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
큰돌개혁장로교회 주일예배 ▣주일경독시간 인도: 강성웅 집사 ▶시편찬송 시편88편(제네바) 다같이 ▶경 독 시편88편 고린도후서7장 다같이 ▶합심기도 다같이 ① 성령과 말씀의 예배 / 설교자와 회중을 위해 ② 성찬의 예배/ 은혜언약 안에서의 하나님의 영광과 성도의 교제가 풍성하게 드러나는 예배를 위해 ③ 믿음과 순종의 예배/ 배움(교리)과 실천(삶)이 있는 예배를 위해 ▶목사;“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갈1:3) ▶회중;“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 * 예배부름과 송영 시편25편(제네바) * 사도신경 다함께 * 하이델베르그요리문답 제24주일 * 십계명낭독 다함께 * 참회기도 다함께 * 시편찬송 시편6편(A)연합 헌 상 강성웅 집사 목회기도 담임목사 말씀의 강설 요일2:24-29 요한일서 강해(44) 주의만찬 계14:8-12 다함께 * 찬 송 찬송가90장 다함께 * 강복선언 설교자 * 교제의 인사 다함께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12:10) * 표는 기립해주시기 바랍니다. ☞ 헌금은 미리 준비해 미리 봉헌함에 넣어주세요. *주일 오후 모임: “여름 대청소 및 냉방장치 설치” |
제24주일 제62문: 왜 선행을 통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와질 수 없으며, 왜 선행은 의로와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까? 답 :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설 수 있는 의는 절대적으로 완전해야 하며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남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그것은 불완전하며 여전히 죄로 더럽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제63문: 하나님께서는 선행에 대하여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보상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왜 당신은 그토록 선행을 무시합니까? 답: 그 보상은 노력의 댓가가 아니라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제64문: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러한 교훈으로 인해 선행에 관하여 무관심해지고 사악해지지 않겠습니까? 답: 아닙니다.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은 감사의 열매를 맺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성찬본문/ 계14:8-12
『 (계14:8-12)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
▣설교본문/ 요일2:24-29
『 (요일2:24-29)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26) 너희를 미혹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28)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29)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
요한은 영생이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17:3)이라고 간명하게 정의한 바 있습니다. 믿음은 참된 지식을 기초합니다. 요한의 교회를 미혹하던 영지주의자들은 이 지식을 신지학적 영지(靈知)라고 주장함으로 기독교신앙의 객관성, 보편성을 부정하고 신앙을 개별자의 체험적 지식에 종속시켜버렸습니다.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불변하는 시금석
만일 누군가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진리를 들었다면 그 진리가 참된 것인지 거짓된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요한이 이 서신의 서두에서 경고한 모든 ‘위선과 거짓과 오류들’(요일1:5-10)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적그리스도와 종말의 도래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요13:18)과 마귀의 자녀들(요8:44), 교회와 세상을 구분하는 경계선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요일2:15-17)
요한은 두 가지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합니다.1)
첫째는 그가 사도들의 공동체, 곧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한 자인지에 관한 증거입니다.
▶(요일2:19)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사도적 교회의 정체성을 상실하거나 부인하는 교회는 거짓교회이며, 그러한 교회에 속하거나 참된 교회로부터 분리된 자들은 그리스도와의 생명적 교제(코이노니아) 밖에 있는 자로 간주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신경의 결론부에서 ‘나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노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도들의 교훈, 곧 참된 진리 안에 거하고 있는지의 여부입니다.(요일2:24-25)
사도요한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듣고 믿는 사도들과의 사귐을 통해 성부와 성자안으로의 사귐을 누리게 된다고 말했습니다.(요일1:3)2)
이 사도의 교훈은 삼위하나님과의 교제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일2:20,22-23)
▶요한은 적그리스도를 구별하는 명확한 시금석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 두 번째 그리스도의 기름부음 곧 성령의 사역인 참된 복음의 교훈을 부인하는 자라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아들을 부인하고 성령의 가르침을 반대함으로 성부에게 속하지 않았음을 드러낼 것입니다. 어떻게요? 그들이 참된 교회로부터 일탈함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의 골자를 다시 상기하기 바랍니다. 사도신경은 그 내용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사역에 관한 고백으로 구성되며, 삼위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지상적 현실태를 ‘거룩한 공교회를 믿음’가운데 성도의 교제(코이노니아)를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22문과 54문은 이것을 잘 요약해 줍니다.
▶제22문 :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답: 하나님께서 복음으로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입니다. 그 복음은 사도신경에 요약되어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고백되어지는 믿을 만한 기독교신조입니다.
▶제54문: “거룩한 공회(교회)에 관하여”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답: 하나님의 아들께서 성령과 말씀을 통하여 태초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전 인류 가운데 영생을 얻도록 선택된 성도를 참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된 공동체로 모으시며 보호하시며 보전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물론, 나도 이 공동체에 속해 있으며 언제까지나 그 일원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사도는 미혹하는 자들은 이 사도적 전통으로부터 일탈하도록 충동하는 자들이라고 경고합니다. ▶(요일2:26) 너희를 미혹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전통은 죽은 자들의 살아있는 믿음이고, 전통주의는 살아있는 자들의 죽은 믿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은 오늘날 전통에 관해 혐오증과 불신을 조장하는 현대인들의 주관주의적 사고방식과 유사합니다.
▶사도적 신앙이란 역사적 유산이고 ‘전하여진 것’을 ‘받은 것’(paralambavnw, 받다, 취하다, 교제의 방식으로...(1절)입니다. 명심하십시오. 믿음은 개별적 선물이지만 그 내용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교회가 고백한 역사적 유산입니다. (고전15:1-8;살후2:15)
참된 신자, 기름부음을 받다- 구원과 생명
자, 요한은 그의 회중을 향하여 객관적인 진리의 기준과 내용을 가르치고 교회밖에, 곧 사도의 교훈밖에, 결국 삼위하나님과의 교제 밖으로 나간 거짓 형제들을 예를 삼아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의 교회, 곧 사도의 교훈안에 거하는 신실한 그의 회중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그들에 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요일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이 본문은 난제 아닌 난제구절로 취급받는 말씀입니다. 요한의 회중은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그들 안에 있다’고 확언합니다. 여기서 기름부음이란 무엇일까요? 이 기름부음이란 어떤 신비적 밀교의식이나, 영지주의자들이나 신지학적 영성가들이 주장하는 신비한 진리의 빛을 경험하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기름부음이란 하나님의 신적권위를 따라 행해지는 공적의식입니다. 요한은 이 기름부음은 ‘주께 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곧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의 교회에 보내신 성령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오순절에 성령이 오심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교회를 통해 세상을 통치하기 시작하셨다는 강력한 사인(sign)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오순절 사도들에 의하여 선포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승리에 관한 복음이었습니다. 그날에 각 나라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Magnalia Dei)을 듣는 것은 성령의 강력한 사역의 특징이었습니다.(행02:11) 그러므로 사도요한이 너희는 ‘주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기에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성령을 받았기에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이 성령을 처음 받았을 때, 곧 사도의 복음을 듣고 믿었을 때 그 복음의 교훈 외에 다른 교훈을 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즉 사도적 복음의 충분성, 유일성, 보편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의 언어를 빌어 말하면 ‘다른 복음은 없다!’(갈1:7)는 의미입니다.
이 복음은 칭의의 복음이요 양자됨의 언약을 내용으로 합니다. 이 복음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과 말씀을 통해 성취된 결정적이고 완결적 성격을 갖습니다.
참된 신자, 기름부음안에 거하다-성장과 열매
다른 한편으로, 요한은 그의 회중에게 그들이 받은 기름부음(성령에 의해 증언된 사도적 교훈)안에 거하라고 권면합니다.
▶(요일2: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요일2:27-28)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28)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그 안에 거하라’는 말은 이 복음신앙의 지속성, 연속성, 그리고 점진적 성장의 여정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기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엡3:17-19)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1:18-19)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만일 누군가가 참된 복음을 믿고 있고 참된 복음을 가르치는 교회에 속한 교인이라고 믿는다면 그는 그것으로 충분하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이미 배운 교훈(기름부음)안에 지속적으로 거해야 합니다. 이 ‘거하다’는 말은 정물적으로 머무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진리를 체화하고 심화시켜 그 진리가 요구하고 이끄는 자리로 성숙해 가야하는 여정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7절이 명하는 ‘주안에 거하라!’는 말은 28절에서 ‘그리스도의 강림하실 때에.... 부끄럽지 않게 하려함이라’는 말씀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신자의 이 남은 신앙의 여정은 구원자체의 조건이나 원리는 아니지만, 구원의 열매와 확증으로서 필연적인 요소입니다.
요컨데 ‘신자에게 기름부음이 있어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은 교리적으로는 칭의와 양자됨과 같이 구원의 결정적인 국면을 지시합니다.
반면에‘주의 강림하시기까지 주안에 거하라!’는 명령은 교리적으로는 성화와 견인의 교리를 지시합니다.
요한은 이 두 가지 국면을 복음의 전체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시 배울 필요가 없다!’는 단언과 ‘가르치신 대로 주안에 거하라!’(실천적배움의 진전, keep going)는 명령은 기름부음(성령의 가르침/사도적 교훈)의 유일성과 그 생장성을 강조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들어보십시오.
▶(약0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devcomai,취하다 익히다 배우다)
▶(막04: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쪼개진 복음
주님은 자신이 오신 목적 곧 구원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요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통속적 오순절주의나 세속적 복음주의교파에서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본값으로서의 영혼구원과 행위에 따른 보상값으로서 삶의 구원으로 구분합니다. 전자는 은혜의 선물로 받으나 후자는 행위로 획득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복음의 구원관이나 기독교진리체계를 이원화시키는 것은 대부분, 건전하지 못한 신앙사조들에서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영혼의 구원과 삶의 구원이라는 기이한 이분법으로 신자들의 믿음을 자극하고 헌신을 독려합니다. 삶이 구원받지 못한 신자들은 여전히 가난의 영에 시달리고, 질병의 영에 시달리고, 가계에 흐르는 저주이론처럼 알코올중독과 도박, 외도, 정신병과 온갖 유전 질환등에 시달린다고 말입니다. 정말 끔찍한 협박과 위협으로 신자가 믿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복시키는 거짓된 가르침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현실로부터 구원을 받는다는 실존적인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재창조된 피조물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중생’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자’ 곧 ‘위로부터 난 자들’은 하늘의 사람입니다. 비록 우리들의 연약한 몸과 가시나무와 엉겅퀴가 가득한 삶의 현실은 여전히 실존하지만 신자는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다시는 세상에게도 마귀에게도 심지어 죽음에게도 빼앗기거나 유실될 수 없는 하나님의 배타적인 소유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세쿨라’(출19:5)입니다.
▶(고후0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신자가 지상에서 경험하는 실존적인 현실들, 고난, 시련, 질병, 가시같은 삶의 수많은 난제들은 여전히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달라졌으므로 그것들은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다고 갑자가 사업이 대박이 나고, 재벌이 되고, 번영과 성취의 신화를 쓰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류의 이야깃 거리가 간증의 이름으로 복음을 대체하는 유사복음(결핍과 오류)으로 유통되고 있는 현실을 분별해야 합니다.
▶전도행위가 금지된 미국의 한 대학졸업식에서 한 졸업생이 울먹이며 전도메시지로 졸업연설을 했습니다.
“당신을 목적을 가지고 만드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당신과 개인적인 깊은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의 고통과 아픔에서 벗어나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이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여러분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이 실패와 저주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기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종교적인 관념을 따르라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간청합니다. 당신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 그저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입니다. 아무 조건 없이 말입니다. 그럴때 하나님이 당신을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는지 보세요. 우리는 모두 각자의 고난과 두려움을 직면합니다. 우리는 실패와 두려움과 슬픔이 찾아올 것입니다. 상실감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해결책이 있습니다. 그분이 하나님 이십니다. 당신의 짐을 기꺼이 짊어지고 가시는 그분이 계십니다.”
그러나 이 학생의 믿음의 진정성과 상관없이 이런 복음은 우리가 받은 그 기름부음(교훈)과는 다른, 낯선 복음입니다. 엄밀히 기독교와 상관없는 일이고, 하나님의 나라와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영혼에게 일어나야하는 회심과 중생, 죄사함과 칭의를 얻게 하는 참된 믿음을 일으키는 것과도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일입니다. 참된 복음은 중생이라는 재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자의 모든 삶에 대하여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부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신자의 삶은 드라마틱한 변화가 아니라 지리 한 성화의 여정으로 드러납니다. 죄와의 싸움, 자기 부인, 십자가지기,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총체적 삶의 헌신이 수반되는 것입니다. 비록 그 성숙과 열매 맺음의 여정이 더디고 정도의 차이가 심해 형제를 향하여는 언제나 판단중지되어야 하지만 자신에 대한 점검과 분발은 멈추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갑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일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소명의 현장일 뿐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믿음의 담대함을 얻는 빛과 소금의 전시장입니다.
▶(고전07: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사도요한은 거짓복음과의 분리와 함께 참된 복음의 역동성을 강조합니다. 미혹하는 악한 자의 활동(살후2:9)과 적그리스도들의 출현은 교회 밖에서 우는 사자처럼,(벧전5:8) 그리고 빛의 천사를 가장한 모습(고후11:14)으로 다가옵니다. 사도는 분별과 인내를 촉구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를 향하여 ‘그 교훈(기름부음)안에 거하라!’고 촉구합니다. 신자는 말씀을 배운 대로, 그리고 믿은 대로 그 진리 안에 거하도록 촉구 받습니다. 순종과 믿음은 결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된 복음은 죽은 믿음이 아닙니다.(약2:26) 믿음은 역사합니다.(살전1:3)
▶폴 워셔 목사가 미국의 대형집회에서 미국식 복음주의의 허상을 고발하고 회심하지 못한 영혼의 실상을 용기있게 폭로합니다.
“앞으로 100년 안에 여기에 모인 사람들 중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옥에 있게 될지 모릅니다.....미국의 복음주의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 문화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수많은 청년들이 어른들이 속고 있습니다..... 미국 복음주의와 개신교 교회에 들어온 가장 큰 이단은 예수님 내 마음에 들어와 주세요. 라는 기도 때문입니다. 그런 복음은 성경에 없습니다. 적어도 50년전에는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오직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회개 없는 믿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회개는 죄로부터 돌이키는 전향,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동일하게 싫어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동일하게 사랑하는 것, 거룩함 가운데 자라가는 것입니다. 연예인을 따라가는 것이나 세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말입니다. 미국의 그리스도인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중으로부터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냉소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러분은 왜 박수를 칩니까? 저는 지금 여러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사도는 그들이 받은 사도의 교훈 외에 다른 교훈을 분별하라고 말합니다. 동시에 그 교훈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멈추지 말라고 촉구합니다. 그럼으로서 그가 누구인지를 입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교회와 사도적 교훈을 떠남으로서 그리스도와 분리된 자임을 증명했던 저 거짓 형제들(요일2:19)과는 다른 방식으로 말입니다.
▶(요일2:28-29)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29)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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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한은 누가 참된 신자인가에 관한 주관적인 기준도 제시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율법순종과 형제사랑이다.(요일2:5;3:14)
2) ▶(요일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3) ▶구원론; 예수님을 믿는 것과 예수를 영접하는 것은 다른 것이라는 주장. 다락방의 이중영접론
▶성령론; 처음 믿음으로 받는 성령과 그 다음 단계에서 받는 성령의 세례가 다르다는 주장. 소위 제2의 축복이론
▶교회론; 예수를 믿어 신자가 되는 신자의 부류가 있고, 복음에 헌신된 제자그룹이 있다는 주장. 유행했던 제자훈련이나, 제자훈련의 영국적 모델인 케직스타일등 (로마 캐톨릭도 포함됨)
▶종말론;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을 때를 이른비 시대이고 이제 마지막 때에 늦은 비 시대가 도래하여 사도적인 표적이고 기사들이 재현되고, 우주적 종말의 시침이 작동된다는 시한부 종말론.. 인터콥, 백투 예루살렘 운동이나 신사도주의, 통속적 세대주의등
▣말씀의 반추를 위한 생각들
▣ 시편으로 기도하기!(피터 버미글리)
시편90편
1. 오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의 성막은 실제로는 그렇게 크지 않아서 당신의 무한하신 능력과 광대한 본성을 다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당신만이 유일한 장막이며 거쳐이며, 우리가 약할 때에 피난처가 되심을 이미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신자들을 위한 새로운 거처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당신이 그들을 선택하신 이래로 당신은 그들의 영원한 거처가 되셨습니다. 우리를 에워싼 곤경과 재난이 우리의 거처이자 안전한 요새이신 당신에게로 우리를 몰아갑니다. 우리가 당신의 진노와 노하심에 소멸되며 지속적인 공포에 던져지면, 마치 잠에서 별안간 깨어나는 사람처럼 그리고 활짝 폈다가 곧 시들어버린 꽃과 같이, 우리는 확실히 어렵고 또한 물이 흐르듯이 신속하게 지나가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마땅히 진노하실 그런 죄악들을 우리가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관심이 그 죄악들을 처벌하는 일에 고정 되었다면, 우리는 참으로 당신의 불타는 노여움으로 멸망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 하나님, 우리가 당신에게 대하여 저지른 죄악과 불법 행위들을 기꺼이 용서해주셔서, 우리를 영원한 저주에 처하도록 넘겨주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히려 우리가 현재 당하는 곤경들로부터 이런 열매를 이끌어내게 하옵소서. 당신의 진노의 능력과 효력을 인정하고 또한 우리의 삶의 헛되고 짧음을 인식하여, 한층 더 강한 열정으로 당신을 경외하게 하옵소서. 선하신 아버지시여, 다시 당신의 본래 모습을 보여주옵소서. 그러면 당신의 사역이 우리에게 분명해질 때, 우리는 온전히 즐거워하며 기뻐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지도하셔서 당신의 영예와 영광과 광채가 우리와 우리의 모든 행위에서 빛을 발하게 해 주시기를 우리가 엎드려 빕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