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는 이별을 꿈꾼다
고성만
얼굴에 매화가 피었다는 여자에게서는 은은한 향기가 났다
젊어서는 남자를 주무르고 늙어서는 음식을, 조금 더 늙어서는 말랑말랑해진 기다림을 주무른다는 그 여자의 남편은 외국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먹은 것도 없이 자주 체하던 나는 죽은피를 빼기 위해 그 여자의 집에 들렀다 아직 이별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 알지 못하던 시절
산동네 맨 꼭대기 그 집 앞에는 환한 별밭 뒤 언덕에는 새털구름 떼 손끝이 흘리는 냇물 분홍으로 내리는 눈
풀이 자라기 시작한 마당 뒤 안 은은한 향기 퍼지는 날
남편 없이 낳은 딸의 얼굴에 매화 꽃잎이 번졌다
계간 《시결》 2024년 여름호
고성만|전북 부안 출생. 1998년 『동서문학』 등단. 시집 『올해 처음 본 나비』 『슬픔을 사육하다』 『햇살 바이러스』 『마네킹과 퀵서비스맨』 『잠시 앉아도 되겠습니까』 『케이블카 타고 달이 지나간다』 『파씨 있어요?』, 시조집 『파란, 만장』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