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로 음악을 들으면 큰 일이라도 날듯이 법석을 떠는 사람들이 있다. 디스크란 고작해야 ‘통조림 음악’을 제공할 뿐이므로 실연實演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음악을 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리가 있는 말임에는 틀림없지만 편협한 독단임에도 틀림없다. 실연이라 해도 음악의 모든 것을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니고 또 다른 제약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주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좀 더 다양한 체험이 필요하다. 특히 레슨이나 리허설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LD*가 가진 큰 장점은 연주 실황과 함께 종종 연주의 그 후경後景을 제공해 주는 데 있다.
‘탱글우드의 요요마Yo-Yoma At Tanglewood’(1993)는 그런 점에서 귀중한 영상 음반이다. 탱글우드**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서쪽에 있는 야외 음악 공간으로 보스턴 심포니가 매년 여름축제를 여는 곳. 이 음반에는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G단조와 그루버의 협주곡 연주 이외에도 리허설과 레슨 등 음악을 만들어가는 연주자의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요요마의 연주와 학생의 연주를 비교해서 들을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가를 직접 보고 듣는 것도 그의 연주를 감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밖에도 우리를 즐겁게 하는 귀중한 자료 화면들이 이 LD에 가득 차 있다. 가령 불세출의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가 브람스의 F단조 5중주곡에 대해 레슨을 하는 장면이라든지, 아이작 스턴Isaac Stern이 중국 상하이에서 데려온 재능 있는 첼리스트 잔 왕과 함께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 그리고 스턴을 감동시켰던 그 신동의 연주 등은 1시간 20분 동안 음악적 체험을 만끽하도록 해준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재즈 가수인 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의 등장이다. 언젠가는 지휘자가 되어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을 지휘하는 것이 소망인 맥퍼린. 하버드대의 보스게르치안 교수(음악학)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연주하는 요요마의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Laser Disc
레이저 광선을 이용해 영상을 녹음·녹화한 음반.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 디지털 비디오 기기의 초기 아이템이다. 1978년 12월 15일 최초로 상용화된 LD는 CD보다 4년 앞서 나온 최초의 광학식 영상 미디어다. 네덜란드의 필립스와 미국의 MCA가 개발했고 일본의 파이오니어Pioneer가 미국 MCA와 합작회사를 만들어 상용화했다. 디스크는 지름 30cm, 두께 1.8mm에 PVC 재질로, LP와 크기는 같지만 조금 무겁다. 국내에서는 비싼 가격과 희소성 때문에 가정에 제대로 보급되지 못했다. 화질은 수평 해상도가 420선으로 VCR의 250선을 크게 상회한다. 고음질의 디지털 음성 내장 기록도 있으며 음질은 하이파이 VCR과 동일하다. 정지 화면과 슬로 재생 등 조작성이 뛰어나며 액세스(access)도 빠르다. 디스크 수명이 반영구적이며, 레이저 디스크 플레이어(Laser Disc Player)를 통해 TV로 감상할 수 있다.
영화를 보려면 영화관보다 집에서 가까운 비디오 가게에 가서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보는 것이 보편적이었던 때가 있었다. VTR이 보급된 1980년대부터다. 비디오 테이프는 한 번에 대량으로 카피가 어렵고 마스터 테이프부터 카피를 거듭할수록 화질은 나빠지니 새 테이프도 화질은 별로 좋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 일본에는 가라오케 술집이 있었다. LDP와 TV, 그리고 많은 반주용 LD가 비치된 넓은 홀에서 희망자에게 노래 신청을 받아 반주용 LD를 선곡해 주고 자리에 앉아 있는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런 공간이었다(가라오케가 출현하기 이전에는 1~2인조 밴드가 손님의 주문에 따라 반주를 해주었다). 국내에도 고급 술집에서는 일본에서 건너온 속칭 가라오케라는 영상 노래방 기기가 차츰 밴드를 대신하게 된다. 반주용 LD도 일본에 주문해서 만들었다. LDP는 몇 십만 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었지만, LD는 한 장에 5만 원 정도의 가격이었다. LD 한 장에는 가요 12~14곡 정도만 들어가는데 노래 신청을 받으려면 LD가 적어도 수십 장은 비치돼 있어야 했으니 비용이 많이 들었다. 곧이어 등장한 CD 한 장에 1000곡이 저장된 기기에 그 자리를 물려주고 만다. 이어서 지금의 IC칩을 사용한 노래방 기기가 보급되면서 노래방 전성시대가 열렸고 그 후로는 노래방이나 주점에서 LD는 볼 수 없게 되었다.
**Tanglewood
보스턴에서 서쪽으로 2시간 운전 거리에 있는 탱글우드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여름캠프 장소로 유명하다. 1937년에 개장된 탱글우드는 뉴욕, 코네티컷주와도 가까워 수많은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장소다. 일 년 내내 정기 연주회를 갖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보스턴 시내에 훌륭한 시설의 보스턴 심포니홀을 갖고 있지만 7~8월 여름 두 달 동안은 더위를 피해 녹음이 우거진 탱글우드에서 공연을 갖는 것이다. 세계적 명성의 연주자들이 초청되는데, 특히 소아마비 장애인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작 펄먼Itzhak Perlman, 중국계 첼리스트 요요마 등은 매년 여름마다 탱글우드를 찾는 단골손님들이다. 탱글우드가 폐장할 무렵인 8월 말의 저녁 공연에는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의 귀에 익은 공연과 재즈 페스티벌에 많은 젊은이들이 참가해 늦여름 밤의 열기를 만끽한다.
잔디밭과 평면으로 연결된 원형의 공연장은 정말 분위기가 좋다. 공연장 내부의 좌석은 여러 등급으로 나뉘어 가격도 큰 차이가 있는데 잔디밭보다는 값이 비싸다. 잔디밭에서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흥취도 남다르다. 사람들 대부분 잔디에 드러눕거나 다리를 길게 뻗고 앉아 편안하게 음악을 감상한다. 책을 읽는 사람, 음악을 듣다 잠에 빠진 사람, 와인을 마시며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 등 각양각색의 풍경이 펼쳐진다.
***Leon Fleisher
30대 중반에 찾아온 오른손 마비에도 연주자, 지휘자, 교육자로서의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미국 음악계의 거장이다. 16세인 1944년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했고, 1952년 미국인 최초로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조지 셸이 지휘하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집’은 지금도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는 음반이다.
하지만 한창 전성기에 오른손의 네 번째, 다섯 번째 손가락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37세 되던 해부터 아예 손바닥 안쪽으로 바짝 꼬부라진 채 펴지지 않게 되자 그는 왼손으로만 연주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지휘에도 도전해 미국 각지의 오케스트라들을 객원 지휘하면서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그의 삶은 일종의 투쟁이었다. 간간이 증세가 호전되면 양손으로 연주했다. 특히 1982년 볼티모어 심포니와 협연했던 프랑크의 ‘심포니를 위한 변주곡’은 음악계를 들뜨게 했다. 당시 언론은 ‘17년 만의 재기’로 대서특필하면서 플라이셔의 양손 연주를 축하했다. 하지만 그의 오른손은 다시 빳빳하게 굳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반에 기적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해 2004년 ‘Two Hands’ 음반을 발표했다. 양손으로 귀환했던 이 앨범은 미국에서만 10만 장 넘게 팔렸다.
플라이셔는 2005년 한국을 찾아와 연주한 적도 있다. 서울 예술의전당 등에서 펼쳐진 당시 연주회에서 ‘왼손’과 ‘양손’을 골고루 선보였다. 양손을 모두 사용해 바흐의 칸타타 208번 중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와 슈베르트의 ‘소나타 B플랫 장조’를 연주했다. 또 왼손으로는 현대 작품 가운데 자신에게 헌정된 조지 펄의 ‘왼손을 위한 협주곡’과 레온 커쉬너의 ‘왼손을 위하여’ 등을 연주했다. 브람스의 ‘샤콘느’도 왼손으로 연주했다.
그는 2020년 8월, 향년 92세로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