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탐색하는 ‘바람개비’
이상호
인류보편의 놀잇감
대나무를 깎거나 종이를 접어 날개를 만든 뒤 자루에 꽂아 만든 아이들 놀잇감인 바람개비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팔랑개비’라고도 하고, 돌아간다는 뜻으로 ‘도르라기’라고도 한다. 한자로는 ‘회회아(回回兒)’라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바람개비를 어떻게 부르는가 알아봤더니 나라마다 저마다 고유명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인류 보편의 놀잇감인 것 같다.
많은 놀이가 그렇듯 바람개비는 신앙(믿음, 기원)과 관계되어 있다. 《세조실록》에 소개된 정월 대보름 풍속엔 새해 풍작을 기원하며 여러 곡식의 이삭을 긴 장대에 매달아 세웠고 그 밑에 바람개비를 달았다는 기록이 있다. 곡식이 잘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비와 관련이 있었고, 비를 불러오는 것이 바람이었으니 바람개비를 달았던 것이다. 바람은 ‘바라다’라는 뜻도 있어 농사 짓고 살던 사람들이기에 비(=바람)가 그 만큼 간절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익의 《성호사설》, 이덕무의 《사소절》,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도 바람개비에 대한 글이 나오는데 주술의 의미는 사라지고 만드는 방법이나 노는 모습에 대한 기록만 소개한 것으로 보아 놀잇감으로 굳어진 것 같다. 바람개비하면 색종이와 수수깡이 떠오르는데 수수깡은 옛날에도 있었지만 색종이는 근래에 나온 것이니 옛날에는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궁금해졌다. 이에 대한 기록이 《동국세시기》에 남아 있다.
“아이들이 오색 종이에 풀칠을 하여 대나무 가지 양 끝에 붙이고 자루 끝에 구멍을 뚫고 연결하여 빙빙 돌도록 만든다.”
지금처럼 날개가 네 개인 ‘4날’이 아니고 대나무와 종이를 이용해서 만든 날개가 둘인 ‘양날(2날)’ 바람개비가 주였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놀이나 놀잇감도 시대의 변화를 피해갈 수 없다.
바람개비 만들기
-4날 바람개비
놀이에 앞서 먼저 바람개비를 만들어야 한다. 가장 만들기 쉬우면서 널리 알려진 방법은 색종이로 만드는 것이다.
① 색종이를 대각선으로 접었다가 편다.
② 접은 선을 따라 중심 바로 전까지 가위로 자른다.
③ 네 귀퉁이를 한쪽 방향으로 중심에 모아 손으로 잘 고정한다. 손놀림이 서툰 아이들은 풀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중심에 모은 종이가 눌러지지 않게 해야 바람이 그 사이로 잘 지나가 바람개비가 잘 돌아간다.
④ 손잡이가 될 수수깡이나 가는 나무 막대에 압정이나 실핀으로 고정한다.
-양날 바람개비
양날 바람개비는 조금 더 손이 간다. 대나무로 하면 단단하고 좋지만 구하기도 어렵고, 다듬어야
하므로 수수깡을 쓰는 것이 좋다.
① 수수깡을 16~20센티미터 정도 자르고, 세로로 반을 자른다.
② 반 자른 수수깡의 중심을 기준으로 날개가 되는 종이를 서로 엇갈려 붙인다.
③ 날개는 둥그런 연필로 감았다가 놓아서 약간 곡선이 되게 해야 바람을 잘 받을 수 있다.
④ 손잡이는 색종이 바람개비처럼 만들면 된다.
-헬리콥터 바람개비
단풍나무 씨앗이 떨어지는 모습을 본 뜬 헬리콥터 바람개비는 손에 쥐고 뛰는 바람개비와 다르다. 자르고 붙이는 과정 없이 손쉽게 만들 수 있다. 먼저 세로 10~12센티미터, 가로 3.5~4센티미터(색종이를 반으로 접은 크기)정도의 조금 두꺼운 종이가 필요하다. 보통 스케치북 정도의 두께가 적당한데 너무 얇으면 돌아갈 때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① 종이를 세로로 놓고, 가운데를 3~5센티미터(전체 5분의 2정도) 지점까지 자른다. 가위가 있으면 좋고 없으면 손으로 찢어도 된다.
② 이 부분이 날개가 된다. 한쪽 날개는 앞쪽으로 접고, 한쪽 날개는 뒤쪽으로 접는다.
③ 맞은편 세로 부분은 양쪽을 4분의 1 정도를 접고, 가로를 자른다.
④ 자른 부분 양쪽을 앞,뒤 또는 한쪽 방향으로 접고 클립을 끼우면 완성된다.
완성된 바람개비를 종이비행기 날리듯 위에서 던지면 클립의 무게 때문에 조금 솟구치다가 아래로 떨어진다. 이때 날개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천천히 떨어진다. 조금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뜨리면 빙빙 돌면서 천천히 떨어진다. 이럴 땐 서너 개를 만들어 모두 날린 다음 한꺼번에 주워 오는 방법으로 하면 재미있다. 길이를 정확하게 제시하지 않은 것은 서너 번 만들고 날리면서 어떻게 만드는 것이 잘 날 수 있는지 스스로 알아내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탐색할 자유
올해는 1학년 담임을 맡았다. 이 시기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기초 학습 능력? 학교라는 단체 생활에 적응하는 능력? 또래와 관계 만들기? 어느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뭔가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고민만 깊어졌다.
며칠 전 아이들과 함께 바람개비를 만들었다. 색종이 바람개비는 쉬우니까 5분 정도면 만들 거라고 예상했지만 아니었다. 작은 손으로 색종이를 접어서 자르고, 풀칠하고, 실핀 꼽는 것 등 하는 게(돼지꼬리) 어느 하나 쉽지 않았다. 먼저 만든 아이가 교실에서 뛰어다니며 성능을 시험하는데 아직도 중앙에 날개를 붙이는 아이도 있다.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내보내고 늦게 만드는 아이들을 봐 주었다. 아이들만 내보내서 불안해 운동장을 내다보니 무작정 뛰는 아이, 그 자리에서 빙빙 돌면서 돌리는 아이, 뒤로 뛰는 아이, 멈춰서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면서 어느 쪽이 잘 도는가 관찰하는 아이, 저마다 바람개비와 놀고 있었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고민의 답을 찾았다. ‘탐색할 자유를 제공하는 것!’이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시간표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짜여진 틀 속에 아이들을 집어넣는 것이 교육이라면, 거기에 따르지 못하면 문제아, 부적응아, 과다행동, 말썽꾸러기로 이름 붙이고 억압한다면 결국 어른이 정해 놓은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로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아이들은 세상을 끊임없이 탐색하면서 조금씩 알아간다. 말이나 음식, 문화 환경이 전혀 다른 외국에 갔을 때 어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나에게 무엇이 요구되는지, 새로운 자극이 오면 어떻게 반응할지 탐색한다. 그런 가운데 둘레를 알아가고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조금씩 적응해 나가지 않은가!
아이들에게 세상이란 낯선 환경이고 이를 주체적으로 탐색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 바로 성장 과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바람개비를 완성한 아이를 데리고 운동장으로 나왔다. 아이들이 내게로 달려온다.
"뒤로 뛰어도 잘 돌아요"
"이쪽으로 뛰면 더 잘도는데, 저쪽은 잘 안 돌아요."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바람개비가 어떻게 도는지 알아낸 것이다. 아이들이 저마다 열띤 목소리로 바람개비 돌려 본 경험을 이야기한다. 내 손에 쥔 바람개비가 알았다는 듯이 힘차게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