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여행] 전망포인트 치명자산 성지(순교자의 묘)..........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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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치명자산 성지(순교자의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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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이제 동고사를 나와 다시한번 동고사를 바라본다. 동고사를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시멘트,
콘크리트로 만들어낸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자연으로 만들어진 자연석 돌 계단이 아니라 일반
콘크리트로 만들었다는 것이 못내 못마땅한 길이다. 소나무숲 향기를 맡으며 걸을 수 있는 오솔길
을 이렇게 생각없이 만들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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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앉아 탁상공론으로만 이루어진 공무원들의 졸속행정의 표상같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바로
이러한 졸속행정은 지탄의 대상이고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야기가 약
간 벗어나긴 했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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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사 옆으로 조금 오르다보면 조선후기 18세기말, 19세기초 그리고 20세기초에 이곳에서 쓰러져 간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지인 치명자산으로 연결된다. 스님의 머리모양을 닮았다는 승암산 중턱에 산굽
이와 공존하며 전각이 배치되어 있는 동고사. 뒤쪽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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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분쯤 올랐을까. 드디어 정상에 가까운 곳에 당도하자 치명자산의 전망포인트가 나온다. 아래 동
고사의 전망과는 또 다른 포인트다. 시원스럽게도 뻥 뚫려있는 조망권이 확보된 전망대!, 이곳을 보기
위해서 사람들이 치명자산을 찾아 오르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순교자의 묘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주는 보너스 치고는 사치스러운 보너스가 아닌가도 싶을 정도로 뭉게구름 가득한 가을하늘 아래 아
름다운 전주 도심의 바다가 펼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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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트인 전주시내 경치를 한눈에 내려다보니 갑갑했던 마음이 시원해지고 맑은 공기까지 함께하니 힘
들게 올랐던 피곤함이 사르르 사라지면서 기분이 상쾌해 진다. 잠시 전망대에서서 고개를 돌려본다,
좌측에는 전주-남원간 국도가 보이고 정면에는 웅장한 모습으로 자리잡은 국립무형유산원 우측에는
전주천과 함께 한벽당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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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한옥마을과 전주의 일출·일몰·야경을 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 잘 알진 포인트다.
사실 이곳엔 순교자의 묘가 있는 성지이다. 이곳은 1801년에 순교한 유항검의 가족들을 합장한 묘소
가 있는 곳으로 동정 부부인 루갈다를 추앙하는 사람들은 '루갈다 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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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기념물 제68호로 지정돼 있는 치명자산 유항검 일가 합장묘에는 호남의 첫 사도요 순교자였던
유항검과 그의 부인 신희(申喜), 두 아들 유문석·유중성, 제수 이육희의 유해 그리고 동정 부부 순교자
유중철 요한, 이순이 루갈다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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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원래 치명한 후 김제군 재남리(현 용지면 남정리)에 가매장됐다가 전동 본당 초대 신부인 보두
네 신부를 비롯한 신자들이 1914년 4월 19일에 이곳으로 옯겨 모셨다. 1993년 11월 29일에 이 묘소를
개장, 유해 확인 작업을 벌인 결과, 이 가족 묘소에는 7개의 옹기에 각각 유해가 담겨져 있었으며,백사발
에 인적 사항이 적혀 있었고, 숯을 담은 채 옹기를 막아 놓아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했다는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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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내 전망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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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유씨 소재공파(素齋公派) 8대손인 유항검은 1784년 권일신의 집에서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이
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는 가성직 제도에 의해 신부의 권한을 위임받고 고향인 전주 초남리
(현재 전북 완주군 이서면 조남)에 내려와 호남 지역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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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항검은 가성직 제도가 교리에 어긋나며 독성죄가 됨을 깨닫고 이를 시정키 위해 북경 주교에게 문
의 편지를 내게 했으며 주문모 신부를 입국시키는 데에도 큰 공을 세웠다고 한다. 1801년 신유박해가
터지자 전라도 지방에서 제일 먼저 체포돼 서울로 압송당한 유항검은 대역 부도(大逆不道)죄로 능지
처참형을 받고 전주 감영으로 다시 이송, 1801년 10월 24일 46세의 나이로 참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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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유항검의 부인 신희와 동정 부부로 유명한 유중철(요한)과 며느리 이순이(루갈다), 둘째아들 유
문석과 동생 유관검이 순교했다. 이렇게 해서 유항검 일가는 지상의 모든 삶을 영생의 세계로 옮겼고
이들의 하느님께 대한 순종과 믿음의 확신은 일가의 단종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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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은 이들의 흔적을 아예 없앨 요량으로 대역 죄인의 집을 헐고 집터를 깊게 파 연못을 만들어 버리
는 파가 저택(破家猪宅)의 형을 내렸다. 전주 초남리에서 시작된 유항검 일가의 길고도 먼 여정은 이
렇게 치명자산에서 마쳤고 그 길은 시련과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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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가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 호남 천주교회의 초석을 이루었던 유항검 일가의 고결한 신앙을 구비
진 능선을 따라 산을 오르며 되새기는 곳이다. 이러한 전주의 성지는 또 있다. 옛부터 '전주 숲정이'
(전주시진북동 1034-1번지)는 조선 시대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장소로, 일찍부터중죄인들의 형
장으로 사용되어 오고 있었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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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박해가 시작되면서 이곳은천주교 신자들의 순교 터로 변모하였다. 1801년에 이순이와 류항
검의 가족이순교한 이후 1839년 기해박해 때는 충청도 출신의 김대권(베드로), 이태권(베드로), 이일
언(욥), 정태봉(바오로)과 경기도 출신의 신태보(베드로) 등 5명이 5월 29일이곳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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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1866년 병인박해 때는 정문호(바르톨로메오), 손선지(베드로), 한재권(요셉), 조화서(베드로), 이명
서(베드로), 정원지(베드로) 등 6명이 12월 13일 이곳에서 순교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1984년 5월 6일
성인품에 올랐다. 숲정이는 이처럼 오랜세월에 걸쳐 전라도 지방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를 탄생시킨 사
적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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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신앙 선조들의 순교 열정과 함께 천상의 영복을 얻은 기쁨, 피로 적셔진 진토가그대로 남아 있
는 곳이다. 그러므로 박해 시대 내내 신자들은 그 자리를 잊을수 없었고, 신앙의 자유를 찾은 뒤에도
자주 이곳을 순례하면서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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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숲정이 형장이 교회사적지로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초에 이명서 성인의 손자 이준명(아
나돌)이 숲정이 순교 터를 매입하면서였다. 이후 1935년에는 전동 본당의 이학수(바오로) 회장이 그
자리에 십자가비를 건립하였으며, 1960년에는 이곳 이웃에서 해성중고등학교가 개교하였고, 1968년
에는 순교 복자 현양탑이 건립되었다. 또 1984년에는숲정이 순교 터가 지방 기념물 71호로 지정되기
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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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도시화의 물결로 1989년에 해성학교가 이전되고 아파트가 건립되면서 본래의 순교 터는 흔적
도없이 사라져 버렸고, 지금은 본래의 장소에서 150m 정도 떨어진 아파트 단지내(진북동 1144-1번지)
에 새로 사적지가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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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가기 위해서는전주시로 들어와 전주천 변에 있는 진북 초등 학교를 찾으면 된다. 한편 류항검
과 가족들이순교한 뒤 남아 있는 노비와 인척들은 그들의 시신을 거두어 초남리 너머에 있는 재남리
(김제군 이서면과 용지면의 경계 마을) 바우배기에 합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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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전동본당이 설립되면서 재남리 공소는 이 본당 관할이 되었으며, 초대 본당 주임보두네 신부는
자주 이 공소를 순방하는 도중에 바우배기의 류항검 가족 무덤을돌보았다. 그러던 중 1914년 사순 시
기에 당 주인이 무덤을 이장하도록 권고하자, 보두네 신부는 신자들과 함께 그곳으로 가서 파묘를 하
여 순교자 7구의 유해와이름이 적힌 사기 접시를 확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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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항검과 부인 신희, 아들 문석과조카 중성, 제수 이육희, 그리고 동정부부 류중철과 이순이였다. 보
두네 신부는 신자들과함께 7구의 순교자 유해를 작은 항아리에 각각 담고 이름을 써서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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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다음 전동 성당을 지을 때 재목을 구하기 위해 사두었던 성당 동쪽 기린봉(306m) 자락에 있는 '치
명자산'(전주시 대성동 산 11번지)에 이들 일곱 순교자들의 유해를안장하였으니, 그때가 1914년 4월
19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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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길에 동고사 감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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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1949년에는 전동 성당 신자들이치명자산에 십자가 기념비를 건립하고 교구장 김현배 신부의 집
전으로 제막식을가졌으며, 1984년에는 이 지역이 지방 기념물 69호로 지정되었다. 전주교구에서는이
를 계기로 치명자산 개발 계획을 세운 뒤 1988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995년기념 성당을 완공하였다.
지금까지 이곳 사적지에서는크고 작은 기적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후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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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석양이 질 때 드러나는이곳 언덕의 기념 십자가 옆에 있는 바위는 순교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성
모 마리아상과 비슷하다. 이처럼 치명자산은 더 많은 양들을 진리의 길로 이끌어 주기위해 오늘도 전
주 시가지를 내려다 보고 그곳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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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https://cafe.daum.net/b2345/LKz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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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23,00680000,35&pageNo=1_1_1_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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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낙수정2길 103-88 (산 주차장) 과 동고사 입구도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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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기 가끔 답답할때 오르곤 합니다.
요즘 날씨로는 한 오후5시 30분쯤 천천히 오르면 꼭대기에 건물 불빛과 노을이 조화를 이뤄요. 한법은 볼만한 전경입니다
아 그렇군요. 노을이 깃든 야경이라...
상상만 해도 아름다울것 같습니다.
일단은 조망 포인트가 시원하더라구요.
조용하면서도 발 아래 밟히는 전주시내 가 아름다운
야경으로 보답해 주는것만 같아서 저도 한참동안 멍때리고 있었답니다.
감사 합니다.
와 여기 군전역하고 살뺀다고 맨날 올라다녔었는데 이렇게보니 반갑네요ㅎ
ㅋ 아니 어떻게 찐 살인데 빼실려고 그 험한 고생을.....ㅎㅎㅎ
눈에 익은 길이 누군가를 통해서 보게되면 반가울 겁니다.
그게 하나의 힐링이자 힘이 되기도 하구요.
저 때문에 님의 추억을 소환하는 일이 벌어졌군요.
그러나 기분은 좋으시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