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하준 교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기업은 소유주 이익만 고려하면 되는 걸까?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면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올까? 미국에서 보듯이 경영자들의 보수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것은 그만 한 생산성을 보이기 때문일까?
기업에게 유리한 정책은 국가 경제에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까? 정부의 시장 개입과 복지 확대는 경제 발전을 저해할까? 교육을 많이 시키면 나라가 더 부유해질까? 탁월한 경제학자가 없으면 효과적인 경제 정책을 세울 수 없는 걸까?
세계적인 경제학자 장하준 켐브리지 대학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그 동안 신자유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해온 장하준 교수는 우리가 무심코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곤 하는 경제 문제 23가지에 대해 역사적 사실(史實)과 주변 사례(事例)를 가지고 그 이면을 짚어 준다.
장하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간략한 책 소개 열기]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시장은 자유로워야 한다. 정부개입은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을 가져온다. 즉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가장 이윤이 높은 일을 할 수 없다면 투자하고 기술 혁신을 할 동기를 잃는다. 정부가 임대료에 상한선을 정하면 건물주는 건물을 보수하거나 새 건물을 지을 동기를 상실한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자유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시장에는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종의 규칙과 한계가 있다. 시장이 자유로워 보이는 것은 단지 우리가 그 시장의 바탕에 깔려있는 여러 규제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 규제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이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규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방법도 없다. 자유 시장은 정치적으로 정의되는 것이다.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이 정부의 정치적 개입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정부는 언제나 시장에 개입하고 있고, 자유 시장론자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이다. 객관적으로 규정된 자유 시장이 존재한다는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들이다. 그러므로 기업은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경영되어야 한다. 주주들의 수입은 기업의 실적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주주들은 투자 기업의 실적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기업이 파산했을 때에도 다른 이해 당사자들은 최소한 조금이라도 건지는 반면에 주주들은 모든 것을 잃는다. 이렇듯 다른 사람들은 부담하지 않는 리스크를 짊어지다 보니 주주들에게는 기업 실적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동기가 강할 수밖에 없다. 주주들을 위한 경영을 하면 기업 이윤은 극대화된다. 이는 기업의 사회적 기여를 극대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주주들이 법적으로는 기업의 주인일지라도 그들은 기업의 이해 당사자 중에서 가장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고, 따라서 기업의 장기 전망에 가장 관심이 없는 집단이다. 특히 소액 주주들은 장기 투자를 줄여 이윤을 극대화하고 그 이윤에서 주주에 대한 배당을 극대화하는 단기 수익 극대화 기업 전략을 선호한다. 주주들을 위한 기업 경영이 결국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키게 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시장경제에서는 생산성이 높으면 그만큼 보수를 많이 받는다. 스웨덴 사람과 인도 사람 사이의 임금 50배 차이는 모두 생산성의 차이를 반영한 결과이다. 인도에서 최저임금제를 도입하면 결국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대해 불공평하고 비효율적인 보상을 하게 될 뿐이다. 공평하고 효율적인 보상은 자유로운 노동시장에서만 가능하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임금격차는 개인의 생산성 차이가 아니라 각 정부의 이민정책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나라간 이주가 자유롭다면 잘사는 나라의 일자리는 못사는 나라의 노동자들이 차지하게 된다. 다시 말해 임금은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것은 가난한 계층 때문이 아니라 부유한 계층 때문이라는 말도 가능하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은 잘 사는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지만, 가난한 나라의 부자들은 부자 나라의 부자들에 비해 경쟁력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자 나라의 부자들은 특별히 잘 나서가 아니다. 그들의 높은 생산성은 단지 역사적으로 축적해 온 다양한 제도들 덕분일 확률이 높다. 진정으로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개인의 가치에 맞는 임금을 받고 있다는 잘못된 신화를 깨뜨려야 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인터넷과 같은 통신기술 혁명은 세상 돌아가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물리적 거리의 파괴’로 이어졌고, ‘국경 없는 세계’가 출현하면서 국가의 경제적 이해관계나 정부역할에 대한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 타당하지 않게 되었다. 국가, 기업, 개인은 기술 혁명 속도에 상응하는 속도로 변화하지 않으면 존망의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이 삼자는 과거보다 훨씬 더 유연한 자세를 견지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시장 자유화가 필요하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변화를 인식할 때 우리는 가장 최근의 것을 가장 혁신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최근의 전자 통신기술상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19세기 후반의 전보만큼 혁명적일 수 없다. 인터넷의 사회경제적 영향은 세탁기를 비롯한 가전제품만큼 크지 않았다. 가전제품은 여성들이 노동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했다. 과거를 돌아 볼 때 망원경을 거꾸로 들고 보아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시장은 오직 이기적인 사람들의 에너지를 완벽하게 아울러서 사회적 조화를 만들어 내는 기능을 한다. 공산주의가 실패한 것은 모든 사람이 이타적 내지는 자기희생적으로 행동한다는 전제하에 경제 체제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경제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자기만 생각하는 존재라는 사실, 즉 사름들이 항상 최악의 행동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제해야 한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이기심은 대부분의 인간이 지닌 가장 강력한 본성 중의 하나이지만, 유일한 본성도 아니고 많은 경우 인간행동의 가장 중요한 동기도 아니다. 세상이 지금처럼 돌아가는 이유는 인간이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이 믿듯이 전적으로 이기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되 인간의 다른 본성도 모두 활용하고 사람들이 최선의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제도를 추구해야 한다. 결국 최악의 행동을 기대하면 최악의 행동밖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인플레이션이 치솟았다. 이러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은 투자의 부진과 결과적인 성장 둔화를 가져왔다. 다행히도 1990년대 이후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을 길들이는데 성공했다. 정부 예산적자를 더 엄격히 다스리고, 중앙은행을 독립시켜 인플레이션 억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경제안정이 장기 투자와 경제 성장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인플레이션이라는 맹수를 길들인 것은 장기 번영의 초석을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은 길들였으나 세계 경제는 상당히 더 불안해졌다. 우리는 물가변동을 잡았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세계 여러 나라의 극도로 불안정한 경제 상황을 못 본 척했다. 과도한 개인 채무, 파산, 실업 등으로 많은 사람의 삶을 파괴했던 2008년의 금융위기도 그 한 예이다. 인플레이션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우리는 완전고용이나 경제성장 같은 중요 문제에 신경 쓰지 못했다. ‘노동 시장 유연성’으로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있다. 물가 안정이 성장의 전제 조건이라고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인플레이션을 잡았음에도 성장률은 미미했다. 바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들이 성장을 둔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개발도상국들은 국가 개입정책을 써서 경제발전을 추진했고 사회주의를 표방한 나라까지 있었다. 개발도상국들은 보호무역, 외국인 직접 투자 금지, 산업보조금, 국영은행, 국영기업 등의 인위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철강이나 자동차 산업과 같은 자국의 능력을 벗어나는 산업들을 육성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결과는 경제 침체, 경제적 재앙을 맞이하였다. 성장률은 미미한 수준이고 심지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1980년대 이후 정신을 차리고 자유 시장 정책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일본(한국 포함)을 제외한 모든 선진국들은 자유 시장 정책, 특히 전 세계를 상대로 자유 무역을 통해 부자가 되었다. 최근 들어 이 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취한 개발도상국일수록 더 좋은 성적을 올렸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통상적으로 알려진 바와는 정반대로 개발도상국들의 경제실적은 국가주도 시절이 시장 지향적 개혁을 추진할 때보다 훨씬 나았다. 국가개입이 실패로 끝난 경우도 없지 않지만, 이들 중 대부분이 시장 지향적 개혁 기간보다 과거에 훨씬 더 빠른 성장과 고른 분배를 이루었고 금융 위기도 훨씬 적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부자 나라들이 자유 시장 정책 덕에 부자가 되었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진실을 그 반대이다. 현재 잘살고 있는 영국과 미국은 모두 보호무역과 정부 보조금을 통해 오늘날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자유 시장 정책을 써서 부자가 된 나라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계화의 주인공인 초국적 기업들은 자국의 국경을 벗어나 해외로 진출한 기업들이다. 본사는 본국에 있지만 생산과 연구 시설은 대부분 해외에 있고, 최고 경영진을 포함해서 많은 직원을 외국인으로 채용한다. 이처럼 국적이 없어진 외국자본에 대해 어떤 나라가 민족주의적 정책을 쓰면 초국적 기업들이 그 나라에는 투자를 하지 않게 된다. 결국 국가 경제를 헤치는 결과는 낳는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점점 증가해가는 초국적 기업들은 사실상 해외지사를 둔 ‘단일 국적 기업’으로 남아있다. 핵심 기술 개발이나 전략 설정 등의 가장 중요한 활동은 대부분 본국에서 이루어지고 최고 경영진도 일반적으로 본국 국적을 지닌 사람들로 채워진다. 공장 문을 닫거나 일자리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 오면 여러 정치경제적 이유로 본국의 공장과 일자리를 가장 나중에 없앤다. 이 말은 초국적 기업의 혜택 대부분은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기업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이 국적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본의 국적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과 함께 금융 산업이나 경영 컨설팅과 같은 생산성 높은 지식 기반 서비스가 발전하면서 제조업은 모든 선진국에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탈산업화’ 시대에 들어선 나라들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서비스 분야에 종사하고, 서비스 제품이 주 생산품 자리를 차지한다. 지식 기반 서비스 산업이 점점 커지는 것을 고려하여 개발도상국들도 제조업 산업 단계는 아예 건너뛰고 서비스에 기초한 탈산업형 경제구조로 바로 진입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우리들 중 대다수가 상점이나 사무실에서 일을 한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제조업 부문이 덜 중요해졌다는 의미에서 탈산업화 시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총생산에서 제조업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 것은 제조업 제품가격이 서비스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졌기 때문이지 제조업 생산량의 절대량이 줄어서가 아니다. 제조업 생산품의 가격이 낮아진 것은 제조업 분야의 생산성이 서비스업 분야보다 더 빨리 증가하기 때문이다. 탈산업화는 서비스 부문과 제조업 부문이 서로 다른 속도로 성장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어서 그 자체로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지만 생산성 향상과 국제수지에 끼치는 나쁜 영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개발도상국들이 산업화단계를 건너뛰고 탈산업화 단계에 곧바로 진입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허상에 불과하다. 서비스 산업은 생산성이 증가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 힘들다. 서비스 상품은 수출하기가 힘들어 서비스에 기초한 경제는 수출능력이 떨어진다. 수출에서 얻는 수입이 적으면 해외에서 선진 기술을 사들일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고 결국 경제성장의 속도도 느려진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생활수준을 자랑한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은 다른 부자 나라에서 비해 미국이 가장 많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도시국가 룩셈부르크를 제외하고 미국보다 생활수준이 높은 나라는 없다. 이는 미국이 자유 시장 경제 시스템을 가장 비슷하게 구현하고 있어서이다. 이것이 다른 나라들이 이를 추종하려는 이유이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미국은 평균소득으로 볼 때 룩셈부르크 다음이지만 소득분배가 극도로 불균등하여 평균 소득만으로 비교해서는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짐작하기 어렵다. 소득불균등은 미국의 건강지표가 좋지 않고 범죄율이 높은 원인 중의 하나이다. 미국은 이민이 많고 고용조건이 열악하여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에 비해 일을 훨씬 더 오래한다. 미국이 다른 부자 나라들에 비해 생활수준이 단연 더 높은 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프리카 저개발은 숙명이다. 기후가 나빠 열대병을 일으키고, 항구도 없는 내륙국가가 많으며, 시장규모가 작아 수출기회가 적은 데다 무력충돌은 이웃나라에까지 번진다. 천연자원이 너무 많아 사람들은 게으르고 부정부패와 갈등의 소지가 많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여러 민족으로 갈라져 있어서 통치하기 어렵고, 민족 간 무력 충돌이 많이 발생한다. 투자자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제도가 없고, 좋은 문화도 뿌리내리지 못해 사람들은 근면, 저축, 협동에는 관심도 없다. 바로 이런 구조적 문제 때문에 1980년대 이후 시장 자유화 조치를 취했음에도 성장을 하지 못했다. 아프리카는 해외 원조 없이는 발전 가능성이 없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위에서 열거한 구조적 문제가 그대로 있었음에도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아프리카는 상당한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아프리카의 구조적 요인들 중 대부분은 오늘날 부자가 된 나라들도 가지고 있었던 문제들이다. 나쁜 기후(극지 기후, 열대성 기후), 내륙국가, 풍부한 천연자원, 민족 분쟁, 바람직하지 않은 문화 등을 가지고 있다. 이런 구조적 문제가 아프리카 발전을 가로막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이런 장애요인들이 낳는 문제를 처리할 만한 기술적, 제도적, 조직적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아프리카가 정체된 이유는 이 지역 국가들이 강요받았던 자유 시장 경제 정책이다. 역사나 지리적 요건과는 달리 정책은 바꿀 수 있다.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정부는 현명한 사업결정을 내리거나 산업 정책을 통해 유망주를 고르는 데 필요한 정보와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정책 결정자들은 이윤보다는 권력을 추구하고, 결정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할 확률이 높다. 정부가 시장 논리에 어긋나는 정책을 채택하고 그 나라가 가진 자원과 능력을 넘어서는 산업부문을 장려한다면 재난에 가까운 결과를 낳을 뿐이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정부는 유망주를 고를 능력이 있고 그렇게 한 선택이 놀라울 정도로 성공한 사례도 많다. 기업 활동에 영향을 주는 정부 결정은 기업들이 직접 내리는 결정에 비해 열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 정부는 필요하면 더 나은 정보를 획득하여 의사결정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게다가 개별 기업에는 도움이 되더라도 국민 경제 전체로 보면 바람직하지 않은 결정들도 있다. 따라서 정부가 시장의 움직임에 역행하는 유망주를 골랐다 하더라도 그 결정이 민간부문과 긴밀한 협력 하에 진행되었다면 국민 경제를 향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분배보다 부의 창출이 우선이다. 싫건 좋건 투자를 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것은 부자들이다. 부자들은 시장의 기회를 포착하고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들이다. 그런데 과거 많은 나라에서 계층 간의 질시를 이용하고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치를 펴면서 부자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하여 부의 창출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런 일은 그만 두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지 않고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도 나아지지 않는다. 부자들에게 더 큰 파이를 주면 처음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파이가 작아질지 몰라도 결국에는 이들에게 돌아가는 파이의 절대적 크기가 더 커질 것이다. 파이 전체의 크기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트리클 다운 경제학으로 알려진 이 주장은 ‘성장을 촉진하는 부자들을 위한 정책’, 그리고 ‘성장 감소를 부르는 빈자들을 위한 정책’으로 의미를 양분해서 말하는데, 실제로 부자들을 위한 정책은 지난 30년 동안 성장을 가속화하는데 실패했다. 따라서 부자들에게 더 큰 파이를 주면 결국에는 전체 파이가 커진다는 트리클 다운 이론의 첫 번째 단계는 설득력이 없다. 두 번째 단계, 윗부분에서 창출된 보다 큰 부가 아래로 흘러내려 결국 가난한 사람들에게 스며든다는 이른바 트리클 다운 현상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트리클 다운 현상이 조금씩 일어날 수 있으나 그것을 시장에 맡겨두면 그 효과는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 최고 경영진이 받는 보수는 터무니없이 많다. 이는 어디까지나 시장 원리에 입각한 것이다.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을 영입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보수를 지불할 수밖에 없다. 매출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거대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수 백 만 달러, 때로 수 천만 달러를 지불해 좋은 인재만 끌어올 수 있다면 확실히 그만한 돈을 쓸 가치가 있다. 그렇게 영입한 경영자가 좋은 결정을 내리면 수억 달러에 이르는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막아서는 안 된다. 결국 역효과만 날 뿐이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미국 경영자들의 보수는 너무 높다. 우선 전임자들에 비해서 너무 높다. 동시대 노동자들의 보수 평균과 비교해서 현재의 CEO들의 보수는 1960년대 CEO들에 비해 10배를 더 받는다. 상대적으로 1960년대 CEO들의 경영실적이 훨씬 좋았음에도 말이다. 미국 경영자들의 보수는 다른 부자 나라 경영자들과 비교해도 너무 높다. 비슷한 규모와 실적을 올리는 다른 나라 회사 경영진들에 비해 미국경영자들은 절대기준으로 많게는 20배 더 받는다. 이들은 보수만 지나치게 많이 받는 게 아니라 경영 부진에 대해서도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 게다가 실제로 미국 경영자들의 보수가 완전히 시장 원리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미국 경영자 계층이 지닌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힘은 자신들의 보수를 결정하는 시장 자체를 조종할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기업가 정신은 역동적인 경제의 핵심이다. 신제품을 개발해서 수요를 창출할 기회를 찾는 기업가들이 없이는 경제는 발전할 수 없다. 경제가 활력을 잃은 나라들을 살펴보면 기업가 정신의 결여가 그 원인의 하나인 것을 알 수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들이 태도를 바꾸고 적극적으로 수익을 올릴 기회를 찾으려 하지 않으면 그 나라 경제는 영원히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그저 생존을 위해서라도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면 구두 닦는 아이는 두세 명, 행상은 너덧 명 된다.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이유는 개인들에게 기업가 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산을 할 수 있는 기술과 현대식 기업 같은 발달된 조직이 없어서이다. 개인의 창업을 돕는다는 목표를 내걸고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액의 돈을 빌려 주는 마이크로 크레디트(미소금융) 제도가 의도한 만큼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기업가 정신이 갖는 한계를 짐작할 수 있다. 20세기에는 특히 기업가 정신을 구현하려면 공동체 차원의 집단적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집단적 조직력의 부족이 개인의 기업가 정신의 부족 현상보다 경제발전을 가로 막는 더 큰 장애 요인인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시장 참가자들은 모두 자기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합리적이다. 기업은 무엇이 가장 이로운지를 잘 알고, 자기와 관련된 상황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정부가 이들의 행동을 제한하려 하면 최상의 결과가 나올 수 없다. 정부가 기업의 하려는 행동을 못하게 하거나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최선의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관련된 일들조차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제한된 합리성’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대처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처리해야 할 문제의 복잡성을 줄이려면 일부러 선택의 자유를 제한해야 하고, 실제로 많은 경우 그렇게 하고 있다. 복잡한 금융 시장과 같은 분야에서 정부규제는 효력을 발휘한다. 정부가 보유한 정보가 우월해서가 아니라 정부규제를 통해 선택의 범위를 제한하여 문제의 복잡성을 줄임으로써 결과적으로 일이 잘못될 가능성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교육을 잘 받은 노동력은 경제 발전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교육수준이 높기로 유명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이루어 낸 눈부신 경제적 성공과 세계에서 가장 학력이 떨어지는 지역 중 하나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국가들의 경제적 침체를 비교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더욱이 지식이 부의 원천이 되는 이른바 ‘지식 경제’가 출현하면서 교육, 특히 고등 교육은 번영으로 가는 열쇠가 되었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높은 교육 수준이 국가 번영으로 이어진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은 더 만족스럽고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생산성 향상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지식 경제라는 개념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역사적으로 지식은 언제나 부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탈산업화와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대다수 일자리에서 꼭 필요로 하는 지식 요건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지식 경제에 더 중요하다는 고등 교육도 그것이 경제 성장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 나라의 번영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교육 수준이 아니라 생산성 높은 산업 활동에 개인들을 조직적으로 참여시킬 수 있는 사회 전체의 능력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기업은 자본주의의 심장이다. 기업이야말로 제품을 생산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활발한 기업 활동이 없으면 경제도 활력을 잃고 만다. 따라서 기업에 좋은 것은 나라 경제에도 좋다. 세계화와 함께 국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기업의 설립과 경영을 어렵게 만들거나 기업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만드는 나라는 투자와 일자리 창출의 기회를 잃게 되고 결국은 뒤떨어지고 만다. 정부는 기업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기업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국민 경제에는 말할 것도 없고 기업 자신에게도 좋지 않을 수 있다. 모든 규제가 기업에 해로운 것이 아니다. 때로는 천연자원이나 노동력과 같이 기업들 모두가 필요로 하는 공동의 자원이 파괴되지 않도록 개별 기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기업 부문 전체에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기도 한다. 또 각 개별 기업에는 단기적으로 손해를 끼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기업 부문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규제도 있을 수 있다. 노동자 교육 규정 같은 것이 그런 예이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기업 규제의 내용이지 양이 아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경제 계획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복잡한 현대 경제 시스템에 계획이라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수익 창출의 기회를 노리는 개인과 기업에 기반을 둔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서만이 복잡한 현대 경제를 지탱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복잡하고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무엇인가 계획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계획은 적을수록 더 좋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경제도 계획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공산주의 경제의 중앙 계획보다 훨씬 더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의 정부 역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모든 자본주의 정부는 연구개발과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재원의 상당 부분을 지원하고 있고, 또 대부분의 자본주의 정부가 국영 기업의 사업방향을 정하는 방식으로 경제의 상당 부분을 계획한다. 부문별 산업 정책을 통해 미래의 산업 구조를 계획하는 경우도 많으며, 심지어 유도 계획(indicative planning)을 통해 국민 경제의 미래 모습까지 설계하기도 한다. 더 중요한 것은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국경을 넘나들 정도로 큰 규모의 위계질서를 갖춘 대기업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 기업들은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계획을 세우고 그것에 입각해서 경제 활동을 한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계획의 수립 여부가 아니라 적절한 수준에서 적절한 계획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불평등에 분노한다. 하지만 노력과 성취의 크기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보상할 경우 재능 있고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성취동기를 잃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결과의 평등인데, 결코 좋은 시스템이라고 할 수 없다. 공산주의 몰락이 그 증거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평등은 기회의 균등이다. 예를 들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 분리 정책이 한창일 때 우수한 흑인 학생이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백인 학생들이 다니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는 것은 부당할 뿐 아니라 비효율적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균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러나 역차별 정책을 사용해서 단지 흑인이라거나 가난한 집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질이 못 미치는 학생들을 좋은 학교에 입학시키는 것 역시 부당하고 비효율적이다. 이런 식으로 결과의 평등을 추구할 경우 최고의 능력을 가진 사람과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기회의 균등은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물론 훌륭한 성과를 올린 사람은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사람이 같은 조건에서 경쟁을 했는가 하는 것이다. 가난한 집 아이가 배가 고파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선천적으로 능력이 떨어져 성적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공정한 경쟁이 되려면 그 아이도 다른 아이들처럼 배불리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집에서는 생계비 지원을 받아 식사할 수 있도록 하고, 학교에서는 무료 급식을 통해 밥을 굶지 않도록 보살펴야 한다. 기회의 균등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의 균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부모가 아이를 굶기지 않을 정도로는 돈을 벌 수 있어야(결과의 균등) 그 아이도 같은 조건에서 다른 아이들과 경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큰 정부는 경제에 좋지 않다. 복지국가는 변화하는 시장에 적응하기 위한 조정 비용을 부자들에게 부과함으로써 보다 편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요구로 만들어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실업 보험, 의료 혜택 등 복지 정책을 추진할 돈을 부자들에게서 거둔 세금으로 확충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게을러지고, 부자들은 부를 창출하고자 하는 의욕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경제 전체가 활력을 잃게 된다.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새로운 시장의 현실에 적응할 필요를 못 느끼고, 따라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맞춰 직업 및 직무 형태를 전환하는 것도 늦어진다. 공산주의 경제 체제가 실패한 것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생기 넘치는 미국 경제와 비대해진 복지 정책에 눌려 활력을 잃은 유럽 경제를 비교해 보라.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복지 정책이 잘된 나라 국민들은 일자리와 관련된 위험을 감수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변화에 오히려 개방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것은 미국보다 유럽에서 보호 무역에 대한 요구가 덜한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유럽 사람들은 자기가 종사하는 산업이 외국과의 경쟁으로 문을 닫는다 해도 실업 수당을 받아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고,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데 필요한 직업 재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에 반해 미국 사람들은 한번 일자리를 잃으면 생활이 심하게 어려워질 뿐 아니라 다시 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복지 정책이 가장 잘 갖춰진 나라들이 ‘미국의 르네상스’라고 하는 1990년대 이후의 미국과 비슷한 성장을 하거나 더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금융 시장의 급속한 발달 덕에 우리는 자원을 신속하게 배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영국, 미국, 아일랜드 등 금융 시장을 자유화하고 개방한 여러 자본주의 국가들이 좋은 경제 실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덕분이었다. 자유로운 금융 시장을 보유한 경제는 기회의 변화에 신속하게 반응할 수 있고, 이는 결국 빠른 경제 성장으로 이어진다. 최근 들어(2008년의 금융위기) 일부 금융기관의 지나치게 탐욕스러운 행태로 인해 금융 부문 전체가 오명을 쓴 것도 사실이다. 특히 위에 언급한 나라들에서 이런 일들이 더 불거져 나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금융 위기가 있었고, 그 위기의 규모가 좀 컷다고 해서 금융 시장을 규제하는 쪽으로 서둘러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효율적인 금융 시장은 한 나라의 번영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현대 금융 시장의 문제는 그것이 너무 효율적이라는 데에 있다. 최근의 금융 ‘혁신’을 통해 만들어진 수없이 많은 새 금융상품들 덕에 금융부문은 금융 자산 보유자들을 위한 단기 이윤 창출에는 더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에도 보았듯이 이 새로운 금융 자산들은 금융 시스템 뿐 아니라 경제 전반을 더 불안하게 만들고 말았다. 게다가 금융 자산의 유동성을 이용해 자산 보유자들은 작은 변화에도 빨리 반응을 하기 때문에 실물 경제 부문의 기업들은 장기적 발전에 필요한 ‘기다려 줄 줄 아는’ 자본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금융 부문과 실물 부문 사이에 존재하는 속도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즉 금융 시장의 효율성을 의도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정부 개입을 정당화하는 이론이 아무리 그럴싸해도 정부 정책의 성공 여부는 그것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사람의 능력에 달렸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정부 관료들은 경제학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다. 좋은 경제 정책을 실행에 옮기려면 경제학 지식이 필수적인데도 말이다. 그런 관료들은 자기의 한계를 깨닫고 선별적인 산업 정책 등 ‘어려운’ 정책에 손대지 말고, 정부 역할을 최소화하는 ‘쉬운’ 자유 시장 정책을 고수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자유 시장 정책은 일거양득이다. 가장 좋은 정책일 뿐 아니라 관료의 자질에 그다지 좌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
좋은 경제 정책을 수행하는 데 좋은 경제학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경제를 잘 운영한 경제 관료들은 대부분 경제학 전공자가 아니었다. ‘기적’적인 성장을 구가하는 동안 일본과 한국에서 경제 정책은 법대 출신들이 맡았다. 타이완과 중국에서는 공대 출신들이 이 역할을 담당했다. 이는 경제가 성공하는데 경제학, 특히 자유 시장 경향의 경제학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이 책 전체를 통해 보았듯이 지난 30여 년 동안 자유 시장 경제학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경제 실적이 저조해졌다. 성장률 감소, 경제 불안정성과 불평등 악화,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까지 몰아온 주범이 바로 이 자유 시장 경제학인 것이다. 정책 입안에 경제학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 경제학은 자유 시장 경제학이 아닌 다른 종류의 경제학이어야 한다.
========================================================================================
다문화를 강제하려는 권력자들의 속셈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3번 항목에 흥미로운 구절이 나오네요. 물론 다른 항목들도 정독해보시길 권합니다.
임금격차는 개인의 생산성 차이가 아니라 각 정부의 이민정책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나라간 이주가 자유롭다면 잘사는 나라의 일자리는 못사는 나라의 노동자들이 차지하게 된다. 다시 말해 임금은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것은 가난한 계층 때문이 아니라 부유한 계층 때문이라는 말도 가능하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은 잘 사는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지만, 가난한 나라의 부자들은 부자 나라의 부자들에 비해 경쟁력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자 나라의 부자들은 특별히 잘 나서가 아니다. 그들의 높은 생산성은 단지 역사적으로 축적해 온 다양한 제도들 덕분일 확률이 높다. 진정으로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개인의 가치에 맞는 임금을 받고 있다는 잘못된 신화를 깨뜨려야 한다.
다문화주의 반대를 인종차별이나 이기주의로 모는 "진보 진영" 네티즌들과 토론할때는 이런 배경을 잘 짚어주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