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과 산문집은 이렇게 다르다
곽 흥 렬
수필가가 아닌 사람들이 전혀 수필로 승화되지 못한 사이비수필 같은 글들을 모은 책을 ‘산문집’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는 것을 심심찮게 보게 됩니다. 모든 문학작품을 큰 줄기로 가르면 운문과 산문으로 나눌 수 있으니, 그렇다면 운문에 속하는 시집이나 시조집, 동시집 등이 아닌 책들은 모두 ‘산문집’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터이겠지요. 그런데도, 나는 그들이 수필 아닌 잡문들을 엮은 책은 ‘산문집’이라고 하면서 왜 소설집이나 동화집 같은 경우는 ‘산문집’이라고 이름을 붙이지 않는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소설 작품을 모아 놓은 책을 굳이 ‘소설집’이라고 이름하고 동화 작품을 모아 놓은 책을 구태여 ‘동화집’이라고 명명한다면, 그 외에 다른 잡동사니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은 당연히 ‘잡문집’이라고 하여야 이치에 맞지 않을까요.
이 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구에 회자하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당당히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이라는 표제로 책을 출간한 바 있고, 중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루쉰도 『무덤』이라는 책에다 ‘잡문집’이라는 이름을 붙여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세계적인 작가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우석대 대학원장을 지낸 전주 전흥교회 정순량님 역시 『과학과 문학의 어울림』이라는 자신의 저서에다 스스로 ‘잡문집’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집들을 두고서 언론매체나 평자는 “소설로는 충족시킬 수 없는 인간 하루키의 진면목을 보여준다”라거나 “당시의 세계 문화 및 중국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루쉰의 심오한 이해와 통찰을 담고 있다”, “소박한 심성답다”라고 각각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말 사전은 수필집과 산문집의 차이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뜻풀이를 해 두고 있습니다.
* 수필집: 수필을 모아 엮은 책
* 산문집: 단편소설이나 수필, 기행문 등의 산문을 한데 모아 엮은 책
수필집이 수필이라는 한 가지 재료로만 만든 백설기 같은 책이라고 한다면, 산문집은 이것저것 잡다하게 넣어 끓인 섞어찌개 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필집은 전문 수필가가 오로지 수필 하나에만 혼을 쏟아서 펴내는 반면, 산문집은 항용 시나 소설 쓰는 사람들이 시 쓰고 소설 쓰다가 여기餘技 삼아 신변잡기식으로 긁적거린 잡다한 글들을 모아서 그러한 이름으로 세상에 내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생각입니다.
수필집과 산문집은 이렇게 다릅니다. 그렇다면, 수필집과 산문집 가운데 어느 쪽에 더 예술적 값어치가 높게 매겨져야 할 것인가는 저절로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 《수필세계》 2023년 봄호 '권두 에세이'
곽흥렬 약력
1991년《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문단에 나와 그동안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 세태비평집 『사랑은 있어도 사랑이 없다』, 수필 쓰기 지침서 『수필 쓰기의 모든 것』등 총 12권의 책을 내었고,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코스미안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2012년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창작기금을 받음.
첫댓글 ☆ 곽흥렬 선생님! 참으로 반갑고 또 고맙습니다.
*수필집과 *산문집에 대한 차이점을, 덕분에 이제 확실히 잘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전 어쩔수 없이 ★'오직'이란 제목의 산문집으로 명명해야 되겠습니다.
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병원출입을 즐기다 보니,
'일단멈춤'의 많은 세월이 흘러도 아직 다 완성도 못했지만요.ㅎㅎ ㅎ
조혜자 선생님, 병원에 자주 간다니 몸이 많이 불편하신가 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 출입을 즐긴다고 하신 표현을 보면서 참 긍정적인 인생관을 가지셨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서 계획하고 계신 작품집 '오직'이 세상에 태어날 날을 기다려 봅니다.
☆ '오직'이란 말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이고,
저의 마음가짐이라, 벌써 오래전에 정해둔 제목이랍니다.
3년 前 이미 서울에서 감사하게도 *창작지원금까지 수령을 했으나,
몸은 따라주지않고, 정말이지 마음이 천근 만근 많이 무겁습니다.ㅎㅎ ㅎ