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로 본 오늘~ 6/05 환경의 날, 망종
"우표에서 얻은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망종 [芒種] 24절기 중 아홉번째로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이다. 양력으로 6월 6일 경부터이며, 음력으로 4월 또는 5월에 든다. 씨를 뿌리기 좋은 시기라는 뜻으로 모내기와 보리베기가 이뤄진다. 각 지역별로 다양한 망종 풍속을 갖는데, 농사의 한 해 운을 보거나 농사가 잘 되기를 빌었다. 농촌에서는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이다. /naver
레이건 [Reagan, Ronald (Wilson), 1911.2.6~2004.6.5]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을 역임한 로널드 레이건이 10년간 알츠하이머로 투병해오다 폐렴 합병증으로 2004년 6월 5일 9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오늘날 레이건 전 대통령은 미국인들에게 자신감을 되찾아주고, 미·소 간 냉전 종식을 가속화한 인물로 평가된다. 1911년 구두장수의 2남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지도자가 아닌 배우로서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자질은 영화배우가 아닌 영화배우 노조위원장으로서 뛰어난 정치력과 지도력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그의 지도력은 1952년 두 번째 부인 낸시 데이비스를 만나 결혼하면서부터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분석적이거나 전략적인 사고를 하지도 못했고, 연설 때는 참모들이 메모 카드에 적어준 내용만을 소화해낼 정도였다. 그러나 의사전달 방식에 탁월한 레이건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TV를 매체로 국민들에게 직접 얘기했고, 종종 자신을 비하하는 즉흥적인 유머로 대중의 마음을 잡았다. 미국 언론은 좀처럼 이미지에 ‘타격’을 입지 않는 레이건을 ‘테플론(Teflon·때가 잘 타지 않는 천) 대통령’이라고 불렀다. 레이건은 원칙주의자이면서 실용주의자였다. 1983년 3월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부를 만큼 증오했지만, 재임 8년간 고르바초프와 5차례 정상회담을 가지며 신뢰를 쌓아 결국 퇴임 3년째 발생한 소련 연방 해체의 기초를 닦았다. 두 번의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후인 1994년 11월 5일 그는 “내 생애의 황혼으로 이끌어 갈 여행을 시작한다”며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음을 알렸다. 퇴임시 지지율 63%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66%)와 더불어 역대 대통령 중 최고였다. /조선
- 4th World Conference on Women, Beijing, 1995.9.5 2000 - 제5회 세계여성대회 뉴욕서 개막 제5회 세계여성대회(베이징+5) 개막식이 2000년 6월 5일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열렸다. 개막식에는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가 5년 전 베이징 대회에 이어 퍼스트 레이디 자격으로 참석한 것을 비롯, 요르단의 누르왕비, 미 국방부내 성희롱을 폭로했던 3성 장군 클로디아 케네디, 인기 가수 주디 콜린스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번 대회는 1995년 중국 베이징 대회후 5년 만에 열리는 것이었다. 대회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의 정치참여` 등 12개 의제를 중점적으로 다뤘으며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 실태와 함께 개선점 등이 논의됐다. 대회에는 187개국 수석대표들이 참석했으며 이들 중 76.4%가 여성이었다. 10일 폐막을 앞두고 260여개 조항이 `결과문서`로 채택되기까지 이들 대표들은 문화와 전통, 종교에 따라 거의 모든 조항에서 팽팽히 대립했다. /조선
- Mir Space Station - Discovery 1998년 6월 5일 새벽 지상 3백90km의 우주. 러시아 우주정거장 미르(Mir, 평화)를 향해 미국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Discovery)가 천천히 다가갔다. 오전 1시58분. 마침내 미르와 디스커버리호 사이 `최후의 도킹`이 이루어졌다. 도킹 90분 뒤, 미르의 해치가 열리고 양측 우주 비행사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통산 9번째인 이번 도킹을 끝으로 3년째 진행됐던 미르와 미국 측 우주왕복선 간의 만남은 마침표를 찍게 됐다. 제7대 미르호 체류 미국인 승무원 앤드루 토머스를 지상으로 데려오는 것이 디스커버리호의 임무였다. 그동안 미르에 탑재돼 있던 미항공우주국(NASA) 소유 실험 장비도 전부 수거돼 6월 12일 지구로 귀환됐다. 미르의 본체가 우주로 발사된 것은 지난 1986년 2월. 이때만 해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을 통치하던 냉전시절이었다. 이후 12년 간 러시아 우주인들이 번갈아 미르에 머물며 각종 자료수집과 실험 및 연구를 실시해왔다. 승무원 체류용 미르호 본체는 길이 13m, 폭 4m 규모다. 1987∼1996년에 걸쳐 `스펙트르` 등 5개의 모듈이 추가로 발사돼 우주에서 본체와 결합됐다. 지금까지 지구를 모두 6만 바퀴 이상 돈 미르는 예정수명 5년을 훨씬 넘겨 장수하고는 있지만 잦은 잔병치레로 러시아 측을 당황하게 했다. 이번 최후의 도킹을 앞두고도 자동유도장치가 고장을 일으켰었다. 러시아 언론은 미르호의 고장 횟수가 무려 1천5백여 건에 달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후 미르호는 1999년 8월 28일 마지막 승무원 3명이 지구에 귀환함으로 공식활동을 사실상 마감했다. 그리고 2001년 3월 23일 당초 예상대로 피지섬 인근 남위 40도, 서경 160도의 남태평양에 추락, 15년 생을 마감했다. /조선
1981년 평화통일자문회의법에 따라 헌법기관이자 대통령자문기구이며 범민족적 통일기구로 발족했다. 발족 당시에는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였다가, 1987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로 바뀌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1981년 6월 5일 AIDS(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를 처음 보고했다. 에이즈는 1950년대 말 아프리카 녹색원숭이에게서 전파됐다는 가설이 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에이즈 감염경로는 70%가 성접촉이지만 수혈이나 주사기를 통해서도 쉽게 전염된다. 잠복기를 거쳐 일단 발병하면 이후 평균 수명은 고작 1.8년. 에이즈 바이러스(HIV)는 8~12시간마다 복제를 하고 그때마다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에이즈는 사회에도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성 개방 풍조는 다소 진정됐으며 동성연애자들에 대한 적대감은 누그러졌다. `자이언트` 등 명화에서 열연한 미국의 영화배우 록 허드슨이 1985년 에이즈로 사망한 사건은 에이즈에 대한 세계인의 경각심을 극적으로 고취시켰다. 미국의 다이빙 영웅 그레그 루가니스도 1994년 에이즈 감염사실을 고백했고, 미국의 농구 스타 매직 존슨도 1991년 에이즈 감염사실을 털어놓고 예방운동에 합류했다. 2001년 6월 현재 전 세계 감염자수는 3600만명 안팎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내에선 1985년 해외 근로자였던 내국인이 처음으로 에이즈에 감염된 이래 2001년 6월까지 1350명이 에이즈 감염자로 공식 확인됐다. /조선
1975 - 수에즈 운하 8년 만에 재개 1967년 6월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를 점령하자 폐쇄된 수에즈 운하가 1975년 6월 5일 8년 만에 운행이 재개됐다. 운행 재개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유일한 수로가 기능을 회복했다는 점에서 뿐 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이집트의 평화선언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었다. 이 해 3월 이스라엘과 이집트간의 평화를 위한 미 국무장관 키신저의 중재가 실패로 돌아갔고,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파이잘의 피살로 중동정세는 긴장을 더해갔다. 이런 와중에 수에즈 운하가 재개됨으로 이스라엘과의 긴장이 해소되었고 제5차 중동전쟁의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이집트 입장에서는 운하 이용과 관광수입으로 얻어지는 경제 재건과 안정도 한 몫했다.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이날의 기념식전에서 "수에즈 운하를 재개하고 평화에의 헌신과 인류의 번영, 협력에 기여하고 싶다"고 생각을 피력했다. /조선
- '97 세계환경의 날 기념, 1997.6.5 발행
1973 - 제1회 세계환경의 날 1973년 6월 5일 제1회 세계환경의 날 행사가 개최되었다.1968년 제23차 국제연합(UN) 총회에서는 산업 발달에 따른 심각한 환경오염에 공동대처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UN 환경회의를 개최할 것을 결의했다.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한국을 비롯한 113개국 대표가 참가한 가운데 UN 인간환경선언이 채택되었고 세계환경의 날 제정이 건의되었다. 이 건의에 따라 같은 해 UN 총회에서 UN 환경회의 개최일인 6월 5일을 세계환경의 날로 지정했다. 한국은 1997년 세계환경의 날 주최국이 되어 각종 행사를 주관했다. /조선
`둘도 없는 지구(Only one Earth)`를 주제로 한 UN주최의 첫 인간환경회의가 1972년 6월 5일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개막됐다. 이 회의는 1968년 제4회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서 스웨덴 정부가 제창한 이후 준비돼온 회의로 세계 112개국에서 약 1천2백여명의 정부대표가 참석했다. 11일간에 걸친 회의는 논란을 거듭했다. 회의장앞은 반전론자들, 공해-오염 피해자들, 고래 남획 근절을 요구하는 이들의 데모로 어수선했다. 그러나 자연에 관한 인간의 인식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꾼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훗날 학자들은 이 모임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비유했다. 우여곡절 끝에 참석자들은 마지막날 `지구는 하나`라는 제목의 인간환경 선언문을 채택했다. 이듬해인 1973년부터 사람들은 스톡홀름 회의 개막일이었던 6월 5일을 세계환경의 날로 지정, 1년에 단 하루만이라도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는 날로 삼아오고 있다. /조선
1969 - 미국 상원의원 로버트 케네디(Kennedy, Robert) 피격
1969 - 소련의 초음속 여객기 Tu-144(Tupolev-144) 음속 돌파
Tu-144 / 구소련이 개발한 초음속여객기로써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서 붙인 이름은 차저(charger)이다. 영국·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콩코드에 앞서 등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더 높은 고도를 더 빠르게 비행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초음속여객기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추락사고와 경제성 부족 때문에 1978년 이후 여객기로 운항되지 않았고 모두 14대만 생산되었다. 구소련은 꼭 필요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유럽보다 빨리 초음속여객기를 개발하여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1964년 투폴레프설계국에 초음속여객기 개발을 지시하였다. 투폴레프설계국은 값 비싼 금속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주로 알루미늄합금을 사용하여 시제기를 제작하였다. 시제기는 콩코드보다 2달 앞선 1968년 12월 31일 38분 동안의 첫 번째 시험비행에 성공하였으며 1969년 6월 5일에는 음속을 돌파하였다. 또 1970년 5월 26일과 6월 15일 각각 시속 2,150㎞(마하 2.0)와 시속 2,443㎞를 기록하였다. 1971년 7월 1일에는 동체길이와 주날개 폭을 확대하고 전체 성능을 개량한 양산형 Tu-144S가 첫 비행하였다. NK-144 터보팬 엔진 4개를 장비한 Tu-144S는 1973년 6월 3일 파리에어쇼에서 승무원 6명과 관람객 7명이 사망하는 공중분해 사고를 일으키는 등 우여곡절을 거쳐 1975년 12월 26일 모스크바-알마티 노선에 취항하여 화물과 우편물을 수송하였다. 1977년 11월 1일부터는 같은 노선에서 여객기로 운항되었다. 그러나 1978년 6월 1일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추락사고가 발생한 뒤에는 여객기로 운항이 금지되었고 주로 시험비행용으로 사용되었다. /naver
초음속 여객기 Tu-144(나토코드 Charger) 연혁 1963-00-00 - 1963년 소련 정부 Tu-144의 개발을 지시 1968-12-31 - 첫 시험비행 성공 1969-06-05 - 음속 돌파 1970-05-26 - 시속 2,150km(마하 2) 기록 1970-06-15 - 시속 2,443km 기록 1971-07-01 - 양산형 TU-144S 첫 비행 1973-06-03 - TU-144S 파리 에어쇼에서 공중폭발 사고 (1973년 6월 3일 파리 에어쇼에서 엄호해주던 미라지 전투기와 충돌, 공중에서 6명이, 지상에서 8명이 사망하는 사고 발생) 1975-12-26 - 모스크바-알마티 정기노선에 취항(화물과 우편물 수송) 1977-11-01 - 모스크바-알마티 정기노선에 여객기로 취항 1978-06-01 - 추락사고 발생하여 여객기로 운항을 금지
- Victory of Israel Forces, June, 1967 1967년 6월 5일 이스라엘이 아랍에 대규모의 기습공격을 가함으로 제3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의 직접적인 발단은 이스라엘 건국기념일인 5월 14일부터 아랍연합공화국이 시나이반도로 기갑부대를 배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5월 22일에 아카바만이 봉쇄되자 이스라엘은 개전을 준비했고 6월 1일에는 거국일치내각을 구성, 다얀 국방장관 지휘하에 기습작전을 훈련했다. 6월 5일 오전9시 이스라엘 공군기는 아랍연합, 시리아, 요르단의 아랍3국 공군기지를 공격, 제공권을 장악했다. 뒤이어 공군의 지원을 받아 지상전투에서도 완전한 주도권을 장악했다. 6일간에 걸친 이 전쟁으로 아랍의 맹주 `아랍연합`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조선
- Gemini 4 Capsule and Space-Walking Astronaut, 1965.6.3
1966 - 미국 제미니9호 발사, 2시간 5분간 우주유영 성공 제미니 9호의 발사 목적은 두 시간 이상의 우주유영과 우주에서의 도킹이었다. 그러나 제미니 9호는 도킹을 위해서 1시간 39분전에 발사한 도킹용 소형 표적위성의 발사 보호덮개가 제대로 벗겨지지 않아 계획했던 도킹은 포기하고 랑데부만 세 차례 실시했다. 한편, 토머스 P.스태포드와 함께 탑승했던 서넌(Cernan)은 우주선 밖으로 나와 2시간 4분 동안 돌아다님으로써 인류사상 최장 시간의 우주산책을 기록하였고, 예정된 착수 지점에서 불과 3.2㎞떨어진 곳에 아주 정확히 돌아오는 등 많은 업적을 세웠다. 서넌이 우주 산책할 때 입었던 우주복은 14겹으로, 태양광선이 직접비치는 곳의 121℃와 그늘진 곳의 온도인 -65℃사이의 높은 온도 차이에 견딜 수 있도록 특수설계되었다. /www.kasi.re.kr /Google
호메이니(Khomeini, Ayatollah, 1900~1989)는 테헤란 남서쪽의 호메인에서 출생하였다. 학자인 아버지 모스타파는 그가 태어난 얼마 후 농업용수에 대한 시비에 말려들어 살해되었다. 그는 소년시절에 지방도시 이라크의 마드라사에 유학하여 압둘 카림 하에리에게 지도를 받았고, 1920년 스승이 콤(Qom)에 파이지자 학원을 창립하자 동행하였다. 1927년 이슬람어교 사원에서 철학을 강의하였고, 1930년대 후반에는 국왕 팔레비의 종교탄압에 저항하였다. 1941년 《비밀의 폭로 Kashif-i asr?r》를 저술하여 왕정을 부정하고 왕이 추진하는 이란의 서구화·세속화 정책에 반대하였다. 1950년대 후반 아야톨라(ayatollah)의 칭호를 받았고, 이슬람교 시아파(派)의 지도자 보루제르디가 죽은 후 샤리아트마다리, 밀라니와 나란히 시아파의 3거두가 되었다. 국왕 팔레비의 ‘백색혁명’에 반대하는 데모를 조직하였다가 1963년 체포되었다. 그후 터키로 망명, 1965년 이라크의 나자프로 옮겼다. 1971년 국외에서 페르세폴리스의 이란 건국 2500년 축제를 반대하는 데모를 사주하였고, 1978년 이라크에서 퇴거를 명령받자 파리 근교의 노프르르 샤토로 옮겨, 그 곳에서 이란혁명을 지도하였다. 1979년 2월 수도 테헤란에 귀환한 후 임시 혁명정부를 조직하였으며, 12월 신헌법을 공포하여 이란이슬람공화국을 성립시켰다. 그는 이맘(imamn:敎主)의 칭호를 받았으며 1989년까지 국가의 최고지도자(종교지도자로 실질상으로 국가를 대표)로 이란을 통치하였다. 저서에는 《법치국가》(1971) 등이 있다. /naver
1956 - 엘비스 프레슬리의 <하운드 독(Hound Dog)> TV 방영 1956년 초여름 어느 날, 소년 검프는 읍내에 나갔다가 가게 진열창에 놓인 티비를 통해 낯익은 사람의 모습을 본다. “아이들이 볼 게 아니”라며 어머니가 그의 눈을 가렸지만, 티비 속의 젊은이가 자신을 흉내 내고 있다는 사실을 소년은 이미 알고 있다. 티비 속 청년의 이름은 엘비스 프레슬리로 밝혀진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1994)의 도입부 한 장면이다. 미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질료 삼은 이 영화에서 주인공 검프는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과 조우하는데, 그 첫 번째 대상이 바로 엘비스 프레슬리였다. 포레스트 검프는 물론 가상의 캐릭터다. 하지만 영화 속에 묘사된 그 저녁의 일화는 전미국을 경악하게 만든 실제 사건이었다. 정확히는 1956년 6월5일의 일이었고, 당대의 인기 프로그램 <밀튼 벌 쇼>의 방송 내용이었다. 4천만 명이 시청한 이 방송은 경련하듯 하반신을 흔들어대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습을 송출한 대가로 곧장 스캔들에 휘말렸다. <뉴욕 데일리 뉴스>의 저명한 매체비평가 벤 그로스는 엘비스가 “선정적이고 상스러우며, 동물적 쾌락으로 채색된 구경거리를 전시했다”고까지 썼다. 이후 프레슬리에게는 ‘엘비스 더 펠비스’(골반을 흔드는 엘비스)라는 낙인이 찍혔고, 더불어 그날 방송된 <하운드 독>은 역사상 가장 떠들썩하게 등장한 노래로 기록되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하운드 독>을 둘러싼 섹슈얼리티 논란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4주 후 방영된 <스티브 앨런 쇼>는 엘비스에게 점잖은 턱시도를 입혔고, 당대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 <에드 설리번 쇼>는 엘비스의 상반신만을 찍어 방송했다. 인기는 사되 논란은 피하자는 방송사의 고육책이었지만 기성세대의 반발과 비난은 끊이지 않았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로큰롤에 대한 반감의 표출이었고, 사회적으로는 성 모럴의 급변에 대한 불안감의 표현이었다. 그 기저에는 두 편의 킨제이 보고서-남성편(1948)과 여성편(1953)이 발간되고, <플레이보이>(1953) 등 성인잡지들이 창간되면서 성에 관한 프로테스탄트적 믿음을 뒤흔든 50년대의 사회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성의 권위는 로큰롤 특히, 스타로 부상한 엘비스 프레슬리를 통해 불온한 성의식이 확산될 것이라는 판단에 패닉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는 <하운드 독>을 음악으로 평가했다. <하운드 독>은 대중음악계 최고의 송라이팅 콤비들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제리 리버와 마이크 스톨러가 만든 노래다. 흑인 여성 블루스 가수 빅 마마 손튼이 발표하여 이미 1952년 리듬 앤 블루스 차트 상위권에 올랐던 이 곡은, 엘비스 프레슬리를 통해 불멸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1956년 7월13일 발표된 엘비스 버전의 <하운드 독>은 무려 11주 동안이나 팝 차트 정상을 지켰는데, 1992년 보이즈 투 멘의 <엔드 오브 더 로드>가 13주 연속 1위의 신기록을 수립하기 전까지, 무려 36년 동안이나 빌보드의 최장기록으로 남았던 것이다. <하운드 독>에 얽힌 스캔들은 이제 구시대의 해프닝으로 퇴색했다. 하지만 몰입상승이 초래하는 판단착오에 대한 우화로서의 가치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비평가 로버트 크리스트고의 표현처럼, “비범하게 평범한 청년” 엘비스 프레슬리가 남긴 유산 가운데 하나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세상을 바꾼 노래] 엘비스 프레슬리의 <하운드 독>(1956) /한겨레 2008-04-03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279803.html
마샬(Marshall, George C., 1880~1959) 미 국무장관이 1947년 6월 5일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유럽부흥계획(마샬 플랜)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2차대전으로 잿더미가 된 유럽경제를 재건, 민주주의 국가들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을 이루자는 것이 그 취지였다. 당시 소련의 도전에 직면한 미국은 전후의 빈곤과 실업, 사회적 혼란으로 유럽에서 공산주의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을 우려했다.
1932 - 현충사를 보수하고 다시 영정을 봉안
1910 - 미국의 소설가 오 헨리(Henry, O.) 사망
1900 - 헝가리 태생 영국의 물리학자 가보르(Gabor, Dennis) 출생
1898 - 에스파냐의 시인, 극작가 가르시아 로르카(Garcia Lorca, Federico) 출생
1885 - 프랑스의 정치가 망델(Mandel, Georges) 출생
1883 -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Keynes, John Maynard) 출생
1868 - 아일랜드의 노동조합 지도자 코널리(Connolly, James) 출생
1862 - 스웨덴의 안과의사 굴스트란드(Gullstrand, Alvar) 출생
1826 - 독일의 작곡가 베버(Weber, Carl Maria von) 사망
1783 - 몽골피에 형제, 최초의 열공기기구 실험비행 성공
1592 - 이순신, 제1차 당항포해전[唐項浦海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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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표로 본 오늘의 인물과 역사][우표로 본 오늘~]은 난우중 교사로 있는 화상이 2004년 4월 세계에서 유일하게 최초로 창안한 <우표를 이용한 매일역사연재물>입니다. 수집한 우표를 이용하여 오로지 취미와 교육적 목적으로 만들고 있지만, 자료의 충실을 기하느라 본의 아니게 저작권에 저촉되는 일이 생길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혹시 문제가 있으면 미리 알려주셔서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이 연재물은 목적 이외의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는 저작물임을 알려드립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