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대왕의 효심과 소녕원 (昭寧園)
조선 역대 임금 가운데 가장 장수했고(82세.1694-1776) 제일 오래 재위했던(52년.1724-1776) 영조대왕.
그에 걸맞게 그의 치적이 세종 다음간다는 평과 함께 영.정조시대가 문예부흥기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런 영조는 또한 모친에의 효심에 관한 한 버금 가라면 언짢아 할 왕일 것이다.
아버지는 숙종인데 어머니는 하층중의 최하층인 무수리 출신 숙빈 최씨였기 때문에 영조는 무엇보다
신분 콤플렉스에 평생을 시달렸을 것이고 그래서 더욱 모친를 극진하게 모셨을 것이다.
그의 모친 묘가 파주군 광탄면 영장리 고령산 (高嶺山)자락에 있는 소녕원 (昭寧園)이다.
숙빈 최씨에게는 비석이 세 개, 신도비(神道碑)가 하나, 육상궁이라는 사당이 하나 있다.
왕비가 되지 못한 탓에 일반 묘의 형식을 그대로 따랐다.
묘의 뒷부분에 제비초리가 있고 앞에는 비석이 있다. 왕릉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비석은 숙종 44년(1718년) 후궁 숙빈 최씨 사망시 `有明朝鮮國後宮淑//嬪首陽崔氏之墓’ 라고
두줄 세로로 써 세운 것이다. 여기서 有明朝鮮國은 명나라가 있으므로 조선이 있다는 뜻으로
대등관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뒷면을 보면, 연호도 황명(皇明;황제의 나라 明) 숭정(崇禎) 을 쓰고 있다.
뒷면에는 해주 최씨, 정면에는 수양최씨라고 되어 있어 유심히 들여다 본 방문객들은 당연히 의심이 간다.
해주최씨 종친회에 알아보니 일부 사람들이 해주에 있는 수양산 이름을 따서 수양최씨라고도 했다고 한다.
영조가 왕위에 있으면서 친필의 비석 두개를 세우는데 정자각 우측 윗쪽에 각각 비각속에 들어 있다.
왕이 되자 마자 세운것에는 `淑嬪海州崔氏昭寧墓’라 쓰여 있다.
묘앞의 비와는 달리 해주 최씨로 명기되어있고 소녕이란 묘호가 붙고 후궁이란 말과 함께
앞줄 전체와 지(之)자가 빠진다. 왕이 되고 난 후라 뭔가 조금 격상된 듯 싶다.
1725년 영조가 생모를 기리기 위해 궁정동에 사당을 만들어 숙빈묘(廟)라 한다.
1744년 이를 육상묘(毓祥廟)로 개칭한다. 육상궁(宮) (아들을 왕으로 등극시킨 조선 일곱후궁들의 위패를
이곳으로 모시고 후에 칠궁이라 개명했다.)으로 승격시키면서, 소녕묘(墓)도 소녕원(園)으로 한 단계 오른다.
영조가 왕이 되고 29년이 지난1753년의 일. 그 해 영조는 비석을 하나 만들어 또 다른 비각에 세운다.
비의 내용은 “朝鮮國// 和敬淑嬪昭寧園.” 명나라의 눈치를 안보아도 된다는 의미인지 이 비석에는
“有明”이라는 말이 없다. 그렇지만 뒤를 보면 연호는 아직도 “皇明 崇禎”을 그대로 쓰고 있다.
和敬이란 시호(諡號: 임금·정승·유현(儒賢) 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기리어 주는 이름)를 올리고
공식적으로 園이 됨을 알 수 있다.
영조는 어머니가 돌아 가시자 이곳에서 시묘막을 짓고 3년상을 치렀다한다
영조의 효심에 관한 흔한 얘기 하나.
앞서 말한 대로 최씨는 미천한 몸으로 영조를 낳았다.
영조가 즉위하기 6년전(1718)에 정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죽었으므로 일반 사람과 마찬가지로
“최씨의 묘”로 비석을 세웠다. 영조는 등극후 왕비의 능으로 승격시키고자 하는 생각이 마음 밑바닥에 항상 깔려 있었다.
그러나 대신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전한다. 하루는 이 묘가 있는 영장리에 사는 나무꾼이 도성에 들어와 모화관
부근에서 나무를 팔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영조가 이 나무꾼을 보고 어디서 해온 나무냐고 묻는다.
그 사람은 평시에 듣던대로 자랑스럽게 양주(당시에는 양주군에 속했음) 소녕"릉”이 있는 마을에서 해 왔다고
대답하자 영조는 이 나무꾼을 거처하고 있는 경희궁으로 데려 온다. 대신들 앞에서 다시 물으니 역시 같은 대답이다.
이때 영조는 대신들에게 백성들은 소녕“릉”이라고 하는데 조정 대신들은 왜 소녕 "원”이라 부르냐고 호통을 친다.
후에는 대신들이 능으로의 승격을 주장했다지만 영조는 궁중의 법도에 맞춰 그대로 원으로 했다고 전한다.
나무꾼은 영조의 맘에 들게 해 소녕원의 능수복(陵守僕)(참봉 아래 직위) 에 임명되었다고 한다.
영조의 모친에 대한 애틋한 효심을 말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상주하는 능지기가 없는 왕릉도 있는데 소녕원은 원(園)인데도 유일하게 참봉이 있는 곳이다.
묘자리와 관련 이야기
영조가 왕자 시절 이곳 경치좋은 곳에 사냥을 하러 많이 돌아 다닌 것으로 전한다.
하루는 연잉군 (왕세제가 되기전 영조 호칭)이 이 산을 지나는데 장사지내는 사람이 관을 옆에 두고
대성 통곡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유를 알아본 즉, 지관이 묘자리를 잡아주어 땅을 팠는데
물이 나오니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사연을 들은 연잉군은 도성에 돌아와 그 자를 불러들였다.
그는 무릎 꿇고 웃으면서 하는 말이,
"그 산에는 그 죽은자의 묘자리는 없사옵니다. 어디다 묻어도 다시 옮기게 되어 있기 때문이옵니다.
어차피 이장할 것이니 아무데나 짚어 주었사옵니다. 마마! 이 곳의 주인은 따로 있사옵니다."
"그러면 그 자리는 누구 자리인가?" 연잉군이 물었다.
"마마나 마마 모친 자리입니다. 빠를수록 좋습니다."라고 그 지관이 말하니 연잉군이 깜짝 놀란다.
궁의 전속 지관과 다시 가서 그 곳을 살펴 보았다.
전속 지관은 좀 윗쪽을 지목해 연잉군은 그곳을 모친이 돌아가시면 모실 요량이었다.
그런데 이 지관은 70여자(20여 미터) 아래 현재 묘가 있는 곳이 더 좋다고 아뢴다.
그의 말이 미덥지가 않아 그 지관에 문제를 하나 낸다.
만약에 풀지 못하면 사기꾼으로 알고 처형을 하고 맞추면 소원을 다 들어 주기로 한다.
나무상자에 쥐를 한 마리 넣어두고 “몇 마리인가를 맞춰보라”고 말한다. 그는 서슴없이
“세마리 이옵나이다.” 라고 대답한다. 틀린게 분명하다.그래서 바로 목을 치도록 명령한다.
그런데 쥐가 좀 이상하게 배가 볼록해 갈라 보라고 해 칼질을 하니 두 마리의 새끼가 있었다.
결국 그 지관의 말이 맞음을 알고 곧바로 사람을 보내어 처형을 멈추도록 명을 내렸으나
벌써 집행된 상태였다. 아까운 사람을 하나 잃게 된 것이다.
고관들과 임금 대부분의 묘가 그렇듯이 숙빈 최씨 묘앞에도 팔각의 망주석 한쌍이 양쪽으로 서 있다.
오른쪽 망주석에는 땅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의 쥐가 한마리 돋을 새김으로 조각되어 있고
왼쪽 돌기둥에는 하늘로 올라가는 쥐가 한마리 양각되어 있다.
쥐 때문에 그가 억울하게 죽게 되어 그의 원혼을 풀어주기 위해 그와 같이 쥐를 새겨 놓았다.
물론 한마리는 땅속에 있어 밖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 이후로 망주석에 쥐를 새겨놓는 관행도 생겼다고 한다.
이 묘자리는 주위에 39개 산봉우리가 둘러져있고 마장, 기산 두 저수지가 마치 백두산 천지처럼
높은 곳에서 이 곳에 정기를 내려주는 것처럼 되어 있다고 풍수가들은 말한다.
또한 아침에 해가 뜨면 이 묘를 정면으로 비춰 기가 서리게 해 준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영조가 오래 살고 왕위에 오래 앉아 그 어느 왕보다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면 지나친 미신일까?
비록 모친에 대한 열등감과 사도세자를 죽이는 비운이 평생 그를 짓누르기는 했지만...
소녕원에 들어서기전 왼쪽에 신도비가 있다.
비각은 물론 신도비 경내를 들어가는데도 자물쇠가 잠기어 참봉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비신 모습만이라도 잠깐 볼 생각으로 능참봉에 청하니 퉁명스럽게 문화재청에서 허가를 받아 오란다.
여러 곳에서 들은 이야기다. 그 말 한마디에 그냥 물러설 사람이 아니다.
보채니까 일을 좀 추리고 나서 오토바이를 타고 나를 신도비로 안내한다.
비각 문을 열더니 절을 해야겠단다. 나도 따라 했다.
그런데 보통 죽은 사람한테는 2배(拜)를 하는데 3배(拜)를 하기에 이유를 물으니
왕의 모친이니 왕이나 다름 없는 거고 왕한테는 지존이니까 3배란다.
비신의 받침석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육중한 거북이다.
묵직한 여의주를 입에 물고 뒷머리에 임금 왕(王)자가 새겨져 있고 눈, 귀, 코, 발등의 선은 굴고 또렷하다.
어디에서도 이렇게 중후한 받침석 거북을 보기가 쉽지 않다.
영조가 천민출신의 모친을 위해 더욱 웅장하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비신상단에는 전서체로 淑嬪崔氏라고 가로로 쓰여있고 그 밑으로 최씨 일대기와 송덕이 써 있다.
초기것이 망가졌는지 비수(碑首)(비의 머리 또는 지붕)는 최근에 다시 만들어진 것이고
비신에는 6.25 총상이 한 군데 나 있다.
능지기는 먼지가 부옇게 끼어있는 거북에 목욕을 한번 씻겨 드려야겠단다.
성의를 다해 모실 각오가 되어 있어 듣는이의 기분을 좋게 한다.
첫댓글 소녕원 역사이야기와 녹음이 울창한 원을 잘 보았습니다.
효심은 어느 누구에게나 애닳은 것이지요.
살아생전에는 못다한 .......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