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를 이룬 문무대왕은 동해 작은 돌 섬 안에 수장되어있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고 동해에 묻어 달라 했던 호언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의 아들 신문왕은 뜻을 따라 지금의 경주 봉길 해변 대왕암에 수중릉을 만들고 주변에 많은 유적지를 남겼다. 청량한 경주 봄 바다와 함께 두 부자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역사 길을 따라 가보자.
- ▲ 경주에서 동쪽으로 40km 이동해 토함산 아래로 흐르는 대종천과 동해가 만나는 지점에 이르면 문무왕과 신문왕 두 부자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역사 길을 만날 수 있다.
경주시내에서 동쪽으로 추령재를 넘어 40km를 달리다 보니 어느덧 해안선이 눈에 들어온다. 해안선을 향해 가면 토함산 아래로 흐르는 대종천이 동해를 만나는 지점이 나온다. 이 곳엔 신라를 애타게 사랑했던 두 부자와 관련된 유적지가 밀집되어 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바로 유적지들의 위치다. 문무대왕릉에서 이견대를 지나 감은사지까지 이어진 이 길에는 어떤 역사가 있었던 것일까?
먼저 문무대왕릉이 있는 봉길 해변으로 향했다. 이른 봄에 만난 봉길 해변은 갈매기들의 놀이터였다. 바닷가 한쪽에는 간이 칸막이를 치고 무당들이 치성을 드리고 있다. 경주 동해의 용왕신이 다름 아닌 문무대왕이었다. 무당뿐만이 아니다. 해변에는 대구에서 온 아낙이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올려놓고 열심히 기도 중이다.
"제가 소원 이랄게 뭐 있겠습니까? 그저 우리 가족들 건강하고 내 자식들 잘 살게 해달라고 비는 거지예. 매년 이렇게 빌고 나니까 지금까지 우리 집에 아무 문제가 없다 아인교"
- ▲ 봄에 찾은 봉길해변과 위엄하게 솟아오른 문무대왕 수중릉
해변에서 200m 들어간 곳에 집채만한 화강암 바위가 모여 있는 문무대왕 수중릉이 있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수중왕릉으로 황갈색이 도는 바위는 오랜 세월 물살에 깎여 거칠어 보인다.
문무대왕은 삼국을 통일한 왕이다. 삼국을 통일한 후 영토에 야심을 드러낸 당나라군을 내쫓은 뒤 남은 걱정이 동해로 침입하여 재물을 노략질하는 왜구였다. 그리하여 "내가 죽으면 화장하여 동해에 장례하라. 그러면 동해의 호국룡이 되어 신라를 보호하리라‘는 호언을 남겼다.
문무대왕이 죽은 후 아들인 신문왕은 동해바다에 수중릉을 만들고 문무대왕릉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정자를 하나 지었으니 그곳이 바로 ‘이견대’다. 봉길 해변을 나와서 해변도로를 따라 이견대로 향했다.
- ▲ 만개한 벚꽃과 이견대 그리고 봉길해변 (2010.4월 촬영한 사진)
이견대란 바다에 나타난 용을 보고 나라에 크게 이익이 있었다는 뜻을 품고 있다. 어느 날 이견대에서 동해를 내다보던 중 갑자기 사방에 안개가 덮히고 천지를 진통하는 뇌성과 함께 용바위에서 용이 나타나 하늘로 솟구쳤다고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다.
또 이견대에서 용으로 환생한 문무대왕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고 평화롭게 할 수 있는 옥대와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하나 받았다고 한다.
이견대는 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은 곳이라 안내판 하나가 유일했다. 정자에 올라서서한 눈에 들어오는 봉길 해변을 한참 바라보았다. 해변 모래밭과 부서지는 파도가 더 넓게 보이고 수중릉은 아래로 조그맣게 보였다. 그리고 용을 보았다. 이견대 정자 대들보에 떠도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그림이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견대에서 머물다 다시 대종천을 앞에 두고 있는 감은사지에 도착했다. 감은사는 문무왕이 왜병을 진압하고자 짓기 시작해 신문왕이 부왕의 유지를 이어받아 682년에 완공되었다. 지금은 그 터와 두 탑만 남아있다.
- ▲ 절터와 두 탑만 남아있는 감은사지
신라시대에는 감은사 아래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예전에 감은사지 바로 앞 들녘은 동해바다와 토함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대종천이 만나는 큰 하구였고 바닷물이 감은사까지 역류하면서 바닷물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감은사지 아래 나루터의 흔적이 남아 있어 이야기를 뒷받침 해준다.
금당 아래에는 배수시설이 있는데 용이 된 문무왕이 바닷물을 따라 절안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호국용이 된 부왕이 이 시설을 통해 감은사로 들어와 울려 퍼지는 불경소리에 심신을 달랬다고 전해진다.
감은사 삼층석탑은 웅장했다. 높이는 13.4m 지금까지 남아있는 신라탑 뿐 아니라 삼층석탑 중 가장 크다. 동해를 향하고 있는 두 탑을 보고 있노라면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던 문무왕의 호언과 부왕을 받든 신문왕 두 부자의 발자취가 가슴속에 전해지는 듯하다.
많은 사람이 경주에서 봉길해변에 이르는 길이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칭송한다. 아마도 푸른 동해바다와 신라의 역사가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봄기운이 점점 깊어가는 요즘 자연과 역사가 빚어낸 아름다운 그 길 위에 한번 서보는 건 어떨까
첫댓글 경주 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