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인생
아흔여섯 살의 어머니를 태운 휠체어를 천천히 밀었다. 정오에 햇볕 쐬어 드리려고 잠깐 바깥으로 나왔다.
이따금 멈춘 뒤에 평소의 나답지 않게 쪼그리고 앉아서 들풀의 꽃대를 조심스럽게 잘랐다. 아직 뽑히지 않은 잡초들도 소중한 들꽃인데도 나는 미안해 하면서 각각 한 송이씩만 잘랐다. 노란색깔의 서양민들레꽃과 자주색깔의 제비꽃.
어머니는 말없이 지켜보고.
'어머니 알아요? 민들레와 제비꽃을요? 뜯어서 나물 무쳐 먹기도 하죠?'
손가락 움직임이 애벌레처럼 굼뜬 어머니는 민들레꽃과 앙증맞은 제비꽃 한 송이를 힘겹게 받았다. 손가락으로 꽉 쥐었다.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뒤로 제킨 채 입을 벌린 어머니의 눈자위는 이미 많이도 풀렸다.
나는 휠체어를 밀면서, 아파트단지 안을 서서히 돌면서 식물을 구경했으며, 아내와 큰딸은 휠체어 앞에서 시어머니, 할머니한테 자꾸만 말을 걸었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화단 바깥과 보도블록 가생이에는 풀을 뽑아낸 흔적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붉은색 바탕에 흰색이 섞인 명자꽃은 많이도 피어 있었다.
키 작은 관목 아래는 말끔하게 풀을 맨 흔적이 남아 있었고, 풀을 뽑아낸 자리는 조금은 어수선해 보였다.
명자꽃, 황매화, 연산홍, 철쭉, 주목, 앵두나무, 줄사철나무, 황사철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금송과 해송, 반송, 화살나무, 수수꽃다리, 불두화 등이 있는 곳마다 풀은 많이도 뽑혔다. 자잘한 우유빛깔의 돌단풍, 예쁜 금낭화, 비비추 등을 심은 화단에서도 마구 쥐어뜯겼다. 한 줌씩 뭉쳐서 내던진 채로 말라죽은 풀무더미를 눈여겨보았다. 씀바귀, 지칭개, 서양민들레, 자주색제비꽃, 흰제비꽃, 꽃다지, 나승게, 냉이류 등이었다. 흔한 풀이었다.
'아니, 왜들 뽑았지? 들풀도 정말로 예쁜데. 이식한 조경수와 화목 주변에는 저런 풀들이 잔뜩 있어야만이 흙의 수분이 마르지 않아서 좋은데 왜 다 뽑았지? 풀꽃도 예쁜데...' 구시렁거리는 나한테 아내가 말했다.
'지저분하잖아요?'
풀을 뽑아낸 사람이 아내가 아니었기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아파트 단지를 관리하는 직원이 아니기에, 풀 뽑는 인부도 아니기에 아파트 관리소한테 뭐라고 이의제기하고 싶지 않았다.
'풀 뽑아내서 단지 안이 깔끔해졌으며, 꽃나무와 꽃들이 뚜렷하게, 아름답게 보이지 않으세요?'
직원은 대꾸하면서 나를 이상한 늙은이로 여길 것 같았다. 관리사무소에서 어련히 알아서 뽑았을까? 하면서 나는 꼬리내려서 사렸다.
잠실아파트 단지 안의 빈 공터에는 여러 종류의 조경수와 키 작은 꽃나무들이 있다.
돌단풍, 금낭화, 연산홍, 수호초 등의 많은 화초류의 원예식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 이외도 맥문동, 고사리, 관중 등 많은 풀이 있었다.
어머니한테는 화려한 꽃보다는 시골 텃밭에서 흔히 보는, 이름 모를 잡초가 훨씬 정겹고 이물 것이다.
나는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비싼 돈 주고 조경사업을 벌리고, 화훼단지를 조성하는 것만이 가치 있고 아름다운 거여? 아니여. 자연스럽게 자생하는 들풀도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여. 진짜로 아름다운 것은 구별없이 모두 함께 어울리는 거여. 자생하는 식물과 인위적으로 조성한 식물들이 함께 있는 그 자체가 더 아름다운 거여.'
나는 게으른 농사꾼이다.
텃밭에 작물을 재배하면서 풀이 있다고 해서 이를 전멸시키지는 않는다. 풀을 다 뽑아내도 흙 속에는 참으로 많은 씨앗이 숨어 있기에 언젠가는 다시 싹이 튼다. 완벽하게 뽑아내지 못할 바에야 조금씩 놔두면서 농사 짓는 것이 훨씬 낫다는 지혜를 터득했다.
여름철 폭우가 쏟아지고, 장마철이 지속되더라도 풀이 있으면 밭흙은 거의 온전히 보존된다. 풀을 말끔히 매 준 땅은 흙이 유실되게 마련이다. 황톳물이 고랑을 타고 흘러내리고, 씻겨 내려가게 마련이다. 풀이 있는 땅은 그다지 피해가 적다. 잡초로만 여겼던 풀은 빗물이 튕기는 것을 막아주고, 또 풀잎은 수분을 다량 흡수한다. 겨울철에는 말라버린 풀들이 재배작물의 보온 역할을 해서 냉해 피해를 크게 줄인다.
이처럼 풀은 관리만 잘 하면 정말로 소중한 자원이다. 적절히 관리하지 못하거나 이를 이용하지 못하면 지겨운 풀이 되겠지만 나한테는 아니다. 함께 살아야 할 이웃이며, 보존자원이다. 잡초로 보는가 또는 자원으로 보는가의 차이는 개인적인 주관과 경험의 문제일 게다. 상황과 생각차이, 견해와 인식차이일 게다.
농사 짓다가 대상포진이 발생하는 바람에 치료받으려고 서울로 급히 올라온 나는 치료가 끝난 뒤에는 시골로 도로 내려가지 않고는 처자식이 있는 서울에서 머물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노환이 더욱 심각해졌고...
농사꾼인 나한테는 아파트 단지 안의 작은 화단에서 저절로 자생하는 풀은 미운 존재는 분명히 아니다. 잘난 조경수목과 잘난 원예 화초들과도 어울러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다.
제발 더 이상은 뽑지 않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그런 들풀, 들꽃이다. 뽑혀서 메말라 죽는 풀들이 마치 능력 있는 사회조직에 적응 못하고 자꾸만 뒤로 밀려나는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어머니를 태운 휠체어를 천천히 밀면서 송파구 잠실 석촌호수 서호로 나갔다가 귀가하면서 길거리에 매단 많은 플래카드를 올려다보았다.
6월 4일이 선거일이라면서 구청장 후보자, 시의원 후보자 등 잘난 사람들의 이름을 큼직하게 써서 주민들이 많이 몰려 다니는 곳곳마다 어지럽게 내걸었다.
아내는 고향사람을 만났나 보다. 자기를 알아보는 친정의 고향사람, 자기 막내오라비의 이름을 대더라던 사람, 우연히 만났다던 송파구 의원이 이번에는 구청장 후보로 출마했다는 아내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보태지 않았다.
전남 남해안 갯바다(광양군 골약면 도이리) 출신의 아내 말에는 어떤 아쉬움이 숨겨져 있었다.
나한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정치학 교과서를 겨드랑이에 끼고 다녔던 젊은날의 흔적은 다 지워졌다. 산골마을에서 사는 이름 없는 늙은이기에 위와 같이 잘난 사람 측에는 끼지도 못한다. 나는 풀이 되었기에, 잡초인생이기에, 들풀 들꽃처럼 사는 삶이기에 이제는 아무려면 어떠랴 싶다. 돌보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생하여 억척스럽게 살아남고,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 부는 곳마다 자손을 남기는 그런 사람으로 대접받고 싶다.
2014. 4. 13. 일요일.
추가 :
어머니의 서울 나들이는 마지막이 되었다. 가장 오랫동안 서울에 머물었고(4개월간)
그 당시에 어머니는 치매기가 상당히 빠르게, 깊게 진행되어서 식물인간에 가까워졌고, 2개월 뒤인 2014년 6월 중순에는 긴급상황이 일어나서 119차를 타고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중환자실로, 지방병원 중환자실에서 전전긍긍하다가 이듬해 2월 말에 먼 여행길 떠났다.
2019. 6.
며칠 전 서해안 시골집 바깥마당에서 우단동자 두 포기를 삽으로 떠서 서울로 가져왔다.
시골에서 올라온 지 5일째인 오늘 아침에는 꽃 한 송이가 피었다. 나머지도 곧 자잘한 꽃을 피울 것 같다.
아파트 유리창을 통해서 햇볕을 받는 나쁜 환경인데도 식물은 보답한다.
아름다운 빛깔로 사람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 준다.
꽃이 지면 시골로 가져가서 마당가에 심어야겠다.
식물도 착한 사람처럼 자기네 가족, 친구를 좋아하니까.
2019. 6. 12. 수요일.
첫댓글 좋은 수필 한편 잘 읽었습니다
길어도 지루함 전혀없이 편안하게 읽혀지는 글 잘 보았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그냥 일기이지요.
지금은 정정하시지만 글속 어머니 연세가 되었을때가 생각이 나서요.
외동딸인 저를 그리워 할 엄마 생각하니 괜스레
눈물이 나네요.
가장 큰 효도는 얼굴을 보여 드리는 것이지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눈길주기 쉽지 않은 풀꽃들에 대한 애정.. 잔잔함이 주는 감동이 전해오네요^ ^
아파트 단지 안에는 조경사업이 잘 되어서 많은 식물이 있지요.
오늘도 석촌호수 한 바퀴 돈 뒤에 귀가하면서 아파트 단지 안을 조금 돌았습니다.
키가 큰 왕대나무도 있고, 외국식물인 나리가 노란 꽃을 피웠고...제비꽃도 있고...
댓글 고맙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예쁜 것은 사람과의 인연이지요.
특히나 부모 자식간의 인연...
꽃섬지기 님이 부럽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건강하시어서 함께 사는 모습이..
나이 많는 저한테는 어머니 아버지는 흙속에 묻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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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작년에 친정엄마 올 3월에 시어머니 별나라 보내셨는데 아직도 느껴지지가 않네요.아직도 매일 매일 그립고 생각나고 갠한 눈물이 주루룩 흐를때가 ....이글 보니 지금도 그냥 흐르네오...ㅠㅠㅠ
친정 어머니를 먼 여행 보내셨군요.
잊어드리는 게 오히려 효도하는 길이겠지요. 그 어머니가 더 먼 곳으로 여행하시고 있을 터.
그 어머니는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고 계실 터.
이 글은 어떤 월간 문학지에 내려고 준비 중이지요.
그 당시 서울에서 잠깐 모셨는데 그게 마지막 모신...
아직은 부모님에 곁에 계서서 좋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그러하겠지만 지금 충분히 추억을 쌓아둬야겠어요
예...
지금이 가장 젊은 날이니까요.
노인한테는 '나중에'라는 단어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자꾸만 건강이 약해져서 나중에는 여행은 고사하고 방안에서.. 병원에서...
하루라도 건강하실 때 함께 하는 게 효도이겠지요.
님이 부럽군요.
부모님이 곁에 계시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