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큰돌개혁장로교회 주일예배 ▣주일경독시간 인도: 심진희 집사 ▶시편찬송 시편86편(제네바) 다같이 ▶경 독 시편86편 고린도후서5장 다같이 ▶합심기도 다같이 ① 성령과 말씀의 예배 / 설교자와 회중을 위해 ② 성찬의 예배/ 은혜언약 안에서의 하나님의 영광과 성도의 교제가 풍성하게 드러나는 예배를 위해 ③ 믿음과 순종의 예배/ 배움(교리)과 실천(삶)이 있는 예배를 위해 ▶목사;“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갈1:3) ▶회중;“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 * 예배부름과 송영 시편47편(제네바) * 사도신경 다함께 * 하이델베르그요리문답 제22주일 * 십계명낭독 다함께 * 참회기도 다함께 * 시편찬송 시편8편(A)연합 헌 상 심진희 집사 목회기도 담임목사 말씀의 강설 요일2:18-23⑤ 요한일서 강해(42) 주의만찬 고전11:23-26 다함께 * 찬 송 찬송가 399장 다함께 * 강복선언 설교자 * 교제의 인사 다함께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12:10) * 표는 기립해주시기 바랍니다. ☞ 헌금은 미리 준비해 미리 봉헌함에 넣어주세요. *주일 오후 교리공부: “성경과 교리”(68) 교리와 함께 읽는 야고보서 본문연구 |
제2부 인간의 구원 제22주일 성령 하나님에 대하여 제57문: “몸이 다시 사는 것”은 당신에게 어떠한 위안을 줍니까? 답 : 죽음 후 바로 내 영혼이 머리되신 그리스도께로 갈 뿐 아니라 내 몸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일으킴을 받아서 영혼과 결합하여 그리스도의 영화스러운 몸과 같이 될 것입니다. 제58문 : “영원히 사는 것”에 관한 귀절은 당신을 어떻게 위로합니까? 답 : 내가 이미 영원한 기쁨을 마음 속으로 경험하고 있듯이 죽은 후에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지 못하였던 완전한 행복 즉,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성찬본문/ 고전11:23-26
『 (고전11:23-26)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
▣설교본문/ 요일2:18-23⑤
『 (요일2:18-23)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19)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1)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 (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
▶오늘은 우리 총회가 ‘이단경계주일’로 지키도록 정한 주일입니다. 목사로서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구속사의 절기들보다 총회가 정한 ‘이단경계주일’에 대한중요성에 대해 절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밤을 지키는 파수꾼에게 아침이 의미없는 이유는 여전히 밤이 지배하는 현실 때문이었던 것처럼(사21:12) ‘이단’의 문제는 우리 시대가 부흥의 시대인지 아미면 쇠락의 시대인지를 아는 부정적인 지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이단의 종류나 그 숫적 비중에 있어서, 그리고 그 영향력에 있어서 어떤 세대와 비견할 수 없는 암울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합동측 교인수는 최근 1년새 17만명이 감소, 10년간 55만명이 감소했다고 하며 우리 교단은 1년간 1만명씩 10년간 10만명이 감소했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그 많은 사람들이 냉담자가 되거나 신앙을 버렸을까요? 유감스럽게 신천지와 같은 이단들의 성장률을 보면 정통교회의 감소세와 신천지의 성장률이 반비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현재24-30만명) 하나님의 교회는 추정치로 10만명 정도가 되고, 기성교회당 매입으로만 3000억을 썼다고 합니다. 교회 밖의 이단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교회 안에 있는 이단성있는 신자들과 목사들을 포함하면 심각할 정도로 정통교회와 신자의 비율은 현저히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탈종교회라는 세속주의의 거대한 도전이 있습니다. 한 해15퍼센트의 교인들이 신앙을 버리고 무신론자가 된다고 합니다. 2032년에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수 대비 기독교인의 비율이 10퍼센트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 중 충격적으로 온건한 의미의 종교다원주의를 믿는 신자들이 32퍼센트에 달하고, 유일신앙을 믿고 종말신앙을 가진 신자가 50-60퍼센트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있습니다.1)
한국교회안에 명목상의 교인 비율이 39.5퍼센트라고 합니다.(로잔운동에서 규정한 그리스도인에 대한 범주화기준) 가나안교인들과 합하면 교회 안에 기독교신앙을 고백하는 보편신자(42.8퍼센트)보다 그 수가 많습니다.(57.2퍼센트) 또한 교회안에 중직자를 기준으로 할 때 1/4이 명목상의 신자라고 합니다.
▶사도요한은 말합니다.
▶(요일2:18)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일시적인 박해가 지나고 영지주의 이단들이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진영안에서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사도의 교회는 다수의 형제들이 교회를 떠나는 분열의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박해를 지난 교회에게 주어진 것은 여전히 십자가와 복음 뿐입니다. 어떤 보상도, 어떤 외적 확신도 없이 그들은 여전히 그리스도인으로, 교회로 존재하고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인 영지주의자들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신앙을 보여주고 있었고, 그들의 거짓교회는 찬란한 도약을 암시하고 있었습니다. 사도는 그의 회중을 향하여 ‘이 다수의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정직하게 들려줍니다.
▶사도요한과 그의 교회가 처한 현실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직면한 세기말적 절망감과 매우 유사합니다. 이제 정말로 부흥을 믿는 세대는 사라져가는 것 같습니다. 이 시대는 부흥의 의미와 정의가 왜곡되어 있고, 희귀한(?) 성장신화로 대체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한 교회사교수는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약5퍼센트의 목회자들과 교회만이 매우 창의적인 성장전략을 세우고 괄목할만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런데 이 5퍼센트의 목사들이 나머지 95퍼센트의 지역교회 목사들에게 떨치지 못하는 죄책감과 자괴감에 시달리게 한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교회들은 무한경쟁사회의 일원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복음의 진리에 대한 무관심은 가속화되고 수많은 이단들이 교회를 모판삼아 기생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수많은 적그리스도들이 출현한 것입니다. 지역교회는 그 교회가 사도적 교회의 정체성을 가지고 뿌리 깊은 나무로 성장해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고 한국교회는 머리밀린 삼손처럼 그들을 분별하거나 통제할 힘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슬픈 부흥을 이야기하다!
▶우리는 진정한 부흥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부흥이라는 단어가 유일하게 등장하는 곳이 하박국서입니다.
▶(합03:0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hy:j,살다, 회복하다;)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우리 말 번역본에서 딱 한번 등장하는 ‘부흥’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수없이 쓰여진 ‘하야’라는 단어입니다. 부흥이란 ‘다시 살리다’, ‘회복된다’라는 의미인데, 하박국이 사용한 부흥의 개념은 매우 특이합니다.
▶이미 그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하나님의 인내와 심판의 임계점을 넘어섰고 바벨론의 침략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가져올 것이었습니다. 이 상황을 하박국은 ‘부흥’ 의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부흥이라는 단어의 용례를 주목해야 합니다. WhyYEj'(하이예후)라는 단어의 목적어는 앞에 ‘주의 일’(*l][;P;,, 파 알렉카)입니다. 즉 ‘주의 일을 부흥케 하소서!’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주의 일은 이스라엘과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의미합니다. 선지자는 단지 이스라엘의 회복을 전제로 하나님의 부흥을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의 목적은 이스라엘의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영광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했고, 바벨론을 비롯한 열방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인 것처럼 기고만장합니다. 선지자는 이런 반역과 배도의 시대에 하나님의 계획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가 받은 충격은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며, 뼈가 썩어 들어감과 같아온 몸을 떨지 않을 수’(합3:16)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 의지에 찬동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수 년 내에 이 모든 말씀이 성취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해야 한다면 그렇게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교만한 바벨론과 열방을 또한 심판하시옵소서.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고, 그의 뜻이 다시 서게 해달라고 청원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성전을 하나님께서 파괴하심으로서 성전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시고, 바벨론을 심판하심으로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 자신임을 입증해달라고 구합니다. 그러나 ‘진노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심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 달라고 말입니다.(합3:2하) 선지아의 정서와 의식은 온통 하나님자신의 실추된 영예와 영광에 몰입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부흥을 기도하는 교회의 정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우리는 부흥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신학자라고 불리는 이사야 선지자도 이와 유사한 부흥을 위한 기도를 합니다.
▶(사64:1-2)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2)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그는 하나님의 비상한 간섭을 구합니다. 하늘을 가르듯, 하나님께서는 이 역사 안으로 마치 침노하는 나라처럼 들어오시기를 청원하고 있습니다. 산들을 진동하고, 불이 섶을 사르듯 하나님의 원수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시고, 이방나라가 두려워 떨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이 비상한 청원은 통렬하지만 비극적입니다.
원래 이 땅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그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까?
▶모세가 한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시115:16)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도다
하나님의 백성들, 곧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증시해야 할 산위의 동네와 같고, ‘그 빛’이신 하나님을 증시하는 ‘빛’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선지자가 그 하늘을 가르시고 하나님의 강림을 청원한다는 것은 이 땅에서 그 소명을 감당해야하는 교회가 그 존재의 목적과 이유를 상실했음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언제나 비상한 하나님의 간섭을 청원하는 시대, 기적과 표적이 난무하던 시대는 불행하게도 교회가 그 맛을 잃고, 그 빛을 잃어가던 때였습니다. 이런 방식의 비상한 부흥은 없었다면 좋았을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나 하나님을 떠난 시대, 배도의 시대는 있었고, 하나님은 소멸하는 교회를 붙드시고, 자신의 영광을 홀로 드러내시곤 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슬픈 부흥’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 시대는 복음의 진리를 소유하고 있고, 그리스도의 생명과 의를 품고 있지만, 해산할 힘이 없는 세대입니다.
◖(사37:03)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에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교회는 성장과 번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이 비극의 시대를 정직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누구를 위한 성장이고 부흥인지 정직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시115:01)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우리시대의 모든 담론들과 의제들에 은폐된 거짓과 위선이 폭로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관심사와 욕망이 하나님 앞에 드러나, 그 수치와 부끄러움으로 인해 옷을 찢고 재를 무릅쓰도록 하나님의 부흥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불리워도 그분의 말씀을 떠난 교회는 포도나무에서 부러진 가지처럼 버려져 아궁이에 던져지는 땔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들도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교회의 고난과 징계(연단의 불)가 임박했음을 예고합니다.
▶(벧전04: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교회는 영광을 받을 때나 심판을 받을 때나 세상에 일종의 메시지가 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그분의 징계와 시련에 내어주신다면 세상은 얼마나 더 혹독할 것인가를 경고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진리로 충만하고 세상을 향해 나팔을 불 때 세상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사2:3;미4:2) 이것이 교회의 정체성이고 존재이유인 것입니다.
교회여, 평안하느뇨?
▶한국교회가 진리로부터 떠났다는 불길한 징조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조국교회는 한때 서머나교회나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복음으로 인한 순교자의 피와 눈물이 가득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작은 능력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세상의 빛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미신과 방탕과 불의로 가득했던 소망 없던 구한말 조선 땅에 천지의 창조주가 누구신지, 죄가 무엇이며, 그리스도안에서 ‘의와 절제와 심판’에 관한 진실을 이야기해주는 ‘빛’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교회를 ‘빛’이라고 불렀습니다. 교회가 증시한 부흥의 역사로 인해 우리나라는 영적인 쇄신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한 세대를 지나지 못해 조국교회는 일제의 신사참배라는 거대한 배도의 음모에 가담했고, 교회는 진리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욕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비루한 배교의 시절을 지나고 해방이 찾아왔어도 교회의 진정한 재건은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왜입니까? 한국교회의 회개는 표피적이고 기만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호14:2)
▶조국 근대화와 산업성장과 맞물려 세속화된 기독교는 우리의 믿음이 가져온 복이라고 자찬했습니다. 그리고 유래 없는 한국교회의 부흥사는 유래 없는 한강의 기적과 맞물렸던 것입니다. ▶마치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시절과 같습니다. 솔로몬시대와 방불할 만큼 경제적 성장과 평화의 시기였습니다. 그들은 착각합니다. 그들이 누리는 평안이 하나님과 누리는 평화(샬롬)이라고 말입니다. 이스라엘에 도울 자가 없음으로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을 통하여 일시적으로 그들을 구원하신 이유(왕하14:26-27)를 제외하고는 어떤 것으로도 북이스라엘의 불신앙과 물신숭배와 세속화를 변명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적 평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왕하 14:23-29) 장장 41년 동안 말입니다. 솔로몬시절의 영토가 회복되고 나라 전체에 계획도시와 기반시설이 확충되며 무역이 흥왕해졌습니다. 사마리아에서 행해지는 음란한 예배는 그야말로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아모스와 호세아같은 선지자들은 그들의 음란한 신앙과 물신숭배, 불법과 부정의가 난무한 불의한 사회풍조를 실랄하게 비난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회개는 아침 구름이나 이슬처럼 일시적이고(호6:4), 뒤집지 않은 전병(호7:8)처럼 위선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파멸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진단합니다.
▶(호04:0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진리에 관한 모든 지식을 버린 세대는 거짓 평화와 속이는 번영의 시대를 누리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치러야하는 채무가 될 뿐이었습니다. 우리 시대가 누리는 이 좋은 것들은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이 민족을 향한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때문에 허용된 ‘섭리적 번영’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진정한 평화를 누리도록 참된 회개와 믿음으로 일신되지 않은 세대는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과 뜻이 지시하는 그 ‘섭리의 시간’이 오면 그들이 누리던 모든 것들은 그대로 채무가 되어 두렵고 고통스러운 심판과 징계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북이스라엘의 역사가 보여주는 진실입니다.
참된 부흥, 진리의 숙청이 시작될 때
호세아가 진단한 것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린 세대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길을 잃어버린 시대는 멈춰야합니다. 그리고 돌아보아 옛적 길, 곧 선한길이 어디인지 살펴보아 그리로 행해야합니다.(렘6:16)
▶사도적 신앙이란 역사적 유산입니다. 믿음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에 의해 전하여진 객관적인 진리의 유산이며 교회는 이것을 신실하게 수납해왔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전하여진 것’이며, 교회는 그것을 ‘받은 것’(paralambavnw, 받다, 취하다, 교제의 방식으로...(1절)이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바울 자신도 그 복음을 ‘받은 것’(3절)이라고 말합니다.
▶(고전15:1-8)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유다는 이 전수된 믿음을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유1:3)라고 말합니다.
▶(유1: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paradivdwmi)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여기 ‘주다’라는 단어 ‘파라디도미’란 ‘건네주다’(살후2:15)2) 라는 의미로 ‘전통’ 혹은 ‘유전’이라 부르고, 또는 ‘바른 교훈’, ‘바른 말’(딤전1:10,딤후1:13,딛1:9)이라고 말합니다. 이것들은 교회가 전통으로 받은 건전한 사도적 교리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고대로부터 하나님의 교회가 이 복음의 진리들을 체계적으로 고백했던 교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믿으며, 이것을 끊임없이 계승하고 상속받은 역사가 교회사라고 믿습니다. 우리교단이 고백하는 웨스트민스터신앙문서들이 이것을 총괄하고, 개혁파 신조들로 계승되어 왔다고 믿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구원을 주는 참된 믿음이라고 정의합니다.
▶(딤후3:14-15)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흥미로운 것은 이 진리를 전달하는 두 채널을 언급한다는 점입니다. 첫째는 ‘사도적 교훈’입니다. ‘배우고 확신한 일, 곧 누구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인‘성경’입니다. 이 둘은 다른 것이 아니라 성경안의 진리들을 사도들에 의해 가르쳐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딤후4장에서도 ‘말씀을 전파하라!’(2절)과 함께 ‘바른 교훈’(3절)이 병행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 믿음에서 파선한 두 사람, ‘알렉산더와 후메네오’를 언급합니다.(딤전1:19-20) 이들처럼 말세에는 믿음에서 떠나 귀신의 가르침과 미혹의 영을 좇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딤후4:1)
성경과 교회의 고백으로부터 일탈한 모든 종류의 믿음은 적그리스도입니다. 온갖 신성모독과 (계13:5) 귀신의 가르침으로(딤전4:1)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는 모든 이들은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들이 구원을 말한다면, 그들이 천국을 말한다면 장담컨대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와 신자들은 그곳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와 저주의 장소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대적한 자들이요 처음부터 그리스도가 알지 못하는 유기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마7:23) 유기된 자들의 특징은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들(살후2:10)이라는 것이고, 반대로 참된 신자는 진리를 사랑하며 그들이 믿는 바 그 견고한 교훈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는 자’(고전15:2)들이며 그 교훈에 ‘굳게 거하는 자들’이며(딤후3:14), 그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는 자들’(유1:3)입니다.
이 악한 세대에 진리를 옹호하고 보수하며 선포하는 교회만이 참된 교회입니다. 모든 오류와 거짓과 위선을 분별하고 혁파할 수 있는 거룩한 개혁자들이 누구입니까?
▶(요일2:20-21)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1)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
오늘 본문의 결론은 버미글리의 기도문입니다.
“우리를 적그리스도의 사나운 폭풍 속에서 빠져 죽지 않게 하옵소서.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복음의 대적자들이 우리를 몹시 증오하며, 우리의 친구들과 지인들도 몰래 우리로부터 도망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에게 호소하며 우리의 팔을 당신을 향하여 펼칩니다. 우리가 기도하오니, 당신의 얼굴을 우리에게 숨기지 마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비참하게 죽을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두려운 공의를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친구들과 친척들과 지인들이 우리에게서 거리를 둔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를 도우심으로 우리 편을 들어주신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나타내 보여주소서. 그러면, 그토록 많은 위험들에서 구출된 후, 우리는 무덤이나 죽음 속에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 속에서 당신을 고백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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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2년 한목협의회 목회테이터 연구소 자료
2) (살후2:15)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유전)을 지키라
▣말씀의 반추를 위한 생각들
▣ 시편으로 기도하기!(피터 버미글리)
시편88편(87편은 원전에 없음)
1. 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구원은 당신의 것이며, 우리가 매일 당신에게 호소하오니,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우리가 간구합니다. 특히 그토록 많은 고난들이 우리에게 차고 넘치는 이런 때, 우리의 기도들에 등을 돌리지 마시고 우리를 당신의 존전에 받아주시옵소서.
이 힘들고 소란스러운 시대는 부정의하게 혹은 부당하게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악한 일들로써 우리는 감사할 줄 모르게 행동하였고, 악하게 살았으며, 당신께 부주의하게 예배드렸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당신은 이 모든 악한 일들로써 우리를 벌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대단히 슬프며, 우리의 악행들에 따라 우리를 대하시지 말도록 우리가 기도할때마다 엎드려 간구합니다. 이미 무덤에 들어간 자들처럼 우리를 대하지 마옵시소, 우리를 그 구덩이로 빠져 들어가는 자들처럼 여기지 마옵소서. 인간의 힘과 육체의 방어와 외적인 힘이 얼마나 무가치한지 보옵소서. 당신의 진노가 우리 위에 내리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를 적그리스도의 사나운 폭풍 속에서 빠져 죽지 않게 하옵소서.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복음의 대적자들이 우리를 몹시 증오하며, 우리의 친구들과 지인들도 몰래 우리로부터 도망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에게 호소하며 우리의 팔을 당신을 향하여 펼칩니다. 우리가 기도하오니, 당신의 얼굴을 우리에게 숨기지 마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비참하게 죽을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두려운 공의를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친구들과 친척들과 지인들이 우리에게서 거리를 둔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를 도우심으로 우리 편을 들어주신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나타내 보여주소서. 그러면, 그토록 많은 위험들에서 구출된 후, 우리는 무덤이나 죽음 속에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 속에서 당신을 고백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