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의 꿈, 카페 운영의 시작과 끝
사무실 겸 카페는 나의 로망이었다. 8평짜리 원룸에서
사무실을 구할 수 있는 보증금이 모이자마자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 '카페 셜록' 이었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70만원,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에
꽤 괜찮은 18평짜리 1층 부지를 권리금 없이 사무실로
쓰게 되면서부터 카페 운영의 꿈이 스멀스멀 올라왔었다.
15평짜리도 월세 100만원이 넘는 강남 / 홍대 사무실을
생각하면 그곳은 무척 저렴한 조건의 1층 사무실
이었다. 그리고 인테리어도 어딜 가든 어차피 할 거였다.
월세 80만원... 이곳을 카페로 운영해도 월세 50만원은
충분히 충당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이곳에서 나는 별로
고민 없이 카페를 시작했었다. 나는 카페 인테리어를
거의 다 셀프로 했는데... 실구입비에 핵심 인부들까지
2,00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인테리어를 했다. 페인트칠,
사포질, 재료 구입 등등 거의 모두 셀프로 했었다. 그런데
당장 나가는 인건비는 아꼈지만 병원비는 오히려 늘었다.
인테리어 비용은 인건비와 다름 없었다. 내가 인테리어를
하면서 포기한 워킹 타임, 나의 개인적 수고비, 무료로
제공된 남편의 인건비, 친한 동생들의 인건비 등을 생각
하면 시중에서 거론되는 인테리어비를 상회하는 수준
이었다. (그냥 처음부터 맡길걸... ㅠㅠ) 작년 이맘 때
셀프 인테리어가 한참 이슈 였는데, 내가 직접 카페
인테리어를 해 봄 으로써 다시는 셀프 인테리어를 꿈꾸지
않기로 했으며, 대신 전문가에게 적당한(적절한) 비용을
지불하고 다 맡기는 게 시간도, 돈도, 체력도 모두 아끼는
지름길임을 깨달았다.
- 업의 본질을 생각하다.-
1. 커피의 세계
커피를 배웠고, 커피가 맛, 향, 압력의 조화가 이뤄낸
하나의 예술임을 알았다. 그런데 만성 비염 때문에 향을
못 맡고 요리에도 잼병인 나는 커피를 잘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개코에 후각이 예민한 ○○가 커피를
대신 내리게 됐다.
내가 카페를 차린 건, 커피가 고부가 가치의 물장사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그런데 인테리어비에다가
인건비까지 다 계산해 보면 하루에 100잔 이상 팔리는
곳이 아니면 본전도 못 건지는 장사가 커피장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판매가가 최저임금보다
평균 2.5배 정도 낮기 때문에, 한 시간에 최소 3잔은
팔아야 본전 이라는 얘기다. 커피는 마진율이 높아도,
판매 가격이 높지 않다면 박리다매 상품과 다를 바가
없다.
커피를 싸게 많이 팔 것이냐, 비싸고 여유 있게
팔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사장의 몫이다. (나는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 주거지역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1잔을 2,500원에 팔았는데... 가격을
그렇게 정한 이유가 그 당시의 주목표는 월세
회수에 있었고, 부담없이 정한 그 가격으로
주목표는 달성 되었지만, 전체 수익적인 측면에선
큰 실패였던 것 같다.)
2. 가게의 본질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시면서, 일을 하는 '디지털
노마드'야말로 내가 꿈꾸던 삶이었다. 그러나
그 꿈이 박살나는 데에는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시는 일은 카페 업무 중 지극히
적은 일부에 불과했고, 주된 업무는 설거지, 쓸고
닦기, 청소하기, 광내기, 재고 체크하기, 손님 응대
하기 등의 '서비스'가 대부분이였다. 이 과정에서
나는 세상의 모든 요식업 사장님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가게 운영에 있어서 오픈시간과 마감시간은
늘 일정해야 한다. 그래야 꾸준히 찾아오는 손님과
했던 '무언의 약속'을 지킬 수 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가게 운영에 있어서 기본 중의 기본일 뿐만
아니라, 핵심 중의 핵심이다. 그런데 나는 '카페
사장'이라는 감투를 쓴 체, 내 개인 사무실을 운영
하는 식으로 카페 운영을 하였기에, 오픈시간도
내맘대로였고, 마감시간도 내 마음대로 였다.
특히 해외 여행이나 제주도 출장이 많은 시즌에는
아예 일주일간 카페 문을 닫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카페가 딱히 유명한 맛집도 아닌데 사장 마음대로
들쭉날쭉 운영하게 되면 이곳을 방문했던 단골
손님들이 사라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돌이켜
생각해 볼 때, 내가 원할 때 문 열고...가끔 친구들이
찾아오고, 때로는 문 닫고 파티도 하는 그런 개인적
취향의 공간으로서는 성공했지만, 동네 카페의
본질적 기능은 갖추지 못했고 가게 운영에 있어서도
실패했음을 인정한다.
3. 맛 그리고 지구력
꾸준한 맛과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가게의 본질이다.
맛집이 맛집인 이유는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맛'을 몇 년 째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그렇게 대단한 것인 줄 카페
가게를 직접 운영하면서 알게 되었다. 커피 원두도 살아
있어서 그 상태가 매일 다르고, 공기나 날씨와 같은 환경도
매일 달라지기에 커피의 맛이 달라질 수 있다. 본업인 광고
홍보업의 경우 나와 남편이 노동력에 대한 퀄리티, 아이디어에
대한 수준 등에 대해선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감도
있었지만, 똑같은 맛을 꾸준히 내는 것 자체가 내겐 챌린지
였다.
카페를 운영하는 동안 나는 카페인에 매일 절어 있었다.
카페에서의 첫 업무가 '오늘의 커피 맛'을 정하기 위해
분쇄도를 맞추는 것이었고, 그러려면 커피를 3~4잔 마셔야
일정 수준의 맛을 낼 수 있었다. 나는 커피를 잘못 내려서,
아침마다 5잔 이상의 커피를 매일 마시다보니 어느 순간
만성 두통과 오한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래서 쉬는 날에는
웬만하면 커피를 마시지 않게 되었다.
언젠가 나는 신길동 '매운 짬뽕' 사장님께 "이 매운
짬뽕이 내 입맛에 너무 매워서 못 먹을 정도인데
사장님께서는 이걸 맨날 드시냐" 고 화를 낸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사장님이 "나는 진라면도 순한 맛만
먹어~." 라고 대답하셨고, 나는 그때 그 대답이 농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한 달 만에 커피에 질려버린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그 사장님의 진심이 새삼
떠올랐다.
4. 원래 했던 본업에 대한 환기
사실 카페를 운영하면서, 잘 되면 원래 했던 광고
홍보업을 때려치우고 자유롭게 살겠다는 비겁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첫 달에는 하루에 50잔 넘게
팔리면서, 진짜 대박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꿈은
금세 박살났다. 그때 운영했던 카페 매장에서 팔았던
'아메리카노' 1잔의 가격은 2,500원이었고, 이것을
50잔이나 팔아야 125,000원 정도 벌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원래했던 광고홍보 관련 일의 경우
6개월에 3억 원의 매출 수익을 낸 적도 있었다. 내가
카페를 운영해 봄으로써 오히려 광고 홍보업이 내게
천직이였음을 알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지금은
매일매일 원래했던 광고 홍보 일로 수익 기록을 경신
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이런 얘기를 굳이 쓰는
이유가 내가 했던 카페가 망했다는 이유로 내가 남으
로부터 동정받기 싫어서이니 제발 나를 동정하지
마시라 ㅋㅋㅋ!!! ) 요식업은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
하고, 정성을 다해야 하고, 많은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는 업종으로 무엇보다도 지구력이 많이 필요한데,
나는 그런 지구력보다는 순발력이 필요한 업종에
더 맞는 사람이라는 걸 '카페'를 직접 운영하면서
알았다. 그리고 권태기에 빠져 있었던 광고홍보업을
오히려 더욱 더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카페를
운영할 때에도 머그잔을 만들거나, 조명이나 인테리어
관련 일, 카페를 꾸미고 홍보하는 일 등에 더욱 더 집중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 일로 내가 천상 '광고인'
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5. 서비스 업종에 대한 기본적인 마인드
생각보다 나는 친절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다. 카페는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매번 친절해야만 하는데, 모든
사람들에게 오히려 부담으로 돌아온다 걸 깨달았을 때
나 스스로 충격을 받았다. ( 사실 나는 타인에게 너무
친절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인 것 같다. )
- 시작하는 건 쉬워도 끝내는 건 더 어렵다. -
1년만에 카페를 완전히 접기로 한 건 온전히 '책임감'
때문이었다. 사실 지금도 '오토(주인은 개입하지 않고
아르바이트생 위주로 운영하는 것)'로 하면, 카페를 운영
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지만 내 성격상 그렇게 운영하는
것을 허락 할 수 없었다. '영혼 없는 커피를 팔면서까지
해야 하나?' 라는 근본적인 고민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나는 '사무실 겸 카페'가 내 사업의 동기 였는데
'카페'만이 메인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부터 생긴 고민
이었다. 그러나 그 고민은 사무실을 따로 구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주객전도를 바로잡기 위해 부동산에 내가 운영
했던 카페부터 먼저 내놓았다. 소위 인테리어 비용인
시설비와 가게(=카페 건물) 권리금도 붙이지 않은 체,
부동산에 내놓은 터라 바로 나갈 줄 알았는데...경기가
안 좋아서인지 쉽게 나가지는 않았다.(이제부터 보증금이
까이는 시기인가?ㅠㅠ)
해보지 않았을 땐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오히려 지금와서
더 큰 고민이 됐다. 나영석 PD의 '윤식당'이 매력적인
이유는 ' 그 식당이 현실이 아니라 잠깐 재미로 운영하는
식당'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내가 운영했던 그 카페는 나가지 않고 있다.
이번 달부터 본격적으로 카페의 문을 닫을 예정이다.
나는 이제 카페 운영의 완전한 실패를 선언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사무실 겸 카페'를 생각한다면
나를 먼저 떠올리기 바란다.(끝내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 ㅠㅠ) 그래도 해봐서 후회는 없다. 돌이켜보니
그 모든 시간들이 낭만적인 시간들이었다. 회사 대표
타이틀보다 '카페 사장'이라는 감투를 더 좋아했던
우리 엄마, 카페 운영 한다니깐 이것저것 사들고 왔던
친구들, 카페 올 때마다 무급 알바로 일해줬던 언니들과
동생들, 카페를 통해 미팅했던 손님들, 작은 공간인데도
좋아해줬던 클라이언트...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아주
좋은 추억으로 평생 간직하며 살겠다.
'카페 셜록', 이제 안녕 !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 도신로 53길 15, 1층 : 권리금
따로 없고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80만 원.
- 관심있는 분의 연락을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