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4일 부르고스-요르니요스 델 까미노 (14일차 20.6km 총 306.6km)
300km가 넘어버렸다.
시간은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잘도 흘러가고 있었다.
부르고스에서 하루를 더 머물까 생각을 하다가 레온이라는 관광지에서 하루를 더 쉬는 걸로 결정하고 출발하기로 했다.
대신 가이드북에서 나오는 코스가 아닌 조금 여유있게 걷기로 했다.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돈도 시간도 여유가 있으니 앞으로 남은 거리를 고려하면 그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아침을 대충 챙겨먹고, 와이파이가 되던 광장 바르(bar)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언니와 보이스톡을 했다.
숙소에 와이파이가 없을 땐 와이파이를 찾아서 돌아다니고, 그렇게 연락이 되는 가족이나 친구와 통화를 하다보며
힘들지 않지만, 그냥 짠한 느낌이 든다. 그들에게 내 모습도 그런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열흘쯤 지나니 점점 피로가 쌓이는 것 같기도 했고, 유난히 더운 날씨 때문에 지쳤다.
(걷는 동안 가장 사진을 적게 찍은 날)
기간을 빠듯하게 잡은 사촌남매 L과 Y는 일정상 29km를 가야해서, 아쉽지만 이곳에서 헤어지기로 했다.
함께 걸어서 의지가 되고, 함께 계속 걷고 싶었지만, 오늘은 도저히 더 갈 수가 없어서 일단 시원한 맥주 한캔 마시면서
아쉬운 이별을 했다.
새로 생긴 meeting point라는 알베르게에서 편하게 쉬면서 컨디션 회복이 되길 원했다.
6월5일 요르니요스 델 까미노-이테로 데 라 베가 (14일차 30.8km 총 337.4km)
어제 두 남매를 보내고 K와 순례자 그리고 나는 요르니요스에서 쉬고 아침에 각자 출발하기로 했다.
요며칠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던 나는 여유있게 출발을 할 생각이었고, 어제 남매를 보내고 아쉬웠던 K는
일찍 출발을 했다. 다행히 같은 어플을 쓰는 순례자가 있어서 오늘 쉴 마을을 서로 정하고 출발했다.
(별명이 순례자인 휘)
그리고 왠지 기분 좋아지는 무지개
처음은 같이 가다가 걸음이 달라 그 이후엔 혼자 걸었다. 날씨가 별로 덥지 않고 비소식이 있어서 그런지 구름도 좀 있었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 오늘 쉴려고 했던 마을이 나와버렸다.
그 곳에서 멈추기엔 시간이 너무 여유로워서 점심을 먹고 좀 9km정도 더 가기로 했다.
그런데
끝없이 펼쳐지는 밀밭에 언덕-.-
이렇게 힘들 줄 모르고 챙기지도 않았던 물. 아무것도 없는 곳.
목마름과 체력적 한계
괜한 욕심이었나 싶은 맘이 들었다. 돌아갈 수 없기에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언덕을 올라 내려다 봐도 보이지 않는 마을
정말 시련이었다.-.,-
3시가 넘어 작은 수도원 같은 곳에 덩그러니 있었는데, 그 곳에서 물을 얻어 1리터를 마셨다.
10분쯤 쉬다가 다시 걸어 3시 30분쯤 이테로 데 라 베가에 도착했다.
일단 맥주 두 잔을 마시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마당에 앉아 일기를 쓰면서 팔을 봤는데 많이 탔다.
시계를 차고 긴팔을 입고 가렸는데도 안 타는 건 아니더라.
날씨가 점덤 더 더워지고 있다.
6/6~7 이테로 데 라 베가 -까리온 (15.16일차 32.8km 총 370.2km)
이틀을 쉬어갔다.
7시에 출발해서 24km정도를 예상하고 걸었다. 비가 오더라. 배낭커버를 하고 판쵸를 꺼내 입고 걸었다.
늦게 출발한 휘를 두고 오롯이 혼자 걸었다.
비가 오다 말다 흐린 날에 아무도 없는 도로 옆 까미노길
아무도 보이지 않는 길을 1시간정도 걸었더니 조금 두려웠다.
부활의 '사랑하고 있다'를 듣는데 이유없이 울컥했다.
누구나 올 수 있는 길이지만, 누구나 오지 않는 길
걸으면서도 믿기지 않던 그 길을
내가 지금 걷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생각보다 잘 걸었다. 출발 전에 휘랑 만나기로 한 마을을 12시 정도에 도착해버렸다.
여기서 그냥 멈추기는 아쉬워 조금 더 걸어가기로 했다. 다음 마을에 도착해서 와이파이가 되면 연락을 할 생각이었다.
그리곤 휘랑은 헤어졌다.
32.8km를 걸어 도착한 까리온
어플만 믿고 찾아간 숙소는 만원이었고, 지도를 보면 다른 숙소를 찾았다.
수녀님이 방을 안내하면 이방 저방 문을 여는데, 낯익은 가방이 눈이 들어왔다.
이틀 전에 헤어진 사촌남매 Y의 배낭이었다. 너무 반가워서 수녀님한테 내 친구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난 다른 방을 배정 받고, 그 방으로 가서 Y의 배낭에 쪽지를 써두웠다.
나중에 내려가서 빨래를 보니, 어제 먼저 갔던 K의 옷도 있었다.
난 분명 먼저 가서 못 만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진짜 반가웠다.
(나중에 들어보니 사촌남매 L과 Y가 마을입구에서 마을을 지나가는 K를 붙잡아서 이곳에서 묵기로 한 거라
내일은 페스티벌이 있다고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래서 걸을지 쉴지 고민이었다.
(물론 까리온 마을만의 축제는 아니지만, 다른 곳보다 좀 크게 했다.)
발렌시아 지방에서 이 까리온에 있는 성당에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라고 했다.
일부러 축제를 맞춰서 관광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축제를 볼 수 있는 게 기회인 것 같아서
내일 하루를 쉴까 생각했었다. 혹시나 아침에 축제를 한다면 보고 늦게 출발을 할까 생각하다가 그냥 쉬기로 했으니
푸욱~~쉬는 걸로 정하고 여유롭게 돌아다녔다.
다음날 (6/7일 , 16일째는 휴식)
6시쯤 잠이 깨어 나가니 밑그림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여유로운 스페인 같으니라고
쉴려고 했던 계획을 걷는 걸로 바꿔서 챙겨서 나갔더니~ 어라~사람들이 하나둘 나와서 꽃으로 장식을 하고 있었다.
옆에서 구경하다가 같이 해도 되냐고 하니, 그러란다.
장갑끼고 시키는대로 꽃을 바닥에 장식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마을주민들이 다 나와서 참여하는 모습이 새로웠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직접 하지는 못 하시고 다과나 커피를 챙겨와서 나둬주셨다.
아침부터 모두가 나와서 참여하는 축제란 게 참 이쁘다.
온 마을이 꽃길이다. 며칠 전부터 꽃을 사서 잎을 따서 냉장고에 보관해두고 너나 할 것 없이 나와서 만든 길
모두가 준비한 축제 그리고 모두가 즐기는 축제
그리고 산타마리아 알베르게에서 이어진 작은 음악회
각자 간단히 소개를 하고 여기 온 이유를 말하는데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등 아주 다양한 언어로 각자 이야기를 한다.
모든 것이 행복한 곳이었다. 나 여기 참 잘왔다^-^
그렇게 행복한 16일차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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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 까리온-테라디요스 (26.6km 총 396.8km)
저마다 어떤 의미로 이 길을 걸을까?
나처럼 가벼운 사람이 있고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오는 사람도 있겠지.
하루를 쉬고 다시 떠나는 길
하루를 쉬고 출발하는데 다리가 무겁다.
어제 산타마리아 알베르게에서 언니 한 명과 어르신 한 분을 만났는데, 각각 울산과 부산이다.
은근 지역적 공감대가 형성되서 오늘은 함께 출발하기로 했다.
부지런한 언니 덕에 일찍 시작하는 하루를 맞이했다.
7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에 떠나는 걸음, 나에겐 의미있는 시간이며 새로운 경험이었다.
한편으론 그 시각에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목적없이 시작했던 일이라도 과 정속에서 또는 결 과속에서 의미가 되어 오겠지.
정직하게 걷는 이 길처럼
노력하여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을 내 삶에도 적용하면 좋겠다.
6월 9일 (18일차, 테라디요스-엘 부르고 라레로 30.6km / 총 427.4km)
언니와 함께 걷기 시작하면서 나의 아침은 빠르게 시작되었다.
물론 같이 출발을 한다고 해서 계속 같이 걷는 건 아니지만, 아침 길을 조금 위험할 수도 있어서 되도록이며 출발만은 같이 했다.
어영부영 400km가 넘었다. 처음 100km가 넘었을 때가 엇그제 같은데 벌써 400km가 넘다니...
그리고 반이상 걸어왔다. 오늘은 23km정도 걷자고 하고 출발했는데, 발걸음이 가벼웠다.
점심 때쯤 이미 오늘 쉬어갈 곳에 도착해 버려서, 조금 더 가기로 했다.
1시가 넘어가는 시각부터는 항상 갈등이 될 만큼 덥다. 긴 휴식을 취하고 나머지 7.6km를 걷기로 했다.
우연한 만남 외엔 특별히 약속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엘 부르고 라레로의 첫번째 숙소에서 보자는 말을 하고 각자 걸었다.
오롯이 혼자 걷는 조금은 두려운 시간이었다.
라레로에 도착했는데, 우리가 묵기로 한 숙소가 다 찼다.
할 수 없이 나는 젤 윗쪽에 있는 숙소를 잡고, 와이파이로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언니는 이미 왔고, 두번째 숙소를 잡아뒀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각자 묵기로 하고 내일 다시 길어서 만나기로 했다.
언제나처럼 정원만! 좋은 숙소에서 한가하게 지낼까 했는데, 비가 왔다.
날씨가 심상치 않아서 걱정이다만은 시원한 맥주 한잔은 필수^^
6월 10일 (19일차 엘 부르고 라레로-푸엔타 비야렌테 25.5km / 총 452.9km)
비
천둥
번개
그리고 폭우
천둥번개까지 새벽 빗소리가 심상치가 않았다. 37km를 걸어서 레온까지 갈 생각을 했었는데 그건 무리일 것 같았다.
비가 온다고 부산아저씨는 걷지 않고 하루를 쉰다고 하셨다.
언니와 나는 일단 19km정도까지는 가자고 카톡으로 이야기를 했고, 각자 준비해서 출발하기로 했다.
비가 그치지는 않을 것 같아서 그냥 걷기 시작했다. 걷는 사람들이 하나둘 보였고, 서로를 격려했다.
이미 젖은 상태고 땀이 안나서 그런지 생각보다 잘 걸어졌다.
19km만 가고 쉬기로 했는데 오전에 도착해 버렸다. 어쩔 수 없이 내일 레온에 좀 더 편하게 가기 위해서 다음 마을까지 걸었다.
등산화가 젖어서 그냥 물 위를 걷는 느낌이 들었다.
멀리서 사토카가 걸어오고 있었다. 항상 같이 걷지는 않았지만 출발부터 눈인사를 주고 받았던 일본여성이다.
작고 외소한 체구에 언제나 친절해서 외국애들한테 인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혼자 걷는 사토카를 보고, 언니가 오늘은 함께 걷자고 했다. 비도 너무 많이 오고 걷는 사람도 없었다.
서로를 시야에 두고 걷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25km를 걸어 우리는 푸엔타 비야렌테에 도착했다.
내일까지 마르지 않을 등산화를 걱정하면서 하루를 마쳤다.
6/11일 (20일차, 푸엔타 비야렌테-레온 11.8km /총 464.7km)
비로 인해서 하 루만에 갈 곳을 이틀에 나눠서 걸었던 곳이다.
오늘은 레온에 간다. 이 길을 걸으면서 산티아고 다음으로 큰 도시이고 레온 대성당등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
시작할 때부터 기대를 했던 곳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틀정도 쉬어간다.
나도 레온에서 이틀을 머물고 있던 K군을 다시 만났다.
(순례 2일차 론세스바예스에서 만나서 생장까지 거의 같이 갔으니, 가장 오래 같이 걸은 녀석이 된다.)
레온 대성당
씨에스타가 지나고 8유로 입장료(순례자 5유로)를 주고 안을 들어갔는데, 정말 멋있었다.
그리고 레온은 대성당뿐만이 아니라 구시가지 자체가 볼거리였다.
가우디 초기 건축물도 있고 활기 차고 기분 좋은 곳이었다.
관광객 모드로 여유있게 다니는 것도 좋다.
길거리에서 간식을 먹으면서 맛있는 식당을 검색하며 여유로운 오후를 보냈다.
그리고 저녁엔 중국식당에서 세트메뉴로 배터지게 먹고, 밤늦게까지 돌아다녔다.
오전 일찍 도착해서, 하루를 더 머물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내일 걷기로 했다.
6/12 (21일차 레온-호스피탈 데 오르비고 33.7km / 총 498.4km)
신선한 날씨가 이어졌다. 어제 레온에서 오늘은 26km를 걷고 밥을 해먹자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렇게 알고 출발했는데 날씨가 선선해서 그런지 걸음이 가벼웠다.
나랑 언니랑 K는 중간에 만날 수 있어서 나머지를 함께 걸을 수 있었는데, 부산아저씨는 다른 코스를 움직이셨다.
(그 아저씨가 저녁을 사주셔서 이번엔 우리가 밥을 해드리기로 했었는데, 결국 그러지 못했다)
가이드 북에서 정해진 코스가 아니라 조금 길게 움직였더니 알베르게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다.
마을을 들어서는데 이 마을이 이쁘다. 맘에 들었다.
입간판으로 광고가 되어 있는 와이파이가 되는 '산미구엘 알베르게'에 들어갔다.
아~알베르게 안에 그림액자들이 많아서 물어 보니, 다 순례자들이 그린 것이라고 했다.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준비해 둔 주인의 섬세함이 돋보였다.
참 평화롭다. 이 곳이
그리고 처음으로 쌀밥을 해먹었다. 스페인은 빠에야라는 볶음밥을 먹기 때문에 쌀이 많다.
그리고 우리나라쌀이랑 똑같은 쌀도 500g에 1유로정도로 저렴했는데 귀찮아서 해먹지 않았었다.
나랑 언니가 마트에 간 사이에 캠핑 좀 해 봤다는 K군이 냄비밥을 하기로 했다.
마트 다녀와서 냄비 뚜껑 열어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진짜 밥을 잘했더라.
얼른 사온 야채랑 햄으로 소세지야채볶음을 해서 저녁을 먹었는데 진짜 맛있었다.
이 숙소 정말 좋다.
첫댓글 여긴 밀받에 양귀비 인가요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