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1914년 옥림정사에서 송포 정노수 선생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16년 해남 윤복하 여사와 혼인하였다. 1918년 잠계 백형기 선생 문하에서 수학였다. 이후 효당 김문옥, 고당 김규태, 일청 김형재 등 여러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보인계(輔仁契)를 창설하고 호남유학을 진작시켰다. 1950년 오덕 생가터를 환수하였다. 1964년에는 장흥향교 전교에 선출되었으며, 존재공(伯珪)을 곡성군 옥과면 영귀서원에 추배하였다. 1969년에 성균관 고문에 추대되었다. 1972년 장흥위씨 대동보 임자보를 간행 시 도유사를 맡아 주간하였다. 1974년 파조 청계공(德毅)을 광주시 황산사에 추배 등 많은 위선사에 앞장섰다.
자(子)는 계효(1917~2000), 계상(1921~1984), 계당(1923~ 1986), 계도(1926~1999), 계윤(1931년생), 계민(1938년생), 계평(1942년생)이다.
손자(孫子)는 경량(1937년생), 무량(1939년생), 소량(1957년생), 직량(1960년생)은 계효 출(出)이다.
권량(1947년생), 도량(1955년생), 하량(1961년생)은 계상 출(出)이다.
창량(1954년생), 지량(1957년생), 득량(1963년생)은 계당 출(出)이다.
만철(1964년생), 승철(1968년생), 홍철(1973년생)은 계도 출(出)이다.
운량(1957년생), 방량(1959~ 1984), 청량(1960년생). 금량(1963년생), 종량(1966년생)은 계윤 출(出)이다.
원철(1964년생), 현철(1966년생), 수철(1986년생)은 계민 출(出)이다.
준철(1968년생), 형건(1972년생)은 계평 출(出)이다. 이하의 후손은 생략한다.
비문을 찬(撰)한 월성人 최창규(1937년생)는 면암 최익현 선생의 현손이다. 11, 12대 국회의원과 성균관장을 역임하였다.
전면 서(書)를 한 서흥人 김창동(1947년생)은 고당 김규태 선생의 자(子)로 서예가 뛰어나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후면 서(書)를 한 영일人 정연태(1951년생) 호(號)는 인재(仁齋)요, 만취(晩翠) 위계도 선생의 문하생이다. 현재 광주시 비하에서 인재당 한약방을 운영하고 있다. 근수(謹竪)는 청계공파 의재종중 상호계(相好契)이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휼륭하신 위문중 조상님의 옛발자치와 역사공부를 하고 갑니다.
자손도 휼륭하신분들이 많은 집안이네요.
부럽습니다.
의재공을 자세히 소개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유학자로서 그 기개가 당당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