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한 사람을 위한 옷 에드워드 레이드 때와 장소에 맞춰서 옷을 입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이다. 만일 내가 수상스키를 타러 간다면, 나는 수영복에 구명조끼를 입을 것이다. 하지만 수영복 차림으로 스키를 타러 간다면 굉장히 우스꽝스러울 것이다. 어떤 사람이 편안한 반바지에 화려한 티셔츠를 입고 하얀 양말과 운동화를 신고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이 산보나 조깅을 하러 간다고 생각할 것이다. 주일 아침 길을 나서는데 저만치서 옷을 잘 차려입고 성경을 들고 오는 한 가족을 본다면, 그 사람들은 아마도 교회에 가는 그리스도인들일 것이다. 우리가 입는 옷들과 우리의 태도는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천사들과 함께 살기 위해 하늘을 향하여 가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있을까? 만일 어떤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서 살기 위해서 진지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 - 결혼 예복 - 을 입고 있을 것이다. 비록 그 하얀 예복의 천이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의 삶과 말과 행동과 태도, 그리고 말씨와 표정은 그가 의의 세마포(예복)를 입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의의 두루마기 성경에는 구원받은 사람들과 영원한 왕국에 들어갈 사람들이 반드시 입어야 할 옷(예복)에 대한 언급이 여러 번 나온다. 이 의의 두루마기는 결혼 예복과 동일한 것이다. 이 기사에서 우리는 의의 예복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입을 수 있는지 배울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만든 의복들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창조시에 주셨던 빛의 옷 대신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지만, 그것은 “더러운 옷”에 불과하였다. 성경은 인간 스스로가 만드는 의의 옷을 “더러운 옷”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사 64:6.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들어서 주시는 옷은 하늘의 베틀에서 짜여진 비싸고, 흠없는 옷이다. 그 옷은 진심으로 회개하고 믿는 죄인들에게만 주어진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러한 옷을 받는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사61:10. 탕자가 제정신이 들어 집으로 돌아올 때 아버지는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히”(눅15:22)라고 명하였다. 나는 어떤 서적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보증인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에게로 나오는 모든 사람을 넉넉히 구원할 수 있으시다. 과거의 경험이 어떠하든지, 그리고 현재의 환경이 아무리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연약하고 속절없고 낙담한 지금의 상태 그대로 예수께 나가면, 우리의 자비하신 구주께서는 멀리서부터 우리를 맞아 당신의 사랑의 팔과 의의 두루마기로 감싸 주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품성을 그대로 나타내는 흰 두루마기를 입혀 아버지께 소개시키신다.” 경제 및 금융 문제 전문가인 나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나의 “보증인”이 되신다는 성경의 사상은 매우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보증인이 되셔서 나와 함께 서명하는 것이다. 가끔씩 내가 금융 문제를 강의할 때마다 나는 다른 사람이나 회사를 위해서 절대 “보증”을 서지 말라는 권고를 한다. 왜냐하면 문제가 생겼을 경우, 보증을 선 사람이 빚을 대신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보증을 죄인을 위해서 하신다! 비록 나의 신용이 매우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는 나의 약속과 헌신을 믿어 주시고 보증을 서주신다. 내가 지은 죄들을 보아 나는 죽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는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 보증을 서주셨을 뿐만 아니라, 내가 진 빚까지 다 갚아주신 것이다! 회심은 큰 거래이다 회심은 단지 우리의 죄됨을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회심은 죄를 슬퍼하고 그것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을 수반한다. 하나님의 뜻과 성령의 호소를 받아들인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받는 것이 회심(회개)이다. 다윗왕이 밧세바와의 죗된 행위 후에 하나님께 회개한 것은 세기를 내려오며 모든 죄인들이 배워야 할 본이 되었다. 다윗이 하나님께 매달리며 드렸던 기도 속에는 그의 회심이 매우 잘 나타나 있다. “나를 용서하시고, 나를 변화시키시고, 승리하도록 능력을 주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나를 용서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변화시키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나를 용서하소서]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성령의 정케 하시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능력을 주소서]” 시 51:9~12. 사람들은 여간해서는 잘 변화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그 사실을 잘 안다. 우리는 우리에게 유전되고 또한 출생 이후로 배양되어 온 악으로 기우는 성향의 희생자들이다. 인간의 영혼이 회개하는 문제는 가볍게 다룰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회개는 거룩한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가장 큰 이적이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믿음을 통해서 실제적인 결과가 이루어지게 된다. 믿음을 통하여 순종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마다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빌 2:13)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한 인간이 회심을 경험할 때 일어나는 변화들을 가장 정확히 묘사한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자신의 경험과 비교해 보기를 바란다. “죄를 사랑하는 땅에 속한 마음을 변화시켜 말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의 아름다움과 하나님의 위대함을 이해하여, 영혼이 하나님의 사랑에 잠기고 하늘의 신비로 사로잡히는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다. 죄인이 이러한 일들을 이해하게 될 때, 그가 이전에 살던 생활은 더럽고 혐오스럽게 보인다. 그는 죄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그의 심령을 깨어놓고 그리스도를 영혼의 생명과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전에 즐겼던 쾌락을 끊는다. 그는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사랑, 새로운 관심과 새로운 의지를 갖는다. 그의 슬픔, 소원, 애정, 이 모든 것들이 새로워진다. 한때 아무런 매력이 없었던 하늘이 그에게는 풍요함과 영광의 곳으로 보인다. 그는 미래의 집이 될 하늘을 사모한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그는 보혈로 자신을 구원해 주신 분을 바라보고 사랑하며 찬양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에는 힘들게만 보였던 거룩한 순종의 삶이 이제는 그의 즐거움이 되었다. 관심조차 없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연구하며 성경을 그의 최고의 조언자로 삼고 살게 되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내주신 편지가 된다. 그의 생각, 말, 행동들은 모두 이 말씀에 의해 판단되어진다. 그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명령 앞에 떨지만 말씀의 약속들을 굳게 붙잡고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시킴으로써 영혼을 강건하게 한다.” The Faith I Live By, p. 139. 그러므로 우리는 회심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릴 수 있다. “회심은 마음의 변화이며 불의에서 의로 돌아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고 그분을 진심으로 믿는 믿음을 활용함으로, 회개하는 죄인은 죄사함을 받게 된다. 그는 악을 행하기를 그치고 선을 행하기를 배우며 은혜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난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로부터 분리되어야 함을 알고 그에 따르는 모든 희생을 감수하게 된다. 그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군대에 들어가 용감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타고난 경향과 이기적인 욕망과 싸우며 자신의 의지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과 양심 속에서 들려 주시는 성령의 호소에 굴복시킨다. 날마다 그는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필요한 힘을 얻고 도움을 얻는다. 이제 자아는 그 세력을 잃어 버렸고, 하나님께서 죄인의 마음을 다스리신다. 그의 생활은 의의 열매를 맺는다. 한때 그 속에서 뒹굴었던 죄를 이제는 미워한다. 굳센 결심으로 그는 거룩한 길을 따른다. 이것이 참된 회심이다.” 회심은 내가 가진 옛 것을 주고 새 것을 받는 가장 이익이 많이 남는 큰 거래이다. 바울이 기록한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을 읽어 보도록 하자.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1~5)! 능력 없는 경건의 모양. 다른 이름을 붙이자면 이름 뿐인 기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순종이 없는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야 말로 경건의 능력이 없는 모양 뿐인 신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건의 능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 받을 뿐 아니라 그 마음까지 함께 변화함을 받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죄인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바울이 언급한 경건의 능력은 없고 모양 뿐인 그리스도인들은 진정으로 회심을 경험하지 않은 신자들을 뜻한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뜻과 진리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되어 결국에는 사단이 역사하는 각종 기적과 감정적 신앙에 이끌려 구원을 잃어 버리게 된다.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살후 2:9~11. 날마다 죽노라 바울은 감정적이고 기적을 선호하는 모양 뿐인 능력 없는 신앙에 대한 치유책이 어디에 있다고 말하였는가? 그는 날마다 죽는 경험이야말로 유일한 해결책이며 사단의 역사에 대한 승리의 비결이라고 외치고 있다.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구주를 위해 평생 충실하게 봉사하면서, 바울은 자신의 변화되지 않은 옛 본성이 고개를 들고 일어나려고 애쓰는 것을 느끼면서 이 죗된 욕망을 끊임없이 제어하지 않는 한 자신에게 소망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매 발걸음마다 자아 부정의 생애가 되어야 함을 잘 알았다. 여러 성경 저자들은 매일마다 그들의 생애를 하나님께 재헌신하였다. 다윗은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종일(매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시86:3) 라고 말하였다. 다니엘 역시 매일 세번씩 기도드림으로써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을 그치지 않았다(단6:10). 그의 신실한 기도 생활이 그의 거룩한 삶의 주요한 요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예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보다 확실하게 말씀하셨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고 말씀하셨다. 성경은 베뢰아인들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고 기록한다(행17:11). 또한 예수께서는 주기도문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매일) 양식을 주”시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마6:11).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매일의 경험이 필요한 이유는 명백하다. 참된 회심은 일생에 한 번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필요하다. 이 회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에 들어가게 해준다. 참된 회개를 통하여 옛 것들, 즉 본성과 유전적으로 물려받거나 배양되어진 잘못으로 향하는 경향이 힘을 잃고 사라지게 된다. 회개를 통하여 죄인은 새롭게 되고 성화된다. 하지만 이 일은 중단없이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단이 존재하는 한, 사단은 자신의 일을 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애쓰는 자들은 강한 악의 조류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끊임없는 기도와 경계로 둘러싸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둑이 터지고 죄의 물결이 홍수처럼 밀려와 안전을 휩쓸어 갈 것이다. 새로 거듭난 마음은 말씀의 소금을 매일 뿌리지 않는 한 그 거룩하고 아름다운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날마다 신령한 은혜를 받지 않으면 어떤 사람도 회심한 상태를 지속할 수 없다. 아침마다 그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라. 그리고 이 일을 그대의 첫 번째로 할 일로 삼으라. 또한“오 주여! 나를 받으사 온전히 당신의 것으로 삼으소서. 나는 나의 모든 계획을 당신의 발 앞에 놓나이다. 오늘 나를 당신의 일에 써 주시옵소서. 나와 같이 하여 주시고 나의 모든 일이 당신 안에서 성취되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를 간절한 마음으로 매일 하나님께 드리라. 아침마다 그 날을 위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라. 모든 계획을 하나님께 맡겨 그분의 섭리에 따라 행하기도 하고 그만 두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대는 날마다 그 생애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게 되고 따라서 그대의 생애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따르게 될 것이다. 시험 다음의 시험은 개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시험은 개인적이며 마음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이것은 그대가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데에 있어서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 문을 비집고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어떠한 눈가림으로도 하늘에 들어갈 수는 없다. 만일 조금만 시간을 내어 생각해 본다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곧고 좁은 길에 있는지, 아니면 죽음과 지옥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에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아야 한다. 1. 내 마음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새롭게 되었는가? 2. 내 마음은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는가? 3. 나의 죄들을 회개하고 자백하였는가? 4. 나의 죄는 용서함 받았는가? 5.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가? 6. 나는 성경에 기록된 진리를 위하여 모든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가? 7. 나는 구세주를 섬기기 위하여 기꺼이 모든 시간을 완전히 바치고자 하는가? 8. 나는 진리에 순종함으로 나의 영혼을 정결케 하고 그분 안에서 완전해지길 소원하는가? 만일 위의 여덟 가지 질문에 모두 ‘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대는 생명으로 이끄는 곧고 좁은 길을 가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지금은 희생이 두려워서 뒤로 물러설 때가 아니다. 만일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의의 예복을 입고 세상과 연합하는 대신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면, 그 앞에는 빛나고 영광스러운 빛이 비추어질 것이다. 그리스도로부터 구원의 생명수가 넘쳐흐른다. 믿음으로 그분의 능력을 부여잡을 때 그분께서는 겉으로 보아 가장 희망 없는 이들도 놀랍게 변화시키실 것이다. 그분은 자신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이 기적을 행하실 것이다. 놀라운 약속 우리는 예수 재강림을 위하여 올바로 준비될 수 있다. 예수께서는 구원에 필요한 것들을 마련해 놓으시고 그것을 이룰 능력을 주신다.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는 모든 사람들은 그분 앞에 선택된 충실하고 참된 백성으로써 서게 될 것이다. 사단은 그들을 구세주의 손에서부터 빼앗아 낼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보호하심을 주장하며, 회개하고 믿는 단 한 명의 영혼도 원수의 손아귀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맹세하시기를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 (사27:5)고 말씀하셨다. 여호수아에게 주신 약속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 슥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