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나무집>
서울이라지만 서울답지 않게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외관보다 훨씬 더 근사한 내관, 내관보다 음식맛이 더 주목되는 식당이 있다. 이름도 텁텁한 통나무집. 내관은 화려하고 꼼꼼한 손길이 눈을 사로잡지만, 수수한 이름보다 맛은 더 수수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먹을 수 있다.
1.식당대강
상호 : 통나무집
주소 ; 서울 서초구 헌인릉길 9
전화 : 02-445-0662
주요음식 : 소고기구이
2. 먹은날 2022.10.31.점심
먹은음식 : 사골우거지탕 15,000원
3. 맛보기
소갈비집에 와서 우거지탕을 먹고 좋은 식당이라고 소개하려니 장님 코끼리 만지기같다. 고기 먹을 상황이 안되었고, 고기가 아닌 조리 음식을 맛보고 싶어 찾은 음식이 우거지탕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본말전도가 된 기분이다.
그러나 소고기는 식재료라서 식당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다. 실력은 요리음식에서 드러난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맛을 논하기에 적당한 메뉴 선택이니 나무라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우거지탕을 먹은 소감은 한말로 대단하다, 이런 음식이 이런 곳에 숨어 있구나다. 물론 알 사람은 다 알고 있겠지만 말이다. 서울이면서 한적한 공간이어서 소풍겸해서도 나올 만한 위치인데, 코앞이 헌인릉이 있다. 음식에 풍광에 역사적 함의까지 갖추고, 외식을 유혹하는 식당이다.
네모난 고기는 인위적이지만 맛은 자연적이다. 시레기 맛이 좋고, 시원한 맛도 좋다. 양도 푸짐하여 넓은 뚝배기로 호복한 국밥이 외양만큼 맛도 풍부하다.
서울답지 않게 국밥에 찬이 여러가지다. 나물류가 두 가지나 나온다. 숙주나물은 특히 좋다. 숙주줄기가 통통하고 사각거려 식감이 좋은데, 신선한 맛에 참기름 맛이 오지다. 진짜 참기름이다.
김치맛도 굴욕이 없다. 식감과 산도가 참 적절하다. 순환이 빠르게 되지 않는 집에서 이런 김치 만나기는 어렵다.
연근시금자샐러드. 유일한 불만. 너무 달다.
아래는 식당 내부. 무슨 화랑같은 분위기다. 진품 미술품이 여러 점 걸려 있다.
화려하고 재미있는 작품. 나비 앞에서 장미는 무채색이다. 주인공은 나비, 형형색색의 요란한 나비가 날아다니는 동선을 시각화했다.
커피숍같은 식당, 1,000원을 내면 이 아름다운 공간에서 원두커피를 마실 수 있다. 근처에 커피숍 없는 것이 원망스럽지 않다. 자족적인 식당이다.
4. 먹은 후
1) 화훼 매장 동네
일대는 화훼매장 단지다. 계속 꽃집이 이어져 있다. 서울 꽃은 이곳에서 다 공급되는 거 같다. 안을 살짝 들여다보면 모두 끝이 안 보이게 활짝 이쁘게 핀 꽃들이 늘어서 있다.
2) 헌인능 관람
오늘은 불운하게도 월요일, 헌인릉 휴관일이다. 밖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 헌인릉 재실
*<헌릉과 인릉>
위치 : 서울특별시 서초구 헌인릉길 42(산13-1)
태종과 왕비 원경왕후 민씨의 무덤인 헌릉과 순조와 왕비 순원왕후 김씨의 무덤인 인릉을 합쳐 부르는 명칭으로,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다. 두 능의 면적은 41만 1014평으로, 이 일대가 1970년 5월 26일에 사적 제194호로 지정되었다.
내용
헌릉(獻陵)은 조선왕조 제3대 태종과 왕비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閔氏)의 능이다. 능은 건좌손향(乾坐巽向)의 동원쌍봉(同原雙封)으로 이루어졌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째 아들로 함흥 귀주동(歸州洞)에서 탄생하였다. 조선왕조의 개국에 큰공을 세웠으며, 두 차례 왕자의 난을 일으킨 뒤 1400년(태종 즉위)에 왕위에 올랐다. 1422년(세종 4) 5월 10일에 천달방(泉達坊) 신궁(新宮)에서 56세로 승하한 후 같은 해 9월 6일에 원경왕후 옆에 묻혔다.
원경왕후 민씨는 여흥부원군 민제(閔霽)의 딸이다. 1365년(공민왕 14)에 개성의 철동(鐵洞)에서 태어나 태조 즉위 후 정녕옹주(靖寧翁主)에 봉해졌다. 1400년(태종 즉위) 정빈(貞嬪)에 책봉되고 정비(靜妃)에 진봉되었다. 1420년(세종 2) 7월 10일 수강궁(壽康宮: 창경궁) 별전에서 56세로 별세한 후, 같은 해 9월 17일에 이곳에 묻혔다.
헌릉은 원경왕후가 죽자 현 위치인 광주(廣州)의 대모산(大母山)을 능지로 선정하였다. 태종이 국상(國喪)에 법석(法席)은 물론 원찰(願刹)도 금한 탓에 원당이 없으며 다만 현판류 8점이 남아 있다.
헌릉의 상설(象設)은 고려 왕조의 현릉(玄陵)과 정릉(正陵)의 제도를 답습하여 망주석을 제외한 모든 석물(石物)을 한 벌씩 갖추어 쌍(雙)으로 배치하고 있다. 즉, 봉분을 2기로 하되 난간을 터서 연결시킨 쌍분제이다.
봉분 하단에 병풍석을 둘렀는데 그 우석(隅石) 우측에 영저(靈杵), 좌측에 영탁(靈鐸)을 양각하였다. 면석(面石)은 와형운문(渦形雲文)을 두르되 중앙에는 각 방위별로 수관인신(獸官人身)의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새겨 넣었으며, 우석과 면석 하단에는 영지(靈芝)를 조각하였다. 병풍석은 앙련(仰蓮)·복련엽(伏蓮葉)을 조각했으며, 그 앞은 낮은 돌계단으로 되어 있다.
배치된 상설은 곡장(曲墻) 3면, 병풍석 12면, 난간석 10칸, 혼유석 2, 명등석(明燈石) 2, 망주석 1쌍, 문인석 2쌍, 무인석 2쌍, 마석(馬石) 4쌍, 양석(羊石) 4쌍, 호석(虎石) 4쌍, 정자각(丁字閣), 망료위(望燎位), 비각(碑閣: 舊神道碑 1, 新碑 1), 홍살문 등이 있다. 구신도비는 임진왜란 때 손상된 것을 1695년(숙종 21)에 다시 세운 것으로 변계량(卞季良)이 찬(撰)하였다.
인릉(仁陵)은 조선왕조 제23대 순조와 왕비 순원왕후(純元王后) 김씨(金氏)의 능이다. 능은 자좌오향(子坐午向)의 동원합봉(同原合封)으로 이루어졌다.
순조는 수빈 박씨(綏嬪朴氏)의 소생으로, 1790년(정조 14) 6월 18일에 창경궁 집복헌(集福軒)에서 태어나 1800년(순조 즉위) 7월 4일에 창덕궁 인정문(仁政門)에서 즉위하였다. 1834년(순조 34) 11월 13일 경희궁 회상전(會祥殿)에서 45세로 승하했으며, 1835년 4월 19일 파주 교하의 장릉(長陵) 지역 부근에 처음 장사지냈다. 그러나 풍수지리상 불길하다는 이유로 1856년(철종 7) 10월 11일 현 위치로 이장되었으며, 다음 해 순원왕후를 합장하였다.
순원왕후 김씨는 영안부원군(永安府院君) 김조순(金祖淳)의 딸로, 1789년(정조 13) 5월 15일 태어났다. 1857년(철종 8) 8월 4일 창덕궁 양심각(養心閣)에서 69세로 별세했으며 같은 해 12월 17일 이곳에 묻혔다. 왕과 왕후는 1899년(광무 3) 11월 17일에 숙황제(肅皇帝)·숙황후(肅皇后)로 추존되었다.
인릉은 외형상 일반적인 단릉(單陵)과 같이 혼유석 1좌만 있는 2실(室)로 합장하였다. 명등석은 영릉(英陵)을 모방하였다. 석인(石人) 조각은 4등신으로 머리가 어깨 위로 나오고 하반신이 더 길어진 형태이다.
능의 상설은 곡장 3면, 난간석 12칸, 혼유석 1, 명등석 1,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 무인석 1쌍, 마석 2쌍, 양석 2쌍, 호석 2쌍, 정자각, 수라청, 망료위, 구표석(舊表石) 1, 신표석 1, 홍살문, 재실 등이 있다. 표석은 천릉(遷陵)했기 때문에 2개가 있다. 한편, 능 입구에 능참봉가(陵參奉家)가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재)
*인릉
인릉. 아쉽게도 헌릉은 안쪽에 있어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헌릉은 쌍분으로 오른쪽 안쪽에 위치해 있다.
인릉 정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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