… 소림사의 명예에 먹칠을 하게 되는 것이다!"누구를 향해 말하는 것일까?
그의 말이 여운을 맺을 때.
"아미타불……!"
도합 백팔 방(方)에서 불호성이 터져 나왔고, 백팔 명의 노승들이 소리도 없이 허공을 뚫고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삼천구백 천마혈랑수들이 모여들고, 노승들이 사방으로 퍼져 가는 것은 동시에 시작되었다.
두 가지 일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진행되었으며, 그러한 가운데 십오야 꽉 찬 달은 머리 바로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