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국의 피난처 국골
1. 개요
2015. 08. 22 ~ 23. (1박 2일)
흐리다 가끔 해 남
추성동 염소농장 바로 아래서 칠선계곡에 합해지는 국골(國谷)은 하봉과 두류봉 사이에서 흘러 나왔다. 그 이름은 가락국 마지막 임금 구형왕의 피난처였다는 전설 때문에 붙여졌다. 무당들이 굿판을 많이 벌여 굿골로 잘못 알려지기도 하였으나 가야시대 왕이 피난 차 들어와서 일시적으로 나라를 세웠다는 데서 국골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피난 당시 두지터는 가야국의 식량창고였으며, 광점동 얼음터는 석빙고터였다. 구형왕은 이곳에서 50리쯤 떨어진 왕산(王山) 기슭에 별궁인 수정궁(水晶宮)을 짓고 여생을 보냈다.
이 사실과 관련지어 김경렬옹(작고)도 국골의 천연요새를 막다른 최후의 피난처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였으며, 그는 또 달궁에 도성을 쌓고 72년간 명맥을 유지했던 마한(馬韓) 최후의 왕조가 달궁을 버리고 40리 거리인 국골로 옮겨 왔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옛왕조의 파천설이 있을 만큼 추성동 일대는 천연요새임에 틀림없다.
국골은 초암능선을 사이에 두고 칠선계곡과 이웃해 있다. 추성산장에서 시작한 등산로는 본류를 두 번 건넌 다음 고도 890m 지점의 좌측 지계곡을 건너 능선과 사면을 거쳐 국골사거리로 이어진다. 이 등로를 따른다면 아쉽게도 국골의 진면목을 볼 수 없다. 고도 1,050m 이상에서 본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골짜기의 중, 상단인 고도 1,050m 지점에서 두 개의 골짝으로 갈라진다. 지형도엔 하봉과 두류봉 사이로 올라가는 좌측 골이 본류임이 분명하지만 실제 현장에는 우측 골이 본류 형세를 하고 있는 듯하다. 우측 골로 오르면 초암능선 촛대바위 아래 안부에 올라서게 된다. 거의 협곡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오르는 내내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 계곡이 곧추 섰다고 선골이라고 한다.
한편 호리병처럼 숨어 있는 듯한 좌측 골은 초입에서 조금만 오르면 폭이 넓고 수량도 많아진다. 고도 1,350m 합수점을 만날 때까지 폭포가 잇달아 나타나면서 폭포의 향연이 시작되는데, 혹자는 지리산의 마지막 숨은 비경이라고 극찬한다. 능선 상의 날머리에 산막이 있었다고 날끝산막골로 부른다.
이번엔 칠선계곡의 한 지류이자 숨은 비경이 가득한 국골을 찾았다. 시간 절약과 산행 편의를 위해 성안마을 직전 임도가 두류능선을 넘는 곳을 기점과 종점으로 삼았다. 네댓 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곳이다. 고도 560m쯤에서 국골 등산로에 합류하여 고도 890m 지점에서 국골사거리로 연결되는 등로를 버리고 계곡을 거슬러 올랐다. 영랑재로 이어지는 본류, 즉 날끝산막골을 끝까지 따르지 않고 석굴에 들리기 위해 고도 1,350m 합수점에서 오른쪽 지계곡을 택했다. 그 지계곡 초입의 이끼 폭포는 자일을 깔고 올랐으며, 잠시 후 나타난 석굴은 천장을 뚫고 나와 좌측 영랑재 방향으로 트래버스하였다. 이어 영랑재를 지나 두류봉에서 점심을 먹고 향운대 들렀다가 두류능선을 타고 내려왔다. [지산] 8월 향운대 정기산행에 동행했다.
* 참고자료 <지리산365일> 최화수, <다큐멘타리 르포 지리산> 김경렬
2. 궤적 및 트랙
○ 궤적
약 11㎞ / 기점과 종점 기준 시계 반대방향 원점회귀.
기점/종점 : 임도가 두류능선을 횡단하는 곳으로 성안마을 부근임
A : 합수점1(고도 890m)으로 국골사거리로 이어진 등로를 벗어나는 곳
B : 합수점2(고도 1,050m)으로 좌측 날끝산막골과 우측 선골이 만나는 곳
C : 합수점3(고도 1,350m)으로 우측 지계곡이 날끝산막골에 합해지는 곳
D : 국골사거리
E : 국골이 칠선계곡에 흡수되는 합수점
F : 추성동 염소농장
○ 트랙
국골 상류의 날끝산막골과 석굴에서 주능선으로 트래버스한 것인데 일부 오차가 있음
A : 상기 위성도 상의 B지점
B : 상기 위성도 상의 C지점
C : 영랑재
3. 집결
토요일 오후 4시쯤 집을 나섰다가 경부고속도로 지선인 물금에서 차를 돌렸다. 띨띨하게도 등산화를 가져오지 않았다. 다른 장비라면 몰라도 신을 빠트리다니 참 어처구니가 없다. 이번에 새로 장만한 신인데 현관에 두고 그냥 온 것이다. 캠프라인의 '히페리온'이다. 계곡 산행에 적합할 것 같았다. 주로 잠발란 비브람을 신었는데 현재 수중엔 1989년 구입한 통가죽 하나만 남아 있다. 열흘 전 수선 보낸 건 아직 시간이 필요하고, '만신창이'는 지난 주말 영알 산행 때 박살난 K2와 함께 엊그제 내 품에서 영원히 떠났다. 작년에 들어온 코오롱은 수선 대기 상태다. 도보산행에선 신과 배낭이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이 스틱이라고 생각한다.
의령군북 IC로 빠져나와 국도로 갈아탔다. 가는 길에 추어탕집에 들릴 요량이었다. 산청군 신안면 문대리(文坮里) 도산초등학교 부근에 있는 집이다.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원지 가기 전 진주 김천 간 국도에 올려 생초에서 내렸다.
오랜만에 함양 유림양조장에 들러 1.8리터 청주 한 병을 구입하고, 저녁 8시쯤 야영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추성과 광점동 사이 광점교 옆 새로 조성한 주차장이었다. 각지에서 먼저 온 회원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들은 1차 파티를 끝내고 쉬고 있었다. 나는 타프만 가져왔는데 울긋불긋 텐트도 너댓 동 서 있었다. 잠시 후 부산에서 두 분이 도착하자 주춤했던 만찬은 계속되었고 밤 11시가 넘어 파했다.
다음날 5시 정각, 기상나팔이 울렸다. 술을 적게 먹은 탓에 몸이 개운하다. 앞으로 이런 태도로 야영에 임해야 할 것 같다. 아침을 먹고 나니 진주와 수도권에서 당일 조가 각각 도착한다. 그렇게 모인 인원은 도합 스무 명이었다.
4. 산행 및 사진
당일 조1.
6시 10분경 진주에서 두 분이 들어온다. 이름이 멋진 진주는 '지리산 8학군'이자 내가 살고 싶은 곳 중 하나다. 잠시 후 수도권에서 세 분이 도착하는데 그 행색이 이들과는 대조적이다.
당일 조2.
마지막으로 수도권에서 세 분이 막 도착했다. 그들은 심야 버스로 마천에 내려 어느 정자에서 눈 좀 붙이고 터벅터벅 걸어왔다고 한다. 지리산이 그리운 걸까 아니면 사람이 그리운 걸까. 아마 둘 다겠지.
○ 들, 날머리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자 날머리인 성안마을 직전, 즉 임도가 두류능선을 넘는 곳까지는 차량 4대가 지원되었다. 여태 국골로 들어갈 때 초입 부분이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었다. 그 중 이번이 가장 편안한 셈인데 그것은 차가 대신 등산을 했기 때문이다.
후미대장.
뭔가 심상찮다. 역운행하는 모습이. 잠을 못 잤다더만 그 탓일까. 손에 든 무전기를 장착하고 다시 정운행한다.
출입금지.
임도를 벗어나자 어김없이 나타나는 불청객. 이런 거 없는 데서 산행은 불가능한가. 내가 문제인가 공단이 문제인가 아니면 이 나라가 문제인가. '지금입출'로 이해하고 후미대장의 뒤를 따라 금줄을 넘는다.
작전회의?
뭘하는 걸까. 저들만 알고 있겠지.
합류. (고도 550m)
국골 등산로에 합류한다. 추성동 추성산장 앞에서 시작한 이 등로는 국골 본류를 두 번 건넌 후 고도 890m 지점에서 좌측 지계곡을 건넌 다음 지능선에 올라 붙는데, 이후 너덜 사면 등을 경유하여 두류능선 국골사거리로 이어진다. 이 등로를 따르면 국골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계곡을 낀 등산로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나는 고도 890m 지점까지는 이 등로를 충실하게 따를 것이다.
이끼.
초록 산길에 눈이 호강한다.
휴식1.
첫 번째 계곡 횡단지점으로 좌에서 우로 건넌다. 산행에서 휴식은 반드시 필요한 법. 특히 인원 점검이 요구되는 단체 산행에선 더 그렇다. 산에선 먹은 만큼 간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에너지는 어떻게 보충해야 할까. 그것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아야 한다. 즉 운행하면서도 먹어야 한다. 몸이 요구할 땐 이미 늦었다. 또 초보자는 힘이 들 때 휴식하고 전문가는 경치가 맘에 들어야 배낭을 내린다는 말도 있듯 무엇을 하든 즐겨야 한다. 평소에 기본 체력을 갖추어야 산에서도 즐길 수 있다. 운동이나 건강을 위해 산을 찾는 것이 아니라 등산 그 자체를 즐기다 보니 건강 따위는 부수적으로 좋아지게 마련이다. 주 목적을 혼돈해서는 안 된다.
새들~ 아우의 근사한 폼이 한 곡조 더 뽑을려나.
형님, 영혼는 제 한테 온 거 맞죠.
계곡 건넘(우⇒좌).
두 번째 본류를 건너는 곳으로 첫 횡단지점에서 10분이 채 안 되는 거리다. 뒤따르는 일행이 "앞에는 저리 가는데요" 하고 묻는다. "거긴 그쪽 사정이고" 하며 내 갈 길로 간다. 나는 고도 890m 지점까지는 국골 정상 등로를 따르기로 계획하고 왔다. 그 후부터는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것이기에, 안전을 우선으로 하면서 때론 모험도 하며 갈 것이다. 단체 산행이라도 무엇이든 각 개인의 목적이 있어야 한다. 산길도 마찬가지다. 그냥 앞 사람만 따라 가기 보다는 인도어 클라이밍(Indoor Climbing) 등을 통해 사전 공부를 하고 와야 한다. 초행길일 수록 더 그렇다. 그러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경험자에게 묻는 등 현장에서 해결하면 된다. 물론 산행집행부에서 배정한 시간은 지켜야 한다.
국골 등로 풍경.
쓰러진 풍도목이 통행에 방해도 되지 않고 운치를 더한다.
합수점1. (상기 위성도 상의 A지점)
8시 20분, 국골 등로를 벗어나는 지점에 도착한다. 좌측에서 지계곡이 합해지는 곳이다. 본 등로는 저 위쪽 나무가 걸쳐진 곳에서 계곡을 건넌 다음 곧장 능선으로 올라 붙는다. 와폭이 지계곡 초입에 누워 있다.
휴식2.
등산로를 벗어나 본류에 내려서니 본대가 저 위에서 두 번째 휴식을 하고 있다. 이제부턴 편리한대로 진행하면 된다. 선행자들의 뚜렷한 흔적을 따라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수량.
계곡의 수량은 안전 산행을 하기에 딱 알맞은 수준이다. 더 많다면 좋겠지만 그건 욕심이지 싶다.
각양각색으로 휴식을 즐긴다.
다시 오름짓이 시작된다.
사태.
산사태는 폭우나 지진, 화산 따위로 산 중턱의 바윗돌이나 흙이 갑자기 무너져 내리는 현상으로, 계곡을 메우기도 하고 또 다른 계곡을 만들기도 한다. 폭포도 그렇다. 자연이 자연적으로 일으키는 현상을 백 년도 못 사는 우리가 감히 뭐라 할 수 있겠는가. 그냥 조용하게 지나갈 뿐이다. 그런데 조심할 게 있다. 사태가 날 징조가 보이면 산에 들어선 안 된다. 산이 우는 현상이 그 징조인데 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것을 알겠나만 어쨌든 우기철에는 조심해야 한다. 사태지역 위로는 초암능선이 희미하게 실루엣을 그리고 있다.
합수점2. (상기 위성도 상의 B지점)
고도 1,050m 지점으로, 날끝산막골과 선골이 만나는 곳이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정면에 바로 보이는 계곡이 선골인데 마치 본류인 양 당당하다. 본류는 좌측 나뭇잎 사이로 열려 있다. 하얀 물줄기가 보인다. 독도 주의 지점이다. 등로를 벗어난 곳에서 1시간 10분쯤 걸렸다.
휴식3.
세 번째 휴식이다. 스머프 아우가 건네준 사과 한 쪽, 정말 꿀맛이다. 앞으로 펼쳐질 풍광을 기대하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이제부터 계곡을 벗어날 때까지 휴식은 각자의 몫이다.
소폭.
한신계곡 가내소폭포가 연상되는 풍경이다.
배낭.
당일산행에도 야영산행 이상으로 배낭을 맨 뒷모습이 아름답다. 늘 맛있고 풍부한 먹거리로 여러 사람들의 입을 호강시켜 주는 스머프 아우다. 고맙고 감사하다. 아마도 지리산을 사랑하는 마음은 배낭 크기에 비례하지 않을까.
2단 폭.
이 폭포를 시작으로 '폭포의 향연'이 이어진다.
3단 폭.
이런 곳을 오르면서 계곡 산행의 묘미를 느낀다.
못잊어 아우.
어찌 아우를 잊을 수 있겠나.
사진대장.
차분하게 산행하시면서 앞, 뒤 안 가리고 회원들의 영혼까지 담아 내는 모습 또한 아름답다. 이에 감동하지 않을 이 없을 성싶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영혼이 빠져나간다며 손사래를 친다. 고려 말 충신이자 성리학의 창시자인 정몽주 선생의 후손이다. 슬기난 형님이다.
등반1. (홍운 대장님 촬영)
등산은 산을 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고산에서의 등산이나 암, 빙벽 등을 부여잡고 오르는 행위는 등반이다. 즉 등반은 전체집합인 등산의 부분집합인 셈이다. 오늘 우리는 지리산 등산을 하면서 부분적으로 등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주에서 아침에 오신 호영 형님이 멋진 자세로 등반하고 있다. 저 배낭 안에는 자일(12㎜x30m)이 들어 있다.
대장.
산에서 산행대장은 법이다. 산행에 대한 기획에서 총괄까지 도맡는다. 아직 여기 계신 걸 보니 북한군이 도발하지 않은 모양이다. 진주 사랑을 실천하는 홍운 형님이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퇴직을 얼마 앞둔 공직자다. 대장님이 탈출하는 사태가 없길 바라고 또 바란다.
두 개의 폭포가 연이어 나타난다.
아래 폭.
진주에서 온 바위솔님이 환하게 웃고 있다. 계곡산행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이 폭포는 오른쪽으로 약간 우회해서 오른다.
위 폭.
합수점3. (상기 위성도 상의 C지점)
저 위쪽 본대가 대기하고 있는 곳이 최상류 합수점이다. 날끝산막골에 들어선지 1시간 15분 만이다.
이끼 폭.
호영 형님이 먼저 올라 자일을 깔려고 준비하고 있다. 그냥 올라도 되겠지만 산행은 군대의 병력 이동과 달리 안전이 최우선이다. 군 작전에선 일부 병력을 희생하더라도 신속한 이동을 요구할 때가 있다. 또 산행에선 어려움은 극복해야 하지만 위험은 피해야 한다.
등반2.
연등방식으로 오르고 있다.
이끼 폭 상단 풍경.
석굴.
석굴 안에 일행이 보인다. 이 굴을 보려고 우측 지계곡을 올라 온 것이다.
석굴 내부.
점심용 식수를 확보한다. 고도 1,000m 이상의 지리산 물은 시중의 생수보다 약 10배이상 수질이 좋다고 한다. 바로 보약인 셈이다. 랜턴을 켜지 않아 잘 분간되지 않지만 굴 안은 제법 너르다. 안쪽의 구멍을 통해 위로 올라갈 수 있는데 배낭을 맨 채로는 통과가 힘들다.
석굴 구멍. (슬기난 형님 촬영)
내가 맨 마지막으로 나오고 있다.
구멍을 나와서 위로 바라본다.
석굴 위쪽 풍경.
하단 상현달 같은 무늬가 있는 바위가 석굴에서 나오는 구멍이다.
트래버스1.
석굴을 나와 영랑재 방향으로 경사면의 마른 계곡을 건너간다.
트래버스2.
벼랑지대를 통과하고 있다.
트래버스3.
벼랑지대를 벗어나 숲 속을 비스듬히 오르고 있다. 호영 형님이 멋진 포즈를 취한다.
참취꽃.
영랑재.
11시 55분 마침내 주능선에 선다. 영랑재에서 하봉쪽으로 50m 지점이다.
두류봉.
점심 터를 잡고 전망대에서 조망을 한다.
전망대.
조망.
하봉과 초암능선 상의 촛대바위가 보인다.
점심.
오가는 술잔으로 산정을 나눈다.
다시 간단하게 조망한 후, 오후 1시 30분쯤 다음 목적지인 향운대를 향해 두류봉을 떠난다.
국골사거리.
좌: 국골
우: 쓱밭재, 새봉, 웅석봉 방면
직진한다.
무명 암봉.
사진대장님의 진지한 모습에 내 영혼이 화답하는 듯하다.
향운대 가는 길의 두류능선.
향운대 들머리.
향운대까지는 20여분 거리다.
향운대 가는 사면길에 풍도목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
향운대.
향운대 샘.
이 샘은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슬기난 형님이 향운대를 떠나면서 구절초의 혼을 빼내고 있다.
구절초.
올 들어 처음 만난다.
다시 두류능선으로 올라간다.
합류.
다시 두류능선에 올라선다.
석문.
기암과 적송.
암자 터?
암자가 있었는지 주변에 기와 파편이 보인다.
기와 조각.
종점.
이곳을 내려서면 바로 임도로, 아침에 출발했던 곳이다. 약 11㎞의 거리를 10시간 동안 산행했다면 난이도가 조금 있었다는 뜻이다.
<끝>
첫댓글 와~~ 멋찜. 보는이도 행복하네요.
선배님,
행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동행하고 싶은 아름다운 산길 입니다. 즐감합니다~
35기 후배님들의 바위에 폭 빠진 모습 참 보기 좋더만요. 우짜다 워킹 기회가 있으면 함께하는 날 있겠지요. 감사합니다. ^^
흠.. 언제나 산행기 잘보고있습니다 향운대 샘 수량이적어서 삽으로 팟더니 모래속에서 가재가 나오는걸보고 많이 놀란적이 있습니다 저는 국골은 2003년 1월달에 워킹산행 준비에 멋모르고 하산을 했었습니다 사진에 나와있는 저 무시무시한 폭포를 장비없이 내려오는데 진짜 죽는줄 알았습니다 9월달에 선등한번 서 주이소..!
향운대 샘의 깊이는 씨에라컵으로 물을 떠기는 충분하였으나 물통으로 직접 받기는 곤란했습니다. 저는 웅석봉 샘과 국골사거리 바로 아래 무명 폭포 위에서도 가재를 봤는데 그 놈은 맑은 물이라면 하늘까지 올라가지 않을까요. ㅎㅎ
무시무시한 폭포라 함은 위 사진의 '트래버스1'을 말씀하시는 듯한데, 현장은 사진하곤 딴판인데 그곳을 장비 없이 내려왔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우째 따라만 다니는 사람보고 선등을 서라 하나이까. 선배님이 한 번 이끌어 주시면 지리산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
지리의숨은 비경 정말 아름답습니다. 제가정말 좋아하는 곳들입니다 즐감했습니다
국골-두류능선, '지리산 종합선물세트' 같은 곳이죠.
나도 좋아하는 곳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