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시의 본질과 특성] 1.‘시’라는 이름의 유래 인간이 알고 있는 모든 사물은 이름을 갖고 있다. 그 이름은 그 사물에 대한 인간의 해석이다. 이를테면 ‘뻐꾸기’라는 이름은 어떤 새가 우리의 귀에 ‘뻐꾹뻐꾹’하는 소리로 우는 것처럼 들려서 지어진 것이다. 들렸다는 말은 그 새의 그 울음소리를 우리가 그렇게 해석했다는 뜻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자동차’도 그렇다. 그것은 어떤 사물이 제(自) 힘으로 움직이는(動) 수레(車)라고 해석되어 생겨난 이름이다. 이러한 해석은 옳든 그르든 당해 사물의 본질에 대한 해석자의 통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해석의 결과가 ‘이름’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의 묵시적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정착된 사물의 이름은 그 이름을 만들어낸 사물의 해석이 그만큼 보편 타당한 것임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을 만들어낸 사물의 해석자는 물론 과거의 사람이다. 그 과거는 당해 사물이 처음 생성된 아득한 옛날로까지 소급될 수 있다. 따라서 사물의 이름은 그 사물의 본질에 대한 고대인의 인식 내용을 알려주는 기호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고대인의 인식은 오늘의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시간의 연속성에 기인하는 필연적 결과로서 그것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어떤 형태로든 계승되고 있다. 그런 뜻에서 사물의 이름은 그 사물의 본질을 엿보게 하는 통시적 기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시’라는 이름은 그러한 기호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시라는 이름의 유래를 살피는 일은 시의 그 본질에 접근하는 유용한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시라는 이름의 그 유래는 과연 무엇인가? 그러나 이 문제의 해답을 찾는 길은 하나로만 한정될 수 없다. 동서양의 문화의 차이를 감안해서 최소한 두 개의 방향으로 나가는 길을 잡아야 할 것이다. (1) 사악함 없는 동양의 감정언어 먼저 동양이다. 한국도 거기에 속해 있는 동양에 있어서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시라는 이름의 원산지가 중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식으로는 중국문자인 한문으로 ‘詩’라고 써야하는 그 시의 이름의 유래를 알려주는 단서의 하나는 ‘詩’라는 글자 자체 속에 있다. 그것은 言과 寺가 합쳐진 회의(會意)문자이다. 한문에서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이러한 회의문자는 대체로 의미기호와 소리기호로 이루어져 있다.1) 예를 들면 忠(충)이라는 글자는 中+心의 회의문자인데, 中은 소리기호, 心은 의미기호인 것이다. 그리고 詩의 경우는 言이 의미기호, 寺가 소리기호이다. 중국인들이 寺와 詩를 거의 비슷하게 발음하고 있는 것은 그점에 대한 참고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시는 言, 즉 언어가 그 의미내용의 핵심을 이루는 어떤 이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명 《상서(尙書)》라고도 불리는 《서경(書經)》의 <순전(舜典)>에는 이러한 사실의 뒷받침이 될 수 있는 구절이 나온다. ‘시언지(詩言志)’라는 기술이 그것이다. 우리 말로는 ‘언어로 나타낸 뜻이 곧 시’라고 풀이될 수 있는 이 구절은 詩라는 글자의 의미기호가 언어라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준다. ‘언어로 나타낸 뜻이 곧 시’라는 말은 우리가 글자풀이에서 얻어낸 詩=言의 등식을 서술체로 명제화한 문장에 다름 아닌 것이다. 실제로 모든 시는 언어로 되어 있다. 언어를 빼버리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시의 현실적 존재양태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 점을 강조해도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의 그 전부를 시라고 할 수는 없다.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시가 되는 언어와 되지 않는 언어가 엄연히 구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를 ‘시’라고 이름지은 고대의 중국인들이 그러한 구분의 기준을 어디에 두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공자의 의견은 우리가 이 문제를 생각함에 있어서 든든한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권위를 갖고 있다. 그것은 그가 ‘시언지’의 출전인 《서경》의 편찬자로 알려져 있고, 또 스스로 시의 최고의 경전이라고 믿었던 《시경》의 편찬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의 본질에 대해서도 고대의 중국에서 가장 깊은 통찰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보아야 할 공자는 앞장에서 이미 소개한대로 시를 ‘사무사’라고 규정하고 있다. ‘생각에 사악함이 없는’ 그것이 시라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가 되는 언어와 되지 않는 언어의 구분에 대한 공자의 기준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생각에 사악함이 있느냐 없느냐가 바로 그 기준인 것이다. 그러나 이 기준은 구체성이 없는 추상적 관념이기 때문에 막상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려 할 때는 혼란이 일어날 우려가 많다. 그러한 혼란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그 정리를 위해 대조해 볼 수 있는 규범적인 시작품 305편을 수록해 놓은 책이 《시경》이다. ‘사무사’라는 공자의 그 시에 대한 규정도 실은 그 《시경》에 수록된 작품들을 간략하게 포괄적으로 논평한 발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무사’의 언어의 구체적 실례인 《시경》에 수록된 작품을 일단 검토해 보아야 한다는 요청을 받게된다. 꾸룩꾸룩 물수리는 모래톺에서 우는데 아리따운 아가씨는 군자의 좋은 짝. 올망졸망 마름풀을 이리저리 찾으면서 아리따운 아가씨 자나깨나 그리네. 찾아도 찾지 못해 자나깨나 그 생각 시름은 그지없어 잠 못 자고 뒤척이네. 올망졸망 마름풀 이리저리 뜯으면서 아리따운 아가씨 거문고 뜯으며 벗하리. 올망졸망 마름풀 이리저리 고르고 아리따운 아가씨 풍악 울리며 즐기리. 이것은 《시경》의 권두에 실려 있는, 그래서 《시경》시의 대표작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 〈관저(關雎)〉의 졸역이다. 공자는 이 시에 대해 ‘즐겁되 지나치지 않고 애달프되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樂而不淫, 哀而不傷)’고 말하고 있다.2) 즐거움과 애달픔은 물론 이 시를 읽고 그렇게 느낀 공자 자신의 주관적 감정반응이기 때문에 객관성을 보장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은 다르게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개인적 편차를 충분히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 시가 매우 솔직 소박하게 아리따운 아가씨를 그리는 화자의 감정상태를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은 보편적 승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의 감정 자체가 또 커다란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니까 공자의 ‘사무사’의 언어는 이처럼 보편성이 큰 감정을 솔직 소박하게 표현한 언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감정의 그 보편성 여부나 또 그 표현의 솔직 소박 여부를 가릴 때는 많든 적든 주관적 평가가 개입될 소지가 있다. 그러한 주관성의 개입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말한다면 ‘사무사’의 언어란 사물에 대한 인간의 감정 표현을 본령으로 하는 언어라고 요약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한문문학의 전문가인 차주환 교수는 ‘시언지’의 그 ‘지’를 ‘정지(情志)’라고 풀이하고 있다.3) 그리고 위에 인용한 〈관저〉는 또 그 원문이 4언 1행의 정형성을 준수하고 있다. 〈관저〉 이외의 다른 작품들도 거의 대부분이 그렇게 되어있다. 이러한 정형성은 운문의 특징이다. 시가 이처럼 운문으로 쓰여지게 된 연유에 대해서는 다음에 인용하는 모형(毛亨)의 〈시경 대서(大序)〉의 한 구절이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감정이 속에서 움직이면 그것을 말로 나타내게 된다. 말로 해서 흡족하지 않기 때문에 감탄하게 되고 감탄해서 흡족하지 않기 때문에 길게 빼서 노래하게 되고 길게 빼 노래해서 흡족하지 않기 때문에 손이 덩실거리고 발이 굴러지고 하는 것을 모르게 된다.4) ‘감정이 속에서 움직여 말로 나타내게 된 것’은 시이다. 모형은 그러한 시 속에 자연스럽게 감탄과 노래와 춤으로 이어지는 요소가 내포되어 있음을 여기서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시가 리듬이 있는 운문으로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모형은 기원전 2세기 초의 사람이다. 공자보다는 2백 50년쯤 늦지만 역시 고대인이라 하겠다. 그러한 모형의 견해까지도 아울러 고려할 때 고대의 중국에 있어서는 운문에 의한 감정표현을 시라고 보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면 그런 시는 서정시가 된다. 그러니까 서정시는 중국과 중국의 영향을 받은 동양 여러 나라 시의 원형인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 있어서는 이 서정시가 또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문학을 압도적으로 지배한 것이다. (2) 표현기술 중심의 서양의 시 다음은 서양의 차례다. 영어로는 시를,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시 일반을 포에트리(poetry)라고 한다. 그러나 이 포에트리의 번역어인 시를 동양의 시와 같은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두 개의 시는 내용에 있어서 큰 차이를 갖는 것이다.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시의 이론서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그 첫머리서부터 그러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우리의 주제는 작시술(作詩術)인데, 우리는 시의 일반적인 본질과, 그 여러 종류와, 그 각 종류의 기능과 좋은 시는 그 플롯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에 관하여 우선 자연적 순서에 따라……논하려고 한다.5) 앞에 인용한 《시학》의 첫머리는 보다시피 그 책의 주제가 작시술, 즉 시의 창작방법임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인용문에서는 ‘좋은 시는 그 플롯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라는 대목이 가장 큰 비중을 갖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좋은 시를 쓰는 방법론의 핵심이 ‘플롯의 구성’에 있다는 진술인 것이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의 제6장에서 그 플롯을 ‘행동의 모방’이요 ‘행하여진 사건들의 결합’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시경》으로 대표되는 고대 동양의 시에는 그러한 플롯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그것도 그럴 것이 감정표현을 본령으로 하는 서정시는 배열해야할 만큼 복잡한 사건들을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런 사건들이 있다면 그것을 배열하는 플롯 만들기에 정신을 빼앗겨서 시는 오히려 뒷전이 되고 말 우려가 크다. 게다가 또 플롯을 만들 때의 구성을 위한 계산의식은 ‘사무사’의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요소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시와 동양의 시, 즉 서정시는 성질을 크게 달리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시학》에는 서정시에 대한 언급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거기서 논의하고 있는 것은 서사시와 비극과 희극의 3가지뿐인데 미상불 그것들은 사건들의 배열인 플롯을 그 내용의 골격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사건들의 배열은 필연적으로 이야기를 형성한다. 그러니까 《시학》에서 논의하고 있는 시는 감정이 아니라 이야기를 펼치는 서사문학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를 ‘운문에 의한 모방’이라 한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그렇다면 모방의 대상은 무엇인가?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이 물음에 대해 그는 ‘행동의 모방’이라고 대답하고 있다.6) 행동은 연속성을 갖는다는 사실, 그리고 그 연속되는 일련의 행동이 이야기를 만든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여기서도 우리는 그가 시를 서사문학으로 보았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방은 그것이 비록 모방대상의 그 실상을 능가하는 박진성을 갖는다 하더라도 결코 모방대상 그 자체일 수는 없다. 말하자면 모방은 본질적으로 허구인 것이다. 플라톤은 이점을 들어 모방자인 시인을 그의 공화국에서 추방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점을 도리어 시를 옹호하는 근거로 삼고 있다. 역사가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말하고 시인은 ‘개연성과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말하기 때문에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중요하다’고 한 《시학》 제9장의 기술은 그러한 시의 옹호론이다.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니까 허구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허구는 상상력의 소유자인 오직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 흔히 무소불위(無所不爲)라고 말하는 신도 사실의 세계만을 만들 뿐 허구의 세계는 만들지 못한다. 사실의 세계가 신의 창작물이듯 허구의 세계는 인간의 창작물인 것이다. 그러니까 모방을 통해 만들어진 시의 그 허구의 세계는 곧 창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시라고 번역되는 영어 포에트리의 어원인 희랍어 포이에시스(poiesis)가 ‘만들기(제작)’라는 뜻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시가 ‘만들기’를 뜻하는 그 당연한 귀결로서 시인 즉 포에트(poet)는 또 어원적 의미가 ‘만드는 사람(제작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이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할 것인가. 아니다, 대답은 이미 나와 있다. 시인은 ‘역사보다도 더 철학적이고 중요한’ 허구의 세계를 창작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러한 창작은 장르를 초월한 문학 일반의 본질적 속성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라고 번역하는 포에트리는 서정시만을 뜻하지 않고 창작적 성격을 갖는 문학을 총칭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그것을 실제로 입증하고 있는 자료이다. 다만 그는 그 창작의 핵심적 과제를 ‘행동의 모방’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런 모방을 가장 잘 수행한 시로서 비극을 들고 있다. 그래서 그는 《시학》에서 행동이 없거나 없어도 그만인 감정표현의 시, 즉 서정시를 도외시한 것이다. 그것은 그가 ‘비극을 문학의 최고봉으로 인정했던 까닭’이라고 이상섭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7)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았던 고대 희랍이 비극의 황금시대였음에 비추어 수긍에 값하는 설명이다. 또 당시의 희랍에 있어서는 서정시가 부진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랬다고 해도 감정체험의 문학적 표현이 없을 수는 없다. 우리가 서정시라고 번역해 쓰고 있는 영어 리릭(lyric)이 고대 희랍의 현악기의 일종인 라이어(lyre)라는 사실도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시학》 속에 몇번 이름만 등장하는 디튜람보스(dithyrambos)나 송시는 전자가 디오니소스 신에 대한 찬양의 합창가, 후자가 아폴로 신을 찬미하는 독창가였으니 그 가사는 서정시의 일종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시학》의 제17장에는 비극을 두고 한 말이기는 하지만 박진성 있는 감정표현의 중요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정시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인가? 그 이유는 그와 또 그에 의해 대표되는 고대 서양의 시에 대한 인식이 표현의 기술을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보고 있다. 그가 비극의 ‘목적’이며 ‘제일원리’라고까지 말한8) 플롯은 실상 표현의 기술에 속하는 문제인 것이다. 《시학》의 20장부터 22장까지가 언어와 비유를 세밀하게 분석, 설명하고 있는 것도 역시 표현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컸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만들기’라는 포에트리의 그 어원적 의미부터가 표현의 기술에 대한 관심을 농도 짙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시는 예술의 일종이고 또 예술은 표현을 통해서만 그 실체를 획득한다. 그래서 고대 서양인들의 표현의 기술에 대한 관심은 되도록 기술을 부리지 말고 솔직 소박하고자 했던 《시경》의 문화권에도 오늘날에 나와서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주제와는 좀 벗어날지 몰라도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시를 논하는 많은 글들이 문학 일반이 아닌 시에 대해 그것을 보는 4가지 관점을 소개하고 있는 데 대한 회의감이다. M.H. 에이브럼즈의 견해를 인용하고 있는 그 4가지 관점은 모방론적 관점, 효용론적 관점, 표현론적 관점, 구조론적 관점이다.9) 우리는 물론 이 4가지 관점의 어느 하나를 기준으로 해서 시에 접근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런 접근이 가능한 것은 감정표현을 본령으로 하는, 우리가 그 원리를 밝히려는 그 시만이 아니다. 문학의 모든 장르가 그렇게 접근할 수 있는 대상인 것이다. 소설이나 희곡이나 수필도 그 4가지 관점의 어느 하나에 입각해서 볼 수 있는 것이고 또 실제로 그렇게 접근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에이브럼즈가 말하는 4가지 관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포에트리, 즉 창작문학 전반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서양에 있어서의 시에 대한 인식의 정통적 원천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우쳐 받게된다. 주제를 좀 벗어날지도 모른다고 한 이 덧붙임도 그러고 보니 역시 우리의 주제로 되돌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