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더러워진 발
†오늘의 말씀 요한13:1-15
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되자 그는 "주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너는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지금은 모르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베드로가 "안 됩니다. 제 발만은 결코 씻지 못하십니다." 하고 사양하자 예수께서는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이제 나와 아무 상관도 없게 된다." 하셨다. (요한1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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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의 기반을 닦았다고 평가되는 가장 위대한 성인입니다. 그는 말년에 「고백」이라는 자서전은 썼는데,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한가지 의문을 품게 됩니다. “왜 이런 타락한 인간을 성인이라고 부르는가?” 그것은 회심이전의 그의 품행이 정말로 형편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 보면,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고백 할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후대에 성인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과거의 잘못이나 부끄러운 자신의 치부는 무덤까지 가져갑니다. 특히 노년기 들어서면 돈이나 권력보다는 명예가 가장 중요하지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에게 명예가 실추된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인생이 통째로 부정 당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인생의 황혼기에 주교로서의 명예를 지키려고 집착하는 것보다, 자신의 인생을 하느님 앞에서 솔직이 고백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 용기와 겸손함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이미 때가 되심을 아시고, 최후의 만찬을 여시어 사랑하는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겨주시는 단락입니다. 당시 발을 씻기는 역할은 노예가 하는 일 이었습니다만, 예수님은 스스로 몸을 낮추셔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가르침으로 겸손하게 섬기는 자세를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더러워진 발과 함께 사랑하는 제자들의 마음 속 얘기도 듣고자 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 내면의 고민이나 아픔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걸어온 3년간, 주님의 제자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또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는 마음 속 어둠과 상처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러한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안 됩니다. 제 발만은 결코 씻지 못하십니다."라고 거절하고 맙니다.
사람들은 타인의 더러운 발, 즉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마음의 상처는 관대하게 받아들이고, 씻겨주려고 노력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자신의 더러운 발, 즉 자신의 죄책감이나 마음의 상처는 타인에게 보여주기를 꺼려합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 베드로처럼 가까운 사람에게 조차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보여 주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처럼 타인에게 자신의 더러운 발을 보여줄 수 있는 용기와 주님 앞에 나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맡기는 겸손한 자세, 그것이 성목요일 세족식의 가장 중요한 의미인 것입니다.
†黙想: 성목요일의 세족식에서 자신의 발을 타인에게 맡기는 것은, 내가 치유 받고, 용서받아야 될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겸손히 인정하는 행동입니다. 그 용기가 영적인 신앙의 길을 내딛는 첫걸음이자, 그 첫걸음으로 인해 우리들은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갖가지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온갖 근심 걱정을 송두리째 하느님께 맡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여러분을 돌보십니다.”(1베드로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