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창세기12장
창12:1 내가 네게 지시할 땅
11:31은 아브람의 원래의 목적지가 가나안이었음을 나타낸다. 명백하게, 하나님은 가나안을 아브람의 발걸음이 향하도록 할 땅으로 명시하셨음이 틀림없다. 이 경우에는(12:1) 가나안이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아브람은 가나안이 하나님께서 그가 가기를 원하는 곳임을 알았음이 분명하다. 그는 가나안을 염두에 두고 출발했다(5절). 아브람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는 히 11:8에 나타난 바울의 진술은 이제부터는 아브람이 분명한 거주지를 갖지 못하고 순례자와 타국인(히 11:9; 교회증언, Ⅳ, 523)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 같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매일매일 그를 인도하실 것이며 그는 미래에 어떤 일이 있을지 미리 알지는 못할 것이었다.
창12:3 내가 복을 내리고
그러한 보증은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부여할 수 있었던 우정과 호의에 대한 최고의 서약이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친구에게 한 모욕과 잘못들을 자신에게 한 것처럼 간주했고, 그와 제휴하고 그의 친구들과 함께 하며 그의 적들을 마치 자신의 적들인 것처럼 대처하기로 약속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벗”(약 2:23)이었다.
땅의 모든 족속
여기서 “땅”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아다마(’adamah)는 본래 “지면” 또는 “토양”을 의미한다. 여기에 모든 민족들과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인간의 타락 후에 저주받았던 것은 “땅”(3:17)이었는데, 본래 인간을 만든 재료인 바로 그 땅이었다. 그 저주는 한 사람의 불순종 때문에 왔다(롬 5:12). 그러나 이제는 “땅”의 모든 족속이 충실하다고 판명된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을 것이었다. 그의 영적인 후손으로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아브람에게 분여(分與)된 축복에 참여한다(갈 3:8, 29). 그에게 허락된 축복은 결국 지상의 분열된 족속들을 연합시킬 것이며, 죄 때문에 땅에 선고된 그 무서운 저주를 모든 사람을 위한 축복으로 바꿀 것이다. 부조들과 이스라엘에 주어진 모든 추가적인 약속들은 아브람에게 주어진 첫 약속을 통해 전 인류에게 제공된 구원의 약속을 명백히 하거나 확대한 것이었다
창12:5 사람들
네페쉬(nepes). 「개정표준역」은 여기서 “사람들”(persons)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참 하나님께 회심한 몇 사람이 이 일행에 포함되었다(부조와 선지자, 127). 이 회심자들은 자신들을 아브람의 가족에 부속시켰고 그의 하속이 되었다. 아브람과 롯 둘 다 “가축의 목자들”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13:7). 후에 아브람이 318명의 훈련되고 무장한 하속들의 도움으로 롯을 구출할 수 있었던 것(참조 14:14)은 이 “사람들”이 그의 가족의 구성원들이었다는 사실을 더 분명하게 보여 준다(14:14 주석 참조).
창12:8 그가…단을 쌓고
아브람은 장막을 치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으며(참조 12:7; 13:18), 자기 가족의 구성원들과 인근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을 위해 공중 예배를 인도했다. 비록 그 예배는 아마도 기도, 희생제사, 그리고 의심할 바 없이 복음전도에 관한 호소로 단순하게 이루어졌을 것이지만, 아브람이 여호와에 관한 지식으로 인도한 많은 가속들이 이 의식들을 감명깊게 만들었음이 틀림없다(참조 14:14; 18:19).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을 고백하기를 두려워하여 감추지만 아브람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자신이 신뢰하고 순종하는 그분을 고백했다. 팔레스타인 지방을 점점이 수놓는 그의 제단들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에 대한 기념물이었다. 그리하여 그 죄악이 아직 차지 않은(15:16) 가나안인들은 우주의 창조주를 알게 되고 아브람의 교훈과 모본에 의해서 그들의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요구받았다. 이 세상의 첫 번째 외방 선교사 아브람은 지칠 줄 모르고 팔레스타인을 여행했으며 장막을 치는 곳마다 하나님에 관해 설교했다. 이삭과 야곱도 팔레스타인에서 그들의 삶을 보내라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이 사람들이 항상 진리의 빛나는 모본이 되지는 못했으나 가나안인들은 자기 자신들의 삶의 방식과 히브리인들의 삶의 방식에서 차이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심판 시간이 왔을 때 그들은 하나님에 관해 배울 수 있는 모든 기회를 하나님이 그들에게 제공했음을 부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창12:10 기근이 있으므로
약속의 땅을 통과하자마자 아브람은 극심한 기근으로 말미암아 그곳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나안은 원래 비옥했지만 그 지방이 의존하고 있던 11월과 12월에, 비가 없거나 부족한 해에는(참조 창 26:1; 41:56; 왕상 17:1; 학 1:10, 11) 특히 가뭄에 시달렸다. 아브람이 그 땅으로 들어갔을 때에 바로 이 기근이 발생한 것은 그의 믿음에 추가적인 시련이었다. 그것은 그에게 순복, 믿음, 그리고 인내의 교훈들을 가르칠 것이었다. 그는 심지어 약속의 땅에서도 음식과 축복은 여호와로부터만 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창12:12 이는 그의 아내라
아브람은 인간의 계략이 무가치하다는 것과 두려움과 당혹으로부터의 구원은 오직 여호와로부터 온다는 것(시 105:14, 15)을 애굽에서 발견할 것이었다. 애굽에 접근하면서 아브람은 자기의 아내 사래의 아름다움 때문에 자기 목숨을 염려했다. 그녀가 자기의 이복 누이였으므로 그는 그녀에게 짐짓 자기 누이인 체하도록 요구해도 무방하다고 느꼈다(참조 20:12). 후에 소돔 사람들의 경우에서 보여지듯이(19:4~11), 가나안인들의 행위는 그에게 염려할 이유를 제공하는 증거이다. 애굽에서의 그의 경험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의 두려움에 충분한 근거가 있음을 훨씬 더 분명히 보여 준다. 그러나 그가 강구한 예방책은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녀 자신이 결혼 관계를 부인했을 때 그가 그녀를 자기 아내로 보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어떻게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아내로서보다는 누이로서 그녀를 더 효과적으로 그가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영리한 계획이 그가 두려워했고 피하고자 했던 바로 그 일을 가져왔지만, 소위 그녀의 오빠이기 때문에 그는 바로에게 좋은 대우를 받고 왕의 기쁨과 우정의 표시로서 가축들과 종들을 받았다(20:13~16 주석 참조). 우리의 소위 “영리한” 계획에도 종종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
창121:17 여호와께서…바로…에(게)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인간의 궁지는 하나님의 기회이다. 비록 아브람이 하나님을 실망시켰을지라도 하나님은 아브람을 위하여 개입했다. 이 재앙의 성질이 무엇이었는지는 정할 수 없으나 사래를 불명예로부터 보호하고 그녀를 아브람에게 복귀시켜야한다고 바로를 납득시키기 위한 성격의 것이었음이 명백하다. 사래가 직접 자신의 실제적인 결혼 신분을 밝혔거나 아니면 후에 아비멜렉에게 했듯이(참조 20:3) 하나님이 바로에게 직접 말했는지도 모른다.
창12:19 데려가라
하나님이 불쾌히 여겼기 때문에 그 군주는 자신에게 재앙이 왔다고 인지하여 감히 아브람을 거칠게 다루지 못하고 오히려 그에게 그 나라로부터의 안전 통행권을 제공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바로의 호의와 하나님의 자비가 그를 겸비하게 만들었으며 침묵 속에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분별 없고 불명예스러운 행동 노선의 결과로 하나님의 대표자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자업자득의 비난을 받을 때 하나님의 사업에 얼마나 큰 불명예가 초래되는가!
이 경험으로 아브람이 자기 자신의 교묘한 책략보다는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가르쳤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가 잠시 후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참조 20:2)을 발견하는 것은 이상하게 보이며, 그의 아들 이삭이 같은 책략을 시도하고 있는 것(참조 26:7)을 발견하는 것은 더욱 더 이상하게 보인다. 하나님이 그의 종들을 그들 자신이 획책했던 상황으로부터 구출한 것은 그의 자비와 사랑의 증거이다. 비록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자들이 때로는 부르심에 어울리지 않게 행동할지라도 하나님은 종종 그들의 대적자들이 그들을 존경하도록 가르친다. 여호와는 심지어 그 자녀들이 신실하지 못한 때에도 그들에게 여전히 신실하다(참조 딤후 2:13).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기 힘든 결과들로부터 구할 것이라는 기대로 고의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다. 이와 같은 유혹에 대하여 그리스도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마 4:7)고 대답했다.
" 인간의 궁지는 하나님의 기회이다".란 말이 참 인상적이다. 아브라함의 실수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재앙으로 바로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라를 접촉하지 않고 돌려 보낸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개입이었다.
하나님의 시키시는 일을 할때 어려움이 오거나 난관에 부딫치면 변명과 이유없이 하나님을 굳게 의지해야함을 깨달앗다
오늘은 운동가는 날이지만 후배목사의 요청으로 ride를 해서 Fullerton에 있는 미락 식당에서 Douglas Cho 라는 natural Remedy의 전문가를 만나 질병의 원인과 대체식품치료제에 대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detox를 해서 암의 통증을 제거하고 약한 신장과 심장을 치료하여 당료병과 불면증을 고칠수 있다는 설명이 믿기 힘들었다. 이분의 말대로라면 말기환자가 아니면 고의 고칠수 있게되는 거짓말같은 식약품이 14가지 개발되어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 연구하고 접촉해야할 과제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