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백까지 `made in Italy`…이것이 페라가모의 장인정신
페라가모 최초 전문경영인 미켈레 노르사 CEO
이탈리아는 유난히 가족기업이 많다. 자신의 이름을 회사 이름으로 하고, 장인정신을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하며 가업을 자손들에게 승계하는 회사가 많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페라가모`라고 부르는 살바토레 페라가모나 프라다, 아르마니 등도 창업주 이름을 그대로 딴 회사들이다. 이 같은 가족기업의 장점은 가업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고, 전통을 충실하게 계승한다는 데 있다. 하지만 최신 트렌드와 고객의 변화를 읽어내는 힘, 그리고 객관적인 시각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후손들 곁에 든든한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두려는 시도가 이들 전통 브랜드에서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이유다. 미켈레 노르사(Michele Norsa) 살바토레 페라가모 최고경영자(CEO)는 페라가모라는 브랜드 역사상 최초로 외부에서 영입된 CEO다. 그는 `가족기업의 전문경영 전문`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이미 페라가모 전에도 베네통, 휴고보스, 발렌티노 등 이탈리아의 가족경영 기업을 두루 거쳤다. 이력에서 보이듯 럭셔리 패션 브랜드에서 그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그런 노르사 CEO가 최근 한국을 방문해 매일경제 MBA팀과 단독으로 인터뷰를 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대중을 만족시키면서 브랜드의 전통(Heritage)을 충실하게 지켜나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전통과 역사를 이어나갈 의무가 있는 후손들의 역사적 소명을 만족시키면서도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기업 특유의 숙제를 충실히 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내용.
―평생을 가족기업 내의 전문경영인으로 살아온 것 같다.
▶사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건 기업이 패션 산업, 그중에서도 이탈리아라는 나라에 많고, 그들이 글로벌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선택지가 좁혀졌다고 볼 수 있다.
베네통, 휴고보스, 발렌티노에 이어 살바토레 페라가모까지 내가 몸담은 회사는 모두 가족기업이었고, 글로벌 패션기업이었다. 창업주 유지를 받드는 후손들 사이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려운 만큼 그 사이에서 내 역할이 있다는 점도 알게 됐으며 이에 보람을 느낀다.
―어떤 점이 가장 어려운가.
▶이탈리아의 많은 기업은 창업주 이름을 그대로 딴 경우가 많다. 이 경험은 특별한 것이다. 애착관계도 상당하고, 헌신적이며, 자부심도 높다. 선조들이 세운 전통, 역사를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여러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전문경영인은 이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다. 대중을 만족시키면서 가족 구성원도 실망시키지 않아야 하며 이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최적의 합의안과 균형을 만들어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도 크다. 페라가모가 내가 영입됐던 7년 반 전보다 더 나은 성과를 거두며 성장하고 있다는 점은 자랑스럽다.
―가족기업 중에서도 유독 패션기업에 몸담은 기간이 길었다.
▶이탈리아 최고의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들이라는 점이 가장 컸다. 전 세계 각국을 돌며 이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것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잘 맞는 일이다. 그리고 이들 소비자를 파악해 트렌드를 읽는 것은 도전적이지만 즐겁고 매일 새로운 느낌을 준다.
―현재 몸담고 있는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많은 패션기업이 그룹사에 속해 있는 것과 달리 몇 안 되는 단독 브랜드로 상위권에 있다.
▶LVMH와 같은 거대 그룹과 단독 브랜드로 경쟁하는 것은 분명 외로운 싸움이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오히려 하나의 이름, 하나의 브랜드에 집중할 수 있고, 수백 년간 내려온 역사와 문화를 계승하는 측면에선 더 유리하다. 선택과 집중 전략인 것이다.
핵심 비즈니스에 집중해 브랜드 혼돈을 일으키지 않는 것, 이는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예를 들어 페라가모는 절대 라이선스를 주지 않는다. 100% 이탈리아에서 만들고, 우리 회사 내에서 모든 일을 처리한다. 향수같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제품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페라가모는 그룹사들 못지않게 계속해서 성장해왔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명품 브랜드 사이에서 페라가모가 살아남은 이유를 든다면.
▶페라가모라는 브랜드 이름을 들으면 바로 `여성 구두`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한 브랜드 이미지가 있다는 점이다. 포지셔닝이 잘 돼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럭셔리 비즈니스에서 사실 하나의 굳건한 대표 상품을 가지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페라가모는 `여성 구두` 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갖고 있다.
또 하나의 장점은 앞서도 얘기했지만 `100% 이탈리아 메이드`라는 점이다. 우리의 모든 제품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만든다. 이는 우리의 생명, 우리의 굳건한 뿌리와도 같다. 이를 나는 `장인정신(Craftmanship)`이라고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다.
대표 상품인 구두나 가방이나 지갑과 같은 가죽제품만이 아니라 향수, 심지어 쇼핑백과 포장재마저도 모두 이탈리아에서 만든다. 이는 우리가 고객들에게 최고 품질의 제품을 전 세계 어디서나 동일하게 제공하겠다고 하는 약속이며, 고객들은 이 같은 우리의 정책을 통해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다.
―럭셔리 브랜드 사이에서 살아남은 페라가모의 CEO가 생각하는 럭셔리는 뭔가.
▶나는 럭셔리라는 단어를 `몇몇 부자가 즐길 수 있는 사치`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런 생각에 반대한다. 와인 한 잔을 마셔도 자기 취향에 걸맞은 최고의 와인을 마시는 기쁨, 그것이 럭셔리를 누리는 올바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제조자 입장에서는 시간과 정성, 노력을 들여 `삶의 특별한 한순간(Moment of Life)`을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이 바로 럭셔리다. 지나치게 `희소성(Exclusivity)`만을 강조하는 것은 진짜 럭셔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페라가모는 진정한 럭셔리 구현에 충실하고 있다.
―최근 거의 모든 기업에서 혁신(Innovation)이라는 단어가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페라가모에 혁신이란.
▶창조성(Creativity)과 연결성(Connectivity)이다. 창업주인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유지, 그만의 독특함을 잘 이어받아 이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창조하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이 우리의 혁신이다. 또 미래를 대비하는 작업 역시 우리가 해야 할 혁신이라고 본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이동성(Mobility)`이 화두가 되는 것을 봤다. 여행을 즐기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우리 제품 라인업에 큰 변화가 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이는 우리의 미래와도 연관이 있다.
―여성 구두가 주력이라고 했는데, 기타 제품 포트폴리오가 다양하다.
▶포트폴리오는 계속해서 확장하는 추세다. 다만 기본적으로 신발에 집중하면서 여기에 가방이나 지갑과 같은 가죽제품을 강화해 이 두 제품군 비중을 70% 이상으로 맞출 생각이다. 여기에는 점점 더 많이 움직이고 이동하는 사람을 위한 여행용 제품 다수가 포함돼 있다. 향수는 우리가 또 한편으로 신경 쓰는 분야인데, 현재 전체 매출의 7% 수준이고 여기에 만족하고 있다.
이 밖에 넥타이, 스카프와 같은 실크 제품 비중도 꾸준히 유지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살바토레 페라가모라는 브랜드와 회사가 직접 한다는 것이고, 라이선스를 주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모든 명품업체가 아시아, 그중에서도 중국에 집중하고 있다. 그들에게 맞는 `로컬화`된 제품 출시 계획은 없나.
▶우리에게 로컬라이징이나 글로벌화는 모두 중요한 숙제지만, 더 중요한 건 우리만의 색깔과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제품을 만들 때 가장 중심에 두는 건 전통에서 비롯된 우리만의 독특한 가치와 철학이다. 그리고 그게 우리 브랜드다. 그래서 우리는 특별히 중국화된 아이템을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시도를 자꾸 하면 `브랜드 혼돈(Brand Illusion)`이 생긴다. 대신 아시아인들의 피부톤에 더 어울리는 색을 개발한다든가, 가방의 사이즈를 더 키우거나 줄이는 등의 조정은 할 수 있다. 그런 변화는 브랜드의 중심을 흔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에서 목표가 있다면.
▶우리는 한국에 1980년대에 일찌감치 진출한 오랜 역사의 브랜드다. 한국은 중국과 미국, 이탈리아에 이어 네 번째로 큰 시장이고, 그렇기에 그 중요도는 말할 필요도 없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한국 방문 목표는 `젊은 층 사로잡기`다. 기존 전통 패션쇼 스타일에서 벗어나 좀 더 독특한, 예를 들면 파티나 현대미술 전시회 같은 방식으로 우리 제품을 선보이고 이를 젊은 층에 어필하는 것이다. 우리는 젊은 층과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기 위해 온라인 홍보나 블로거 마케팅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젊은 층의 명품 소비가 늘어날 것을 겨냥한 타깃 마케팅이다.
■ Who he is…
켈레 노르사 살바토레 페라가모 CEO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1985년 스포츠 브랜드인 세르조 타치니가 속한 샌디스 그룹의 CEO를 맡은 이후 이탈리아의 주요 패션 브랜드를 이끌어왔다. 1994~1997년 베네통스포츠, 1997~2002년 마조토, 2002년부터는 발렌티노 CEO를 맡아왔다. 2005년부터 살바토레 페라가모에 합류해 외부인으로는 최초의 CEO가 됐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이탈리아의 가족 브랜드라 `가족 브랜드 전문경영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