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 19 장
베푸는 미덕에 대하여(8)
「나의 제자들이여! 이제 나는 홀로 가겠다.
그대들 역시 떠나서 홀로 머물러라!
나는 그렇게 말하는 바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처음으로 호칭을 바꾸었다.
그는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나의 형제들이라고 불렀지만, 이제 그는 ‘나의 제자들’이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다른 사람들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커다란 변화이다.
우리는 모두 동일한 대지에서 태어나 동일한 하늘과 동일한 별들에 의해 길러지고 키워지기 때문에 사실 우리 모두는 형제이다.
그러나 그것이 굳건한 다리를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그것은 말로 표현되는 사실일 뿐이다.
그러나 그 사이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그가 최고의 미덕과 그 특성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그의 형제들은 변화를 겪었다.
이제 그들은 그를 스승으로 대하고 그의 이야기를 스승의 말로 들으며,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고, 더 이상 군중 가운데 한 명이 아니다.
그들은 스승을 발견하여 축복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차라투스트라는 그들의 눈에서 그러한 변화를 읽게 되었다.
그대가 누군가를 스승으로 바라보게 되면, 그대의 눈은 너무나 큰 사랑을 발산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앎에 대해 익숙해있던 사랑은 보잘것 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일반적인 생물학적 사랑은 경멸로 바뀌기 마련이다.
그대가 알게 되는 순간, 그대의 눈은 스승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된다.
아름다운 육체와 사랑에 빠지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것은 너무나 표면적이다.
《아름다운 존재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너무나 깊고 헤어릴 수 없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그 변화는 ‘이제 나는 홀로 가련다.’로 나타난다.
그의 결정은 ‘나의 제자들이여! 이제 나는 홀로 가겠다. 그대들 역시 떠나서 홀로 머물러라!’이다.
나는 그냥 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대는 떠나서 홀로 있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나로부터 떨어져 군중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내가 그대를 군중으로부터 떼어냈는데, 이제 나는 그대가 나를 떠나기를 바란다.
《나는 그대가 자신의 홀로 있음과 그 아름다움과 최고의 지복과 황홀경에 익숙해지기를 바란다.》
나 역시 떠날 것이다.
그대들 역시 떠나서 홀로 머물도록 하라.
이제 그는 스승으로서 말을 한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바이다.’
말의 변화에 따라서 세상이 변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처음에 ‘나는 그대들이 그것을 이해하기를 간곡히 바란다.’ 라고 말했지만,
이제 그는 ‘이것은 이런 식이 되어야 한다. 나는 홀로 갈 것이다. 그대들도 홀로 가야 한다.’ 라고 명령하고 있다.
「진정으로 나는 그대들에게 조언한다.
나를 떠나서 차라투스트라로부터 그대들 자신을 보호하라!
그리고 더 좋은 것은 나를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가 그대들을 기만했을 것이다.」
이 문장은 너무나 훌륭하다.
역사상 모든 신비주의와 철학과 종교에서 나온 문장들 가운데 이 문장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내가 그대들에게 감옥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의 영적인 노예가 될 수 있다.
그대들은 나에게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정하게 말한다.
그는 자신과 제자들 사이에 놓였던 모든 다리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는 그대가 완전히 홀로 존재하도록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그대 자신의 홀로 있음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면,
진정한 종교나 명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어떤 미덕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스승은 언제나 제자들이 가는 길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는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대의 재산을 포기하고, 가족과 남편과 아내와 어머니와 아이들을 버리는 것은 쉬울 수 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스승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그것이 최후의 걸림돌이다.
그러나 스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방책을 만든다.
제자는 혼자서 나아갈 수 없고, 구도의 길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스승은 그에게 용기를 주어야 한다.
《제자에게 용기를 주어서 그가 스승을 떠나 완전한 홀로 있음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지성을 가진 자는 자신의 적을 사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벗도 증오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예수는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 라고 말했다.
그 말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평범하고 세속적이다.
평범한 윤리선생이라도 ‘너의 원수를 사랑하라’ 라고 말할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기개가 남다른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적을 사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벗도 증오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그는
‘그대들의 가장 위대한 벗인 차라투스트라로부터 그대들 자신을 보호하라.
그리고 더 나은 것은 그를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가 그대들을 기만했을 것이다.’
라고 말한 것이다.
「제자로만 남는 사람은 스승에게 나쁜 보답을 하게 된다.」
스승은 그대가 제자로 남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스승이 되기를 바란다.
《그대가 영원히 제자로 남기를 바라는 스승은 가짜 스승이며,
영성의 이름을 악용하고 사람들의 존재에 구속과 노예화를 만든다.》
진정한 제자는 어느 날 자신이 스승이 됨으로써 스승에게 보답을 하게 된다.
그것은 불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스승에 대한 최고의 존경이다.
제자가 스승의 열망을 성취한 것이다. 끝.
오쇼의 차라투스트라 1
오쇼 강의/박형진 옮김. 젠토피아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