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 바다를 따라 흥얼거리며 걷는 거문도뱃노래길 알아보기

[전상수]

백도에서 돌아와 거문도 밤길을 걷다

백도의 환상적인 풍경을 보고 난 뒤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거문도에 돌아왔다. 이미 거문도에 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뒤라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 뒤 다음 날 아침 10:30에 출발하는 배를 타고 여수로 가기로 했다. 밤에는 거문도를 산책하고 내일 아침에는 거문도 등대에 잠깐 다녀오면 거문도 여행이 끝나는 것이다.

밤 산책을 하기 전에 우선 저녁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대한민국의 섬이 다 그렇지만 거문도 또한 식당 대부분이 회를 비롯한 바다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회 가격이 육지보다 쌀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격은 큰 차이가 없지만 싱싱한 회를 먹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이왕 거문도에 온 거 거문도에서 잡은 물고기를 먹지 않을 수 없어 고도에 있는 '강동횟집'으로 갔다. 거문도의 깨끗한 바다에서 잡은 활어는 육지의 물고기보다 살이 부드럽고 맛이 좋았다. 회를 다 먹고 난 뒤 나온 매운탕을 끝으로 맛있는 저녁 식사를 마쳤다.

​조용하게 밤길을 산책할 수 있을 거란 우리 예상과 달리 거문도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과 노랫소리로 시끄러웠다. 술에 취한 주민들이 즐겁게 노래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별다른 낙이 없을 거라 생각하니 야밤 중에 내는 소음 또한 거문도에서 느낀 즐거운 경험이라 생각되었다.

​시끄러운 고도를 피해 삼호교를 건너 조용한 서도로 왔다.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거문도에서 가장 큰 서도지만 중심지는 가장 작은 고도라는 것이 신기했다. 서도의 마을은 고도와 동도를 마주 보는 동쪽에 형성되어 있는데, 이는 두 섬이 자연적인 방파제 역할을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도의 덕촌리 또한 거문도에선 꽤 큰 마을로 보이지만, 상업시설이 없는 탓에 고도의 거문리보다 훨씬 조용하다. 잔잔한 남해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맥주를 마시고 걷고 있으니 속세에서 벗어난 듯한 기분이 든다. 분명히 이곳 사람들도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을 텐데 여행객의 마음은 이렇게나 다른가보다.

국립공원 이야기 79 - 영국군 2년 만에 거문도에서 철수하다

국제 관계가 어렵게 전개되자 영국은 조선과 직접 교섭을 벌이기로 결정하고, 서울의 영국 총영사 애스턴(Aston, W. G.)에게 ‘거문도를 영국의 급탄지로서 임차 교섭을 하되 금액은 1년에 5,000파운드 이내로 할 것’을 훈령하였다.

5월 7일 애스턴은 김윤식(金允植)을 비롯한 통리아문(統理衙門) 관원들과 회담하였다. 그러나 당시에 한·러밀약이 탄로 되어 통리아문이 곤란한 처지에 빠져 있었으므로, 영국과의 협상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결국 애스턴은 임차 교섭 안을 거론도 못하고 포기하였다.

러시아 대표 스페이에르(de Speyer, A.)는 한·러밀약이 통리아문에 의해 거부당하자, 영국의 거문도 점령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면서 러시아도 제주도 등 조선의 영토를 점령하겠다고 위협하였다.

따라서 통리아문으로서는 영국의 거문도 점령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이 불가피했다. 이홍장 또한 거문도사건이 국제 문제로 커질 조짐을 보이자 조선 정부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목적에서 적극적으로 사건의 중재에 나섰다.

한편, 영국의 거문도 점령에 대한 비난이 고조되던, 4월 말부터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대한 영·러의 협상이 개시되어 영·러간의 긴장이 크게 완화되었다. 더욱이 8월 2일에는 아프가니스탄 협정이 조인되어 영국의 거문도 점령의 명분이 없어졌다.

영국 해군도 거문도에 대한 군사적인 평가를 실시, 거문도가 군항 내지 급탄소로서 적당하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외무성의 정치적 타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변화에 따라 영국 외상 로즈베리(Rosebery)는 1886년 3월 청나라가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거문도를 점령하지 못하도록 하는 보장만 해주면 거문도에서 철수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여기에 희망을 얻은 이홍장은 같은 해 8월 28일과 9월 2일에 주청 러시아 공사 라디젠스키(Ladygensky)와 회담을 하였다. 회담 결과, 영국이 거문도에서 철수한다면 러시아는 조선 영토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3개 조의 약속을 러시아로부터 받아 냈다.

청나라는 10월 5일부로 영국 공사관에 러시아 측의 보증을 전달하고 영국의 거문도에서의 철수를 촉구하였다. 영국은 청나라를 중재자로 하여 몇 차례 교섭을 벌인 뒤, 10월 29일에 철수 의사를 청나라에 통고하였으나, 조선 정부에는 11월 28일에야 통고하였다.

이에 따라 영국군이 거문도에서 완전히 철수한 것은 1887년 2월 5일이었으며, 2월 7일에 철수 소식을 접한 조선 정부는 경략사(經略使) 이원회(李元會)를 거문도에 파견하여 철수 사실을 확인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거문도사건(巨文島事件))]

거문도 뱃노래길과 거문도 등대길

다음 날 아침 새벽 일찍 일어나 삼호교를 지나 서도로 왔다. 여름이라 해가 일찍 떴기 때문에 여수로 향하는 배를 타기 전 4시간 30분 정도가 남아있었기에 서도의 트레킹 코스를 즐기기엔 충분한 시간으로 보였다. 전 날 같이 온 동생과 함께 거문도 등대길을 걷기로 했지만 나는 혼자 일찍 일어나 거문도 뱃노래길을 걷기로 했다. 동생은 늦잠을 자고 배 시간에 맞춰 일어나면 되었고, 나는 거문도에서 보내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거문도로 갔을 때는 덕촌리에서 불탄봉으로 올라 유림해수욕장으로 내려왔지만, 이번엔 덕촌리에서 음달산이 있는 북쪽으로 향했다. 거문도 뱃노래길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찾아보기 힘들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녹산등대까지 다녀오는 데 2시간이면 충분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남해 바다를 보며 천천히 걸었다.

​거문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크리스털처럼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대한민국의 바다 또한 동남아시아나 유럽의 바다와 비견될 정도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이나 동남아의 바다의 모래사장에 누워 시간을 보낼 때 항상 한국의 바다에서 똑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만큼 한국의 바다도 충분히 아름다우며 바다만 놓고 보면 굳이 해외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국내여행이 비용 면에서 해외여행이랑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라고나 할까.

​음달산을 지날 때쯤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형, 거문도 등대 가기로 했는데 지금 어디예요?"

평소에 10시쯤 일어나는 동생이라 아직도 곤하게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 여행 오니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앗, 너 늦잠 자고 있을 거 같아 나 먼저 트레킹 시작해서 지금 서도에 와 있거든. 너 거문도 등대로 가고 있으면 나도 빨리 갈게!"

이때부터 도저히 ​느긋하게 걸을 수 없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음달산을 지나 용냉이라는 곳에 들릴 수 있다는 표지판이 나오자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왼쪽으로 길을 돌렸다. 용냉이는 거문도 뱃노래길을 걸으면 볼 수 있는 절경으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을 품고 있는 둘레 8m, 길이 6m의 바위 한가운데 있는 조그마한 연못이다. 용냉이 주변으로 이름 모를 주황색 꽃이 만발해 있어 마치 식물원에 있을 법한 연못을 만난 듯한 느낌이다. 거문도 같이 험난한 섬, 그것도 바다와 맞닿은 바위에서 연못을 볼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열심히 걸어 다음으로 만난 곳은 서도 해변, 즉 이금포 해변이다. 사람들이 거문도로 가는 길에 만나는 유림 해변이 접근성이 더 좋지만 거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은 이금포 해변이다. 몽돌로 이루어진 해변은 폭이 좁아 수영을 하기엔 적절하지 않아 보이지만 바라보는 풍경은 남해 어떤 해변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정도다. 뱃노래길을 걷지 않고 서도리까지 차를 타고 이동한 후 녹산등대로 가는 사람들도 볼 수 있는 해변이라 녹산등대와 함께 반드시 봐야 할 풍경으로 꼽힌다.

​이금포 해변에 도착하니 시계는 어느덧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 택시를 불러 거문도 등대 입구인 유림 해변으로 가더라도 여수로 향하는 여객선이 출발하는 10시 반까지 시간을 맞추는 건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우리는 서로 갈 수 있는 곳에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은 후 각자 찍은 사진을 교환하기로 했다. 마치 해외여행을 함께 떠난 친구들이 가고 싶은 곳이 달라 낮 시간을 따로 보낸 뒤 저녁에 만나 식사를 함께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사진으로 본 거문도 등대 또한 거문도가 자랑하는 절경이라고 할 만했다. 남해안 최초의 등대로 1905년 4월 12일에 세워진 후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남해를 밝혀 온 거문도 등대는 아직도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유인 등대로 역할하고 있다. 높이 6.4m의 하얀 등대는 15초 간격으로 불빛을 밝히며 약 42㎞ 거리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불빛이 밝다고 한다. 2006년에 새로운 등탑이 신축되면서 기존 등대는 등탑 외벽과 중추식 회전장치 등을 보수하여 해양유물로 보존하고 있다.

​거문도 등대에 내 발길이 닿지는 않았지만 다시 거문도로 갈 일은 아마 없을 듯하다. 배 타고 2시간 20분이나 걸려 도착할 수 있는 거문도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이미 두 번이나 간 터라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기 때문이다. 거문도에 가는 대신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에서 덜 유명한 진도의 조도 군도나 신안군의 비금도나 도초도의 해변을 돌아보는 것이 다음 목표다.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은 '다도해'라는 이름답게 갈 곳이 무궁무진한 국립공원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