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관한 시모음 34)
칠월의 또 하루 /황인숙
싸악, 싸악, 싸악, 싹싹싹
자루 긴 빗자루로
자동차 밑 한 웅큼 고양이밥을
하수구에 쓸어버린다
"내가 밥 주지 말라꼬 벌써 멫 번이나 말했나?"
동네 부녀회장이라는 이의 서슬이
땡볕 아래 퍼렇다
나는 그저 진땀 된땀 식은땀을 쏟을 뿐
찍소리 못 하고 선 내게
그이는 빗자루를 땅바닥에 탈탈 털며
눅인 목소리로 말한다
"누구는 고양이 멕인다고 일부러 사다 놓는 밥을
이리 내삐리는 마음은 좋은 줄 아나?
사람 좀 그만 괴롭혀라, 사람이 먼저 살고 봐야지!"
새끼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어미고양이
멀리도 달아나지 않고
옆 자동차 밑에서 숨죽이고 있다
내가 어떻게든 해줄 것을 믿는 듯
흠뻑 젖은 셔츠 아래서
위가 뜨끔거린다
당신은 내게 제정신이 아니라지만
당신도 좀 그렇다
칠월-고운사 풍경 소리 /나호열
청포도 같은 싱그러움으로 익어 가야 할, 물들어 가야 할
입 안에 붉은 앵두 몇 알 터질 듯
오물거리는 그 말
사분음표로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같은
그 말
마악 알에서 깨어난 휘파람새가
처음 배운 그 말
하늘을 푸른 출렁거림으로 물들이는 그 말
7월이 오면 /박의용
7월이 오면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진다
그동안 걸어온 길에 대한 회한(悔恨)이
다시금 나를 재촉한다
항상 지나간 것에는
미련과 후회가 남지만
세월에 대하여는 더욱 그렇게 다가온다
7월이 오면
벌써 한 해가 반이나 지났다는 조급함이
다시금 나를 재촉한다
해마다 오는 7월이지만
해가 갈수록 세월의 흐름에 조급해짐을 느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자위를 하며 살아가지만
그래도 문득문득 다가오는 불안한 조급감
‘내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을 노래했던
이육사가 제일 먼저 떠올라
읇조리게 되는 7월이 오면
다 받아들이고 덤덤하게 살아가야지
세월이 가면
청포도도 익고
우리네 인생도 익어가는 것을
칠월의 들녘 /이원문
저 파란 들녘이 하얗었으니 얼마나 추웠을까
하루가 다른 들녘 뜸북새 울음에 처량하다
때 되면 저렇게 왔다 가는 것을
벼 포기에 숨은 논 병아리는 울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뜸북새 울음만이 그 무엇이 그리웠나
칠월의 뜨거운 날 비 오는 날이면 그리 더 울어 대는지
이 칠월도 잠깐인 것을 아쉬워서 그러나
짧은 날에 짧은 칠월 저 뜸북새만이 짧을까
초복 중복 지난 다음 문간 바람 바뀌는 날
마지막에 말복이라 그 보름 지나면 찬 바람 일 것이니
그렇게 또 떠나야 할 여름인가
텃밭의 칠월 옥수수 익어간다
7월 서정(抒情) /白松 정연석
하지(夏至)가 지나면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 7월
7월은 한해의 절반을 넘어
연말로 향하는 출발선
지나간 반년 아쉽지만
남은 반년이 있으니 행복합니다
새로운 기대와 희망 7월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햇빛을 좋아하는 나뭇잎들은
초록색이 더욱 짙어지고
장마로 비가 내리면
시들었던 나뭇잎은 생기를 되찾습니다
옷차림이 가벼워지는 7월
지난 반년을 거울삼아
남은 반년을 가야하는 여정
희망과 설레임이 앞서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 서정(抒情) : 사물(事物)을 보고 자기(自己)가 느낀 감정(感情)을 나타내는 것
7월의 종교 /정와연
칠월, 콩밭에 무릎을 꿇고
어머닌 기도중이다
늙어 쭈그려 앉기 힘든 무릎
그 무릎을 꿇고 콩밭을 맨다
넓고 긴 고랑은 한여름 고난의 십자가
푸른 강대상 앞에 땀을 뚝뚝 흘리는 기도다
잡초를 매고 북을 돋우고 순을 자르며
온몸으로 흘리는 기도
밭고랑은 어머니의 종교다
무릎을 혹사당한 예배다
꿈속에서 종소리를 들었는지
새벽잠 깨워 나서는 어머니의 예배당
개척교회 목사님이 신방을 오시는지
무릎 꿇고 엎드려
하루 종일 청소중이다
뿌리혹박테리아와 어머니의 기도가 공생하는지
어머니의 기도를 빨아들이고
남은 기도를 저장한 뿌리혹주머니가 우툴두툴하다
칸칸이 맺힌 잘 여문 콩알들은
어머니 땀방울이고 무릎 닳은 기도의 응답이다
그래서 몇 년 묵은 장맛은
헌신한 무릎의 맛이 난다
고랑처럼 길고 긴 소실점의 맛이다
가을, 딱딱한 꼬투리를 벌리는 콩 포기들
어머니의 여름성경학교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객관적인 칠월 /송종규
가시연꽃이 다시 피면 청도로 오라고
당신이 말 했지요
복숭아를 감싸던 그날의 구름
호수는 늘 거기 있겠지만
벤치 또한 거기 그대로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긴 세월이 필요한 건 아니겠지요
그렇다고 누구에게나 긴 세월이 필요하지 않을 리야 있겠어요
하루 종일 블라인드에 끼어있는 햇빛의 손가락
지난 봄, 담장의 장미 곁을 지나면서 흐느껴 울었고
울음의 페이지 위로 훌쩍 한 시절이 지나 갔습니다
당신의 얼굴이 산산이 흩어지는 눈부신, 그 아래
아주 객관적으로 칠월이 오고 있습니다
칠월의 일곱 번째 밤-곡비(哭婢)를 자청하다 /김선우
그대 발끄는 기척, 밖에서 안으로 우거집니다
그대 어깨 위 수레 무거우니 함께 밀겠어요, 그대가 말했지요
그대를 먼저 보내놓고도 한참인 여름빛 칠월의 일곱 번째 밤 우련하니
오늘은 내가 곡비(哭婢)로 하늘머리 이고 서서 오작교를 내놓아라, 큰 곡을 부르나니
그대를 두 손으로 꼭 움키었다가 불에 덴 듯 손목을 베였습니다
손가락마다 꽃불 받쳐 들고 내 손목 아래 누운 그대의 침묵을 경청합니다
내 하루가 천날 같이 무거워 두 손에 움켜쥐고 있던 그대를 풀어드립니다
스스로 있는 그대여, 떠나가셔도 좋습니다
불두화 무심하니 서럽습니다 불두화 무심하니 참 좋습니다
개망초 칠월 /이향아
칠월 들판에는 개망초꽃 핀다
개살구와
개꿈과
개떡과
개판
'개'자로 시작하는 헛되고 헛된 것 중
'개'자로 시작되는 슬픈 야생의
풀꽃도 있습니다
'개망초'라는
복더위 하늘밑 아무데서나
버려진 빈 터 허드레 땅에
개망초꽃 여럿이서 피어나고 있다
나도 꽃, 나도 꽃
잊지말라고
한두 해, 영원살이 풀씨를 맺고 있다
개망초 지고 있는 들 끝에서는
지평선이 낮게낮게
흔들리고 있을거다
7월의 기도 /정심 김덕성
주님! 7월에는
뿌린 씨앗이 익어가게 하소서
알맞은 비와 태양열을 내려
과일마다 빨갛게 영글게 하소서
서로 사랑을 나누게 하소서
나눔으로 웃음이 피어나게 하시고
사랑으로 베풀며 하나 되어
화목으로 사는 이웃이게 하소서
번영하는 나라이게 하소서
유리 같은 햇살이 평화로 흘러
낮은 자세로 이해하며 양보하여
은혜로운 나라 되게 주소서
행복한 가정이게 하소서
부모 형제 사랑 가득하게 하시고
도란도란 정답게 대화 나누는
정겨운 우리 집이게 하소서
초록향기가 머무르게 하소서
우리의 삶이 알갱이처럼 다듬어
아름다운 시간으로 성숙되어
희망으로 축복받는 7월이게 하소서
7월은 어떤 달이면 좋을까? /藝香 도지현
순환하는 계절은
신록의 계절을 밀어내고
또 다른 계절을 데리고 온다
초록으로 장식했던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처럼’
신선하고 순수했던 6월이었는데
자연과 환경의 달인 7월엔
인간이 자연을 너무나 오염 시켜
기후 이상과 역병을 불러와
그동안 인간이 저지른 죄에 벌을 내려
아비규환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
그러하기에 자연을 보호하고
지구 환경을 깨끗이 함으로써
그동안 인간이 저질러온 죄를
조금이나마 속죄하고
미안해하라는 7월이 왔으면 좋겠다
7월 28일 /김희준
아니래 자기야 내 귀에 비가 살고 패랭이꽃과 구상나무가 자라는 게
산타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어 그런 여름에 리키아로 떠나는 건 아니래
아무렴 몸에 새긴 날짜와 패랭이꽃이 입체적이었다는 뜻이 아니라는 거지
그러므로 허리 아래 사슴 문신에 새긴 녹각 있잖아 스스로를 찔러버리기도 한다는 말은 거짓이래
밀가루를 반죽하던 단칸방이 물렁해졌어 모서리만 보이는 네가 버겁다는 건 같은 말일까
단지 6개월 먼저 떠나온 곳이 너라거나 사라진 도시라거나
알고 싶은 게 아니었어 서로의 발톱을 깎아주다가 창밖으로 우리를 버리는 게 당연하다는 거지,
털모자와 양말을 신은 건 모서리가 아파서라고 해석해도 좋겠어
뾰족한 말을 주고받다가 웃기도 했던가
그러니까 자기야 몸이 밀가루가 된다는 말, 퍼진 햇살을 잡아둔 단칸방에 많은 어제가 살고 있다는 말이 아닌 거지
패랭이꽃이 그려진 식탁은 수제비를 먹기에 알맞은 곳
수제비를 먹으며 자기를 기다리는 일에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말
어떤 말은 아니라고 할 때 이해되는 것이 있지 그럴 땐 달을 깎는 거야
창밖으로 서로를 던져버리는 거야
구상나무에 걸어둔 추상적인 부정문 말이야 샴쌍둥이의 생략은 얼마나 많은 걸 비워두고 있을까
어쨌거나 여름은 자기를 기다리는 일
아니래 자기야 트리에 무엇도 걸지 않는 게 좋겠어
7월, 넝쿨장미, 사랑 /김경미
녹색 나뭇잎들마다 마악 투우 끝낸 붉은 소들 여기저기 주저앉아 있다
햇빛은 어제보다 각진 은박지들 쏟고
검은 숨 기차처럼 들락이니
나팔꽃 피는 소읍에 가 어깨보다 낮은 담벽에 들리라
서해 저녁 하늘에 젖은 이마 영영 맡기리라
했는데,
불났다
너무 뜨거워
나도 내 가까이
못 간다
칠월의 기도 /이수인
오, 칠월이여!
남국의 여왕이여
당신의 타는 열정으로 떫은
과실마다 달큼하게 익혀서 살찌우소서
때론 여왕이여!
밤새워 호통 치며 번뜩이는 눈빛으로
잠든 인간의 양심을 깨우고
오염된 몸뚱이에 폭포수를 쏟으소서
가끔은 숨 막히는 훈풍을 주시어
게으른 오리 떼들 호수로 달리게 하시고
오만한 잡초는 땅에 납작 엎디게 하소서
오, 칠월의 여왕
정열의 신이시여!
어쩌다 산들바람 불러서
포플러이파리 하얀 손 흔들게 하소서
쓸쓸한 기찻길 은사시나무
은빛고운 미소로 웃게 하소서
수평선에 노을이 안길 때
별들을 불러 모아 노래하게 하소서
백사장에 밀려오는 푸른 파도에
상처는 씻어내고 추억은 쌓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